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건우는 막간 수련, 회회전은 살(殺)!살(殺)!살(殺)!
“제법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최하급이나 하급 법기들이군. 그나마 첫 동부의 다섯 수사들에게서 얻은 것이 제일 좋아. 심지어는 내 의식을 튕겨내는 법기들까지 있어.”
- 그런 것들은 성단기는 되어야 어떻게 해 볼 수 있겠네요?
“시간만 넉넉하면 지금 수준으로도 어떻게든 해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법기 연화에 시간을 보내느니 그 시간에 성단기에 오르는 것이 낫겠지.”
- 하긴 성단기가 되면 의식의 힘도 더욱 강해질 테니까 연화가 더 쉬워지겠네요.
“그래도 일단 쓸 수 있는 패가 많은 건 좋으니까 팔찌, 조끼, 단검, 자루 법기까지는 연화를 해 둬야겠어.”
- 기능이 뭔데요?
“팔찌는 화염 공격, 조끼는 그냥 갑옷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고. 단검은 무속성 비검이야. 빠르게 날려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지. 기습으론 아주 좋아.”
- 자루는요?
“일종의 봉인 법기.”
- 봉인이요?
“자루를 날려서 상대의 법기를 자루 안으로 빨아들여서 먹어치우는 거지.”
- 우와, 그거 남의 법기를 빼앗을 때 쓰면 좋겠네요?
“그래, 그런 용도지. 물론 빨아들인 법기와 주인의 의식 연결을 끊을 수 있어야 하지만, 뭐 비슷한 경지라면 내 의식이 몇 배는 강력하니까.”
-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건우님께서 쓰기엔 더 없이 좋은 법기네요?
“그렇지. 그래서 나중에 여유가 되면 그런 유형의 법기나 법보를 좀 더 구해 볼 생각이다. 아니면 자루 법기를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 좋겠네요.
“너는 계속해서 밖의 상황을 좀 살펴라. 나는 법기를 연화하고, 이참에 축기기 완경까지 한 번 노려볼 생각이니까.”
많은 법부를 살피고, 거기에 법기를 연화하는 것은 수련에 큰 도움이 된다.
경지가 오르는 것은 공법 수련의 정도에 따라서 좌우되지만 그 공법 수련이라는 것도 공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공법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 그 수련의 정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
당연히 그런 이해는 다양한 지식의 습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보물들을 살피는 것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아직 남은 것도 많다.
게다가 수련에 도움이 될 단약들이 차고 넘칠 정도다.
단약들을 먹으면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기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때로 넘치는 영기가 깨달음 없이도 상승의 경지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 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수련용 단약의 묘용이 아닌가.
그래서 건우는 축기기의 완경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해보자!”
건우는 먼저 여덟 영근 중에서 목영근 영역만 남기고 나머지를 격리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영근 수련에 들어갔다.
* * *
“어째서!”
녹림도의 도주 주시원이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로 은안 백발의 수사를 노려보며 외쳤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너희 완합종, 특히 너의 녹림도가 이번 십이비승봉 원정을 주도하지 않았더냐.”
“그, 그게 어쨌다고 이러는 거요?”
“그래, 그게 문제라는 거다. 수 만년 이래로 이곳 십이비승봉은 우리 회회전의 것이었다. 그런데 감히 네가 우리 회회전의 구역을 침범한 것이지.”
“십이··· 비승봉이 회회전의 구역이라고! 오래도록 다도해의 수사들이 비승의 꿈을 품고 드나들던 곳이 어찌···!”
“그거야 과거의 일이지. 주인이 없었던 것이라도 주인이 생기는 일이 흔하지 않더냐. 네가 심산에서 영초를 발견하고 네 것으로 금제를 치면 어찌 되느냐. 누군가 그 금제를 열고 영초를 노리면 너는 불같이 화를 내며 네 것을 훔친다고 소리를 치지 않겠느냐? 이번 일도 그러하니라.”
은안 백발의 수사는 너그럽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은안 백발 수사의 표정과는 달리 쓰러져 있는 녹림도주 주시원의 곁에는 수많은 수사들이 피범벅 속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살아 있는 수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곳에서 녹림도의 원정 제자 대부분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이제 그만 떠나시지요.”
그 때, 한쪽에서 상황을 보고있던 고유진이 회회전의 은안 백발 수사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주시원이 그런 고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사부.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보시는 것처럼 대세는 완합종이 아니라 회회전입니다. 감히 완합종도 회회전을 거역치 못할 텐데, 일 개 녹림도 따위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이 노옴. 고유진, 네 놈이 종문을 배반하고 무사할 것 같으냐?!”
“사부, 가라앉는 배에서 내리를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과 같은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어, 언제부터냐!”
“가시는 길에 너무 많은 것을 궁금해 하지 마십시오. 그조차도 짐이 될 뿐입니다.”
“이, 이 노옴! 네 놈을! 네 놈을! 으드드드득!”
주시원은 고유진을 노려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이미 가슴에 어린아이 머리 크기의 구멍이 뚫린 주시원은 상황을 반전시킬 힘이 없었다.
푸화화화화화화!
하지만 영체기 수사가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지 않았다면 그것도 말이 되지 않을 일이다.
고유진을 노려보던 주시원의 눈동자가 뒤집어지며 갑자기 그의 몸에서 거친 나무뿌리가 꿈틀거리며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런!”
그 모습에 은안 백발의 수사가 급히 손바닥을 휘저었다.
그러자 나무뿌리가 휘감긴 주시원의 몸에 새하얀 서리가 끼었다.
동시에 그 뿌리들이 얼음조각이 되어서 바스러져 날렸다.
“끝까지 무슨 수작을 부리려 했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에 고유진이 굳은 표정으로 은안 백발 수사를 보며 말했다.
“수작을 부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수작을 부려서 성공했다.”
그런데 고유진의 말에 은안 백발 수사가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단기 따위가 무엇을 알겠느냐. 영체기 수사가 저따위 몸뚱이를 잃는다고 끝이 날 줄 아느냐? 영체기 수사는 영체만 지킬 수 있으면 언제든 몸을 회복할 수 있다. 너는 저 놈의 영체를 본 적이 있느냐?”
은안 백발 수사가 고유진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고유진은 그 질문에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고유진도 주시원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그럼 어서 쫓아가 잡아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유진이 급한 마음에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놈의 영체가 땅 속 깊은 곳으로 이미 숨어 버렸다. 목속성으로 눈길을 끌면서 토속성으로 깊이 도망을 쳤지. 그러니 내가 따라가 잡을 수가 없다.”
은안 백발 수사는 수속성과 풍속성 공법에 능했다.
물론 영체기 정도 되면 속성에 상관없이 여러 술법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토속성을 주력으로 익힌 영체기 수사의 뒤를 주력이 아닌 토속성 공법으로 쫓기는 어렵다.
“흥! 그래봐야 영체만 남았을 뿐이다. 본신의 힘을 온전히 회복하려면 천 년은 걸릴 테니 걱정할 것은 없다. 그 즈음이면 네가 죽었거나 혹은 너 역시 영체기 초기는 되지 않았겠느냐?”
“그, 그렇습니까?”
고유진은 은안 백발 수사의 말에 얼굴 혈색이 조금 돌아왔다.
그만큼 영체기 수사의 원한을 받는 것이 두려웠다는 말이었다.
“자, 다시 안내를 하거라. 이번에는 격류도 놈들이 모인 곳이었지?”
“그렇습니다. 격류도에 녹림도의 밀정이 있으니 그를 통해서 놈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뭘 하고 있느냐 앞장서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일을 일으킨 완합종은 씨를 말릴 것이니 너도 거기에 끼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사자님.”
고유진은 은안 백발 수사를 사자(使者)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날려 어딘가로 향했다.
은안 백발의 회회전 수사는 잠시 홀로 서서 법부 한 장을 들고 눈을 감고 뭔가를 하더니 뒤이어 푸른 둔광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그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금의 흑발 수사가 한 무리의 수사들을 독무로 녹여내고 있었다.
“크아아아!”
“아아악!”
“아, 악마!”
“마, 마인이다!”
금의 흑발의 회회전 수사는 화려한 비단 깃발 백여 개로 거대한 진법을 만들어 수사들을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의 진법에 갇힌 수사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백 명이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완합종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완합종 제자에 비해서 옷의 색이 더욱 하얗고 윤이 났다.
다름 아닌 완합종 설상도의 제자들이었다.
완합종 설상도에는 설상이라는 뽕나무를 키우고, 그 뽕잎으로 설상잠이라는 누에를 친다.
완합종 장로 이상이 입는 설상잠의 실로 만든 옷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설상도의 제자들은 설상잠의 실로 짠 옷감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옷의 때깔이 다른 완합종 제자들에 비해 좋은 편이다.
그런데 그런 설상도 제자들이 금의 흑안의 회회전 수사의 독기운에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노옴!”
하지만 모든 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체기 초기의 설상도 도주가 휘황하게 빛나는 학창의를 펄럭이며 금의 흑발의 회회전 수사를 향해 얼음송곳을 뿌렸다.
새하얀 얼음송곳이 온 하늘을 가득 채우며 천라지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설상도의 성단기 장로들이 한기 가득한 바늘들을 끼워 넣었다.
설상도 도주와 그 장로들이 펼치는 합격술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정! 쩌저적!
순간, 세상이 온통 절대의 혹한으로 빠져들며 공기조차 딱딱하게 얼어붙는 듯 했다.
“크흣, 제법 앙칼진 반항이로구나!”
그런 설상도의 반격에 금의 흑발 수사가 코에 잔주름을 만들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손을 휘저어 비단으로 만든 깃발들을 가리켰다.
후루루루루루루룽!
금의 흑발 수사의 손에서 진득한 느낌의 검은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화려한 수를 뽐내던 비단 깃발들이 그 검은 영기에 물들어 마치 죽음의 조기(弔旗)처럼 변해갔다.
흐으으으으으으!
흐으으으으으으!
검은 영기에 물든 깃발에서 호곡하는 소리와 함께 희끗한 혼들이 나타났다.
제 모양을 알아보기 어려운 혼들은 이지를 상실하고 깃발에 갇힌 상태로 금의 흑발 수사의 부림을 받는 존재였다.
게다가 그 혼들은 얼마나 많은 독기를 머금었는지 설상도주와 그 장로들이 합심해서 펼친 동결의 기운을 스멀스멀 녹이고 있었다.
얼음을 녹이는 독기운.
설상도주와 장로들은 그 모습에 전의를 상실했다.
애초에 독기가 냉기를 녹이는 것은 상성이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자신들과 회회전의 사자 사이에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지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아아, 이럴 수가.”
설상도의 도주는 절망스런 탄식을 토해내며 스스로 몸을 얼려서 가루로 만들어 자결해버렸다.
그 모습에 설상도의 장로들도 제각각 지니고 있는 것들을 파괴하고 도주를 따라서 혼까지 파괴해서 자살하고 말았다.
“쯧, 나에게 잡혀서 부림을 당하지 않겠다는 수작이군.”
그런 모습에 금의 흑발 수사가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조기처럼 변한 깃발의 진을 거두지 않았다.
그 안에서 히끗한 혼들이 사방팔방 갈 곳을 모르고 배회했다.
그리고 한 참 후, 마침내 금의 흑발 수사는 기다리던 월척을 낚아내는데 성공했다.
- 끄아아아아악! 이 노옴!
진법 안에서 설상도 도주의 영체가 검은 혼들에게 사지가 붙들린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꽁꽁 숨어서 도주할 기회만 노리던 설상도주의 영체는 끝내 금의 흑발 수사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붙잡혀 버린 것이다.
“크하하하. 좋다, 좋아. 내 너를 연화시켜서 반드시 최고의 깃발로 만들리라. 영체기 수사의 혼이라면 더 없이 좋은 재료가 될 터! 다른 것들을 얻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너 하나라도 얻었으니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아. 크하하하하.”
금의 흑발 수사는 사로잡은 설상도주의 영체를 보며 더 없이 기뻐하며 광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품속에서 꺼낸 검고 작은 호리병에 영체를 끌어넣고는 깃발들을 수습해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특히 완합종의 부양도와 격류도 제자들은 모두 잡아 죽여야 했다.
그것이 화공공의 너그러운 결정이었다.
밀역에 들어온 모든 수사들을 잡아 죽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관대한 결정인 셈이다.
그러니 화공공의 새로운 분노가 생기기 전에 빨리 완합종의 떨거지들을 치워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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