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화 (49/499)

48. 공여려 넌 가봐! 갈사형은 반갑습니다

“여기서 헤어져야 하겠구나.”

건우가 주저앉은 공여려를 보았다.

“네에. 감사합니다. 사숙.”

이제는 완합종의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축기기의 제자는 공여려에게 사숙 항렬이 된다.

그녀는 그 이치를 깨닫고 벌떡 일어나 건우를 사숙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너는 이제 경미후 사매가 쓰던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냐?”

건우는 공여려가 어떻게 지내게 될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네. 사부의 유산을 수습하고 그곳에서 수련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혼자 괜찮겠느냐?”

“괜찮을 겁니다.”

“그렇구나. 그럼 경미후 사매가 이야기했던 쌍수수련은 어찌 생각하느냐?”

건우가 갑작스럽게 쌍수 수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건우는 공여려가 가지고 있다는 쌍수수련 공법이 궁금했다.

그 수련이 남녀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란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공여려와 진짜로 그 공법을 익힐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쌍수 수련에 대해서 물어본 것은 공법 자체가 궁금한 것도 있고, 그 동안 공여려가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쌍수수련은 아마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응? 어렵다?”

건우는 곧바로 돌아오는 공여려의 대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사부가 했던 말을 제자이자 딸인 공여려가 거역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저, 그게··· 쌍수 수련은 같은 경지에 있는 수사가 아니면 수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축기기에 오를 때까지는 하고자 해도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저, 정확하게는 사숙과 제가 쌍수수련을 하면 사숙께서 수련에 손해를 보시게 될 겁니다. 쌍수 수련은 함께 하는 두 남녀의 수련을 서로 나눠 가지는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공여려는 구구절절 건우와 쌍수 수련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건우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구나. 그런 이유가 있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 그런데 말이다······.”

건우가 지그시 공여려를 노려봤다.

그 눈빛이 매섭고 차가웠다.

“네, 네. 사숙님.”

“경미후 사매가 말하기를 그 쌍수 수련 공법이란 것을 너와 내가 함께 익히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공법을 내가 좀 봐도 괜찮겠지?”

“네?”

뜻밖의 말을 들은 듯 공여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렇지 않으냐. 경미후 사매가 나에게 공법을 익히는 것을 허락했다는 말은 그 공법을 내가 봐도 된다는 말이 아니냐. 안 그러냐?”

“그,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 그러하니 너는 거처로 돌아가는 대로 그 쌍수 수련공법을 나에게 가지고 오도록 하거라. 내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 돌려줄 것인 즉.”

“아, 알겠습니다. 사숙님.”

공여려는 건우의 억지 아닌 억지를 거부하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축 처진 어깨로 건우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접객청을 떠났다.

건우는 공여려가 음양주소통천문을 통해 모습을 감추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홀로 복도에 남아 벽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내가 조금 늦었나?”

그리고 공여려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음양주소통천문으로 낯선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은색 무늬가 들어간 하얀 장삼은 완합종 특유의 복장이었다.

그는 20대 초반의 훤칠한 외모를 하고 있는 수사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수도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건우는 슬쩍 의식을 펼쳐 그 수사의 경지가 축기기 중기에 이르러 있음을 파악했다.

축기 초기인 건우가 중기인 수사의 경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의식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그가 섭주구 장로가 보내겠다고 말했던 동문 사형제일 것이라 짐작했다.

“누구십니까?”

그럼에도 건우는 조심스럽게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아, 장로님께서 사제를 안내하라고 하셨지. 그래서 왔어. 나는 갈군모라고 한다.”

갈군모라는 수사는 건우의 물음에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무척 활달하고 또 사교성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시군요. 갈 사형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건우도 처음 보는 동문 사형제에게 까칠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친근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 그렇게 부르면 되지. 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서둘러 움직이자. 수사에게 한 없이 넉넉한 것이 시간이기도 하지만 또 사람에 따라서는 촌음이 아쉬운 것도 시간이지. 지금 나는 그 촌음조차 쪼개서 쓰고 싶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라네.”

“하시는 일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건우는 앞서 움직이는 갈군모의 뒤를 따르며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하하하, 뭐 특별하게 그런 건 아닌데 맡은 일이 잡다하게 번거로운 것이 많아서 그런 거야. 제대로 수련을 할 시간이 없다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사제는 될 수 있으면 종문에서 주는 공헌 점수를 많이 모아 둬야 할 거야.”

“공헌 점수란 것이 있습니까?”

“아직 모르는구나? 그게 뭐냐면······.”

갈군모는 음양주소통천문으로 건우를 데리고 나가며 공헌 점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건우가 갈군모를 따라서 음양주소통천문을 지나자 상황이 바뀌었다.

갑자기 변한 낯선 주변 모습 때문이었다.

폭이 넓은 대로를 따라서 양쪽으로 갖가지 모양의 전각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건우가 그런 곳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움찔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갈군모는 공헌 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 모습을 보고 화제를 바꿨다.

“아, 사제는 통천문 이동이 처음이겠군? 정식 음양주소통천문으로 내문에 들어온 것을 빼면 말이야.”

그 모습에 공헌 점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던 갈군모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형께서 이 미욱한 사제의 안계를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건우가 갈군모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살짝 들어 올리는 인사를 하며 말했다.

대천세계 수사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인사였다.

“물론이지, 그걸 하자고 내가 사제에게 온 건데, 자자, 이리로······.”

갈군모는 흔쾌히 대답하며 앞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넓은 대로에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음양주소통천문을 줄여서 통천문이라 하는데, 말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의미지. 그런데 그렇게 통천문이라 줄여 부르는 것은 내문에 있는 작은 문들만 그렇지. 정문에 있는 것은 통천문을 줄여 부르는 일이 별로 없어. 그리고 우리 완합종의 본산이나 분파나 모두 내문 구역엔 통천문을 두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래, 그리고 그 통천문을 통하면 종문의 내문 어디든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하지. 자, 여기 자네가 머물 객사의 문이 있는데, 여길 열고 들어가면 이렇게 객사의 정원으로 통하지.”

갈군모가 대로를 따라 걷다가 낮은 담과 아담한 대문이 달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대문을 열며 통천문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갈군모는 건우를 데리고 객사의 대문으로 들어가서 대문을 닫았다.

그러자 객사 공간이 외부와 분리되는 금제가 발동했다.

“자, 여기까지는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가 되나?”

갈군모는 건우가 금제를 이해하는지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형. 객사를 둘러 외부와 단절된 금제가 있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야. 이 문이 보이나?”

갈군모가 방금 지나온 대문으로 다가가 문을 가리켰다.

“네, 사형.”

“그래, 이 문을 열면 아까의 그 대로가 나오겠지?”

“그렇겠지요. 하지만 사형께서 굳이 그렇게 물어보시는 것은 다른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군요?”

“하하하. 사제가 눈치가 빠르군. 그렇다네, 지금 이 문 역시 통천문이라네, 그래서 이 문을 열고 나갈 때, 가고자 하는 곳을 떠올리면 어느 곳이든 그곳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지.”

“그렇습니까? 신기하군요.”

“그렇지? 그런 식으로 음양주소통천문과 연결된 통천문들은 내문의 영역이면 어디로든 갈 수 있게 해 준다네. 하지만!”

“뭐가 또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여기에 제약이 없을 수가 있나?”

“그건 그렇겠군요. 그럼 그 제약이란 것이 어떤 것입니까? 사형.”

“하하, 그야 문을 여는 사람의 신분이나 자격이지 뭐겠어?”

“아, 그에 따라서 열 수 있는 곳이 달라진다는 말씀이군요? 저는 이제 겨우 객사만 허락을 받았으니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겠고요.”

“하하하. 그렇지 그래. 이리 이해력이 뛰어나니 내가 여러 번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자, 그럼 들어가지. 들어가서 줄 것은 주고, 아까 물었던 공헌 점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갈군모는 다시 서둘러 건우를 데리고 객사 건물로 향했다.

정원이 아담해서 객사 건물까지는 몇 걸음 되지도 않았다.

객사는 2층으로 된 목조 건물이었는데, 지구의 현대식 복층 건물처럼 2층에 침실이 있고, 1층에 생활공간이 있었다.

갈군모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공간낭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섭주구가 말했던 기본 보급품이 들어 있는 공간낭이었는데 공간낭 자체도 함께 주는 물건이라 했다.

물론 축기기에 오른 제자라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물품도 연신기 제자에 비해서는 훨씬 급이 높았다.

그래서 공간낭도 지급품에 포함이 된 것이라 했다.

그렇게 지원 물품을 전해주고, 이어서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 준 갈군모는 반나절이 지난 후에야 건우를 홀로 두고 객사를 떠났다.

건우는 말이 많은 갈군모를 상대하는 것이 의외로 피곤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갈군모가 떠나자 건우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몇 개의 깃발들을 꺼냈다.

그것은 건우가 삿갓조개의 섬에서 틈을 내어 만들어 놓은 진법 깃발이었다.

건우는 손바닥보다 작은 깃발들 중에 네 개를 뽑아 먼저 객사 천정의 귀퉁이마다 던졌다.

날아간 깃발들은 허공에 자리를 잡고 몸집을 부풀려 사람 크기가 되어 법술 문양을 빛내더니 곧 형체를 감췄다.

그 후에도 건우는 이리저리 깃발들은 던져 모두 열여덟 개의 깃발을 객사 안에 숨겼다.

“후우, 이 정도면 괜찮겠지.”

건우는 깃발 설치가 끝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깃발들을 설치하는데 몸에 쌓은 영기의 대부분을 소모한 건우였다.

그만큼 깃발로 만드는 결계 금제가 수준이 높다는 의미였다.

“많이 쓰지는 못하겠지만 효과는 좋을 테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건우는 처음으로 설치한 깃발 결계에 만족감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깃발들은 마땅치 않은 재료들을 직접 모아서 만든 것이라 내구성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효과는 좋지만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었는데, 그것을 객사에서 한 번 쓰게 되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벌써 몇 달이나 되었으니 한 번은 들어가 봐야 할 때였다.

그 때문에 아까운 깃발 결계를 사용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건우는 다시 한 번 의식을 펼쳐서 자신이 설치한 깃발 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 * *

공여려는 건우와 헤어지자마자 곧바로 내문 구역을 빠져나와 음양주소통천문을 뒤로 하고 둔술을 펼쳤다.

공여려가 그렇게 급히 달려간 곳은 내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늪지였다.

“장사형! 장사형! 소매가 왔어요.”

공여려는 늪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늪의 한쪽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커다란 나무 문이 나타났다.

공여려는 문이 나타나자 곧바로 몸을 날려 문 안으로 사라졌다.

문은 열리고 닫히는 것이 없이 그대로 공여려를 통과시켰다.

“장사형!”

공여려가 들어간 곳은 밖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늪지였는데 그 늪 위에 갈색의 삼층 전각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전각의 2층 난간에 한 수사가 서서 공여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여려 사매! 정말 무사히 돌아왔군, 게다가 연신기 완경을 이루었어.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2층 난간에 있던 수사는 곁으로 훌쩍 내려서는 공여려의 두 손을 잡으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수사는 얼굴빛이 약간 검기는 했지만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옷은 역시 완합종의 종파복장이었다.

“장사형은 제 걱정은 하지도 않았죠?”

공여려가 새초롬히 눈을 뜨며 그 수사를 노려보다가 입꼬리에 미소를 매달고 사뿐이 수사의 품에 안겼다.

검은 얼굴빛의 수사는 그런 공여려를 가볍게 안아주며 등을 쓰다듬었다.

“어찌 내가 여려 사매를 걱정하지 않았겠어? 다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사매의 안위는 느낄 수 있으니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무던히 사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만······.”

“사매도 알다시피 내가 여기를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은 가득해도 사매를 찾아 나설 수도 없었을 뿐, 몸만 자유로웠다면 다도해역이 아니라 그 밖의 흑해라도 사매를 찾아 나섰을 거야.”

“피이, 말만 그런 건 아니죠?”

“하하하. 사매와 내가 쌍수로 묶여 있는데 어찌 빈 말을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몰라요!”

“하하, 사매는 난처한 상황만 되면 그리 모른다고만 해서 이 사형의 애간장을 녹이는군.”

“사혀엉!”

“자자, 오랜만에 만났으니 일단 들어가자. 그 동안 사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알려주지.”

“아이 참, 사형도 무슨 그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공여려는 더욱 장사형이란 수사의 품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공여려와 장씨 수사는 곧바로 실내로 통하는 문을 열고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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