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셋을 살려주고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다
좌우 입 꼬리가 처진 각진 얼굴의 수사가 빠르게 허공을 건너뛰고 있었다.
청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단아한 장삼을 입은 그는 건우가 변신한 길우몽이었다.
“그에게 운이 닿는다면 성단을 이루고 다시 고된 수도행을 이어갈 수 있겠지.”
건우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벌써 이틀 전에 떠나온 도화분지가 보일 턱이 없었다.
건우는 그곳에서 유운 수사와 사흘을 머물렀다.
유운 수사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범인으로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러다가 죽음이 임박해서야 겨우 연신기 초기에 들어 200년의 수명을 얻었다.
하지만 유운은 연신기로 200년을 꼬박 채울 때까지 축기에 오르지 못해서 또 다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 유운은 축기기의 산수 한 명을 만나서 그의 도움으로 어렵게 축기에 성공했다.
사실 유운에게 도움을 준 축기 수사가 크게 뭔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허름한 수련 공법의 한 구절을 선심 쓰듯이 일러주며 유운의 주머니를 털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한 구절의 법문이 유운에게 깨달음을 주어 축기에 오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 유운은 다시 500년의 수명을 얻어 수련에 매진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유운은 항상 자신이 덤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선배 수사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대도를 걷게 되었다고 여겼고, 수사들이 서로 도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건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진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운의 수도행도 축기기 완경에서 끝날 운명이었는지, 그는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성단의 기미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십이비승봉 밀역에 대한 소문이 다도해역 전체에 퍼진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십이비승봉 밀역으로 향하면서도 유운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보물을 발견해서 성단에 오를 가능성이 아주 없다곤 못해도, 그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무리 좋은 공법을 얻어도 그것을 수습할 시간이 모자랄 것이고, 당장 쓸 수 있는 영단을 얻는 행운은 만에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운이 좋아 일선도를 얻었으니 유운으로선 최상의 결과인 셈이다.
다른 귀한 영초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영단으로 연단해 낼 시간조차 없었던 유운에게 일선도는 맞춤 한 것과 같은 보물이었다.
유운은 그런 행운 역시 선한 인연으로 수행을 이어온 결과라며 건우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 권했다.
물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독심도 필요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의 사정을 보아주라는 말이었다.
유운은 사흘동안 건우를 앞에 두고 자신의 지난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깔끔하게 정돈하고는 건우에게 작별을 고했다.
건우는 그렇게 이틀 전에 유운을 도화분지 정자에 남기고 홀로 떠나왔다.
유운이 성단에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곁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유운도 바라지 않았다.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조용히 입멸하겠다는 유운의 바람이 있어,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훌쩍 떠난 것이다.
“이런, 또?”
그 때, 몸을 날리던 건우가 허공에서 우뚝 멈추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따라가던 금색 선이 사라진 것이다.
벌써 두 번째였다.
그 말은 누군가 그보다 앞서서 그곳을 차지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건우는 잠시 고민했다.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서둘러 가면 그곳에 들어간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전 공여려나 장무기처럼 되돌아 나오는 곳에 함정을 파고 기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전에는 거리가 멀어서 고려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이번엔 가깝다.
하지만 건우는 곧 고개를 저었다.
문득 유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유운의 뜻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보물을 위해서 다른 수사들을 해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유운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그 여운이 남았으니 마음에 거리끼는 일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건우가 생각을 고쳐먹고 품에서 수정패를 꺼내려 할 때였다.
번쩍! 콰르르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마른 벼락이 건우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푸른색의 뇌전은 뇌기에 수기를 더한 것이었다.
쩌저저저정! 피시시식!
“누구냐! 나서거라!”
건우의 천라패갑방패(天羅貝甲防牌)가 번뜩이며 나타나 한 줄기 뇌전을 막아냈다.
건우는 뇌전을 막자마자 고함을 지르며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를 등 뒤로 불러냈다.
머리 위에는 삿갓 조개의 패갑 모양의 반투명한 황금 방패가 떠 있고, 등 귀에는 관처럼 생긴 칠부팔진궤를 띄운 건우.
건우가 의념을 끌어 올려 영기를 투사하자 칠부팔진궤에서 법부 스물네 장이 솟아났다.
“어디 네 놈이 번개를 떨어뜨렸으니 나도 그 맛을 보여주마,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건우는 강력한 의식의 힘으로 자신을 공격한 수사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냈다.
그 수사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는데 한곳에 은신 결계를 치고 뭉쳐 있었다.
“가랏!”
건우의 외침에 스물네 장의 법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딱히 어느 한 곳을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눈속임에 불과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듯 하던 법부들이 어느 순간 한 곳으로 빗살처럼 모여들어 원진을 형성했다.
“엇?”
“피, 피해라!”
“제, 젠장!”
그 모습에 은형진을 펼치고 숨어 있던 수사들이 깜짝 놀라며 모습을 드러내고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콰르르르릉 번쩍! 파지직 파지직!
“크아아악!”
“아악!”
칠부팔진궤의 공격 진법 중에 하나인 수뢰밀이 먼저 터졌다.
그나마 셋 중 하나는 겨우겨우 그 폭심에서 벗어났지만 그조차도 사방으로 뻗어가는 뇌전의 그물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나머지 둘은 수기와 뇌기가 혼합된 수뢰밀에 적중되어 부들거리며 정신을 잃었다.
뇌기도 강력하지만 수뢰밀의 음흉함은 이름에도 드러나지 않은 목속성의 기운이다.
은밀하게 파고들어 영기 운용을 방해하는 목속성 기운.
쓰러진 둘은 이미 그 목속성 기운에 잠식되어 영기가 굳어버린 상태였다.
“이까짓!”
하지만 셋 중에서 그나마 실력이 가장 좋았던지 몸을 피한 더벅머리 수사는 법부 한 장을 찢어 몸을 감싸는 보호 결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가 허공 높이 뛰어올라 몸을 피하는 모습에 건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소매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칠부팔진궤에서 여섯 장의 법부가 나오더니 세로로 길게 말려서 창을 만들었다.
“죽어라!”
건우가 다시 시동어를 외쳤다.
그러자 여섯 개의 창이 곧바로 허공에 뛰어 오른 수사를 향해 날아갔다.
훙훙훙훙훙!
기묘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창들.
허공으로 떠올랐던 수사가 그 모습에 눈썹을 치켜떴다.
“놈, 기습 따위로 우위를 점했다고 내가 만만해 보이더냐?”
그 수사는 건우의 창 공격이 그리 위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 말을 하며 손목에 말아 놓았던 채찍을 풀어 휘둘렀다.
끝이 세 가닥으로 갈라진 채찍이 건우가 쏜 창을 향해 기묘하게 꿈틀거리며 날아들었다.
콰자자장 콰과광! 콰광!
그리고 그 채찍은 건우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크하하. 별 것 없는 놈이구나.”
건우의 공격을 막아내자 기세가 오른 더벅머리 수사가 건우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그가 막은 여섯 개의 창은 실상 하나의 진법을 이룬 것으로 진법이 파괴되는 순간 그 중심에 여섯 창의 기운이 모여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한다.
콰지지직!
“커어억! 이, 이게.”
더벅머리 수사는 갑자기 가슴을 뚫고 나오는 창의 모습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구멍 뚫린 가슴을 확인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창이 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건우가 첫 동부에서 얻었던 바로 그 도자기 창 법기였다.
그 동안 건우는 도자기로 구운 창을 조금씩 연화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뜻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용도를 찾다가 칠부팔진궤의 진법 중에서 창을 이용하는 진법에 그것을 연계시켰다.
평소에는 투명하게 변해서 보이지 않는 도자기 창.
그것을 투창진법의 핵에 심어 놓은 것이다.
“제, 제기랄!”
털썩!
가슴이 꿰뚫린 더벅머리 수사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땅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건우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의식을 사방으로 펼쳐서 주변에 또 다른 이들이 없는지 살폈다.
그러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쪽으로 의식을 펼치는 무리들 몇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당장 무슨 수작을 부릴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한 건우는 느긋하게 땅으로 내려가 쓰러진 수사들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군. 가난한 산수들이었던 모양이야.”
건우는 세 수사의 공간낭과 품속 물품들을 살피고는 아쉬운 듯이 말했다.
겨우 저계 법기를 두어 개씩 가지고 있고, 법부 몇 장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정도면 사실상 축기기 수준의 수사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되지만 건우가 보기엔 너무 빈약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 아닌가.
건우는 쓰러진 수사들의 옷까지 탈탈 벗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건우가 떠난 자리에는 알몸이 된 수사 셋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 중에 도자기 창에 가슴이 뚫린 더벅머리 수사는 기식이 엄엄했다.
“이런,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멍청한 것들.”
그런데 건우가 떠나고 얼마 후, 두 명의 수사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와 세 수사의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던 무리들 중에 하나였다.
그들은 곧바로 쓰러진 세 사람을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뭔가 건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으으음, 사, 살려주시오.”
그 때, 가슴이 뚫린 수사가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에잉!”
“쯧.”
하지만 두 수사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무리의 수사들이 다녀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결국 더벅머리 수사는 다시 정신을 잃었고, 이후에 상처 없이 정신만 잃었던 두 수사가 깨어나 더벅머리 수사를 챙겨 모습을 감췄다.
공간낭 하나도 없이 알몸이 된 그들의 미래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십이비승봉 밀역에서는 곳곳에서 수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며 피를 부르는 중이었다.
건우처럼 습격을 당하고도 재물만 빼앗고 목숨을 살려주는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죽일 걸 그랬나?”
그 때, 몸을 날리던 건우도 그런 생각을 하며 유운의 영향을 이제는 떨쳐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한 번 정도 그 뜻을 들어 줬으면 마음의 부담은 충분히 덜어낸 것이라 생각했다.
곳곳에 피비린내가 나는 곳에서 홀로 독야청청은 꿈꿀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금색 선을 따라 몸을 날리는 건우의 눈빛에서 스산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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