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76화 (76/499)

76. 연단로를 열다가 화들짝 놀라다

“끄으응!”

건우는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을 쑤시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 괜찮으세요?

루야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걸었다.

컹컹컹 왕왕왕!

멍뭉이도 빠지지 않고 기척을 드러냈다.

건우는 다시 눈을 감고 의념을 펼쳐 아공간 전체를 살폈다.

아공간은 곧 건우의 의념공간.

자신의 의념공간을 살피는데 걸리는 것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 여전히 아공간 곳곳에 노이즈 같은 것이 끼어 확인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은밀역에서 발생한 공간 붕괴와 공간 균열이 끝내 건우의 아공간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건우는 외부에서 생긴 공간의 문제가 아공간까지 영향을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물론 그 영향이 아공간에 그대로 100%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이 감소된 상태로 밀려들었다.

그 덕분에 건우가 최대한 의식의 힘을 뿜어서 아공간의 파괴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밖에서 일어난 공간 붕괴와 균열이 고스란히 아공간까지 밀려들었다면 건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휴우, 한동안 의념 수련에 집중을 해야겠다. 아공간 여기저기 흠이 많이 생겼어.”

건우가 아공간을 확인하고 눈을 뜨며 말했다.

- 그래도 다행이에요. 저는 이대로 아공간이 박살나는 거 아닌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루야에겐 아공간이 집이고 안식처다.

아공간이 없으면 루야는 소멸하고 말 테니, 걱정이 많기도 했을 것이다.

건우도 그런 생각이 들어 측은한 마음에 루야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이제 모든 상황이 지나갔다. 공간이 안정되었으니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거다.”

-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벌써 3년이 지난 건 알고 계세요?

“응? 3년?”

- 네. 건우 님이 의념 집중에 들어간 것이 벌써 3년이나 지났어요.

“3년이라······. 확실히 수사의 시간은 범인과는 다르게 흐르는구나.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의념에 집중하기만 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니.”

건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에 놀랐다.

하지만 공간 균열과 붕괴 현상이 고작 3년 만에 안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임을 건우는 모르고 있었다.

공간 자체가 뒤흔들리며 또한 무너지는 현상은 쉽게 벌어지는 일이 아닌 만큼 또 안정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인지 은밀역의 공간 붕괴와 공간 균열은 그 밖에 있는 십이비선봉 밀역의 공간 균열과 붕괴와 맞물려 빠르게 안정이 되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수백 년을 불안정한 공간에서 머물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놈이 큰소리를 친다고,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우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놀라워 하는 것이다.

- 이제 어쩌실 거예요?

루야가 건우에게 계획을 물었다.

“밖으로 나가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리고 그 뒤는 어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수련을 해야지.”

- 또 수련이에요?

“수사가 할 일이 그것말고 뭐가 있다고? 이런 저런 공부할 것이 많아서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부족한 판인데.”

- 보면 수사란 사람들은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사는 거 같아요.

“수사의 즐거움이 범인의 것과 같을 수는 없지.”

- 아, 그 뽕맛. 그거 말이죠?

“어허, 법열이라니까. 그리고 그 법열조차 실상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걸림돌, 라훌라일 뿐이다.”

- 라훌라가 뭐예요?

“그런 게 있다. 장벽, 장애라는 뜻이지.”

- 아! 찾았어요. 저한테도 있는 정보네요.

“됐다. 넘어가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아공간 입구를 열어 밖으로 내다봤다.

이미 의념 집중을 하는 동안에 밖의 상황이 진정된 것을 확인했지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 공간 균열의 여파가 아공간 입구를 통해 밀려들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았다.

- 아무것도 없네요.

루야가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렇군. 바다 뿐이네.”

건우도 아공간 입구를 사방으로 돌려보며 말했다.

그 말대로 보이는 것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수평선뿐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수평선의 색이 검다는 것이었다.

“흑해로군.”

건우가 중얼거렸다.

흑해는 다도해역의 서쪽에 있는 바다였다.

바다색이 온통 검고, 수많은 해양 요수가 살고 있어서 일반 수사들은 좀처럼 오가지 않는 곳이었다.

- 그럼 동쪽으로 가야겠네요?

루야가 말했다.

“그렇지. 동쪽으로 곧장 가서 흑해를 빠져 나가고, 그 다음에는 동남쪽으로 가야겠다.”

- 동남쪽이요?

“그래. 세절도로 갈 생각이다.”

- 아, 거기서 수련을 하시게요?

“수 만 년 동안 수사들의 왕래가 없던 곳이니 내가 그곳에 있더라도 다른 이들을 만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

- 그건 그러네요.

“이번에 얻은 것들이 많으니 한동안은 다른 수사들과 교류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참에 성단을 넘어 영체를 이루어야지.”

- 우와, 건우 님의 성장은 그야말로 유래가 없을 정도겠어요. 솔직히 벌써 성단을 이룬 것도 엄청난 거 아니에요?

“그래봐야 한낱 저계 수사에 불과하지. 이번에 보지 않았어? 화신기 수사의 등장에 이마를 땅에 처박아야 하는 것이 내 위치야.”

건우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수련 경지의 차이 때문이라곤 하지만 스스로 땅에 엎드려야 했던 굴욕감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경지를 높이는 것에 대한 욕망이 불타 오르고 있었다.

* * *

“으음. 이젠 이걸 열어볼 때도 된 거 같은데.”

건우가 청옥비선의 선수에 앉아서 화로 하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건우의 청옥비선은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세절도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흑해는 어렵지 않게 빠져 나왔다.

공간 붕괴와 균열의 여파 때문인지 건우가 흑해를 빠져나올 때까지 흑해의 해양 요수는 터럭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위험을 피해 멀리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그 덕분에 쉽게 흑해를 빠져나온 건우는 곧바로 청옥비선의 항로를 동남쪽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비행을 하는 동안 선수에 앉아서 아공간에 모아 둔 물건들을 살폈다.

그러다가 꺼낸 것이 한민 장로가 남긴 연단로였다.

대천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얻은 법기였다.

건우는 팔뚝 길이의 쇠막대기를 들었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들고 휘두르던 6미터 길이의 쇠봉이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굵기로 팔뚝 길이의 막대기가 되어 있었다.

건우는 그 쇠막대를 지금까지 살피던 연단로의 뚜껑에 가져다 대었다.

쇠막대는 연단로와 한 쌍으로 뚜껑을 여는 열쇠의 역할도 하고, 연단로에서 단약을 만들 때에 약을 저어서 섞어주는 혼합봉 역할도 하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오랜만에 짝을 만난 연단로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여기서 영기를 조절하면 뚜껑이 열리고 3만 년 가까이 연단로에서 익어가던 화정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우우우웅!

하지만 건우는 뚜껑에 대었던 쇠막대를 다시 거두었다.

“이거 안 되겠네. 연단로 안에 쌓인 기운이 너무 커. 여기서 열었다가는 청옥비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어.”

건우가 쇠막대를 거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연단로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엄청난 화기(火氣)가 잠자고 있어. 조금 전에 꿈틀거린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해.”

건우가 느낀 엄청난 기운도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 것을 비행중인 청옥비선에서 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어디 잠시 내려가서 아공간의 화영근 영역에서 이걸 열어야 할 거 같군.”

화속성 영근의 영역은 그야말로 화기(火氣)의 세상이다.

그곳이라면 아무리 엄청난 화기가 터져 나와도 어느 정도는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내 의념 공간에서 제까짓 것이 날뛰어 봐야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급히 청옥비선을 멈추었다.

어차피 일이야 아공간에서 치를 것이니 어디서든 아공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건우는 청옥비선이 멈추자 곧바로 비선을 축소시켜 손에 들고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 어쩐 일이세요?

건우의 등장에 루야가 반가운 목소리로 마중을 나왔다.

“이거 한 번 열어볼까 하고.”

건우는 연단로를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화속성 영근 영역을 불러내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건우는 어느새 용암이 이글거리는 화산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다.

성단을 이루면서 용암의 강이 이제는 화산 분화구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분화구의 중심 새하얗게 타오르는 용암 위에 살짝 돋아난 검은 바위가 있었다.

용암에도 녹지 않는 그 바위가 화속성 영근을 수련할 때에 건우가 앉는 자리였다.

후우우우우웅!

건우가 그 자리에 앉자, 건우 앞에 이글거리는 구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속성의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단(丹)이었다.

화속성 영근이 성단을 이룬 증거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 단에는 엄청난 화속성 영기가 뭉쳐 있었다.

축기기에 쌓았던 것의 수십 배는 되는 양이 단의 형상으로 뭉친 것이다.

건우는 그 화속성의 단을 머리 위에 두고 가부좌를 튼 배 앞에 연단로를 불러냈다.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연단로.

이번에는 그 짝인 쇠막대를 불러낸 건우가 쇠막대를 연단로의 뚜껑에 붙였다.

우우웅우우웅!

그러자 곧바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연단로 속의 기운.

뚜껑이 열리기만 하면 용솟음을 치겠다는 강렬한 느낌이 전해졌다.

건우가 손을 휘저어 연단로 위쪽으로 화속성의 단(丹)을 이동시켰다.

화기가 치솟으면 곧바로 단(丹)이 그것을 흡수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화속성 단이 성단기 중기나 그 이상으로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 또한 큰 기연일 것이다.

건우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쇠막대를 연단로의 뚜껑 구멍에 끼워 넣고 살짝 비틀었다.

딸깍!

그 순간 뭔가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연단로의 뚜껑이 열렸다.

푸화화화화화확!

동시에 솟구치는 맹렬한 기세의 화기!

붉은 색을 넘어 청색, 청색을 넘어서 백색에 가까운 화염의 기운이 치솟았다.

푸화화화화화화화!

하지만 그 기운은 솟구치자마자 건우의 화속성 단을 만나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거침없이 연단로에서 솟구치는 기운을 삼키는 건우의 화속성 단(丹).

그에 질 수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화기를 뿜어내는 연단로.

건우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사실상 화속성 단을 제어하는 것이 건우였던 것이다.

‘굉장하군. 얼마나 많은 기운을 품고 있는 건지.’

끝없이 화속성 수련 공법에 매진하며 화기를 빨아들이면서도 건우는 내심 염려스러웠다.

아무리 건우의 의식이 강렬하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만약 연단로가 품은 기운이 성단기 중기 이상이라면 도리어 연단로의 기운에 자신의 단이 밀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단의 기운을 연단로에 빼앗길 수도 있고, 단이 훼손되어 경지가 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나고 아찔한 상상이다.

건우는 한층 의식을 단에 집중해서 연단로의 기운을 제어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든 단에 들어온 연단로의 기운을 정화해서 곧바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많은 기운을 정화할수록 받아들일 수 있는 화기의 양도 늘어나리라.

그 때였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길고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함께 연단로의 표면에 붉은 새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조?”

하급 요수 중에 하나인 화조(火鳥).

하지만 건우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연단로에 떠오른 것이 화조라면 독수리가 병아리일 것이다.

그만큼 연단로 표면에 나타난 새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성단기. 어쩌면 그 이상.’

건우의 판단은 그랬다.

‘위험하다.’

건우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건우의 한쪽 손에는 연단로의 뚜껑이, 다른 손에는 쇠막대가 나타났다.

“하아압!”

건우는 기합성과 함께 연단로의 뚜껑을 닫고 쇠막대로 돌려 뚜껑이 열리지 않게 고정했다.

푸확!

순식간에 멈춘 화기의 분출.

연단로 표면의 불새는 뭐가 불만인지 한참을 표면에서 노닐다가 조금씩 모습이 흐려지며 연단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후우!”

건우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