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유운의 마지막 흉계, 그 와중에 건우는 줍?
유운은 허공을 훌훌 날아내려 백옥 마당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열두 신선의 동상 중에 하나를 향해 다가갔다.
그 동상은 커다란 궤짝 하나를 바닥에 두고 깔고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허벅지에 올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유운은 그 동상 뒤에 서더니 깊게 읍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화신기 수사들은 그 동상이 유운이 말했던 사조임을 짐작하고 그대로 하는 양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문득 유운이 허리를 펴더니 훌쩍 몸을 띄워 동상의 어깨에 올라섰다.
동상의 머리 크기가 유운의 키와 비슷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수사들은 그걸 보고서야 동상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워낙 동상이 정교해서 크기가 크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사조님, 죄송합니다.”
유운이 동상의 어깨에서 짧게 사과의 말을 하고는 동상의 귀 밑에 나 있는 귀밑머리를 잡고 힘껏 뽑았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화공공이 깜짝 놀라 외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화공공의 장미가 부풀어 오르며 노을빛 기운을 백옥 마당 위로 펼치기 시작했다.
“저 놈이 무슨 수작을!”
미우천왕 역시 묵빛 기류를 뿜어내어 유운의 행동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영혼 맹약으로 유운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두 화신기 수사의 행동은 공격이 아니라 제어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이미 늦었다!”
그 때, 유운이 고함을 질렀다.
화공공과 협상을 시작할 때에는 존대로 말을 바꾸더니 지금은 다시 반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수작이냐!”
령령이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미 처음 일을 꾸밀 때부터 죽음을 각오한 몸이다. 운이 좋아 성단을 이루었다지만 그 각오가 사라질 것 같으냐?”
“무슨 헛소리냐?”
“다도해역의 수도계가 우리 십이선문을 멸문시킨 것에 대한 복수다. 나는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은지 오래다.”
능염선자의 외침에 유운이 허허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그그그극! 후우우우웅!
그러는 사이에 백옥 마당에 등을 보이고 있던 열두 신선의 동상들이 모두 밖을 바라보는 형태로 몸을 돌렸다.
이전에는 열두 명이 모여서 뭔가 궁리를 하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원진을 펼치고 적을 맞이하는 모습이 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쿠궁! 쿠궁! 쿠궁!
그리고 그 열두 신선의 동상은 제각각 무기를 뽑아들고 자세를 잡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 괴뢰였다는 말이냐?”
미우천왕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곳이 바로 십이선께서 영계로 비승한 장소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영계 비승의 비법이지.”
유운이 여전히 괴뢰선의 동상 어깨에 올라탄 상태로 말했다.
“영계 비승의 비법? 그게 뭐란 말이냐!”
화공공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십이비선의 영계 비승 비법에 대한 욕망은 버리지 못한 것이다.
“보아라. 열두 신선께서 각각의 방위를 밟고 제각각 진법의 축이 되셨다. 그리고 그런 힘이 모이면!”
유운이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황홀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옥 마당 위까지 뻗더니 열두 갈래로 갈라져 각각의 동상 머리에 맺혔다.
“이렇게 영계로 통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사실상 영계 비승의 공법 따위는 없었던 거지. 대신에 열두 화신기 수사가 힘을 모아서 영계로 오르는 통로를 열었던 것이다.”
“그, 그럼 따로 공법이 있다는 말은 헛소리였단 말이냐?”
능염선자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다도해역의 멍청한 것들이 다른 역(域)들의 헛소리에 놀아난 것이지. 우리 십이선문의 사조들께서 창안한 이 방법을 사용하면 열두 명의 화신기 수사만 모이면 영계 비승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니 다도해역에서 영계 비승의 수사가 많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른 역(域)들에 힘을 모아 거짓말을 꾸며 만들었지.”
“다도해역의 수도계가 그에 속아서 너희 십이선문을 멸문시켰다고?”
“그렇다. 게다가 그 때에는 다른 역(域)의 수사들도 은밀히 움직여 우리 십이선문의 고계 수사를 암습했지.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십이선문이 그리 쉽게 무너졌겠느냐?”
“그런 말도 안 되는······.”
능염선자가 얼굴색이 하얗게 질리며 맥빠진 표정을 지었다.
“거기 령령은 그 일에 대해서 알고 있을 텐데? 영족이라 그 때에도 십이선문의 멸망에 관여하지 않았던가?”
유운이 문득 령령 수사를 보며 말했다.
“본인이 십이선문의 멸문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음모가 있었음은 몰랐다.”
령령은 유운의 말을 일부 인정했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여기서 어느 정도 보수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영계 비승의 비법은 이제 사라질 것이고, 너희는 은밀역과 밀역의 공간 붕괴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유운이 사조의 동상 어깨에 올라선 상태로 은밀역에 들어온 수사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노옴! 감히 우리를 속였단 말이냐!”
화공공이 분노에 찬 고함을 터트렸다.
“회회전, 너희가 얼마나 많은 음모와 흉계를 꾸몄는데, 고작 내가 벌인 작은 일을 가지고 화를 낸단 말이냐? 하긴, 너희 회회전 역시 수도계의 거대 세력들 중에 하나일 뿐이지. 쯧쯔.”
유운은 그렇게 말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그 때, 열두 방위를 향해 자세를 잡은 동상들의 머리 위에 닿은 영계의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죽이리라!”
화공공이 분노에 차 노을빛 기운을 수백 개의 창 모양으로 바꾸어 유운에게로 향했다.
“영혼 금제의 타격을 받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그 모습에 유운이 화공공을 비웃으며 말했고, 화공공은 유운을 향해 날렸던 창의 궤적을 바꾸어 동상들을 공격했다.
유운이 보궁을 여는 방법을 속이지 않고 알려줬으니 영혼 금제의 맹약이 아직 유효했다.
유운과의 맹약보다 화신기 수사들 사이의 제약에 더 집중한 금제였다.
그 때문에 당장 유운을 찢어 죽일 수가 없었다.
쿠과과과과광! 후우우웅!
게다가 동상들도 만만치 않았다.
화공공의 공격이 동상들의 원진에 막혀서 허무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스화화화홧!
그리고 영계에서 쏟아지는 빛의 세기는 더욱 강해지며 천지 영기가 호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계로 통하는 빛기둥을 둘러싸고 인계의 천지 영기가 용오름처럼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번쩍! 콰르르르르릉!
“으아아악! 천겁뢰(天劫雷)! 천겁뢰다!”
령령 수사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화신기 수사 넷이 모두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영계 비승의 빛기둥을 휘감은 천지 영기와 그 영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샛노란 번개.
화신기 수사들은 그 번개를 천겁뢰라 하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건우는 천겁뢰가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저계 수사들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영체기 수사들 중에 몇이 경악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들 드러냈다.
그리고 그 중에 몇은 곧바로 둔술을 펼쳐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피해라! 고작 인계의 수사가 천겁을 어찌 견디리!”
“천겁! 천겁이라니!”
뭔가 알고 있는 영체기 수사들은 끓는 기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이미 주변에는 화신기 수사들이 펼쳐 놓은 강력한 결계가 있었다.
영체기 수사라도 그 결계를 쉽게 뚫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영체기 수사들이 결계를 뚫으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쯤 되니 성단기 수사들도 눈치를 살피며 화신기 수사들의 결계를 뚫기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히 네 명의 화신기 수사들은 그런 저계 수사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 곧 지상으로 내려올 노란 번개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천겁뢰를 부르다니!”
화공공이 어쩔바를 모르고 두려운 표정으로 유운을 바라봤다.
“천겁은 항상 역천자를 노리지. 수사 모두 역천자라고 해도 어찌 화신기를 두고 저계 수사를 향할까. 저 천겁뢰는 오롯이 너희 화신기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유운은 뭔가 알고 있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건우도 유운의 말에서 당장 천겁뢰가 자신에게 위험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운의 말대로 하자면 저 위험한 번개는 경지가 높은 순으로 수사를 노리를 것이기 때문이다.
“오, 온다아!”
령령 수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서 머리에 달고 있던 두 개의 방울이 부풀어 오르며 오색 영롱한 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령령 수사의 품에서는 수십 개의 법기와 법보, 법부들이 쏟아져 나와서 겹겹의 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능염선자와 미우천왕은 물론이고 화공공까지 법기와 법보, 법부를 난발하기 시작했다.
능염선자는 새빨간 불길로 몸을 감싸고 입고 있던 채의를 부풀려 그 표면에 여러 법기와 법보를 부착했다.
미우천왕은 몸을 웅크리고 두꺼비의 형상을 불러냈다.
반투명한 거대 두꺼비는 미우천왕이 그런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등에서 묵빛의 검은 기류를 뿜어내어 방패를 겹겹이 둘렀다.
그조차 부족했는지 미우천왕은 유운을 가뒀던 쇠우리를 불러내어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건우가 그 모습을 확인하고 화공공을 봤을 때, 장미가 봉우리를 닫으며 그 안으로 화공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네 화신기 수사의 준비가 끝나는 순간.
콰르르르르르르릉! 버언쩍!
느리게 내려오는 듯 했던 천겁뢰가 순식간에 열두 신선의 동상 머리에 닿았고, 열두 갈래로 갈라진 번개를 각각 세 갈래씩 령령과 능염선자, 미우천왕, 화공공을 향해 날아갔다.
건우는 그런 중에도 괴뢰선의 어깨 위에서 태연하게 서 있는 유운을 바라봤다.
비록 번개에 스치며 한쪽 팔이 사라지긴 했지만 유운은 태연한 기색으로 천겁뢰가 화신기 수사들을 공격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파캉! 파캉! 화르르륵! 화륵!
천겁뢰는 무시무시했다.
노란 번개는 화신기 수사들이 펼친 호신 수단을 계란 껍질 깨듯이 깨트리며 화신기 수사들을 노리고 있었다.
건우는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절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번개는 피하지 못하면 죽는 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군.’
성단기 따위가 어찌해 볼 위력이 아니었다.
건우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도 천겁뢰 한 가닥을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문득 건우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길 수사.
건우는 훽하니 시선을 돌려 유운을 바라봤다.
- 역시 영민하십니다. 곧바로 제 목소리를 알아차리셨습니다.
건우는 유운이 의념으로 전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유운과 개인적으로 연관되어 좋을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상황에서 누가 길 수사와 저에게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유운은 그리 말했지만 건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지금 무슨 의도로 유운이 건우에게 말을 건단 말인가.
- 잠시 후면 이곳 은밀역의 공간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울러서 은밀역을 감싸고 있는 십이비선봉 밀역 전체가 무너지겠지요.
유운 역시 건우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 하지만 그 전에 여기 사조들의 동상이 천지영기와 천겁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것입니다. 그 때에 제가 길 수사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습니다.
‘선물?’
건우는 의아한 눈빛으로 유운을 바라봤다.
- 인계에 선연(善緣)이라곤 길수사 밖에 없으니 그 인연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하십시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동상들이 폭발하면 검선께서 들고 있는 검이 부러져 그 끝이 길수사 쪽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 때, 길수사는 그 부러진 검을 취하십시오. 부상을 각오하고 몸으로 받아내면 다른 이들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원하는 십이선의 유진 중에 하나가 거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 길 수사의 대도행이 끝을 보기를 바라겠습니다.
유운이 그렇게 말했을 때, 마침 네 명의 화신기 수사를 노리던 천겁뢰가 조금씩 힘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천겁뢰를 막아낸 대가로 네 화신기 수사들은 큰 낭패를 본 모습이었다.
령령은 두 개의 방울 중에 하나가 거의 반쪽이 되었고, 능염선자는 팔 하나를 잃었다.
미우천왕은 두꺼비 형상이 깨져 피를 토하고 있었고, 화공공의 장미는 꽃받침에 잎이 서너 개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이, 이런! 또 다시!”
하지만 천겁뢰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영계와 닿은 빛의 기둥을 타고 다시 샛노란 번개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번개가 닿는다면 네 화신기 수사들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운은 그렇게 내려오는 천겁뢰를 올려보며 혀를 찼다.
“아깝구나 저것만 제대로 내리쳤어도!”
유운이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천겁뢰가 열두 갈래로 갈라져 동상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상들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번쩍! 콰과과과과과광! 번쩍!
“크아악!”
“아악!”
“피! 케엑!”
동상의 파편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동상이 파괴되면서 은밀역의 공간 전체가 뒤흔들렸다.
유운의 말처럼 공간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건우는 동상의 검 조각이 박힌 어깨를 움켜쥐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요행히 파편에 천겁뢰의 기운이 담겨 있지 않아 구사일생한 건우였다.
‘정말 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어깨를 잡은 손으로 파편에 의식을 투영한 건우는 유운의 말대로 그 안에 뭔가 있음을 확인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릉!
그 순간 영계와 이어졌던 빛의 통로가 사라지고 은밀역의 공간이 유리판이 깨지듯이 깨지기 시작했다.
건우는 다급하게 아공간 입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갈라지는 공간 균열에 쫓겨 건우 쪽으로 몸을 피하는 허빈자를 발견하고 슬쩍 암경을 뿌려 허빈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어억! 너어! 도대체 왜!”
허빈자가 그런 건우의 방해를 알아차렸지만 곧 밀려든 공간 균열에 온 몸이 산산조각나서 흩어졌다.
“그냥 뒤끝이야! 할 수 있을 때, 해 둬야지.”
그 말을 끝으로 건우는 급히 아공간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은밀역은 본격적으로 공간 균열을 일으키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건우는 열려 있는 아공간 입구를 통해 아공간 안쪽까지 균열이 전해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입구를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