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나는 밀역에서 좀 나가면 안 될까?
- 그래도 될 거 같아요.
컹컹컹!
“멍뭉이, 너는 언제 성단을 이룰 거야? 아직 축기기 완경이잖아. 너 내가 연체술도 줬잖아.”
커엉! 컹컹! 커거겅!
“음, 그 연체술 성단기가 되어야 익힐 수 있었나? 아, 사람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진 공법이라서 너도 성단을 이루고 인간 변신을 할 수 있어야 익힐 수 있는 거구나?”
컹컹!
“쯧, 내 수련이 바쁜데 그것까지 어떻게 신경을 쓰냐? 그래도 내가 지원을 팍팍 해 줬는데 아직 축기기 완경이란 건 너무 느려!”
끼이이잉! 끼깅!
“됐어. 좀 더 노력하는 걸로 하고.”
건우는 그렇게 멍뭉이를 구박하면서 연체술,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떠올렸다.
공여려와 장무기가 밀역의 금제를 뚫고 얻어 나왔던 것이 그 연체술이었다.
연체술(硏體術)이란 말 그대로 육체를 연단하는 공법을 말한다.
수도계 대부분의 수사들은 육체보다는 의념 수련에 중점을 두는데 유독 육체를 단련하는 쪽으로 수련 방향을 잡은 이들이 있었다.
무협으로 치면 내공이 아닌 외공을 익히는 이들이라고 할까.
거기서 발아한 것이 바로 연체술이란 계파였다.
그 특이점 때문에 건우도 관심을 가지고 연체술을 살폈고, 결국 쓸 만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체술로도 영계 비승에 성공한 수사가 수십 만 년에 한 명씩은 나온다니 수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연체술은 일반적인 의념 수련 공법과 병행할 수도 있었다.
물론 한 우물을 파는 것에 비하면 수련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다양성이란 면에서는 연체술도 익혀볼 만 한 공법이었다.
건우는 그 나오금강체술을 멍뭉이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금수, 즉 동물형태의 체형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멍뭉이는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의 일부분만 수련에 적용해서 나름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성단을 이루고 인간형으로 변신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수련은 한층 더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다.
건우도 물론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길우몽의 육체에 이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건우도 나오금강체술을 살피면서 그런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라 나오금강체술을 극한으로 펼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강체술의 바탕이 되는 육체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길우몽의 모습이 영체를 이용한 변신이 아니라 근육 자체를 움직여 만들어낸 모습이라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의 바탕이 될 수 있었다.
건우는 원래 건우의 모습과 길우몽의 모습 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익힐까 고민하다가 결국 길우몽의 모습으로 정했다.
앞으로 건우 본래의 모습 보다는 길우몽의 모습으로 더 험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도계에서 본 모습을 감추고 벌여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그 일들이 또 얼마나 위험할까.
그런 중에 육체를 강건하게 만드는 연체술은 정체를 숨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몸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길우몽의 모습으로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익힌 것이다.
- 조심하세요. 주위에 회회전의 수사들이 보이진 않지만 십이비승봉 전체의 금제를 회회전의 수사들이 관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나야 뒷구멍으로 밀역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뭐. 게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다시 아공간으로 들어와서 시간을 보내도 되고.”
- 그래도 영체기나 화신기 수사에게 걸리면 한 순간에 끝장이 날 수도 있다고요. 건우 님이 없으면 이 아공간도 없고, 그럼 저도 소멸되는 거라고요.
“그래, 알았다. 조심하마.”
건우는 루야의 염려를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건우가 있는 곳은 십이비승봉의 제3봉이었다.
하지만 가야 할 곳은 제6봉과 제7봉의 경계.
그곳에 밀역의 금제를 뚫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개구멍이 있었다.
건우는 그것을 입역패로 받은 수정패를 살피는 과정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수정패는 원래 축기기 경지의 수사가 뛰어난 입역 시험 결과를 냈을 때에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성단기 경지가 되어야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다.
십이비승봉 밀역 전체를 관통하는 금제에 대한 것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건우도 그 금제 전부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밀역 밖으로 남모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 정도는 알아낼 수 있었다.
사실 지금 건우에겐 그 이상은 별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회회전의 수사들이 점령한 밀역을 쑤시고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면 밀역의 금제 정보 따위를 어디에 써 먹는단 말인가.
혹시라도 다도해역으로 나가면 회회전과 싸우는 수사들에게 대가를 받고 팔아넘긴다면 또 모를까.
* * *
제6봉과 7봉 사이의 경계까지 이동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회회전의 수사들도 대부분 한 곳에 몰려 있는지 십이비승봉 전체에 대한 수색이나 경계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여유롭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십이비승봉의 봉우리 하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성단기 수사인 건우가 쉬지 않고 달려도 봉우리 하나의 범위를 지나는데 열흘이 걸릴 정도다.
당연히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경계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건우가 6봉과 7봉의 경계라고 한 것은 거기에 특별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좁고 짧은 협곡이 있었다.
수사들이 몸을 날리다보면 무심코 뛰어 건널 정도로 볼품없는 협곡.
게다가 조금만 위로 뛰어 올라서 바라보면 협곡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라서 굳이 협곡으로 들어가는 수사도 없다.
건우의 목적지가 바로 거기였다.
건우는 산 아래쪽에서 협곡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렇게 그냥 걸어가면 결국 협곡 끝까지 아무 일도 없이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걸음 걸음 영기를 움직여 협곡의 숨겨진 진법을 건드리면 밀역 전체 금제의 한 자락을 잡을 수 있다.’
수정패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금제의 자락이란 곧 금제의 축 중에 하나와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제의 축에 닿을 수 있다면? 당연히 금제 밖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건우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협곡 안의 진법을 발동시켜 나갔다.
그러자 어느 새, 건우는 협곡이 아닌 석실 복도를 걷고 있었다.
진법의 비틀림으로 협곡의 벽을 뚫고,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건우는 활짝 웃으며 복도를 따라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왠 놈이냐!”
그런데 건우가 거의 목적지에 닿았다 싶은 순간 복도 앞에서 고함소리가 나며 뭔가가 빠르게 밀려왔다.
건우는 뒤를 볼 것도 없이 곧바로 아공간 입구를 열고 뛰어들었다.
촤앙!
그리고 건우가 사라진 공간에 간발의 차이를 두고 얇은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사는 색동옷을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는데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뭐지? 사라졌다고? 분명히 어떤 놈이 있었는데?”
목소리 역시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색동옷 수사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물론 그런 행동 보다는 의념과 함께 사방으로 펼쳐 낸 영기의 탐색이 핵심일 것이다.
“없···어? 없다. 내 이목을 속이고 몸을 숨겼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차라라라라라랑! 차라라랑!
혼란스러워 하며 허둥지둥하는 수사의 움직임에 따라서 그 머리에 달려 있는 방울이 묘한 소리를 냈다.
수사의 머리에는 주먹만한 방울 두 개가 달려 있었는데, 그 방울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방울끼리 부딪히거나 혹은 방울 안의 유리구슬이 굴러다닐 때마다 묘한 소리가 났다.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났던 그 소리도 두 개의 방울이 서로 부딪히며 났던 소리였던 것이다.
머리에 방울을 달고 있는 색동옷 어린 아이 수사.
그냥 보기에는 조금 특이하다 싶을 뿐이지만 아공간에서 밖을 보고 있는 건우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나올 것 같이 놀라고 있었다.
‘아니 저 수사가 왜 여기 있어!’
건우가 보고 있는 색동옷 수사는 회회전의 화공공과 싸웠던 다도해 화신기 수사 셋 중에 하나였다.
그것도 워낙 특이해서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영족 수사.
영족은 사물에 혼이 깃들어 수도자로 거듭난 존재를 말한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색동옷 수사는 머리에 달고 있는 유리 방울이 본체였다.
“무슨 일인가요? 령령(鈴玲) 수사.”
그 때, 색동옷 수사 곁으로 또 다른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건우가 본 적이 있는 화신기 수사였다.
화공공과 싸웠던 세 화신기 수사 중에 인간족 화신기 능염선자(綾炎仙子)였다.
화려한 붉은 비단 채의(綵衣)를 입은 능염선자는 삼십대 중반의 미녀로 폭발적인 관능미를 자랑하는 수사였다.
건우가 아공간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혹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여인.
하지만 그 능염선자가 온 세상을 불태우는 화염을 펼쳐내는 것을 기억하는 건우는 절대 가까이 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에 누군가 있었어요.”
“그래요? 그런데 령령 수사의 이목을 벗어났다는 건가요?”
“그게 이상한 거죠. 분명 성단기 정도로 느껴졌는데 도착해 보니 존재감 자체가 사라졌어요.”
“그럼 령령 수사의 특기로도 찾지 못하는 건가요?”
“그러네요. 없어요. 마치 완전히 이 세상에서 지워진 듯이 없어졌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네요.”
“령령 수사가 잘못 느끼진 않았을 테니, 누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겠죠.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에도 성공을 한 모양이네요.”
“그렇게 봐야겠어요.”
“그럼요. 누가 령령 수사의 이목을 속일 수 있겠어요? 령령 수사의 특기가 그것인데요.”
능염선자는 령령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령령의 본신인 방울이 원래 침입자를 막기 위한 금제 법기였다.
당연히 그 방울에서 태어난 령령의 감각은 일반 수사들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나다.
“누군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확실하니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서둘러야 해요.”
“여기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어서 가요.”
능연선자의 말에 령령도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후, 건우는 밀역의 금제 자체가 변화한 것을 느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저 밀역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조차 화신기라는 어마무시한 수사들의 등장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서 서둘러라! 침입자가 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금제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끼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석실에 회회전의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선두에는 화신기 중기의 수사 화공공이 있었다.
그녀는 거대한 장미꽃봉우리 위에 앉은 상태로 날아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좌우에 영체기 완경의 수사 둘이 따르고 있었다.
금의 흑발의 수사와 은안 백발의 수사였다.
“감히 은밀역(隱密域)에 들어가다니! 우리가 그토록 찾으려 했어도 못 찾은 곳을 어찌 다도해역 놈들이 먼저 찾았단 말이냐!”
화공공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들이 멈춘 곳은 건우가 아공간 입구로 숨은 그 위치였다.
그곳에서 령령과 능염선자 등이 잠시 머물렀던 것을 화공공이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설마 얼마전 혈사에서 그들이 은밀하게 밀역을 살피고 다녔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마하니 화공공과 싸워 수세에 몰려 후퇴한 것도 계획된 일일 거라곤······.”
“그 싸움은 원래 화공공께서 이기실 싸움이었다. 지금도 그 셋이 힘을 모아도 화공공을 이기지 못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놈들이 이렇게 은밀하게 은밀역으로 숨어들 이유가 있었겠나?”
“그야 그렇지.”
두 영체기 완경의 수사들이 화공공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약삭빠른 것들이다. 남몰래 숨어들어 은밀역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충동질해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다도해역 전체를 자극해서 우리 회회전과 싸우게 했지. 결국 우리는 이곳 십이비승봉 밀역으로 잠시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정세가 안정되자 밀역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탄 것이지. 하지만 설마 그 사이에 밀역 전체의 금제에 변화가 생길 줄이야.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실수다.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도 은밀역으로 놈들이 들어간 것을 몰랐겠지.”
화공공은 꽃 위에 앉아서도 얼굴을 악귀같이 찡그리고 있었다.
십이비승봉 밀역에서 영계로 비승한 열두 신선들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초유의 수련 공법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이 숨겨진 곳을 지금껏 찾지 못했던 것일 뿐.
그런데 그 숨겨진 장소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서 가자. 여기가 아니다. 저 안쪽에 은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한참, 주변을 살피던 화공공이 결국 수상한 것을 찾지 못하고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석실 통로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미치겠네. 이게 또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십이비승봉 밀역에 숨겨진 밀역이 또 있었다고? 거기엔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기에 화신기 수사들까지 저렇게 몸이 달아서 난리야?”
건우는 멍하니 아공간 입구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성단기면 응?! 내가 그래도 제법 한 수 하는 건데 응? 완합종같은 거대 수련 문파에서도 장로가 될 수 있는 경지라고. 그런데 응! 지금 이렇게 꼬리 만 개처럼 쫄아 있어야 한다고?! 아우, 정말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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