78. 오금강체환(烏金剛體丸)
건우는 혈모원들이 차지한 계곡을 굳이 탐내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해안 절벽에 동부를 세웠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제작과 제약이었다.
법부와 법기, 법보는 물론이고 괴뢰를 만드는 것까지 범위를 넓혀 공부를 시작한 건우.
거기에 극화조 연단로의 연화가 끝나면서 단약 연단에도 큰 관심이 생겼다.
덕분에 혈모원의 약초밭이 많이 축나기는 했지만 연습 삼아 만든 영약들이 또 혈모원들에게 전해졌으니 큰 이득을 본 셈이었다.
‘우끽끼’라 이름을 붙인 혈모원 우두머리는 건우가 만들어주는 영약들을 애지중지 하며 부하들에게 찔끔찔끔 나눠졌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혈모원 무리 중에 축기기가 셋이나 생긴 것을 보면 확실히 영단의 위력은 대단했다.
게다가 우끽끼 역시 건우가 새롭게 전한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익혀 성단의 길이 열렸다.
어쩌면 우끽끼가 멍뭉이 보다 빠르게 성단에 오를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는데, 나오금강체술이 인간형 체형을 지닌 우끽끼가 익힐 수 있는데 반해서 멍뭉이는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멍뭉이도 두문불출하며 수련 삼매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이야, 이거 정말 괜찮네.”
건우가 흐릿한 빛을 머금은 단약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감탄을 했다.
건우가 들고 있는 단약은 성단기 수사의 수련에 도움이 되는 활기단 종류의 단약이었다.
활기단은 영기의 움직임을 돕는 단약으로 성단기의 영기 수련의 효과를 1할 정도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처음 만들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역시 극화조의 연단로는 귀물이야. 귀물(貴物).”
건우가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며 손바닥을 뒤집어 극화조 연단로 안에 쌓여 있는 활기단을 모두 꺼냈다.
삼백 알 정도의 활기단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건우가 준비한 목함 안에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건우는 목함의 뚜껑을 닫고는 아공간 한 쪽으로 밀어 두었다.
“이제 연습도 끝이 났으니까 제대로 된 약을 만들어 봐야지.”
건우가 지금까지 만든 영단들은 대부분 기초적인 것이고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성단기에 사용할 수 있는 영단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경지에 쓰는 다른 영단들에 비하면 제작이 쉬운 쪽이었다.
그런 영단을 극화조 연단로의 도움까지 받아 만드니 성공률도 높고 제법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만들려는 영단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정한 수련 공법에 딸려 있는 영단.
즉 그 수련 공법의 경지를 빠르게 끌어 올릴 수 있는 맞춤 영단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수련 공법에 맞춤한 영약은 보기 어렵다.
그런 영약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수련 공법이 뛰어난 것이란 뜻이다.
그렇지 않은 수련 공법에 애써서 맞춤 영약의 비방까지 만들어 붙일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오금강체환(烏金剛體丸)이라.”
건우가 작은 옥간 하나를 들고 그 내용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건우가 만들려고 하는 영단은 다름아닌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의 경지를 빠르게 끌어 올리는 데 쓰이는 영단이었던 것이다.
건우가 딱히 그 영단을 만들기로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나오금강체술은 연체술의 일종으로 육체를 강건하게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길우몽의 몸으로 그것을 익혀보니 나름 장점이 많이 있었다.
어지간한 공격을 그냥 몸으로 때워도 될 정도로 튼튼한 육체를 지닐 수 있다는 장점.
거기에 건우는 연체술만 익힐 것이 아니었다.
연체술을 바탕으로 영기 수련법도 빠르게 익힐 수 있다.
나오금강체술은 영단의 힘을 빌려 경지를 끌어 올리고, 팔속성 영근들의 경지는 영근 하나씩만 개방해서 수련을 하면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육체 경지의 상승은 영근 경지 상승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건우는 나오금강체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그것을 직접 체험했다.
그래서 수련의 바탕을 세우기 위해서 나오금강체술을 먼저 일정 경지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우선 성단기 경지까지는 끌어 올려야지.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의 경지가 아직도 축기기 수준이라 아쉬운 점이 많아.”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손을 저어 뭔가를 불러왔다.
옥으로 된 작은 함.
건우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함을 열었다.
짙은 약향과 함께 현란한 광채가 번져 나왔다.
토령영삼(土靈嶺蔘).
건우가 얻었던 영약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걸 써서 영단을 만들 주제는 아니지. 하지만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테지.”
건우는 광채를 머금은 토령영삼의 잎을 하나 떼어 냈다.
토령영삼은 10만 년의 수령을 지녔지만 그 잎과 줄기는 1만 년에 한 번씩 새로 자란다.
그래서 지금 건우가 취한 잎은 1만 년 정도 된 잎이었다.
“이것만 해도 차고 넘치지. 게다가 이 나오금강체술은 금과 토의 속성이 짙어서 토령영삼의 잎으로 오금강체환(烏金剛體丸)의 주요 재료들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지. 아니 오히려 그런 재료들을 쓰는 것보다 효과가 뛰어난 영단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건우는 오금강체환을 만드는 비방의 약방문을 깊이 연구했다.
수사들의 연단은 기록된 재료로만 만들어 내기 어렵다.
다양한 재료를 모두 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성질을 재료를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은 연단술의 기본이었다.
건우는 오금강체환의 약방문을 연구한 끝에 토령영삼의 잎으로 대부분의 주재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보조 재료들 역시 가지고 있는 것들과 혈모원들의 약초밭에 있는 것이면 충분했다.
“으음.”
건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극화조 연단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연단로의 겉표면에 극화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빛 서광이 깃든 붉은 불새는 느릿느릿 연단로의 표면에서 날개짓을 하며 건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휘리릭 연단로를 한 바퀴 돌고는 다시 건우를 바라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건우는 그런 극화조의 행동이 일종의 대기 상태란 것을 알고 있기에 서슴없이 토령영삼의 잎을 연단로에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극화조에게 의식을 연결하여 다른 재료들이 들아갈 때까지 연단로의 작동을 멈추게 했다.
이후 건우는 몇 가지의 재료를 넣고 쇠막대로 저어 주고, 다시 재료를 넣고 쇠막대로 저어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 때까지 극화조는 조용히 날개짓을 하며 건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딸깍!
재료 투입이 끝나자 건우가 마지막으로 쇠막대를 저어 주고는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쇠막대로 연단로를 몇 번 두드렸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건우의 신호에 극화조가 날카로운 울음을 울면서 연단로의 표면을 빠르게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연단로에서 극렬한 화기기 뿜어져 나왔다.
건우는 갑작스러운 화기에도 놀라지 않고 가부좌를 한 상태로 연단로를 향해 두 손을 뻗은 상태로 영기 운용을 시작했다.
그런 건우의 심상에는 연단로 안쪽의 상황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여러 보조 재료들이 녹아서 몇 가지의 성질로 나뉘어 각각 떠돌고 그 중심에 토령영삼의 잎이 광채를 뿜고 있었다.
토령영삼의 잎은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키려 하는 모습이었지만 보조재료들이 녹은 약액들이 가랑비처럼 그 잎을 조금씩 적셨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지났을 때, 토령영삼의 잎은 보조재료들의 약액에 완전히 녹아서 갈색의 액체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여전히 보조 재료가 녹은 약액의 8할이 남아서 그 갈색 액체를 감싼 모습이었다.
그 때, 건우가 몇 번의 수인을 맺으며 영기를 극화조 연단로에 쏘아 넣었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극화조가 길게 포효를 하며 연단로의 뚜껑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연단로의 표면을 돌아다니던 극화조가 연단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건우는 그런 극화조를 향해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뒤집으며 화속성 영근의 기운을 뿜어 주었다.
삐이이이이이 삐이이이익!
극화조는 건우의 영기를 가득 받아들이고는 살짝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몸통에 접어 붙이고 연단로의 뚜껑으로 곤두박질쳐 들어갔다.
건우는 그렇게 들어간 극화조가 연단로 안쪽에 있는 약액들을 끌어모아 알을 품듯 품는 것을 심상으로 지켜봤다.
이제는 지속적으로 영기만 불어넣어 주면 극화조가 알아서 영단을 완성할 것이다.
지금 극화조는 건우가 만들고자 하는 오금강체환의 제작 방법을 모두 받아들인 상태였다.
건우 대신에, 건우보다 더 세심하게 약성을 조율해서 조화시키는 작업을 극화조가 하는 것이다.
* * *
건우의 아공간에 새로운 금단이 하나 만들어졌다.
나오금강체술이 성단과 같은 경지에 오르면서 만들어진 위성단(僞成丹)이었다.
연체술로 성단기와 같은 경지에 올랐지만 연체술은 단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육체를 단으로 여기니 굳이 단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길우몽의 몸을 벗고 건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에는 나오금강체술 성단기의 힘을 하나의 단처럼 뭉쳐두었다.
덕분에 건우의 아공간에 여덟 영근이 변한 단(丹)과 나오금강체술의 위성단이 수미산겨자씨를 중심으로 아홉 방향에 나뉘어 자리 잡게 되었다.
“역시 오금강체환의 효과가 대단하군.”
건우가 수미산겨자씨 밑에서 묵직한 날숨을 쉬어 탁기를 뱉어내며 중얼거렸다.
토령영삼의 잎을 이용해서 오금강체환 예순 알을 만들어 냈다.
그 중에 열 알은 상급의 영단이고 스무 알은 중급, 서른 알은 하급의 영단이었다.
그런데 건우는 그 중에 하급 영단 다섯 알을 먹고 나오금강체술의 경지가 축기에서 성단으로 급격히 올랐다.
아직 쉰다섯 알의 오금강체환이 남았으니 한동안 성단기 수행에도 막힘이 없을 것이다.
다만 육체가 성단기에 오르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은 탓에 한동안 수련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일종의 안정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의외로 나오금강체술의 안정기 시간이 길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변수야. 하지만 그 사이에 법기나 법보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건우는 이미 연체술이 성단기에 오르는 순간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도 이미 세워 둔 상태였다.
“이걸 건드려 보고 싶어서 그 동안 손이 근질근질 했지.”
건우가 허공에 손을 휘저어 뭔가를 불러왔다.
“성단기 포공공마의 사체. 이런 것을 우끽끼가 챙겨 뒀을 줄은 몰랐지.”
건우는 얼마 전에 우끽끼와의 의념 연결을 통해서 그가 섬을 떠난 후에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살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끽끼가 포공공마의 사체와 두 경씨 남녀의 사체를 보관해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건우는 곧바로 우끽끼에게 그것들을 가지고 오게 했고, 이후 그것들을 아공간에 따로 보관을 해 뒀었다.
하지만 이제 건우는 굳이 수사들의 사체를 수련 자원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축기기나 성단기 사체가 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굳이 수사의 것이 아니라도 쓸만한 사체는 많았기에 일단 아공간 깊은 곳에 보관만 해 두기로 했다.
하지만 포공공마의 경우는 전혀 문제가 달랐다.
죽은 포공공마는 성단기 수준의 해양 요수였고, 잘만 가공하면 영체기 수준의 능력을 담은 법기나 법보를 만들 수 있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법기, 법보들이 아무리 잘 쳐줘야 성단기 수준인 건우에게 영체기 수준의 법기나 법보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걸로 뭘 만들어야 할까?”
건우가 해마를 닮은 포공공마의 사체를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