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64화 (64/499)

64. 일선도(一選桃)를 나누다

건우와 유운은 꼬박 닷새가 걸려서 십이비승봉 제3봉의 칠부능선까지 올랐다.

설마하니 유운이 가진 입역패의 금빛 선이 그렇게까지 높은 곳까지 닿아 있을 줄은 건우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미 발을 내디딘 상황이고, 금빛 선은 십이비승봉 곳곳에 있는 위험을 피해 안전하게 둘을 안내했기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끝까지 빛을 쫓았다.

“허허, 이곳인 모양입니다.”

유운이 금빛 선이 사라진 위치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래로는 도화(桃花)가 가득한 작은 분지가 있었다.

“여기를 일러 무릉도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습니다.”

건우도 유운 수사의 옆에서 분지를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분지에 있는 복숭아 나무의 숫자는 모두 열두 그루였는데, 그 나무들 모두 도화가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꽃이 만발한 나무에 또 복숭아 열매도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저 복숭아에 대해서 아십니까?”

건우가 유운을 보며 물었다.

“마침, 제 미천한 기억 중에 저것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려.”

유운이 건우의 물음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건우는 어서 말을 해 보라는 듯이 유운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재촉했다.

“제 기억에 저렇게 꽃은 물론이고 갓 매달린 열매부터 탐스럽게 익은 열매까지 한꺼번에 열리는 복숭아나무는 만년일선도목(萬年一選桃木)입니다.”

“이름이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일선이라 함은 하나를 가려 뽑는다는 뜻입니까?”

“역시 길 수사는 영민하십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저 열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독이 되지 않는 것은 고작해야 한 둘에 불과합니다. 그걸 잘못 따게 되면 도화독에 중독이 되지요.”

“도화독이라면?”

“수행의 증진을 막고, 동시에 몸에서 도화향이 짙게 풍기게 되는 독입니다.”

“수행 증진을 막는 것이야 문제가 되겠지만 도화향이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영민하신 길 수사께서 왜 이러십니까. 조금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아, 그렇군요. 어디에 있든지 스스로를 감출 수 없다는 말이군요. 변신을 하든 은신을 하든 소용이 없겠습니다.”

“그렇지요. 게다가 그 향이 적어도 십여 리는 퍼진다니 상당히 곤란하지요.”

“게다가 이런 외모에 도화향을 풍기고 다니면 그것도 문제겠습니다.”

건우가 길우몽의 얼굴로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유운도 그에 대해선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말을 삼갔다.

“그래도 저 만년일선도목의 도화향이 워낙 좋아서 따로 추출해서 향수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특별한 수법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꽤나 인기가 있을 겁니다. 중급 영석 몇 개는 받을 수 있겠지요.”

“향 따위에 그런 대가를 치른단 말입니까?”

“만년일선도목이 어디 흔한 것이겠습니까? 인계에선 구경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당연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지요. 독이 아니라 향이라면 도리어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도 하고요.”

“아무튼 그런 것이야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중요한 것은 저 많은 복숭아 중에서 일선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저 도화의 효과가 무엇인지는 알아야겠군요.”

건우는 만년일선도목의 복숭아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허허허. 도화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십니까? 신선의 도화는 불로불사를 주지요.”

“그 말은 일선도(一選桃)를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건우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허허허. 그렇다면 이미 제가 달려가 복숭아를 따 먹었겠지요.”

“그럼 뭐란 말입니까?”

건우가 살짝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불로는 확실합니다. 복숭아를 먹을 때의 젊음을 그대로 유지해 준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처럼 이렇게 늙은 몸에는 의미가 없겠지만요.”

“그렇습니까?”

젊은 외모를 유지해 준다니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젊음은 좋은 것입니다. 허허허.”

“고작 그거라면 그다지 욕심을 내서 도화독의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겠지요.”

건우가 진짜를 내 놓으란 듯이 유운을 보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지요.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 만년일선도목의 일선도가 파벽(破壁)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벽?”

“실상 저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 파벽이란 것이 그럼 경지를 뚫는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완경에 이른 수사가 다음 경지로 올라갈 때, 그 벽을 허물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단 한 번만 쓸 수 있고, 실패하면 다시 먹어도 효과가 없지요.”

“듣고보니 유운 수사에게 꼭 필요한 것이겠습니다? 죽음을 앞뒀으니 한 번 마지막 시도를 해 봄직하지 않습니까?”

건우는 의심의 눈초리로 유운을 바라봤다.

결국 유운이 이끄는 데로 와 보니 그에게 딱 필요한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허허. 설마 길 수사께서는 제가 이곳에 일선도가 있음을 알고 길 수사를 모시고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길 수사가 없다고 해도 입역패의 금선(金線) 안내를 받았으면 혼자서도 충분히 올 수 있었습니다. 굳이 수사를 모시고 올 이유가 없었지요.”

듣고 보니 그 말이 옳기도 하다.

입역패의 금선은 소유자에게 안전할 길을 안내했다.

게다가 건우가 보기에 분지에 있는 복숭아 나무들에 다른 위험은 없었다.

사실 건우와 유운은 입역패의 도움으로 분지를 감싸고 있는 엄청난 금제 진법을 벌써 통과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사실상 어려움은 이미 다 지난 셈이고 그 달콤한 과실만 따 먹으면 되는 상황이다.

이러니 더욱 건우의 의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유운을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저를 의심하고 계십니다 그려. 하지만 저는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다만 여기에 와서 저 일선도를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기긴 했습니다.”

“일선도를 취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제가 저것을 취해서 마지막 한 번의 도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째 반드시 일선도를 가지겠다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지요. 일단 저곳에 두 개 이상의 일선도가 있다면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우몽 수사의 것입니다.”

“만약 하나 밖에 없다면요?”

“그렇다면 제가 일선도 대신에 제가 가진 보물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일선도 대신에 유운 수사의 보물이라······.”

“최대한 양해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유운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고, 건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일선도의 가치에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유운 수사의 보물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여기서 일선도를 꼭 취해야겠다고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유운이 많이 양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욕심을 부려 목숨을 걸고 싸울 수야 있나.

게다가 유운이 죽기 살기로 덤빌 것은 불을 본 듯 뻔 했다.

“자, 그럼 어디 일선도를 찾는 방법이나 알려 주시지요. 유운 수사께서 그것을 알고 계시니 이토록 태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선도의 분배에 대한 이야기까지 마무리되자 건우가 느긋한 표정으로 유운을 보며 말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다들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만년일선도목의 복숭아는 저렇게 크고 잘 익은 것이 완전히 익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저렇게 탐스럽게 익은 후에 오래지 않아서 복숭아가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저 나무 밑을 보시면 떨어진 복숭아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다 익은 복숭아 중에서 끝내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눈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아니지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과즙이 꽉 차 있는 탐스러운 복숭아들은 전혀 구별이 되지 않지요.“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그런데 그렇게 오래 나무에 매달려 있다 보면 가끔씩 가지에 달린 상태로 마르는 복숭아가 생깁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그런 것들이 간혹 보이긴 합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과육은 사라지고 복숭아 씨앗만 남은 것이 있습니다.”

“아, 그것도 있군요.”

“옳습니다. 그겁니다.”

“네?”

“그게 바로 일선도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수가 많습니다만? 나무 하나에 두세 개의 씨앗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허허허. 이제 그 중에서 꼭지부분이 도화색을 띄고 있는 것을 찾으면 됩니다. 그것이 곧 일선도입니다. 하하하핫!”

“어엇, 유운 수사!”

말이 끝나자 유운이 크게 웃으며 분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깜짝 놀란 건우가 유운을 부르며 뒤늦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유운과 건우가 날아가는 방향이 조금 달랐다.

유운은 분지의 왼쪽으로 날아갔고, 건우는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이미 말을 듣는 동안에 건우도 유운이 말하는 것과 같은 특징의 일선도를 찾아 뒀던 것이다.

“허허허. 운이 좋습니다. 우몽 수사와 제가 모두 일선도를 얻을 수 있게 되다니 말입니다.”

둘의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을 깨닫고 유운이 크게 웃었다.

건우는 그런 유운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일선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유운이지만 그 모습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마지막 기사회생의 수를 발견했는데 지금까지 여유를 보인 것만도 대단하다 할 것이다.

게다가 일선도가 하나밖에 없어서 유운이 그것을 취했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보물을 내어줬을지 아니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건우는 어쩐지 유운이 약속을 지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하하하 제가 일선도를 얻었습니다 그려! 하하하.”

건우가 만년일선도목에서 꼬투리가 도화색을 띄고 있는 일선도에 손을 뻗은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는데 유운이 일선도를 따서 옥함에 넣었다.

별다른 수작은 없었다.

건우도 그것을 확인하고는 눈앞의 일선도를 취했다.

그리고 곧바로 공간낭에서 옥함을 하나 꺼내서 일선도를 보관했다.

빈 옥함은 공여려와 장무기에게서 취한 공간낭에도 몇 개나 들어 있었기에 여유가 많았다.

“축하합니다. 유운 수사.”

“허허허.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몽 수사도 축하합니다.”

건우와 유운이 분지의 중앙에서 다시 만나 서로에게 덕담을 전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눈앞에 세 번째의 일선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분지 중앙의 나무에도 꼬투리가 도화색인 복숭아 씨앗 하나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상황이었다.

“가지십시오.”

그런데 유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 일선도를 눈짓하며 건우에게 양보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저야 어차피 이번 파벽에 성공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입니다. 그 후를 노리고 일선도를 욕심낼 수야 있겠습니까?”

“그래도 성단 이후에도 일선도는 한 재산이 되지 않겠습니까? 일선도가 축기기 완경에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닐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성단기 완경에도 쓸모가 있고, 영체기 완경에도 쓸 수는 있겠지요. 당연히 그 때마다 성공 가능성은 낮아지겠지만요.”

“그러니 하는 말이지요. 이런 귀한 것을 그냥 양보하신단 말씀입니까? 그게 이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건우는 도저히 유운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도전 기회를 얻었는데 미련을 둬서야 되겠습니까? 일선도 하나를 더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마음의 심마가 들겠지요. 작은 부정이라도 지금은 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흐으음.”

“그런 의미에서 제가 우몽 수사께 부탁이 있습니다.”

“네? 부탁이라니요?”

“한동안 저와 말벗을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말벗이라니요?”

“사흘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그 일선도 하나의 대가로 사흘간의 말벗, 나쁘지 않은 거래가 아닙니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요.”

“마음의 거리낌을 줄이려 합니다. 제가 지금껏 수도행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모두 우몽 수사께 털어놓겠습니다. 제자도 없는 몸이니 그렇게나마 세상에 미련을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건우는 유운의 눈을 쳐다봤다.

맑고 투명하다.

지금껏 만났던 수사들 중에서 유운 같은 이는 본 적이 없었다.

“좋습니다. 일선도에 그만한 가치야 충분하겠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유운의 청을 들어주었다.

사실 유운의 수도행 전체를 듣는다는 것은 건우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될 일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엎드려 청할 일일 것이다.

“자, 저 쪽에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그려. 거기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유운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분지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건우는 홀로 남아 세 번째 일선도를 취해 옥함에 담고 유운을 뒤따랐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