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건우는 성단, 회회전과 다도해역은 전쟁 중
[수미선문(須彌禪門)]
건우는 거대한 비석 앞에서 황홀경에 젖어 있었다.
데에에에에에에엥!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영혼을 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건우는 비석 앞에서 쫓겨나 수미의 반영세계 어딘가로 떨어졌다.
당연히 이번에도 수미선문의 비석을 보며 느꼈던 모든 깨달음들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아련함만 남았다.
건우는 반영세계에서 정신을 차리며 그 아련한 아쉬움의 끝을 잡으려 했지만 곧바로 날아드는 호통에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건우 이 노옴. 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냐?”
깜짝 놀란 건우가 고개를 들어보니 예전에 봤던 산적 스승이 눈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스승 앞에 서 있는 소년 건우는 그 사이에 조금 성장을 했는지 십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녕하셨습니까.”
건우가 산적 스승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시간이 없으니 어서 따르거라.”
그런 건우의 모습에 산적 스승은 눈썹을 치켜뜨며 꾸짖고는 앞장서서 몸을 날렸다.
건우는 그런 스승의 뒤를 따라 둔술을 펼쳤다.
그렇게 스승을 따라 간 곳은 이미 건우에게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목영근 영역을 펼치고 들어와서 그런지 목속성 영기가 넘치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 수련 공간에 도착한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연신기 완경일 때보다 나무의 크기가 더욱 커졌고, 목속성 영기의 농도도 짙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쉽지 않을 것이나, 최선을 다하거라.”
산적 스승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건우는 곧바로 나무 아래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목영근 수련 공법을 운용했다.
이번 목표는 축기기를 넘어서 성단기에 드는 것.
현실에서 축기기 완경을 이루자 반영세계의 수련 공간에도 다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러 속성을 한꺼번에 개방하고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하면 무작위로 반영세계 입장이 가능하다.
즉 반영세계 가챠는 축기기 완경이 된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다만 완경에 이른 속성 영근 하나만 개방할 경우엔 어김없이 산적 스승을 만나서 수련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곳에서 성단을 이루진 못하지. 하지만 그 직전까지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 넘치는 속성 영기가 있고, 수련 공법에 대한 이해도 이곳의 건우가 본신의 나보다 뛰어나.”
건우의 말처럼 반영세계에 있는 건우는 현실의 건우보다 수련 공법의 운용이나 이해가 뛰어났다.
그래서 이곳에서 수련을 하고나면 현실의 건우도 축기기 완경 수준에서는 최고의 공법 운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가면 곧바로 성단에 도전을 할 거니까 최대한 공법 운용을 배워두자.”
건우는 그렇게 다짐하고 목속성 영근 수련 공법에 집중했다.
이제는 수미산겨자씨의 반영세계를 활용하는데 익숙해진 건우였다.
* * *
콰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릉!
- 역시! 이번에도 성공을 하셨네요.
건우의 아공간에 뇌속성 영근 영역이 크게 확장되는 것을 알아차린 루야가 탄성을 질렀다.
컹컹! 컹컹컹컹! 아우울!
그 곁에서 멍뭉이 역시 주인의 성공을 기뻐하며 짖어댔다.
“휴우우. 이걸로 팔영근 모두를 성단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네.”
그 때, 수미산겨자씨 밑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건우가 눈을 뜨며 길게 날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에 건우는 반영세계에 들어가 반영세계의 뇌속성 영근을 지닌 건우를 성단기로 끌어 올렸다.
그것이 여덟 번째였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이미 모든 영근을 성단기까지 끌어올린 후였다.
현실의 경지가 오르지 않으면 반영세계의 경지도 오르지 않으니 당연히 현실에서 성공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 정말 엄청나요. 보면 볼수록 수사들의 의식은 놀라워요. 어떻게 이렇게 넓은 공간을 가질 수 있죠?
그 때, 루야가 건우 앞으로 날아와 호들갑을 떨었다.
축기기 일 때, 건우는 지름 3킬로미터가 넘는 기본 아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본 아공간에 여덟 영근의 영역이 더해졌다.
결국 모두 더하면 지름이 10킬로미터 정도 되는 넓이의 아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아공간은 곧 건우의 의념공간으로 의식의 강력함을 뒷받침 해 주는 것이었다.
기본 아공간의 크기만 고려해도 진염결 수련으로 일반 동급 수사에 비해서 강대한 의식을 지닌 것인데, 그와 같은 의념 공간이 영근 속성별로 하나씩, 여덟 개.
그야말로 의식의 힘만 따지자면 동급 최강이고, 경지 하나 위의 수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건우가 성단기에 오르면서 다시 기본 아공간의 넓이가 확장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넓어졌다’는 말로 설명될 규모가 아니었다.
건우의 기본 아공간은 지금 지름이 30킬로미터 정도였다.
그 말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덟 영근들의 영역까지 포함하면 전체 아공간의 넓이는 지름 100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소리다.
그만하면 루야가 호들갑을 떠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일이다.
“밖에는 별다른 일 없었어?”
건우는 루야의 호들갑을 무시하며 아공간 밖의 사정을 물었다.
이제는 항상 아공간 입구를 열어두고 루야에게 상황을 살피게 하고 있었다.
- 인적이 끊긴 것이 벌써 8년이 지났어요. 아마 십이비승봉 밀역 안에 남은 수사는 하나도 없을 거예요.
“또 모르지 회회전 놈들은 남아 있을 수도 있지.”
- 하지만 이 근방에서 사람 모습이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8년 전이에요. 그 때도 회회전 소속의 수사였죠.
“독한 놈들이야. 수사들을 떼로 몰아 죽이고, 나머지는 강제로 밀역에서 쫓아내다니.”
- 여기가 자기들 소유라는데 어쩌겠어요? 그래도 다도해역에 화신기 수사가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건 그렇지.”
건우는 십이비승봉 밀역 혈사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그 당시, 회회전의 화공공이라는 화신기 수사가 밀역 상공에 5층 누각 비행 법보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실상 밀역의 모든 문제는 정리가 되는 듯이 보였다.
화공공은 십이비승봉 밀역을 회회전의 소유로 선언하고 모든 수사들을 불법 침입자로 규정했다.
따라서 회회전의 금지에 들어온 죄를 물어 모두를 죽여야 할 것이지만 사실을 모르고 들어온 것이니 일정 기간 회회전에 봉사하는 것으로 죄를 탕감해 주기로 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다도해역의 수사들은 화공공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화신기 수사의 행사에 반대하고 나설 수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완합종에 속한 수사들은 화공공의 배려를 받지 못했다.
화공공은 완합종을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직접 나서서 영체기 완경의 완합종 종주를 격살하고 완합종의 폐문을 선언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완합종의 모든 재산은 회회전의 것이라 선언했다.
이로서 다도해역에서 수백 만 년 이어오던 유서 깊은 수도 문파 하나가 간판을 내리게 될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 때, 화공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또 다른 화신기 수사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다도해역에서 수행을 하던 화신기 수사들이었다.
인간 수사 하나, 요족 수사 하나에 영족 수사가 포함된 세 명의 화신기 수사의 등장.
회회전의 화공공도 그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꽤나 당황했는데, 세 화신기 수사는 화공공에게 다도해역에서 회회전의 세력을 물릴 것을 요구했다.
회회전이 다도해역을 무시하고 멋대로 십이비승봉을 차지한 것도 문제고, 그 일을 진행하면서 다도해역의 수도계 전체의 수준을 크게 떨어지게 만든 것도 문제였다.
지금껏 다도해역에 화신기 수사가 등장하기 어려웠던 것이 모두 3만년 전에 십이비승봉에서 다도해역의 고계 수사들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인데, 그 책임이 회회전에 있다는 것이다.
“화신기가 그렇게 무서울 줄은 정말 몰랐지.”
건우가 과거를 회상하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 그러니까요 설마하니 아공간 안까지 싸움의 여파가 미칠 줄은 몰랐죠.
루야도 새삼 그 때를 떠올렸는지 파르르 빛을 떨었다.
당시에 화공공은 다도해역 세 명의 화신기 수사의 요구를 거절하고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
화공공 한 명을 상대로 세 명의 화신기 수사가 협공을 가하는 형국이었다.
화공공이 화신기 중기, 다도해역 수사들은 화신기 초기였으니 1:3이라도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 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 싸움에서 화공공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유는 화공공의 곁에 영체기 완경의 수사 둘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도해역의 수사들은 화신기 수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자 너나없이 모두 밀역 밖으로 빠져나갔다.
세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밀역의 결계에 길을 내어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편을 들어줄 수사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화공공과 두 명의 영체기 완경 수사가 힘을 모으자 세 명의 화신기 초기 수사들이 조금씩 불리해졌다.
결국은 세 화신기 수사가 꽁무니를 빼는 것으로 싸움이 끝났지만, 건우는 그 당시에 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필이면 화신기 수사들이 건우의 아공간 입구가 있는 근처에서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싸움은 대천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아공간 안쪽까지 여파를 미쳤다.
마치 현실의 공간을 뚫고 이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이, 화신기 수사들의 충돌 여파가 아공간을 뒤흔들었다.
건우는 그런 상황에서 아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건우가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난 후였고, 밀역에는 회회전의 수사들이 대대적으로 다도해역 수사를 찾아서 죽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몇 번, 아공간 입구에 가까이 온 수사들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낸 내용은 이랬다.
다도해역 전체가 회회전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했다.
때문에 회회전에 속한 수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밀역에서 있었던 회회전의 살행에 대한 보복이었다.
게다가 다도해역에서는 세 화신기 수사들이 힘을 모아서 회회전을 공격했다.
회회전은 어쩔 수 없이 다도해역에서 물러나 십이비승봉 밀역의 입구를 닫아걸고 버티는 상황인데, 오래지 않아서 회회전의 화신기 수사들이 다도해역으로 추가 파견될 것이다.
그 때까지는 밀역만 지키면서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아울러서 밀역에 남아서 숨어 있는 다도해역의 떨거지들을 색출 추살 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건우는 그 상황에서 밀역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이미 축기기 수사로선 수련 자원이 차고 넘치는 건우였다.
덕분에 축기기 후기에서 완경에 이르는 것도 쉬웠고, 이후 성단기의 벽을 허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엄청난 영단을 복용하고 성단기까지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수련 공법을 가지고 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막히는 것이 있을 때마다 참고할 수 있는 여러 수련 공법과 법부, 법기, 법보가 다양하게 있었고, 영기 충만한 속성별 영근 수련장도 있었다.
수련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결국 건우는 축기기 완경을 이루고, 이후에는 수미세계의 반영세계에서 산적 스승이 이끄는 대로 성단기 수련을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성단기 직전까지 가는 길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 현실에서 성단을 이루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에서 성단을 이루고, 이후에는 다시 반영 세계에서 성단을 이루었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성단기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했던 수련장이 건우의 아공간으로 실체화 되어 덮어 씌워졌다.
이전에 있던 공간에 새로운 공간이 덧씌워진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조금 전에 뇌속성 영근까지 여덟 개의 영근 모두를 성단기까지 끌어 올렸다.
“오가는 사람들이 없으면 이제 밀역을 벗어날 궁리를 해야겠지?”
건우는 루야가 8년 동안 사람 구경을 못했다고 한 것을 생각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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