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공여려와 장무기의 죽음
“음, 없는데?”
건우는 다섯 수사가 죽은 동부의 안쪽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금은연리옥함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전 동부의 주인에 대한 흔적도 남은 것이 없었다.
전실에서 죽은 다섯 수사들이 동부 내를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갖가지 금제나 진법은 물론이고 동부를 보호하는 결계까지 파괴해서 동부 안쪽의 내실들은 하나같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당연히 진법이나 결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수 만 년의 시간이 주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이건 그냥 보관만 해 뒀다가 나중에 정체를 밝혀 봐야지.”
건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금은연리옥함을 아공간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동부 밖으로 나와서 수정패를 꺼내들었다.
이제 이곳 동부에선 볼 일을 마쳤으니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건우가 수정패에 영기를 주입하고 가만히 반응을 살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정패가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음? 제3봉이라고?”
수정패는 건우가 있는 곳을 십이비승봉 중에서 제3봉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수정패에 새로 나타난 정보에는 제3봉에 속한 몇 곳의 수련 동부들 위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 나한테 이곳들을 털어 먹으라고 등 떠미는 건가?”
건우는 제3봉의 수련 동부 위치가 나타난 지도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지도에 드러난 수련 동부의 위치가 모두 중턱 아래쪽이란 점이었다.
건우는 슬쩍 봉우리 위쪽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기껏 축기기 후기의 저계 수사가 어딜 넘본단 말인가.
제 주제를 모르면 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건우는 욕심을 억누르며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수련 동부를 확인하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수정패에서 다시 이전처럼 금색 선이 나와서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우는 급히 그 선을 따라 몸을 날렸다.
* * *
“커억! 이, 이게 무슨······.”
“사형, 왜 그랬어요? 우리는 모두 녹림도의 사형제들 아니었어요?”
“무슨 개···소리냐?!”
“모를 줄 알았나요? 사형들이 우리를 죽이려 했다는 걸?”
“그런 말도 안······.”
털썩!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완합종 제자가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장사형, 괜찮아요?”
“으음. 그래, 내상이 크지는 않다.”
“그러게 왜 앞으로 나서고 그래요? 장사형이 막아주지 않았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내가 아니면 누가 여려 사매를 지켜?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그러다가 사형이 잘못 되면요?”
“그럴 일 없어. 알잖아. 내가 특별한 공법을 익히고 있는 걸.”
“그래도 항상 조심해요.”
“알았어. 고마워 여려 사매.”
“네, 사형.”
공여려와 장무기.
두 사람은 세 명의 완합종 제자를 죽인 자리에서 태연하게 서로의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잠시 애틋하게 서로를 보던 두 사람은 곧바로 죽은 사형제들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봐요 장사형!”
그런 중에 한 제자의 공간낭을 확인한 공여려가 환호성을 올리며 장무기에게 공간낭을 내밀었다.
“응? 뭔데?”
장무기가 공간낭을 받아 의식을 집중시켜 내용물을 확인했다.
“뭐야 중급과 상급 영석이 잔뜩 들었네? 거기다가 영단들도 많고.”
“그러니까요. 우리를 만나기 전에 희희낙락거리는 걸 봤다고요.
그걸 보는 순간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어디선가 보물을 발견했던 거죠.”
“그래? 역시 사매는 눈치가 빨라.”
“거기다가 이놈들이 우리를 왜 여기로 데리고 왔겠어요?”
“그야 우릴 미끼로 써 먹으려는 거였겠지. 그리고 우릴 함정 극복용으로 써먹고 동시에 우리 주머니를 노렸겠지.”
“우릴 바보로 본 거죠. 딱 봐요, 저 앞에 강력한 금제가 있는데, 그걸 모르는 척 우리를 저기로 밀어 넣으려고 했잖아요.”
“그래,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지. 하하하.”
공여려와 장무기는 자신들이 사형제를 죽인 것에 대해서 조금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죽이려 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줄 이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진실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사형,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길 들어가 볼까요? 저기 뭔가 굉장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나도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위험할 거 같단 말이지.”
“그건 그렇죠? 딱 봐도 금제가 굉장한 거 같아요.”
“뚫자고 하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 같은데.”
“차라리 여기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다른 놈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습격할까요?”
다신 한 번 어부지리를 노리자는 이야기다.
힘을 적게 들이고 큰 수확을 거두기엔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임을 조금 전의 경험으로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이곳 십이비승봉에 들어온 동문 제자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 시험을 통과해서 들어온 이들은 원래 출발했던 숫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할 걸?”
“그래서 이곳으로 다른 사형제가 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인 거죠?”
“그렇지. 그러니 우리가 직접 들어가거나 혹은 포기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냥감을 찾는 것이 옳다고 봐.”
그 사이에 장무기는 동문 사형제를 사냥감으로 부르는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그런 장무기의 눈동자에서 녹색 빛이 살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며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독사같은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장무기를 보는 공여려의 눈빛에도 차가운 한기가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그러네요. 여기서 몸을 숨기고 기다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직접 금제를 뚫고 보물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매번 남의 손을 빌리려고만 해서야 실력이 늘지 않지.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보물을 찾아보기로 하자.”
장무기는 뜻밖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쪽으로 행동방침을 정했다.
공여려는 그런 장무기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따랐다.
“출입자를 막기 위한 강력한 금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뚫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사매와 내가 짧은 시간 경지를 축기 후기로 끌어 올리고 그 상태에서 둘의 힘을 합친다면 능히 성단기와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거야.”
금제 앞에 도착해서 한동안 그것을 살핀 장무기가 공여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힘으로 금제를 뚫자는 건가요?”
“하나하나 엉킨 실을 풀듯이 할 수도 있지만 그러자면 시간이 너무 걸려. 그렇게 여기만 매달려 있다가는 다른 보물을 얻을 기회를 그만큼 놓칠 수도 있어.”
“그렇겠죠. 다른 사형제들이 지금도 열심히 십이비승봉을 누비고 있을 테니까요. 그게 아니라도 한 곳에서만 시간을 오래 보내는 건 마땅치 않은 거 같아요.”
“그럼 비법을 이용해서 잠시 수련 경지를 끌어 올리는 것으로 하지. 마침 조금 전에 얻은 단약들이 있으니 비법 사용의 후유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호호, 그럼 뭘 망설이겠어요? 어서 시작하죠.”
장무기의 말에 공여려가 눈웃음을 치며 장무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장무기가 공여려의 손을 잡고 그녀를 끌어 품에 안았다.
그 직후 두 사람의 영기가 서로 뒤엉키며 팽창하더니 축기기 중기의 수련 경지가 후기까지 높아졌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올라간 경지에서 서로의 힘을 모아서 하나로 엮어냈다.
쌍수 수련의 합격기를 사용한 것이다.
두 축기기 후기의 수사가 내뿜은 영기는 꽈배기처럼 꼬이더니 전방의 금제를 향해 날아갔다.
녹색과 하얀색의 기운이 새끼줄처럼 꼬여서 뻗어가더니 금제 안으로 파고들어 한동안 뇌성굉음을 일으키고 금제 밖으로 푸른색의 번개도 간혹 삐져나왔다.
“지금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장무기가 고함을 지르더니 금제 속으로 몸을 던졌다.
둘의 합공으로 금제에 구멍을 뚫고 그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쿠르르르르릉!
두 사람이 뛰어든 금제에서 들리던 굉음이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
뾰로로로로로롱 뾰로로롱!
그리고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밀역 안은 외부와 격리된 곳이어서 그런지 해가 지고 뜨는 일이 없었다.
다만 수사들 특유의 시간 감각이 하루의 시간 흐름을 알려주었다.
“호호호호. 정말 위험을 감수하기를 잘 한 거 같아요.”
“그러게, 수 만 년 수령의 약초가 세 뿌리나 되고, 특별한 수련 공법에 영단을 만드는 비법까지 있다니. 정말 운이 좋았군.”
“약초를 가지고 영단을 만든다면 성단기에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으음. 하지만 나도 아직은 이번에 얻은 연단 비법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울 거 같은데?”
“그럼 장사숙께 부탁을 드려야 할까요?”
“무슨 소릴! 사부께 보였다간 거의 다 빼앗기고 말 걸? 그럴 수는 없지.”
“그야 그렇겠지만 당장 연단 재주가 모자란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시간은 많아. 이번에 얻은 보물은 정말 꽁꽁 숨겨야 할 거야. 아마도 도주님이라고 하더라도 욕심을 내실 걸?”
“하긴 그럴만한 보물이기는 하네요. 그나저나 이 수련 공법은 무척 특이하네요. 거의 외도 수련이라고 천대하는 연체술이라니요.”
“연체술도 무시할 것은 아니야. 그것만으로 영계 비승에 성공한 수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어. 전혀 없던 일은 아니란 소리지.”
“하지만 육체를 연단하는 것은 영체를 수련하는 것보다 비효율적······.”
콰르르르릉 콰과과과과과광!
“꺄아악!”
“커어어억! 우에에엑!”
공여려와 장무기가 보물 탐색의 성과에 흥분해서 동부의 금제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법부들이 솟구쳐 오르며 폭발을 일으켰다.
자그마치 예순네 장의 법부가 거대 진법을 이룬 상태로 폭발했는데, 그 법부 하나하나가 사람의 크기만큼 컸다.
공여려와 장무기는 그 법부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곧 모습을 드러내는 원흉의 모습에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 바람처럼 그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곤 곧바로 양 손에 뇌전의 기운을 담아 둘의 가슴으로 내쏘았다.
콰르르릉! 콰릉!
“캭!”
“커억!”
그 한 순에 둘의 심장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누, 누구냐?”
“왜, 왜 우리를!”
공여려와 장무기가 허무한 눈빛으로 각진 얼굴의 중년 수사를 보며 물었다.
“너희가 같은 종문의 사형제를 죽여 보물을 취하는 것과, 내가 너희를 죽여 보물을 취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러자 각진 얼굴의 중년 수사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서걱! 서걱!
가벼운 손짓에 풍속성 영기를 담은 칼날이 만들어져 두 남녀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평상시의 축기기 수사라면 몸에 쌓은 영기만으로도 저항할 수 있을 가벼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공여려와 장무기는 갑작스런 기습에 큰 상처를 입어 몸 안의 영기가 모두 흩어진 상태였다.
심장까지 부서진 상황이라 영기에 대한 저항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그 한 수에 목이 날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공여려와 장무기는 목이 날아가는 그 짧은 순간 점박이 중년 사내의 얼굴에서 잘 생긴 젊은 사내, 건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쯧.”
건우는 목이 잘린 공여려와 장무기의 모습에 혀를 찼다.
사실 건우는 그들이 녹림도의 사형제 셋을 죽인 직후에 이곳에 도착했다.
수정패의 금색 선이 이곳으로 건우를 안내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공여려와 장무기가 사형제를 죽이고 좋아라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들이 보물을 챙겨 나오면 암습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건우의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는 그런 면에선 굉장히 강력한 법기였다.
미리 법부를 준비하고 적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더없이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건우는 칠부팔진궤(七符八陣櫃)의 여덟 진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진법을 금제 입구에 깔았다.
예순네 장의 법부를 사용해야 하는 칠부육사천붕진(七符六四天崩陳)을 사용한 것이다.
일곱 종류의 법부 예순네장을 사용해서 하늘을 무너뜨리는 진법.
그것은 축기 중기의 수사 둘을 빈사 상태로 만드는데 충분했고, 거기에 심장까지 부수는 연격까지.
공여려와 장무기는 목이 잘리기 전에도 이미 살아남기 어려운 상태였을 것이다.
“악연에 종지부를 찍었을 뿐이니, 다시 태어나거든 범인의 삶을 살아라. 나고 자라고 죽고 윤회하는 순천의 삶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역천의 대도가 항상 이리 피비린내가 나는 것인데 그것이 뭐 그리 좋겠느냐?”
건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공여려와 장무기의 품을 뒤져 공간낭과 법부, 법기를 취했다.
건우는 그것들을 확인하지 않고 소매에 넣는 척하며 아공간에 던졌다.
그리고 한쪽 허공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구경할 것이 남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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