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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55화 (55/499)

54. 진짜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영체기 초기의 녹림도주(綠林島主) 주시원(週始元)과 녹림도의 장로인 성단기 수사 일곱.

거기에 축기기 중기 이상의 제자 쉰여섯.

이는 녹림도의 정예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그 숫자를 동원했으니 녹림도주 주시원은 이번 원정에 녹림도의 미래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어떠냐?”

주시원이 3층 난간에서 밖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곳은 그의 비행 법보인 만년침향목선이었다.

3층 누각을 올린 비행 법보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은 녹림도주 주시원의 상징처럼 알려진 법보였다.

사십대 초반의 준수한 외모를 지닌 주시원은 하얀색 장삼에 연푸른색의 수가 놓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 푸른색의 수는 매 번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고 있었다.

“모두 선실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법보의 속도를 높여도 될 것입니다.”

주시원의 물음에 공손히 대답하는 이는 성단기 완경의 고유진으로 장로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이였다.

그 역시 하얀색 장삼에 수가 놓인 옷을 입었지만 수의 색이 백색이라 문양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백색의 수 역시 자세히 보려 해도 아지랑이처럼 어른 거려 본형을 알기 어려웠다.

원래 완합종 제자들이 입는 옷에는 경지에 따라서 구별된 문양들이 들어가는데 그 문양은 일종의 방어 술법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문양 자체가 평범치 않으니 겉으로 봐서는 그 실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십이비승봉(十二飛昇峰)의 밀역(密域)까지는 빨라야 3년 어쩌면 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거다. 게다가 밀역의 위치가 흑해와도 가까우니 해양요수들의 공격도 각오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시간이 더욱 지체될 수도 있고.”

“이미 각오하고 나선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다만.”

“뭔가 걱정이 있으십니까?”

고유진은 주시원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며 물었다.

“부양, 격류, 설상.”

주시원이 짧게 세 개의 이름을 읊었다.

완합종에 속한 네 개의 부속 섬들 중에 녹림도를 제외한 세 곳의 이름이었다.

“그들이 뒤를 쫓을 거라 염려하시는 겁니까?”

“내가 녹림도의 출입을 엄금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섬을 봉인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른 섬에서도 상황을 알아낼 것이다.”

“하지만 섬에는 부도주도 남아 있고, 다른 성단기의 장로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믿으십시오.”

“하하, 섬에 남은 놈들? 유진아 유진아.”

“네, 스승님.”

“내가 왜 그들을 섬에 남기고 섬을 봉쇄했겠느냐.”

“설마 그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녹림도에 대한 충심이 없는 이들이다. 다른 세 곳의 섬과 밀통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수도문파와 연계를 맺은 놈들도 있다.”

“그럼 그 놈들이 도주님의 행보를 밖으로 알리지 않겠습니까.”

주시원의 말에 고유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애써서 녹림도의 내문을 봉쇄하지 않았더냐. 음양주소통천문의 금제를 이용했으니 쉽게 풀어내진 못할 것이다.”

“그렇습니까?”

“게다가 그 놈들은 십이비승봉(十二飛昇峰) 밀역(密域)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

“네?”

“섬의 서고에 남겨 둔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그곳의 기록에는 소불고(小不告) 장로가 남긴 옥간의 내용 일부만 복제하고 중요한 부분은 비워두었다.”

“스승님이 가지고 계신 원본 옥간에만 핵심 내용이 들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럼 혹시라도 다른 섬들이 우리 녹림도의 원정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뒤를 쫓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그렇기는 하다만······.”

대답하는 주시원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번에 데리고 나온 제자들 중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놈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눈앞에 있는 고유진도 의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성단기 제자 일곱을 데리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 중에 몇이나 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소식이 밖으로 퍼져나가 저 멀리 구름 너머에서 자신의 비행 법보를 뒤따르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주시원 도주는 영체기 수사의 본능이 가리키는 불길함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 중에도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은 빠르게 바다를 가로지르며 서쪽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쿠르르르르릉!

그러다가 때로 영기의 충전이 끝나면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은 수 천 리의 거리를 한번에 접어 건너는 공간 이동술까지 주기적으로 펼쳤다.

주시원 도주는 법보가 그렇게 공간 이동을 할 때마다 비행경로를 바꿔서 뒤쫓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진행 방향을 짐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십이비승봉(十二飛昇峰) 밀역(密域)을 향한 원정이 시작되었다.

* * *

“도주님의 비행 법보는 정말 대단하죠?”

“그래.”

“건우 사형의 청옥비선도 속도에서는 도주님의 비행 법보에 그리 떨어지진 않을 거예요. 안 그래요?”

“법기 따위가 법보에 비길 수는 없겠지. 헛된 소리다.”

“아이 참, 건우 사형. 절 너무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지 마세요.”

공여려가 건우의 팔을 잡고 아양을 떨며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슬쩍 팔을 빼고 공여려를 노려봤다.

“여려 사매, 건우 사형이 싫어하지 않느냐.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기쁜 것은 알겠지만 사형께서 싫어하시니 자중하거라.”

건우가 뭐라 쏘아 붙이려는데 장무기가 공여려의 손목을 잡아 건우에게서 떼어내며 말했다.

건우는 그런 장무기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 난간으로 다가갔다.

“좁은 배에서 지내면서도 2년 만에 얼굴을 보는 건데, 어찌 데면데면 할 수가 있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세요?”

장무기가 잡은 손목을 털어내며 공여려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건우는 그런 공여려의 태도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난간 너머로 보이는 시커먼 바다를 쳐다봤다.

녹림도를 떠나서 쉬지 않고 2년을 비행했다.

그 동안 건우를 비롯한 축기기 제자들은 모두 선실에서만 지내야 했다.

그래서 건우는 그 시간동안, 축기기 후기의 경지를 안정시키며 50년의 녹영림 수련 기간 동안에 구하거나 혹은 직접 만든 법기와 법부를 보강했다.

건우는 이번에도 누구의 방문도 사절한다는 의념을 선실 문에 심어두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주시원 도주의 명으로 모든 제자들이 비행 법보의 방어에 동원이 되어 선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명을 전한 섭주구 장로에 의하면 이곳에서부터 흑해라 부르는 특별한 해역과 가까워져 해양요수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했다.

그러니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해양 요수로부터 배를 지키기 위해서 제자들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건우는 난간에 붙어서서 한동안 검은 바다를 노려보다가 훌쩍 난간 밖으로 몸을 날렸다.

“어머, 건우 사형!”

그 모습에 공여려가 깜짝 놀라며 난간으로 달려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때, 건우는 난간 밖으로 뛰어 내려 누각 1층 지붕에 내려섰다.

그리고 곧바로 돌방석 하나를 차지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의 1층 누각 지붕 곳곳에는 그런 돌로 만든 방석들이 있었는데, 그곳은 만년침향목선과 기운을 소통하며 금제나 결계, 공격 술법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필요에 따라서 법보의 기능들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지금 축기기 제자들에게 맡겨진 임무라는 소리였다.

건우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돌방석들 중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것이다.

“건우 사형은 벌써 저 좌대들의 기능을 파악한 모양이군.”

“그러게요. 저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숙들께서도 해 주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건우 사형이 뛰어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쳇, 그래봐야 외톨이에 불과하죠. 정식 제자가 되었지만 지금껏 다른 제자들과 별다른 교류가 없잖아요.”

“하지만 녹영림에서 후한 교환 거래를 많이 해서 인심을 얻은 것은 잊지 말아야지.”

“그거야 처음부터 공헌 점수를 많이 받았으니 그런 거죠. 솔직히 진염결에 대한 보상 점수가 얼마나 후했어요?”

“그래봐야 정진 제자로 녹영림에 들었다는 이유로 9할 가까이 빼앗겼는데?”

“그런데도 남은 것이 많았다고 소문이 났잖아요. 생각하면 할수록 배가 아프다고요.”

“쯧, 입조심!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해?”

“네네. 알았어요. 자, 우리도 석좌를 골라요. 저기, 저기, 저기. 세 곳 중에 하나가 좋겠네요.”

공여려는 장무기의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이 선박의 1층 지붕에 있는 돌방석들 몇 곳을 가리켰다.

그것들은 당연히 두 개의 돌방석이 함께 있는 자리들이었는데 장무기는 건우가 앉은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해 공여려의 허리를 감고 몸을 날렸다.

쌍수 수련을 한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상황이라 둘은 언제나 함께 했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 *

“날아라!”

쩌저저저정!

섭주구가 비행 법보의 2층 지붕에 앉아서 고함을 질렀다.

그런 섭주구의 몸은 팔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팽창되어 있어서 둥근 풍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우스꽝스런 외형과는 달리 섭주구가 부리는 아홉 개의 금빛 구슬들은 매 번 엄청난 공격을 허공에 퍼붓고 있었다.

섭주구의 본명 법보인 여의구령주(如意九玲珠)는 아홉 개의 금빛 구슬로, 각 구슬마다 색이 다른 주술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그 주술 문양에 따라서 각기 다른 공격을 했다.

지금 섭주구가 날린 구슬에는 하얀색의 주술문양이 도드라져 있고, 그 구슬로 펼친 공격은 방원 수천 미터를 새하얗게 얼렸다.

콰드드드드 콰드드드득!

그 공격에 만년침향목선(萬年沈香木船)으로 달려들던 저계 비행 요수들이 얼음 덩어리가 되어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섭주구가 날린 주공격의 여파일 뿐이었다.

섭주구의 빙속성 여의구령주는 허공에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저 앞쪽에 있는 성단기 후기의 해양 요수에게 탄환처럼 쏘아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여의구령주의 금빙주(金氷珠)는 목표로 했던 해양 요수를 꿰뚫었는데 그것이 지나가며 남긴 기운에 저계 비행 요수들이 덤으로 걸린 셈이다.

“굉장하네. 확실히 성단기는 무서워.”

건우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한 번 자신과 섭주구를 대보고는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아무래도 섭주구를 이길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으음, 그나저나 점점 요수들의 수가 늘어나고, 그 경지도 높아지네. 이러다가 정말 영체기 요수나 마수라도 나타나는 거 아닌가 몰라.”

건우는 슬쩍 비행 법기의 3층 난간을 바라봤다.

그곳에 녹림도의 도주 주시원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주시원은 요수들의 공격을 막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슬쩍 한 손 보태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건우는 그것이 이상했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축기기 제자 따위가 영체기 수사의 일에 의문을 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층 지붕과 3층에 불과하지만 그 상징적인 거리 차이는 실상 태산 보다 높고 깊은 격차가 있었다.

“나와라!”

잠시 주시원 쪽으로 시선을 던졌던 건우가 손가락으로 수인을 맺으며 섭주구가 상대하는 성단기 해양 요수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건우의 등에서 관처럼 생긴 상자가 솟아났다.

얼핏 봐도 건우가 들어가 누우면 딱 맞을 것 같은 나무 관으로 보였다.

짙은 갈색으로 칠해진 나무 관은 표면에 하얀색과 녹색의 문양이 가득했다.

“가랏!”

쉬뤼뤼뤼뤼뤼뤼뤼

건우가 다시 수인을 바꾸며 외치는 순간 관 뚜껑 부분이 빛을 내더니 수십 장의 법부를 전방으로 쏟아냈다.

사람 몸통 크기의 법부들은 관에서 쏟아져 나와서 엄청난 기세로 날아가 수백 미터 크기의 불가사리 해양 요수 주변을 둘러쌌다.

그 모습에 섭주구의 시선이 잠시 건우에게 머물렀다.

건우는 자신이 쏘아낸 법부들이 해양 요수를 감싼 것을 확인하고 다시 수인을 복잡하게 바꾸었다.

그런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서 건우의 영기가 허공을 격하고 법부들로 빨려 들어갔다.

우우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직!

정확히 스물네 장의 법부가 동시에 발동되며 엄청난 수속성 기운을 쏟아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목속성 기운이 은밀하게 그 수속성 기운 속에서 꿈틀거렸다.

“수뢰밀(水雷密)!”

건우가 법술의 이름을 외치며 법부들의 제어를 완전히 풀어 버렸다.

순간 법부들이 폭발하며 건우의 법술이 완성되었다.

법부가 폭발하며 수속성 영기가 엉켜 번개처럼 해양요수에게 날아가 파지직 거리며 자잘한 상처를 남겼다.

섭주구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건우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축기기 제자의 공격이 성단기 요수에게 그 정도 통한 것도 꽤나 칭찬할 만 한 일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섭주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건우가 해양요수에게 상처를 입힌 수속성 공격 이후에 은밀하게 목속성 영기가 해양요수의 상처 속으로 스며든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양요수의 몸으로 들어간 목속성 영기는 일종의 독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건우의 목속성 영기가 해양요수의 요기(妖氣)의 움직임을 방해한 것이다.

그래봐야 축기기 수사의 영기일 뿐이라 큰 피해는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문제.

지금 성단기 해양요수는 같은 경지의 섭주구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 작은 방해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 죽어라!”

섭주구가 묵직하게 외치며 그의

본명 법보 여의구령주(如意九玲珠)를 일제히 불가사리 해양 요수에게 날려 보냈다.

아홉 가지 속성을 지닌 금구슬들이 빠르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원형의 고리를 이루며 해양요수에게 날아간 여의구령주는 고리 안쪽으로 요수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링 모양을 통과하는 순간 불가사리 해양요수는 아홉 구슬에서 쏟아진 엄청난 영기에 내부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섭주구는 아주 짧은 순간 아홉 속성을 융합시켜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냈다.

건우는 거기까지 파악했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뒤로 해야 할 때였다.

아직 다른 장로들의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다.

비행 법기를 노리는 성단기 요수들은 방금 섭주구가 죽인 것 이외에도 넷이나 더 남아 있었다.

건우는 다시 주변을 살피며 공격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건우의 등 뒤에는 여전히 관 모양의 법기가 두둥실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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