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74화 (74/499)

74. 유운이 보궁을 열다

“화공공, 회회전은 원래 우리 십이선문과 악연이 없었는데 이제는 서로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구려.”

“이 놈, 감히 하찮은 성단기 따위가 나에게 그 따위 말투를 쓰다니!”

“화공공, 어차피 당신과 나는 서로 적일 뿐이오. 당신이 적에게까지 존중 받을 정도로 고매한 사람이오?”

“이 노오오옴!”

유운의 말에 화공공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자 그녀가 앉아 있던 붉은 장미에서 노을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유운이 갇혀 있는 쇠우리를 감쌌다.

“어딜!”

그 때, 미우천왕(眉宇天王)이 급히 손바닥을 뒤집어 묵빛 기류를 뿜어냈다.

그 기류는 쇠우리로 파고들어 한층 쇠우리의 색을 짙게 만들었다.

“음흉하기가 짝이 없군. 그런 수작으로 유운을 빼돌리려 하다니.”

“호호호. 빼돌리긴 누가! 그저 미우천왕의 법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시험을 해 봤을 뿐이지.”

“다시 한 번 수작을 부리면 그 때는 쇠우리를 우그러뜨려 저 녀석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흐응, 그건 좀 곤란한데? 보궁을 열 방법을 저 녀석이 가지고 있다지 않았나?”

“그러니 괜한 짓으로 화를 자초하지 말라는 뜻이다.”

미우천왕은 화공공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화공공이 살살 손부채를 부치며 노을빛 기운을 장미꽃 안으로 회수했다.

이에 령령과 능염선자도 은밀하게 끌어 올렸던 영기를 조용히 다독였다.

“내게서 보궁의 열쇠를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고작 축기기에 불과했던 몸이 다도해역에 큰 혈사를 일으켰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일이지.”

우리 안에 갇혀서 그런 화신기 수사들을 보던 유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가부좌를 하고 우리 밖을 휘휘 둘러 보았다.

저 아래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수사들이 한가득이다.

저들 역시 그가 꾸민 음모에 휘말려 은밀역으로 들어온 이들이었다.

십여 년 전에도 이미 한 번 밀역의 혈사가 있었다.

그로 인해 다도해역의 수도계 정기가 많이 깎여 나갔다.

게다가 이번에도 이곳 은밀역에서 적잖은 수사들이 죽어 나갔으니 다도해역 수도계가 성세를 되찾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정도면 되었다.

과거 십이선문을 공격해서 멸망시킨 다도해역 수도계에 대한 복수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셈이다.

이제 십이선문의 후예는 자신이 마지막이니 멸문의 안타까움을 대물림 할 일도 없으리라.

유운은 그런 생각을 하며 땅바닥의 수사들을 살피다가 한 수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각진 얼굴에 눈꼬리와 입이 모두 처져서 조금은 우스꽝스런 얼굴인데 광대뼈엔 커다란 점까지 있다.

생긴 것은 미욱해 보여도 사람은 좋아서 짧게 동행하며 교분을 나눈 이였다.

유운은 수사 길우몽을 보자 또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화공공을 바라보았다.

“화공공.”

“왜 부르느냐. 이제 곧 추혼술을 해서라도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뽑아낼 생각이다만.”

“하하.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미우천왕이 저를 이렇게 가만히 뒀겠습니까?”

“미우가 불가능하다고 나까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헛된 심기를 쓰지 마시고 내 이야기나 들으십시오. 보궁에 대한 이야기니.”

“끄응,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화공공은 성단기 따위의 수사가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것이 언짢았지만 당장 미우천왕의 쇠우리에 있는 그를 어쩔 수 없어 화를 억눌렀다.

“보궁에 드는 방법은 내 머릿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단기 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방법이지요. 그 때문에 우리 십이선문의 제자들은 누구도 은밀역의 보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겠지. 너희는 이미 멸문을 당해서 남아 있는 제자가 없다고 들었으니까.”

“십이선문의 제자이면서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수십 만년을 이어왔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에 십이선문의 제자임이 드러나 남모르게 추살당한 동문이 한 둘이 아니지요.”

“그 따위 멸문한 수도 문파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좋습니다. 어쨌거나 화신기 수사만이 보궁을 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해 주시면 제가 보궁을 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약속?”

“영혼 금제를 걸고 맹약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을 말이더냐?”

“십이비선의 유진 중에 하나를 저에게 준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도 해 주셔야합니다.”

“그러니까 보궁의 열두 보물 중에 하나를 달라는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게다가 안전보장까지?”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있는 수 많은 수사들에게 뜯겨 죽을 판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공공께서 회회전의 전송진을 이용해서 저를 다른 역(域)으로 보내 주시면 되실 일입니다.”

“흐음.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만, 저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겠느냐?”

화공공이 손가락을 들어 다도해역의 화신기 수사 셋을 가리켰다.

“저를 통하지 않고 보궁을 열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방법이 있다고 해도 수 천 년을 이곳에 머물며 연구를 해야 할 것이고, 화신기 후기나 완경은 되어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운은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령령과 능염선자, 미우천왕을 각각 한 번씩 쳐다봤다.

“우리에게도 같은 맹세를 시킬 생각이냐?”

미우천왕이 유운을 보며 물었다.

“아쉽지만 그 정도에 그쳐야겠지요. 당신들을 따돌리고 일을 도모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미우천왕의 이 쇠우리는 걷어 줘야 합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내 정신을 갉으려 하는 수작질도 멈추고 말입니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끈질기기도 하십니다.”

“끄응.”

“······.”

“뭐야? 미우, 딴 짓을 하고 있었어?”

유운의 말에 미우천왕은 앓는 소리를 냈고, 능염선자는 그를 노려봤으며 령령은 가시 돋은 목소리로 따졌다.

“십이비선의 보물 중에 하나를 달라? 그럼 보궁에는 십이비선의 보물이 모두 있다는 이야기냐?”

그 때, 화공공이 유운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보궁의 진짜 보물은 그것이 아닙니다. 십이비선들께서 힘을 모아 영계 비승의 공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것이 저 보궁 안에 있지요. 그게 진짜 보물입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는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저 제 사조 되시는 분의 유진만 얻고 싶을 뿐입니다.”

“네 사조?”

“그렇습니다. 괴뢰술로 일가를 이루신 분이시지요.”

“흥! 누군지 알겠구나. 자신의 몸까지 괴뢰로 바꾸었다는 괴짜 수사가 있었다지.”

“그렇습니다. 바로 그 분입니다.”

“좋다! 나는 약속하겠다. 어차피 내가 다른 비선의 유진을 크게 욕심낼 이유는 없겠지. 내가 그들에게 크게 뒤지는 것도 아니고.”

화공공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선언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능염선자와 령령, 미우천왕을 바라봤다.

화공공의 시선을 받은 세 화신기 수사는 서로 은밀하게 의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능염선자가 화공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영혼 금제의 내용에 앞으로 2년 동안은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추가하는 것이 어떤가요? 그렇게 정해 놓고 보궁을 여는 것이 안전할 거 같은데요?”

“보궁을 연 후에 보물을 어떻게 나누려고? 보물을 다툴 것이 분명한데 서로 해를 끼치지 말자니? 그게 말이 되느냐?”

능염선자의 말에 화공공이 코웃음을 쳤다.

“서로를 직접 공격해서 해를 끼치지 않아도 보물을 다툴 방법은 많지 않나요? 누가 더 빠른가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능염선자는 그렇게 말하고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흥!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보궁을 연 이후에 저 십이선문 녀석이 원하는 것을 쥐어주고 멀리 보내자. 그 후 우리는 서로 알아서 보물을 취하는 것이지.”

“결국 피를 보자는 것인가요?”

화공공과 능염선자가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때, 유운이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당신들의 싸움과 상관이 없지 않소. 일단 보궁을 열고, 내 몫을 챙겨주시오. 그리고 화공공의 이름으로 회회전의 전송진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시오. 나는 그것으로 모든 은원 인과를 마무리하겠소.”

어떻게든 자신이 챙길 것만 챙기고 빠지겠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회회전의 전송진으로 다도해역을 떠나면 다도해역에서 벌인 음모에 대한 복수에서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으리란 계산일 것이다.

“흥!”

화공공이 그 속을 짐작하고 코웃음을 쳤고, 다도해역의 세 화신기 수사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보궁을 열 방법이 유운의 손에 있으니 어쩔 도리도 없었다.

“일단은 보궁을 열자!”

화공공이 결단을 내렸다.

그러자 능염선자 등의 다도해 화신기 수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네 화신기 수사가 영혼을 건 맹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유운은 보궁을 여는 방법을 네 명의 수사에게 알려준다.

네 수사는 은밀역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으로 나간 후에도 3백 년 동안 유운에 대해서는 어떤 언행도 하지 않는 다는 것.

화공공은 보궁이 열리고 유운이 보물을 얻으면 곧바로 회회전의 전송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당연히 회회전의 전송진까지 유운을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것도 약속에 포함이 되었다.

그 외에도 네 명의 화신기 수사들은 자잘한 약속들 몇 가지를 끼워 넣어 서로의 안전을 보강했다.

그렇게 맹약이 끝나자 유운이 쇠우리에게 벗어났다.

* * *

‘결국 밀역의 혈사와 이번 은밀역의 혈사가 모두 저 유운에게서 비롯된 것이란 소리군.’

건우는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기가 막혔다.

그리고 점차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그마치 화신기 수사들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이곳에 있는 수사들 모두에게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일일수록 아는 자가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다가 저들 화신기들이 모두 힘을 모아서 이곳에 있는 수사들을 멸살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괜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우였다.

“불안합니다.”

“그게 말입니다.”

“십이선문이나 보궁에 얽힌 이야기를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었는데, 그것이 과연 길하겠습니까?”

동행인 수사들 역시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일을 꾸민 것은 저 유운이란 수사입니다. 그런 자를 잡아서 배후를 밝힌 것이 아닙니까.”

그런 중에 적아섭이 긍정적인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다른 수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래봐야 유운에게 끌려다니는 형국이 아닙니까. 결국 저 유운이 원하는 대로 맹약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저 대인들의 체면이 많이 깎인 일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들었으니 우리들의 처지도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집니다. 감히 저 분들의 손속을 피해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지금 경솔히 움직일 수도 없지요. 이미 주변에 강대한 결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백색 성벽엔 원래 보궁의 결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뒤쪽으로도 새로운 결계가 생겼습니다. 쉽게 빠져나가긴 어려울 겁니다.”

“그건 화신기 선배들이 등장하면서부터 만들어진 거예요.”

다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중에도 주변을 살피는 이목은 놓치지 않은 모양인지 제법 주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건우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봐서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 중에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허빈자의 모습을 찾은 것은 덤이었다.

그 역시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살며시 고개를 들고 눈을 굴리는 중이었다.

“여, 여는 모양입니다.”

그 때, 꼬챙이처럼 마른 갈 수사가 번쩍 고개를 들어 보궁 쪽을 보며 말했다.

어느새 네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네 방위를 점거하고 갖가지 영기 파동을 일으켜 백옥 누각의 서른여섯 기둥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극에 따라서 기둥들이 이리저리 밀려나며 자리를 바꾸었고, 그 때마다 위에 올려진 2층 누각의 기와며 서까래, 벽과 기둥들이 벽돌 형태로 떨어져 나와서 기둥 위에 쌓였다.

누각이 허물어져 기둥 위에 넓고 평평한 백옥 마당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의식의 힘이 닿지 않아서 위쪽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 저거 보세요. 성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땅바닥에 엎드린 수사들의 시선을 가로막던 성벽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성벽이 이루고 있던 결계도 힘을 잃었다.

땅에 엎드려 있던 수사들이 모두들 고개를 치켜들고 상황을 지켜봤다.

그 사이에 백옥 누각은 모두 허물어지고, 서른여섯 기둥도 낮아질 대로 낮아져 백옥 마당이 기단 위까지 내려왔다.

결국 기둥이 모두 사라질 때에 맞춰 백색 성벽도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남은 것은 바닥이 백옥으로 깔린 거대한 마당이었다.

“아, 십이선이다.”

그런 중에 그 마당 가운데에 원형을 이루고 있는 열두 신선의 동상이 있었다.

열두 신선은 원을 이루고 안쪽으로 바라보며 뭔가를 의논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제 할 일은 끝났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사조님의 유진만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때, 지금까지 화공공 곁에서 가만히 서 있던 유운이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이 유운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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