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66화 (66/499)

66. 복잡하게 얽히는 밀역 상황, 잠시 피해 볼까?

“젠장! 으아아아아!”

미친 듯이 도망치는 수사의 등에 검은 비늘이 가득한 늑대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크악! 여기서 영수 따위에게 내가! 쿨럭!”

녹각독랑의 뿔에 등이 찔린 수사가 원통하다는 듯이 고함을 지르더니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감히 나를 노리고도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그런 수사의 앞에 길우몽으로 변신한 건우가 내려섰다.

각진 그의 얼굴에서 찢어진 두 눈이 사나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결초보은······ 커어억!”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사의 등 뒤에서 녹각독랑의 뿔이 빛을 머금었다가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즉시 목숨을 구걸하던 수사가 비명과 함께 검붉은 피를 토했다.

녹각독랑 멍뭉이가 건우의 의지를 읽고 뿔에서 강력한 독을 분출한 것이다.

건우는 피를 토하고 죽은 수사에게서 시선을 돌려 씁쓸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봤다.

방금 죽은 수사까지 네 명의 축기 중기 수사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그들 중에 살아 있는 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이들이 몸을 숨기고 기습을 노릴 때부터 건우는 강대한 의식 감각으로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건우는 도리어 당하기 전에 기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거기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이번에도 아공간에 있던 녹각독랑 멍뭉이를 동원했다.

멍뭉이도 축기 중기의 영수이니 잠깐 이라면 수사 한 둘 정도는 잡아둘 수 있었다.

덕분에 건우는 천라패갑방패(天羅貝甲防牌)를 사용하지 않고도 네 명의 수사들을 모두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건우는 길우몽의 모습으로는 천라패갑방패(天羅貝甲防牌)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대신에 멍뭉이를 꺼내서 본신인 건우와 길우몽을 구별하기로 했는데 이번이 멍뭉이와 함께 한 두 번째 싸움이었다.

건우는 쓰러진 수사들의 품을 뒤져 공간낭과 법기, 법부를 회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리 대단한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산수들은 기대할 것이 없어. 그나마 이곳 밀역에 들어와서 보물을 찾은 이들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런 이들은 이미 몸을 사리고 있겠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수정패를 꺼냈다.

하지만 수정패에서도 더 이상 금선이 나오지 않았다.

수정패도 밀역 전체의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근처에는 온전한 보물은 없다고 봐야겠군. 워낙 많은 이들이 밀역으로 들어와서 헤집어 놓고 있어서 그렇겠지.”

누군가 금제를 건드리면 그 곳은 수정패의 금선 안내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선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근처에 보물이 있는 곳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손을 탔다는 이야기다.

건우의 시선이 슬그머니 산봉우리 위를 향했다.

7부 능선 위.

처음부터 그곳으로는 건우가 가진 수정패가 정보를 주지 않았다.

축기기 수준에서는 넘볼 수 없는 곳이라고 경고를 하는 듯 했다.

그래서 건우도 4부 능선에 7부 능선 사이를 오가며 십이비승봉의 제3봉 지역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컹컹컹!

건우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멍뭉이가 한쪽 방향을 보고 짖었다.

누군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건우도 즉시 의식을 그 쪽으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한 무리의 수사들이 떼를 지어 건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수가 많네?”

건우는 급히 아공간 안으로 숨었다.

멍뭉이를 함께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괜히 다수의 수사들과 얽히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 왜요? 왜 갑자기 여길 들어왔어요?

루야가 입구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건우가 들어오자 물었다.

“보면 알아.”

건우가 그렇게 대답할 즈음, 한 무리의 수사가 건우가 있던 곳을 빠르게 지나쳤다.

- 어? 모결소 전화전주 아니에요?

십대 후반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여성 수사 모결소.

그녀가 녹림도 축기기 제자 세 명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가고 곧바로 일단의 수사들이 나타났다.

“거기 서라!”

“어디까지 도망을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서지 못할까?”

그들은 앞서 도망가는 모결소와 녹림도 제자들에게 거친 영기를 뿜어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 어? 완합종 제자들인데요?

“그러게 말이다. 녹림도는 아니고, 다른 섬의 제자들인 모양이네.”

루야의 말에 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결소와 세 명의 녹림도 제자를 쫓고 있는 이들이 완합종의 제자 복장을 입고 있었다.

건우는 그들 중에 장로급인 성단기 수사가 셋이나 끼어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 외 십여 명의 제자들은 모두가 축기기 중기 이상의 수사들이었다.

- 같은 완합종의 제자들인데 지금 여기서 쫓고 쫓기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루야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이미 밀역에는 수많은 수사들이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다도해역에서 완합종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거대 수도 문파의 제자들이나, 그보다 못해도 나름 이름을 떨치는 수도 문파의 제자가 많이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작은 수도 문파의 제자나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산수들은 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가.

그런데 같은 완합종의 제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상황이라니.

건우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두 무리가 지나가고 한 참 후, 건우가 아공간 밖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스스슥!

갑자기 푸른색의 둔광이 일어나며 두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는 아공간 입구에서 움찔 놀라며 그들을 바라봤다.

“으음. 이상한 일입니다. 완합종 놈들이 지나기 전에 이곳에 분명 누군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축기기 후기의 수사 하나가 있는 것을 저도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말이지요.”

“몸을 숨기는 특별한 공법을 익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겨우 축기기 아닙니까. 그런 주제에 영체기 완경인 우리의 이목을 벗어나는 공법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또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요.”

“허허허. 이거 참,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려.”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쉽게도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화공공께서 시키신 일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여기서 모습을 감춘 수사가 어떤 수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이렇게 면밀히 살피고 있지만 흔적도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다름 아닌 십이비승봉 제1봉의 정자를 지키던 회회전 소속 영체기 완경의 수사들이었다.

금의(錦衣)에 검은 머리 수사와 은빛 눈동자의 백발 수사가 함께 제3봉에 나타난 것이다.

건우는 그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영체기 완경이라고 자신들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아공간 안에서도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감히 완합종 따위가 회회전의 사람을 노리다니 겁을 상실한 것이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서 그 아이를 구하고, 나머지는 피 모래로 만들어 버립시다. 예서 더 있어봐야 사라진 축기기 놈에 대한 단서를 찾기는 어려울 듯 하니.”

“그럽시다. 더 늦어서야 화공공께 경을 칠 것입니다.”

금의(錦衣) 흑발(黑髮) 수사와 은안(銀眼) 백발(白髮) 수사는 결국 건우를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푸른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건우는 영체기 정도가 되면 밀역에서도 자유롭게 둔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어깨를 떨었다.

그들이 마음먹고 건우를 노린다면 감히 피할 길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회회전의 두 수사가 모습을 감춘 후에도 감히 아공간 밖으로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 건우님, 한동안 밖으론 안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루야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건우에게 그렇게 권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일이 여간 복합해 진 것이 아니야. 조금 전에 회회전 소속이라는 두 수사들 영체기 완경이라고 했어.”

- 네, 건우님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죠.

“그래, 인정한다. 인정하는데, 그 영체기 완경의 수사들에게 명을 내렸다는 화공공은 그럼 뭐겠어?”

- 화신기 수사란 소리겠네요.

루야도 건우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이 밀역에 그 화신기 수사가 들어왔거나 혹은 그런 수사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 무서운데요? 역시 한동안은 밖으로 안 나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 나도 동감이다.”

건우가 그렇게 아공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푸른 둔광과 함께 사라졌던 수사들 중에서 은안의 백발 수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이런데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미 여기를 떠났거나 혹은 오래도록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소리겠지? 만약 여기 네 놈이 있다면 듣거라, 지금 내가 다시 모습을 감출 것인 즉, 내가 언제 이곳을 떠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너는 알아서 판단하거라.”

회회전의 은안 백발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스스륵 허공으로 모습이 흩어져 버렸다.

건우도 그 모습을 아공간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튼 이 대천세계 수사란 것들은 뒤끝이 무궁한 놈들이야. 이런 식으로 사람 간을 본다고?”

건우는 은안 백발 수사가 이미 멀리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되는 수사가 이런 곳에서 축기기 후기에 불과한 수사 하나를 잡겠다고 한정 없이 숨어 기다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쉽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스러운 마음이 점점 커져서 그것을 떨치기 어려운 마음 상태.

건우의 상태는 바로 그에 가까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건우는 그 의심암귀를 완전히 떨쳐낼 때까지 느긋하게 편안히 있을 수 있는 안전 구역이 있다는 것.

“자, 일단 그 동안 얻은 것들 정리하고, 아울러서 이참에 축기 완경을 한 번 밟아보자. 영석도 많이 얻었으니까 반영세계 가챠도 좀 하고.”

건우는 일부러 쾌활한 음성과 표정으로 아공간 밖의 사정을 떨쳐 내려 했다.

그리고 그건 꽤나 효과가 좋았다.

그동안 모아 놓은 보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토령영삼(土靈嶺蔘), 형자수란과(炯紫水蘭果), 최상급 영석, 금은연리옥함(金銀連理玉函), 일선도(一選桃) 둘. 이것들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곱게 보관해 두자. 그리고 법보 두 개도 당장은 연화에 시간이 너무 걸려. 이것도 성단기는 되어서 손을 대 보기로 하고.”

건우는 우선 축기기 경지에는 너무 과한 것들을 한쪽으로 빼 놓았다.

그렇게 빼내자 남는 것은 법부와 법기들, 단약과 수련 공법 등이 남았다.

기타 재료 종류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밀역에서 나온 것들은 당장 쓰기엔 아까운 것들뿐이었다.

결국 건우의 관심은 법보와 법기, 수련 공법, 단약으로 좁혀졌다.

단약은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들과 요상이나 영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나누어 넣어두는 것으로 정리가 끝났다.

그 외에 용도를 알기 어려운 것들은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할 것이라 또 따로 빼 두어야 했다.

그것은 법부도 마찬가지였다.

법부 중에는 효과나 용도를 알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 역시 단약처럼 당장 쓸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서 보관했다.

남은 것은 법기들.

“이건 공격용 법기로군. 화속성 영기에 어울리고 화염구를 만들어 날리는 하급 법기야.”

건우가 손목에 거는 팔찌 형태의 법기를 확인하고 한쪽에 내려놓았다.

“이건 방어용 법기네. 옷 안에 받쳐 입으면 되겠어. 다만 법기로 보호되지 않는 곳은 조심해야지. 그 선배 수사처럼 머리가 터져 죽을 수는 없으니까.”

다음에 건우가 들어 올린 것은 투명비닐 같은 재질로 된 조끼 모양의 얇은 옷이었다.

원래 밀역의 첫 동부에서 죽은 완합종의 수사가 입고 있었는데 건우가 챙긴 것이었다.

건우가 확인하기로 그 얇은 조끼는 그 자체가 강력한 보호 법기였다.

스스로 커지거나 혹은 방어 결계를 펼치거나 하는 기능은 없었다.

그저 그 옷이 가려주는 부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주는 용도였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방어 기능엔 충실해. 게다가 법기의 등급도 높지 않아서 연화하는 것도 쉽겠어.”

건우는 그 투명조끼 역시 팔찌가 있는 곳에 함께 놓았다.

이후로도 단검, 구슬, 방울, 거울, 허리띠, 목걸이, 반지, 자루 등의 법기들을 하나씩 살폈다.

그리고 용도를 알아볼 수 있고 연화가 쉬워 보이는 순서로 법기들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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