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71화 (71/499)

71. 에라이 죽어라 장기로!

“녹림도가 무너진 것이 언제인데, 이제 와서 나를 추궁한단 말이냐!”

“시끄럽다 그냥 죽어라.”

“허빈자! 이 노옴.”

“네 놈이 종문이 어려운 틈을 타서 녹림도의 재산을 빼돌려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녹림도가 그리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어째서 내 탓이란 말이냐. 당시 대부분의 제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다도해역 수도계 전체가 녹림도를 공적으로 몰았었다. 그런 중에 살고자 한 것이 죄가 된다더냐? 그리고 허빈자 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너는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

장기로와 허빈자는 한 바탕 드잡이질을 하고 잠시 숨을 고르며 대치하고 있었다.

‘갈군모 하나 밖에 없네? 다른 둘은 어디 갔지?’

그런데 장기로 곁에는 갈군모 하나만 있고, 두 명의 제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으음? 갈군모도 이상하네? 저거 이지를 제압당한 모습인데? 아하! 장기로가 갈군모를 재물로 써 먹고 있는 거군.’

건우는 허공에 몸을 감춘 상태로 장기로와 갈군모를 살피다가 장기로가 갈군모의 생기와 영기, 사기, 악기 등을 갈취하고 있음을 알아봤다.

이전에 데리고 들어왔던 두 명의 제자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희생되었을 것이다.

“놈! 헛소리 하지 말고 그냥 죽어라. 네 놈은 죽어서 비도(秘圖) 조각만 뱉어 내면 된다.”

“클클클, 역시 그것을 노렸더냐? 그럼 너도 조각을 가졌다는 이야기겠지?”

허빈자의 말에 장기로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쓸데없이 혀만 길었구나. 그냥 죽어라!”

순간 허빈자가 번뜩이며 허공 중에 사라지더니 장기로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주먹질을 했다.

콰과과광!

“크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악!”

허빈자의 기습은 성공했고, 장기로는 머리통을 호되게 얻어맞고 말았다.

하지만 그 충격은 어느 정도 감소된 상태로 갈군모에게 전이되었다.

이지를 상실한 갈군모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렇게 충격을 해소한 장기로의 몸에서 삼백 개가 넘는 해골들이 풀어져 나왔다.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의 구슬들이 모두 해골로 부풀어 올라 장기로의 몸을 둘러싼 것이다.

치이이익!

그 해골들의 독기가 허빈자의 누더기 옷을 녹였다.

“이까짓 것!”

하지만 의복을 녹이는 독기도 허빈자의 몸으로는 파고들지 못했다.

허빈자가 해골들의 독을 무시하고 곧바로 장기로를 재차 공격했다.

펑! 펑펑펑! 퍼걱! 펑펑!

하지만 허빈자의 공격은 대부분 몸을 던지는 해골들에게 막히고, 가끔 장기로를 때리는데 성공해도 그 충격이 갈군모에게로 옮겨졌다.

게다가 갈군모도 장기로의 힘에 빠르게 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의 싸움은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일단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볼까? 가능한 어부지리는 놓치는 것이 병신이지.’

건우는 두 수사의 싸움을 지켜보며 한층 은신에 신경을 썼다.

어차피 장기로는 건우가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복수를 할 생각이었던 놈이고, 허빈자도 석교 시험에서 장기로의 편을 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허빈자 역시 건우에겐 고운 사람이 아니었다.

이참에 둘 모두 처리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차아앗!”

허빈자가 기합소리를 내며 다시 한 번 장기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런 허빈자의 몸이 순식간에 서른셋으로 분열을 했다.

건우는 그 서른셋의 허빈자 모두가 강력한 영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아아압!”

그에 맞서서 장기로 역시 기합소리를 내며 삼백 개의 해골들을 나누어 각각의 분신들에게 쏟아 부었다.

분신 하나에 해골 열 개가 부딪혔다.

우우우우우우우! 퍼버버벙! 퍼벙! 퍼벙!

허공에서 허빈자의 분신과 장기로의 검은 해골들이 서로 부딪혀 강한 영기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중에 갑자기 허빈자가 거의 벌거벗은 꼴로 장기로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는 사타구니만 겨우 가린 꼴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피부색이 청동색을 띄고 있었다.

까가가가강! 까가가강!

갑자기 나타난 허빈자의 모습에도 장기로는 놀라지 않고 목걸이를 벗어 휘둘렀다.

엄지손가락 마디 크기의 해골 삼백 여개가 달려 있는 장기로의 검은 목걸이는 그 자체로 흉흉한 기운을 풍겼다.

그런데 그것을 휘두르자 몇몇 해골들이 진짜 사람의 머리 크기로 변해서 입을 벌리고 허빈자를 물어 뜯으려 했다.

하지만 허빈자의 청동색 피부에 해골의 이빨은 먹혀들지 않았다.

그저 쇠로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이었다.

“잡았다 이 놈!”

결국 허빈자가 장기로에게 접근해서 장기로의 목을 틀어 쥐었다.

“크으으으!”

장기로가 허빈자의 손목을 잡고 부들거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허공에 난무하던 해골들이 검은 안개로 흩어져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이 놈! 이만 죽어라. 죽고 비도 조각은 내어 놓거라.”

허빈자가 청동빛 손으로 장기로의 목을 부러뜨릴 듯이 힘을 주었다.

뿌드드드드득!

허빈자의 손아귀 안에서 장기로의 목뼈가 어긋나 부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기로는 여전히 버둥거리며 허빈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장기로가 허빈자를 어떻게 하기엔 이미 늦은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허빈자가 이기나? 내가 직접 목을 따 주고 싶었는데 아쉽네.’

건우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음흉한 수도계의 늙은이는 역시 숨겨 둔 한 수가 있었다.

푸우우욱!

“커어억!”

갑자기 허빈자의 가슴에서 검은 칼날 하나가 솟아 나왔다.

허빈자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거기 갈군모가 검은 날을 가진 장검을 두 손으로 잡고 허빈자의 등을 찌른 상태로 있었다.

“이 노옴!”

허빈자가 뒤쪽으로 왼팔을 휘둘러 갈군모를 후려졌다.

퍼억!

“크으으으으으!”

갈군모는 그 즉시 검을 놓치고 수 백 미터를 훌훌 날아가 버렸다.

“이 놈, 더 보여줄 것이 있느냐?”

갈군모를 날려버린 허빈자가 오른손으로 틀어잡은 장기로를 노려보며 물었다.

허빈자의 가슴에는 여전히 검은 칼날이 튀어 나와 있는 상태였다.

장기로는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허빈자의 영기가 온 몸을 파고들어 장기로의 금단(金丹)을 파괴하는 중이라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응?”

그러던 중, 허빈자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왼손을 꼿꼿하게 펼쳐서 당수로 장기로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그런데 의외로 장기로의 머리가 쉽게 박살이 나고 말았다.

허빈자는 곧바로 조금 전에 날려버린 갈군모를 찾았다.

하지만 멀리 날아간 갈군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가 금선탈각의 수를 썼군. 이게 아니라 그게 본신이었어.”

허빈자가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목을 쥐고 있는 사체에 영기를 왈칵 밀어 넣었다.

그러자 지금껏 장기로의 모습을 하고 있던 시체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장기로가 자신의 몸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본신의 모든 것을 갈군모에게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허빈자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당장 도망간 장기로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으드드득, 어디 얼마나 도망을 갈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어차피 내상이 심해서 멀리까지 가지는 못했을 터.”

허빈자는 이를 갈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사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공간낭을 챙겨 들었다.

하지만 공간낭에 의념을 불어 넣어 본 허빈자는 마땅치 않은 듯이 혀를 차고는 둔술을 펼쳐 허공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케엑!”

삼베바지에서 방귀 새어 나가듯 슬그머니 도망치던 장기로는 갑작스러운 목속성 영기의 공격에 비명을 질렀다.

장기로는 목속성 영기를 단련했지만 그것을 변형시켜 사기(邪氣)와 독기(毒氣)로 바꿨다.

그래서 도리어 순수한 목속성의 영기에는 약했다.

“누, 누구?”

갈군모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장기로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건우의 외모가 길우몽의 것이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나? 선자 불래, 래자 불선이라 하지 않았나.”

“착한 자는 오지 않고 온 자는 착하지 않다. 그렇군. 그래.”

장기로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건우, 길우몽을 노려봤다.

“고작 성단기 초기 따위가 나를 어째보겠다고?”

장기로가 건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장기로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그리고 그 안개들이 하나씩 알을 지어 맺히며 목걸이 모양을 만들어갔다.

장기로의 본명 법기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볼 건우가 아니었다.

푸쉬쉬쉬쉬쉬쉿!

강력한 의념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목속성 영기가 일대를 장악했다.

그러자 사기와 독기로 뭉친 장기로의 영기가 산산히 흩어졌다.

“이, 이게 어떻게······?!”

장기로가 깜짝 놀라며 건우를 쳐다봤다.

고작 성단기 초기의 수사가 자신이 의념을 집중해서 불러내는 본명 법기를 막아버린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의념이 훨씬 강력하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장기로는 생각했고 그 때, 건우가 한 마디를 던졌다.

“진염결을 제대로 익히기만 해도 이 정도의 의념 차이는 쉽게 만들 수 있지. 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뭐라? 진염결? 그럼 네가 녹림도의 제자라고? 하지만 녹림도에는······.”

“그래 그렇게 보이겠지. 그냥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 죽어라 장기로!”

건우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장기로의 가슴에 오른손 장심을 대었다.

이미 기습을 당한 데다가, 주변이 짙은 목속성 영기로 가득해서 제대로 영기 운용을 하지 못하는 장기로는 저항도 못하고 가슴을 건우에게 내 주었다.

건우는 장기로의 가슴에 붙인 장심을 통해서 다시 순수한 목속성 영기를 불어 넣었다.

“끄아아아아아!”

건우의 영기는 장기로의 몸으로 들어가 그가 지금껏 만들어 놓은 금단(金丹)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충격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자극 끝에 실금을 만들고, 이어서 조각조각 부수어 버렸다.

성단기 수사의 상징인 금단이 깨어진 것이다.

“흐어어어어어!”

갈군모의 모습을 하고 있던 장기로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더니 결국 독한 냄새를 뿌리는 진물로 녹아 내렸다.

건우는 그렇게 사라지는 장기로의 몸에서 끝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혹시라도 또 다른 구명 수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기로는 이미 허빈자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을 써버린 상황이었다.

때문에 건우에게 기습을 당할 때부터 상황을 반전시킬 수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결국 금단이 파괴되고 몸이 녹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건우는 끝까지 장기로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가 남긴 공간낭을 주워들었다.

“흠, 그래도 성단기 수사라 제법 많은 것이 들었군. 하지만 일단은 이게 중요하겠······.”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급히 아공간 안으로 몸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후, 장기로가 죽은 자리에 허빈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짙은 사기와 독기가 퍼져 있어 허빈자는 어렵지 않게 장기로의 흔적을 찾아냈다.

“여기서 죽었다고? 도대체 누가 죽였지? 젠장, 비도 조각을 어떤 놈이 가지고 간 거야?!”

허빈자가 주변을 샅샅이 살펴 뭔가 단서를 찾으려 움직이며 고함을 질렀다.

건우는 그 모습을 아공간 안에서 지켜보며 허빈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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