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77화 (77/499)

77. 극화조 연단로는 Get 검선의 유진은 일단 Keep

몇 달 후.

- 이제 나오세요?

건우가 화속성 영근 영역에서 수미산겨자씨 밑으로 나오자 루야가 다가왔다.

“그래, 이번에도 한참 씨름을 했다.”

- 그래서요?

“이젠 조금 길이 드는 듯 싶다.”

- 우와, 성과가 있는 거네요?

“그래. 그 극화조(極火鳥)가 이지를 지니기는 했지만 진짜 영혼을 얻은 것은 아니다.”

- 그래서요?

“영혼이 없으니 영물이 되지 못하고, 성단기 이상의 경지에 올랐어도 영족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 그럼 앞으로도 진혼을 얻지 못하는 건가요?

“그렇겠지. 시작점이 잘못되었다. 사물이 혼을 얻어 영족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것은 알겠지?”

- 그렇죠. 전에 봤던 화신기 수사 령령도 방울 법기가 영성을 얻어서 영족이 된 경우잖아요.

“그래, 그것처럼 극화조가 들어 있는 연단로 법기도 영족이 될 가능성이 있었겠지.”

- 그런데요?

“하지만 연단로 안에서 화정 연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이 틀어졌다.”

- 어떻게요?

“화정이 원래 요수인 화조의 정(情)이다. 화조(火鳥)의 기운이 응결되어 있는 핵심인 것이지. 그것을 연단하는 것인데, 거기에 오랜 시간이 더해지면서 묘하게도 화정에 사고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연단로까지 연결이 되었지.”

- 그러니까 화정의 영단이 영혼은 없는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게 되었다는 거네요? 그게 다시 연단로까지 연결이 된 거고요?

“그런 거지. 그렇게 해서 지금의 상태가 되어 버린 거다.”

- 그래서 그 상태로는 제대로 된 영족도 못 되고, 수도계의 수사 대접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네요? 아무리 경지가 높아도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사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니.”

- 하아, 어떻게 보면 저와 비슷하네요. 저도 사고 능력은 있지만 제대로 된 영혼은 없으니까요.

“으음.”

건우는 루야의 푸념에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상 연단로의 극화조는 루야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화조가 지금보다 훨씬 사고 능력이 발달하고 표현력이 높아지면 루야와 비슷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 그래서 이젠 어떻게 되는 거예요?

루야는 자신의 신세 한탄을 오래 이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어쩔 방법이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길을 들이는 중이다. 그 동안 화기를 워낙 많이 뿜어내서 기운이 많이 줄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화기를 먹여 주면서 연화를 하는 거지.”

- 그러니까 건우 님의 화기를 연단로 안의 극화조에게 먹이는 거군요? 기운도 북돋워 주면서 한편으로는 건우 님의 영기로 극화조와 연단로를 연화시키는 거잖아요.

“그런 거지.”

- 그게 먹혀요?

“배가 많이 고팠는지 주는 대로 꼬박꼬박 잘도 받아먹더군.”

- 어휴, 확실히 건우 님 말씀대로 그 녀석은 많이 모자라는 녀석이네요. 성단기 중기 이상의 경지에 있다는 녀석이 그 모양이라니.

루야는 극화조 연단로가 건우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자유를 잃고 건우에게 완전히 귀속되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된 것이다.

“이번에 연화가 끝나면 극화조 연단로는 최상급 법보, 혹은 그 이상의 법구(法具)가 될 거다. 그럼 당연히 그 연단로로 단약을 만드는 것도 쉬워지겠지.”

- 그래요?

“당연하지. 연단 성공률이 몇 배는 올라갈 걸? 게다가 더 좋은 건 그 극화조 연단로는 성장형이란 거다. 극화조의 성장에 따라서 연단로의 성능도 올라가는 거지. 최상급 법보에서 영기, 영보, 선기, 선보까지 내다볼 수 있다.”

- 영기, 영보도 까마득한데 선기, 선보까지요?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 되면 극화조도 능히 수사의 대우를 받을 정도가 될 수도 있지. 어쩌면 그 사이에 영성을 얻어서 영족으로 거듭날 수도 있고.”

- 그래봐야 건우 님께 종속된 존재밖에 더 돼요?

“멍뭉이나 원숭이의 분혼을 빼앗아서 종속시킬 때는 반대하지 않더니 어째 극화조 문제엔 까칠한 거 같다? 극화조와 너를 너무 동일시 하는 거 아니냐?”

- 아닙니다. 그런 거.

“정보집합체가 거짓말까지 하는 거냐?

- 동일시 아닙니다. 그저 동생을 아끼는 마음 같은 겁니다.

“하하.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하자. 자, 그럼 일단 다시 비행을 해 볼까?”

건우는 루야의 반응에 하하 웃고는 아공간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높은 허공에서 아공간을 열고 나온 건우는 허공을 밟고 선 상태에서 청옥비선을 꺼내 부풀리고 그 선수에 올라섰다.

그리고 곧바로 세절도를 향해서 청옥비선의 항로를 정해 출발시켰다.

연단로의 극화조가 흡수한, 건우의 화속성 영기를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동안은 청옥비선을 타고 세절도를 향해 비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극화조가 영기 흡수를 마치면 다시 아공간에 들어가 극화조 연단로의 연화 작업을 한다.

그렇게 몇 번만 반복하면 극화조 연단로의 연화 작업이 끝날 것이고, 세절도에도 도착할 것이다.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십이비선봉 밀역과 은밀역에서 얻은 보물들을 하나씩 꺼내 살폈다.

법부, 법기, 법보, 옥간, 서책, 그림 등등.

어느 하나 허투루 볼 것이 없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배우고 익힐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청옥비선을 타고 날아가는 동안에도 건우의 배움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 * *

“흐으음.”

망망대해의 높고 높은 하늘 위.

간혹 구름이 일어나도 운해로만 깔릴 정도로 높은 곳에 청옥비선을 세운 건우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묘하군.”

손에 쥔 파편에 의식을 불어넣고 한참을 살핀 건우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들린 돌조각은 은밀역에서 어깨를 파고들었던 파편이었다.

열두 신선의 동상 중에서 검을 든 검선의 동상이 폭발하며 날아온 검의 첨단.

건우는 그것을 고이 모셔 두었다가 보물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꺼내 확인을 하던 중이었다.

어차피 대충 살피고 이후에 깊이 궁구할 것들을 따로 추리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꺼낸 검선의 동상 파편이 건우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건···. 살아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나무도 아니고, 돌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것 같으면서 그 모든 성질을 다 지니고 있는 것도 같고.”

건우가 파편을 이리저리 돌렸다.

각 변의 길이가 다른 마름모꼴을 하고 있는 파편.

원래 검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온 것이라 검첨 부분이 얇고 날카로웠다.

청동색을 하고 있는 묘한 재질의 파편.

건우가 그것을 살아 있다고 하는 이유는 파편에서 생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것도 의식 연결이 가능한데 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문제야. 아마도 이걸 더 키워야 좀 쓸 만한 구석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건우가 심각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검선의 유산이랄 수 있는 파편이 수미산겨자씨와 비슷한 방식의 의식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파편과 제대로 의식 연결을 하게 되면 수미산겨자씨의 반영세계에 들어간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소리였다.

“아마도 검선의 가르침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 빌어먹을 조각을 키워야 한다는 거지.”

대충 방법은 짐작이 갔다.

파편이 원하는 자원을 먹여주면 될 것이다.

지금도 파편을 쥐고 있으면 몇 가지 재료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는 건우가 가진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있었다.

“아주 하마야 하마. 이걸 키우려면 엄청난 것들을 찾아 먹여야 해. 그것도 처음 시작이 이 정도면 나중에는 도대체 어떤 걸 얼마나 퍼 먹여야 할지 감도 안 잡혀.”

건우가 다시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꼭 키울 필요가 있나? 화신기? 아니면 영계 비승을 위해서 이게 꼭 필요할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파편을 아공간 한 쪽에 따로 보관해 버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파편을 키워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꺼낼 일이 없을 것이다.

“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 유운 그 자가 무슨 이유로 파편을 나에게 줬는지 모르지만 당장은 관심을 끊는 것이 좋겠어.”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청옥비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세절도도 멀지 않다.

섬에 도착하면 곧바로 동부를 꾸미고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성단기에 올라 수명도 많이 늘었지만 저계 수사에게 수련 시간은 항상 부족하기만 할 뿐이다.

또 그 때문에 향상심을 버릴 수 없는 것이고.

* * *

우끽끼, 우끽끼!

혈모원 우두머리는 요즈음 사는 것이 즐거웠다.

일족들은 환영 결계가 펼쳐진 계곡에서 번성하고 있고, 자신은 축기기 완경에 올랐다.

어쩌면 성단을 이루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끼, 우끼끼.

혈모원 우두머리는 오랜만에 수련 동부에서 나와 약초밭으로 향했다.

약초밭은 주인이 가르쳐준 대로 잘 꾸려져 있었다.

주인이 섬을 떠나고 90년 가까운 세월을 가꾼 약초밭이었다.

섬에 있는 온갖 약초와 영초를 구해서 그 기운에 맞게 심었고, 때로는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구해와서 뿌리고 묻었다.

끽끽끼끼! 우끼긱 우끼끽!

우두머리가 약초밭에 모습을 드러내자 연신기 후기에 이른 혈모원 한 마리가 급히 다가와 옆에 섰다.

그리고 함께 약초밭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수컷은 약초밭을 관리하는 녀석으로 일족 서열 3위에 있는 녀석이었다.

우두머리 대신에 일족 전체를 관리하는 것은 연신기 완경의 암컷이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서열 3위 수컷이 자랑하는 약초밭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끽끽끼.

- 잘 했다. 좋아.

혈모원 우두머리는 그렇게 칭찬을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계곡 위로 올라섰다.

어쩐지 심장이 뛰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뭔가 묘한 설레임 같은 것이 계속 혈모원 우두머리를 자극하고 있었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수련을 끊고 동부 밖으로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절벽 위에 서서 마음이 가는 데로 먼 하늘을 바라봤다.

우끽끼? 우끼? 우끽끽끼!

왁왁왁왁왁! 우꺄! 우꺄!

그러다가 갑자기 혈모원 우두머리가 영기를 가득 담아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계곡은 물론이고 주변에 퍼져 있던 모든 일족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찼다.

그 소리에 사방에서 혈모원들이 계곡으로 몰려들었다.

우두머리의 고함에 기쁨과 환희는 물론이고 모든 일족의 집합령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우끼끼!

- 주인님이 오신다!

그리고 또 하나, 혈모원 일족의 주인이 오시니 맞이하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멀리 하늘 끝에서 청옥으로 만든 배가 빠르게 우두머리가 서 있는 절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녀석 마중을 나왔군.”

건우도 청옥비선의 선수에서 혈모원 우두머리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깨어난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을 통해서 섬에 있는 우두머리의 감정이 여실하게 전해졌다.

순수한 반가움과 기쁨.

건우는 그것이 무척 기꺼웠다.

한 점 속임도 없는 그런 순수한 마음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가까이 멍뭉이가 있긴 해도 혈모원 우두머리처럼 감정이 진하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혈모원 우두머리가 유독 예뻐 보이는 건우였다.

“잘 있었느냐?”

청옥비선이 과거 한민 수사의 수련 동부가 있던 절벽 위에 도착하자 청옥비선을 회수하며 건우가 훌쩍 뛰어 내렸다.

우끽 우끽 우끽 왁왁왁왁!

- 주인, 반갑다. 주인 반갑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굴리고 재주를 넘으며 건우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 모습에 건우가 또 활짝 웃었다.

“나도 반갑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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