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51화 (51/499)

50. 녹영림으로 간 건우는 모르는 것이 있다

“정진(精進). 온 힘을 다해서 노력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힘쓸 수 있도록 배려를 받는 제자를 그리 말하는 것이네. 한 번 정진 제자가 되면 못해도 50년은 다른 임무를 부여하지 않지.”

“아, 그렇군요. 정말 좋은 자리로군요?”

“그렇지. 종문의 제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 더구나 그렇게 수련을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수련 자원을 지원해 준다네.”

“그렇습니까? 그럼 더 가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정진 제자가 되어야지요.”

건우는 정진 제자라는 선택지를 덥석 물었다.

그런 건우의 반응에 갈군모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뭐, 이런 기회를 얻은 것도 사제의 홍복이겠지. 그리고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옳고.”

갈군모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겉으로 좋아 보인다고 그게 다는 아니지. 제자가 되자마자 정진 제자가 되면 뒷말이 많을 것이네.”

“아,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흰 눈을 뜨고 저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겠군요?”

갈군모의 말에 건우가 뒷머리를 긁었다.

그 모습에 갈군모는 혹시 건우가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어차피 대도의 길에 들어선 마당에 주위 사형제의 시선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있겠습니까? 그들이 제 수련을 대신 해 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지만 뒤이어 건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갈군모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갈군모는 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지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네. 섭사숙께서 자네에게 주신 큰 호의이니 그것은 잊지 말게.”

“물론이지요.”

“하지만 아울러서 자네가 장기로 사숙의 제안을 거부한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네. 장 사숙께서 좋아하시진 않을 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이미 결정을 내렸다면 서둘러 움직이세. 정진 제자에겐 내문의 녹영림(綠靈林)에 수련 동부를 만들 권리를 준다네.”

“동부를 만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정진 제자로 있을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동부를 만들어봐야 오래지 않아서 다시 옮겨야 하지 않습니까?”

“한 번 녹영림에 동부를 만들면 이후에도 그 동부를 계속 쓸 수 있네. 물론 그에 따른 공헌 점수가 필요하겠지만.”

“아, 그렇군요.”

“그 녹영림의 수련 동부 또한 많은 종문 제자들이 정진 제자가 되려는 이유 중에 하나네. 한 번 얻으면 계속 유지할 수 있는데, 그 녹영림이 워낙 수련에 좋은 곳이기 때문이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무척 운이 좋았군요.”

“으음. 자네에게 뭔가 있다는 것이겠지. 성단기의 사숙님들이 자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저는 장 사숙님께서 그러시는 이유는 모르는데요? 사실 제가 완합종에 들어온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은 갈사형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되었네 길게 말해 뭐 하겠나. 어쨌거나 사제가 정진 제자가 되기로 정했다면 그걸로 끝인 거지. 지금 곧 녹영림으로 갈 것이니 채비를 하고 나서게.”

“따로 준비할 것은 없습니다. 객사에 짐을 풀지도 않았으니 이대로 가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들어가서 그 장삼이나 바꿔 입고 나오게. 그걸 그대로 입고 다니다간 경을 칠지도 모르니.”

“아, 알겠습니다.”

갈군모는 건우가 아직도 한민 장로의 설상잠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섭주구 장로도 언짢다고 했던 것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건우는 곧바로 객사로 들어가 보급품이 들어 있는 공간낭에서 축기기 제자의 문양이 들어가 있는 장삼을 꺼내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갈군모와 함께 통천문을 통해 어디론가 이동했다.

* * *

갈군모가 앞장서서 객사의 통천문을 열고 녹영림으로 통로를 열었다.

“여기가 녹영림입니까?”

객사의 통천문을 통과한 건우는 갈군모와 자신이 울창한 숲속에 도착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네. 녹영림은 통천문을 이용해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네. 따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곳이지.”

갈군모가 건우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이제 허락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지.”

갈군모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품속에서 녹색의 옥패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옥패는 숲으로 날아가 출렁이는 파동을 남기고 사라졌다.

마치 수면을 뚫고 들어간 듯이 출렁임이 남았다.

“이곳에는 공간 결계가 설치되어 있네. 그것도 아주 고급 결계여서 음양주소통천문과 비슷한 수준이지. 지금 보이는 숲의 모습은 실체이지만 또 녹영림을 가리고 있는 벽이기도 하지.”

갈군모가 그렇게 설명을 하는데 조금 전에 허공으로 사라졌던 녹색의 옥패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갈군모는 그 옥패를 받아서 건우에게 내밀었다.

“받게.”

건우는 갈군모가 내미는 패를 받아들었다.

“이제 녹영림에 입장할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졌으니 그것을 가지고 저리로 들어가면 되네.”

갈군모가 조금 전에 옥패가 들어갔다가 나온 곳을 가리켰다.

“이 패를 가지고 가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게 녹영림의 입장패라네. 그게 없으면 녹영림에 들어갈 수가 없지.”

“그럼 갈사형과는 여기에서 헤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나머지는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따로 전해주실 것은 없으십니까? 제가 녹영림에 대해서나 정진 제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사형의 조언이 간절합니다.”

“그래봐야 소용없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정진 제자가 되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이들이 있을 거라고 말이네.”

“으음. 갈사형께서도 그러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자네 말대로 대도의 길에 무슨 양보와 배려가 있겠나. 하지만 양보와 배려가 아니라 눈치는 봐야 할 때가 있는 법이네. 자네가 정진 제자가 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와 사이가 서먹해졌고, 장기로 장로님과도 척을 지게 되지 않았나.”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제 결정을 되돌릴 수도 없겠지요. 이렇게 패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그 패를 되돌리면 이번에는 녹영림의 림주님께 밉보일 것이니.”

“휴우. 복잡하군요.”

“한 단체에 속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짧은 인연도 인연이니 내 충고를 하나 하지. 친구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은 만들지 말게.”

“······.”

“그럼 들어가 보게. 녹영림에 들어가면 또 새로운 인연들이 있지 않겠나.”

갈군모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훌쩍 몸을 날려 허공으로 사라졌다.

건우는 그 순간 짧게 통천문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갈군모가 통천문을 통해서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이다.

건우는 갈군모가 사라진 곳으로 다가가 허공으로 살짝 영기를 뿜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통천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되는 거군. 통천문이 이런 식으로 숨어 있는 경우도 있는 거였어. 음, 이건 이런 식으로 찾을 수 있는 거군.”

숨겨진 통천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상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소환의 형태였다.

어디론가 이동하고 싶을 때, 통천문을 소환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통천문을 소환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곳이 있었다.

건우는 통천문을 살피며 그런 몇 가지 기능을 알아냈다.

그리고 지금 건우 자신의 신분으로 갈 수 있는 곳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갖가지 이름의 문들이 이동 가능한 장소로 나타나 있었다.

“이건 일단 나중에 확인을 해 보기로 하고, 녹영림으로 먼저 들어가야겠지?”

건우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조금 전 녹색 옥패가 들어갔다가 나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건우가 그곳으로 다가가자 손에 들고 있던 녹색 옥패에서 기이한 파장이 일어나며 빈 허공에 잔잔한 물결 같은 것이 생겨났다.

건우는 슬쩍 손을 내밀어 그 물결 같은 파장을 더듬어 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밀어 넣었다.

“쯧,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 것이냐?”

그런데 건우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는 급히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백색의 장삼을 입고 있는 늙은이 하나가 있었다.

백색 장삼은 분명히 완합종의 성단기 제자의 복장이었다.

그런데 그 옷이 무척 낡고 헤어진 데다가 지저분했다.

보는 순간 ‘거지’가 연상되는 복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건우라고 합니다.”

건우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허빈자라 한다. 녹영림의 림주다.”

“네, 허 사숙님.”

“네가 이곳 녹영림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관계치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규칙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네, 말씀하십시오. 절대 규칙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다. 녹영림의 규칙은 단 한 가지, 다른 이의 동부 영역에 무단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말입니까?”

“그렇다. 허락을 받지 않고 다른 이의 수련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한다. 이 규칙을 어기면 녹영림에서 쫓겨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때론 죽을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절대 허락없이 다른 이의 수련 영역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된다. 그럼 이제 가 보거라.”

“네? 이대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허빈자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되묻고 말았다.

녹영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대로 뭘 어쩌라는 건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쯧, 밖에서 꾸물거리더니 제대로 설명도 못 들은 것이냐?”

“송구합니다.”

“네가 받은 옥패를 살피면 거기에 필요한 내용이 모두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출입패이기도 하고, 네 신분패이기도 하다.”

“그, 그렇습니까?”

“이후 네가 녹영림을 나가게 되면 그 때는 패의 내용이 바뀌겠지만 그 전까지 네 소속은 녹영림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의 임시 사부라는 소리이기도 하지.”

“아! 사숙님이 아니라 사부님이셨습니까?”

“임시라 하지 않더냐! 나는 귀찮은 것을 싫어하니 혹시라도 나를 찾고자 한다면 3년에 한 번, 하루 동안의 시간을 주도록 하마.”

“수련 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 때를 봐서 사부님께 여쭈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쯧, 녹영림에는 너와 같은 축기기 제자가 수 백 명이 있다. 그들 모두가 내 제자라 할 수 있지. 그러니 내가 얼마나 바쁘겠느냐? 그런 고충을 안다면 될 수 있으면 나를 귀찮게 하지 말거라.”

허빈자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인사도 받지 않고 허깨비처럼 모습을 감췄다.

“거참, 매정하신 양반이네. 아무리 임시라도 제자가 되었는데 이리 방치를 하시다니.”

건우는 섭섭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녹색 옥패에 의식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옥간처럼 옥패에 기록된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엔 녹영림의 전체 지도에 수련 동부와 그 주인들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수련처들을 잘 기억해서 실수로라도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자칫 작은 실수로 녹영림에서 쫓겨나거나 혹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청옥비선을 타고 다녀도 끝에서 끝까지 한 달은 걸리겠군.”

생각보다 녹영림은 넓었다.

“1년에 한 번 정진 제자에게 지원금이 나온다니 그 때까지는 빈털터리인 셈이군. 혹시 그 전에 진염결에 대한 공헌 점수가 들어올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신분패가 체크카드 역할도 하네?

건우는 신분패를 살피다가 또 다른 기능을 찾아내곤 피식 웃고는 패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청옥비선을 꺼내 허공에 던졌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가 보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은 곳이란 뜻이겠지.”

건우는 청옥비선을 움직여 수련동부들이 가장 밀집된 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 * *

“장사형, 건우 놈은 어떻게 되었어요?”

공여려가 장사형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다.

장사형이라 불린 장무기는 공여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일이 좀 꼬였어. 놈이 녹영림으로 들어가 버렸어.”

“네? 녹영림이요?”

공여려가 깜짝 놀라며 장무기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그래, 섭장로께서 놈을 녹영림으로 보내셨다는군.”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 놈이 무슨 공이 있다고요?”

공여려는 자신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한 녹영림에 건우가 들어갔다는 사실에 크게 화가 났다.

“사부께서 섭장로를 찾아가서 건우 그 놈을 사의전으로 데려오겠다고 하셨는데······.”

“그런데요?”

“섭장로께서 그 놈이 받을 공헌 점수가 꽤나 많을 것을 염려하셨다더라.”

“제가 진염결을 바치고 받을 공헌 점수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놈을 사의전으로 데리고 와서 그 공헌 점수를 빼먹기로 한 거고요. 그 뒤에는······.”

공여려가 뒷말을 흐렸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건우가 얻은 공헌 점수를 어떻게든 뽑아 먹고 이후엔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를 한다는 뜻이다.

“그랬지. 그랬는데 섭장로께서도 놈이 지닌 공헌 점수가 걸리셨는지 녹영림의 제자가 되겠냐고 의중을 묻게 하셨다는군.”

“그래서요?”

“놈이 녹영림 제자가 되었으니 이후에 공헌 점수가 나오면 그 대부분을 회수하겠지.”

“녹영림 제자가 된 대가를 받는 다는 거네요?”

“그런 식으로 공헌 점수를 회수해서 과도한 공헌 점수를 줄인다는 말씀이셨지.”

“아깝네요. 사의전으로 데리고 왔으면 그 공헌 점수를 사형의 사부님께서 활용을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전주님이라면 고작 축기기 제자의 점수를 어찌하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기 아니겠어요?”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섭장로님께서 그런 식으로 손을 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렇군요. 일이 그렇게 되었네요. 건우 그 놈은 정말 운이 좋은 놈이군요.”

“그래, 어쨌거나 이젠 녹영림에 들었으니 적어도 50년은 건드릴 수 없는 놈이 된 거야. 그러니 그 동안 우리도 축기기에 올라서 다음에 놈을 만날 때에는 당당하게 눈을 맞춰야지.”

“맞아요. 그래야죠. 반드시 그래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시 수련을 시작하자.”

“네? 네, 사형.”

공여려는 장무기의 말에 슬그머니 다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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