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54화 (54/499)

53. 건우 사형, 함께 가요

“으음, 누가 찾아온···, 쯧, 공여려군.”

건우가 뇌영근 수련을 하던 중에 수련 동부로 날아온 전신부를 아공간으로 끌어 들여 확인을 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와 수련을 방해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객이 왔는데 주인이 모르는 척 무시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들어오라는 짧은 의념을 영기에 담아 쏘아 보내고는 곧바로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건우가 아공간 밖으로 나가 입구 금제를 풀고 동부 밖으로 나서자 마침 백색과 암록색의 둔광이 터지며 공여려와 장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도 이제는 그들 둘이 쌍수 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30년 전, 건우가 축기기 중기에 오를 무렵에 녹영림에 들어왔다.

20년 정도 쌍수 수련을 한 끝에 드디어 축기기에 올랐고, 장기로 사의전주의 추천을 받아 녹영림에 든 것이다.

그 때, 공여려와 장무기는 건우를 찾아와서 두 사람이 쌍수 수련을 하게 된 사실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았었다.

건우가 녹영림에 들어가 소식이 끊긴 후, 공여려 홀로 수련을 하다가 장무기와 연이 닿았다는 것.

그래서 장기로 사의전주의 도움을 받아 쌍수 수련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공여려는 그 때, 건우에게 쌍수 수련에 대한 공법이 기록된 옥간을 넘겨주며 늦어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건우가 보기에 그 모든 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건우는 굳이 공여려나 장무기와 실랑이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건우가 막 축기기 중기에 올라서 경지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했던 탓이다.

또, 그 후에는 연단술과 제련술을 익히고 여러 술법을 배우는 데에 바빠서 두 사람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이 또 흘렀다.

그 사이 공여려와 장무기가 가끔씩 건우을 찾아왔지만 수련을 핑계로 짧은 만남만 몇 번 있었을 뿐이었다.

“어쩐 일이지? 내가 축기기 후기에 오른 후로는 될 수 있으면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고 했을 텐데?”

두 사람을 보는 건우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청하지 않았는데 거북한 이가 찾아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건우 사형께선 매번 저희를 박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장무기가 그런 건우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고 공여려는 쌜쭉한 표정을 지었다.

“사형, 제가 예전에 조금 못난 짓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만 잊어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너무 뒤끝이 무궁하신 거 아니에요?”

“공사매는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나는 이전부터 서로 불가근불가원으로 지내자고 내 뜻을 분명히 했다. 대도 수련에 매진하여 각자의 갈 길을 가자고 말이다. 그런데 굳이 나를 찾아와 매번 번거롭게 하는 것은 너희가 아니었더냐.”

미울 것도 고울 것도 없으니 그저 그렇게 지내자는 것인데 그것이 어려운 일인가?

건우의 눈빛은 두 사람을 보며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하아, 건우 사형. 알겠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여려 사매도 사형께 사과해라.”

장무기가 건우의 태도에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모아 공수하며 말했다.

그리고 장무기의 재촉을 받은 공여려도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형. 하지만 저희는 그저 사형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욕심이 조금 과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하지만 사과를 하면서도 공여려는 군소리를 덧붙여 건우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건우 사형, 하지만 이번에는 사적으로 사형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종문에서 사형께 전하는 말이 있어서 그나마 친분이 있는 저희가 명령을 받아서 온 것입니다.”

그 때, 건우가 뭐라 하기 전에 장무기가 나서서 급하게 방문 이유가 있음을 설명했다.

“종문에서 나에게 전하는 말이 있다고?”

건우가 물었다.

“네, 사형. 그러니까 지금 건우 사형의 상황이······.”

장무기가 건우에게 용건을 이야기하려는 때였다.

“장사형!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서서 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건우 사형, 아무리 갑자기 찾아온 우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홀대를 하는 건 아니죠.”

공여려가 건우의 손님 대접이 못마땅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건우는 공여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고는 이들이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들고 온 것이라 짐작했다.

그럴 듯한 핑계가 없다면 공여려가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들어오너라.”

건우는 짧게 말을 하고는 동부 안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우아, 건우 사형. 여기 동부를 만들고 벌써 50년이 지나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썰렁하죠? 진짜 기본적인 것들만 있고, 그것도 거의 쓰지 않은 모습인데요?”

탁자와 의자, 벽에 붙어 있는 책장과 주술문자들이 적혀 있는 족자 몇 개.

건우의 동부 내의 전실은 썰렁하다 못해 황량할 정도였다.

공여려는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도자가 이런 공간을 쓸 일이 뭐가 있지? 나는 내 처소에 손님을 받지 않는다.”

그런 공여려를 보며 건우는 짧게 말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공여려와 장무기 또한 건우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찬 물 하나 놓이지 않은 상태에서 건우의 눈빛을 받고 장무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짧게 말을 하자면 건우 사형에게 종문에서 맡기는 임무가 내려왔습니다.”

“임무라고? 듣자니 꼭 해야 한다는 말 같은데?”

“그렇습니다. 도주님께서 직접 내리신 임무라 거부하기 쉽지 않습니다.”

건우가 장무기의 대답에 표정이 더욱 좋지 않게 변했다.

지금 축기기 후기에 이르러 완경이 되기 위해 다지기를 하는 중인데, 이런 때에 임무라니.

“건우 사형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사형이 녹영림에 든 것이 50년입니다. 이제 녹영림 제자의 권리가 사라질 때도 되었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50년이 되었다고 반드시 정진 제자의 자리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게다가 지금 내 수련이 중요한 고비에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자동으로 기간이 연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건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그렇지요. 더구나 겨우 50년만에 축기기 초기에서 후기에 오르신 건우 사형의 출중함이야 이미 소문이 자자하지요.”

“그런데?”

“하지만 사형, 사형은 종문에 들어오자마자 녹영림 제자가 되었잖아요. 그건 정말 큰 특혜였죠. 그런데 거기서 또 다시 아무 공헌도 없이 기간 연장은 제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요.”

건우의 물음에 이번에는 공여려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그 덕분에 진염결을 종문에 바치고도 공헌 점수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는 말이지. 그러니 결국 지금 상황은 나를 시샘하는 사형제란 놈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냐?”

건우가 스산한 눈빛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장무기와 공여려가 살짝 어깨를 떨었다.

그들도 얼마 전에 축기 중기에 오른 상태지만 건우 앞에선 매번 기를 펴지 못했다.

“건우 사형.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십시오.”

그 때, 장무기가 은근한 목소리로 건우를 설득하려는 듯이 말했다.

건우가 그런 장무기를 바라봤다.

“몇 년 전에 외부로 수행을 떠났던 축기 후기의 제자가 녹림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일이야 흔하지.”

“네, 그렇죠. 그런데 그 제자가 아주 특별한 소식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특별한 소식?”

“몇 만 년 전에 실종되었던 종문의 장로님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왔지요.”

“음? 실종된 장로? 그것도 몇 만 년 전?”

“하하하. 듣고 나니 관심이 생기시지요? 건우 사형도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진 객경 장로님의 유진을 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가지고 온 소식이 그 한민 장로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냐? 하지만 한민 장로가 몇 만 년 전의 사람은 아닌데? 그는 만 년 전쯤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냐.”

“아, 그건 아닙니다. 건우 사형과 관계있는 객경장로가 아니라 다른 장로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 분의 경지가 무려 영체기 후기였다고 합니다.”

“뭐? 영체기 후기?”

건우는 영체기 후기란 경지에 깜짝 놀랐다.

그 경지는 지금 완합종의 종주의 경지와 같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 시기에는 저희 완합종의 종주들께서 영계로 비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합니다. 그 말은 당시 종주님들은 화신기 완경의 경지에 이르셨다는 말이 아닙니까.”

“흐음. 그래서 그 때는 장로도 영체기 정도는 되어야 했다는 거군.”

“그렇지요. 게다가 이번에 발견된 분은 자그마치 영체기 완경이었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군. 그래서? 그 장로님의 유진이 발견되었다는 말인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단순히 영체기 완경의 선대 수사의 유진이 발견된 것이 건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형,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장무기는 이후로도 한동안 이번에 건우에게 내려온 임무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이번 임무는 간단치가 않았다.

자그마치 녹림도의 제자 절반 이상이 참가하는 대대적인 원정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체기 초기의 도주는 물론이고 성단기의 장로 일곱이 포함된 정예 원정대의 구성이었다.

“오래 전에 실종된 종주의 유진을 찾아 나서는 원정이라?”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그 종주께서 화신기 완경이라 했지만 그 분이 가셨던 그곳은 한꺼번에 열두 명의 수사가 영계로 비승한 곳이랍니다. 아니 그 열두 수사가 수 천 년을 함께 수련했던 곳이지요.”

“보물이 넘쳐 날 거란 말이지?”

“그래서 그 십이비승봉(十二飛昇峰) 밀역(密域)은 그곳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수사들을 유혹해서 빨아들였다지 않습니까.”

“매번 엄청난 수의 수사들이 들어갔다가 소수만 되돌아 나왔고? 그것도 종문의 그 종주께서 실종될 때에는 아무도 되돌아 나오지 못해서 이후로 그에 대한 전승이 거의 끊겨 버렸고?”

“저도 건우 사형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 압니다. 위험하지요. 목숨이 서넛이라도 부족할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대도 수행에 도움이 될 보물을 구하는 일인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저 먼 곳에서 손가락만 빨고 기다린다고 기연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흐음.”

건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흥분한 장무기의 모습에 짧게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러자 장무기와 공여려가 입을 다물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말은, 건우에게 거부권이 없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건우가 중요한 수련 고비에 있다고 고사하면 임무에서 빼 줄 확률이 높았다.

그만큼 건우는 녹림도에서도 기대를 받고 있는 제자였다.

제자의 경지가 높아지는 것이 곧 녹림도의 세가 커지는 일이다.

성단기 이상도 기대할 수 있는 제자라면 그 수련을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든 이번 원정에 데리고 가야 할 텐데요.’

‘사부께서 반드시 저 놈을 이번 원정에 포함시키라 하셨는데 말이지.’

‘그런데 장기로 사숙님께서 왜 건우 사형을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음, 정확한 것은 아닌데 사부님께서 과거 기록을 살피다가 한민이란 객경장로가 엄청난 암흑 공법을 얻었을 거라는 기록을 찾으셨다고 하더라.’

‘어떤 암흑 공법이요?’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굉장히 뛰어난 공법이어서 사부께서 관심을 가지셨다는 것이 중요하지.’

‘장 사숙께선 건우 사형이 그것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래서 이번 원정을 다녀오면 이곳보다 훨씬 좋은 위치에 동부를 낼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보상도 포함을 시켰지.’

‘그게 왜요?’

‘원정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돌아와서 새로운 동부를 만들어야 한다면 가진 짐들을 모두 가지고 움직일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뭔가를 따로 숨겨둘 여지를 줄이자는 거네요?’

‘그래, 그렇지.’

건우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무기와 공여려는 서로 손 끝이 닿은 상태에서 의식 연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건우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는지 눈을 떴다.

“보물이 탐나는 것은 아니지만, 종문에서 내린 명을 거역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 알았다 원정에 참가하여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전하거라.”

건우는 결국 그렇게 원정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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