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진땀나는 대면식, 입문 허락을 받다
공여려가 전신부를 보내고 하루를 기다려서 그 회신을 받았다.
다행히 그 내용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다.
청옥비선을 타고 곧바로 접객청까지 오라는 것.
게다가 최대한 빠르게 오라며 비행 속도의 제한도 풀어 주었다.
그 말은 청옥비선이 지나는 길목에 미리 연락을 해서 건우의 길을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건우는 회신을 받자마자 곧바로 청옥비선을 움직여 녹림도의 접객청으로 향했다.
“녹림도, 말 그대로 푸른 숲이 가득한 섬이구나.”
건우가 청옥비선의 선수에 서서 좌우로 밀려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녹림도의 특징이 바로 저 푸른 숲입니다.”
공여려가 건우의 옆에서 조금이라도 잘 보여 보려는 듯이 수다를 떨었다.
“섬에 유독 목속성 영기가 강한 듯 하고, 그 외에 수속성과 토속성도 풍부한 것이 아주 내가 지닌 세 개의 영근과 딱 맞아 떨어지는구나.”
“그게 또 우연히도 그 말씀이 맞습니다. 섬 전체에 숲이 울창하여 목속성이 강하고 토질이 좋아서 그런데 토속성 영기도 풍부하다 들었습니다.”
“수속성이 강한 것은 바다 탓인가?”
“네, 하지만 섬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수속성은 평균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는 잘 모른다는 뜻이냐?”
“제가 지내던 곳은 섬의 붙은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래서 녹림도 내부의 사정은 잘 모릅니다.”
“하긴, 연신기 초,중기의 실력으로 아는 것이 많기도 어렵겠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저 쪽이 녹림도의 완합종 녹림분파인 모양이구나.”
그 때, 공여려와 이야기를 나누던 건우는 멀리 푸른 숲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크기의 솟을대문을 발견했다.
높이가 100미터는 되어 보이는 기둥이 양쪽에 서 있고, 그 기둥 위에 녹색 기와로 된 지붕이 올라앉은 문이었다.
기둥은 오른쪽은 붉은색, 왼쪽은 푸른색의 바탕에 금색 영롱한 무늬가 빼곡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음양주(陰陽柱) 소(小)통천문(通天門)이에요. 기둥은 음양의 기운을 품은 보물인데 그 힘으로 결계를 만들었데요.”
공여려가 두 개의 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기둥 위에 있는 녹옥(玉) 기와지붕을 가리켰다.
“저건 삼천육백육십개의 녹옥으로 만든 지붕인데 음양주의 결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저 문이 아니면 절대로 종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저게 녹림도의 완합종 종문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란 소리구나?”
“네, 도주님 이외엔 누구라도 저 문을 통하지 않고는 종문에 드나들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저 문으로 들어가서 제일 처음 도착하는 것이 접객청일 거예요.”
“음? 접객청일 거라고?”
“네, 그 외의 곳으로 통하는 길은 허락이 되지 않을 테니, 길따가 가면 접객청이 되는 거죠.”
“저 문에서 여러 구역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소리구나?”
“네, 사부님께 그렇게 들었어요.”
“그렇구나. 그럼 들어가 볼까?
어느새, 청옥비선은 음양주소통천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 부터는 비행 법기를 쓰지 못한다.
건우는 공여려와 함께 문 앞에 내려선 후, 청옥비선을 수습해 공간낭 안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양주소통천문으로 다가갔다.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는 거의 30미터가 되는 것 같은데 좌우 두 짝으로 된 문은 기둥과 같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절반씩이었다.
그 역시 표면에 복잡한 금색 문양이 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데, 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니 그 문양들이 완합종이란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의식을 펼쳐 봤지만 음양주소통천문 건너편으로는 한 올의 의식도 침투하지 못했다.
억지로 의식을 강화해서 다시 시도를 해 볼까 하던 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멈췄다.
고작 축기기 수사에게 뚫릴 결계도 아니겠지만 만약 그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좋은 꼴을 보긴 어려울 것이다.
건우는 잠시 기다리다가 문으로 가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려 했다.
스홧!
그런데 문에 손을 대는 순간, 건우는 순식간에 문 안쪽으로 이동이 되었다.
건우는 공간 변화와 동시에 자신이 음양주소통천문을 통과해 어떤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우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등 뒤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밖에서 봤던 음양주소통천문과 꼭 닮은 문이 있었다.
크기가 훨씬 작았지만 생긴 것은 완벽하게 같았다.
심지어 그 작은 문의 기와 지붕은 공여려가 말했던 삼천육백육십개의 기와를 고스란히 이고 있었다.
높이 3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음양주소통천문은 사실상 밖에서 봤던 그 큰 문의 다른 모습이라고 봐야 할 거 같았다.
스홧!
건우가 그렇게 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순간 공여려의 모습이 허공에서 불쑥 나타났다.
“아, 선배님.”
공여려는 건우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급해 보였던 표정을 풀었다.
아마도 건우가 문을 만지고 사라지자 급하게 뒤쫓아 들어온 모양이었다.
“여기서 접객청인 모양이구나.”
건우는 공여려가 반색을 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는 듯이 뒷짐을 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게 뻗은 복도가 십여 미터를 가다가 끝에서 문에 가로막혀 있었다.
십여 미터의 좌우 복도 벽에는 기암괴석과 영초, 영물, 괴수, 괴충, 구름과 바람, 파도 같은 것들이 잘 어우러진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건우는 그 그림들을 자세히 살피며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건우는 투명한 아공간 입구를 열어서 루야에게 복도의 그림들을 기억해 두도록 시켰다.
현기가 가득한 그림이니 혹시라도 그 속에서 뭔가 얻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곳도 아닌 거대 종문의 접객청이 아닌가.
손님을 맞이하는 입구에 아무 의미 없는 눈요깃감의 그림을 걸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르르르륵!
“드디어 도착했군. 어서 들어오너라.”
건우가 그림을 살피며 복도 끝의 문에 거의 닿았을 무렵, 문이 좌우로 부드럽게 열리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우는 자연스럽게 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텅 빈 대청.
그 맞은편에 두 계단 위에 의자를 놓고 앉은 인물이 보였다.
그 인물을 발견한 순간 건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단기!’
그것도 초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이전에 만났던 포공공마도 성단기라 했지만 눈앞에 있는 초고도 비만의 수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몸이 워낙 살이 쪄서 팔과 다리가 짧아 보일 정도인 중년 사내였지만 건우의 눈엔 그 우스꽝스러운 외모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한 발.
문을 지나서 한 발만 안으로 들어가면 아마도 쥐포처럼 바닥에 눌러붙지 않을까?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말학 후배, 건우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감히 존성대명을 들을 영광이 있겠습니까?”
건우의 입에 꿀바른 아부가 흘러나왔다.
“하하하하. 제법 처신을 할 줄 아는 놈이구나. 나는 접객청을 책임지는 섭주구다. 또한 장로의 신분도 가지고 있으니 너는 나를 섭장로라 부르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섭장로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이라고 할 거야 뭐가 있을까.”
“감히 태어나 처음으로 성단기 선배님을 뵈었으니 그것이 영광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하하. 처음이라? 그래, 그렇다면야 작은 의미라도 부여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네가 입고 있는 그 옷, 꽤나 눈에 거슬리는구나.”
섭주구는 건우가 입고 있는 백색 장삼에 신경이 쓰인다는 듯이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원래 작았던 눈이 이제는 실선처럼 좁혀졌다.
그런데도 그 실눈 속에서 뻗어 나오는 안광은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송구스럽습니다. 후배가 가진 의복이라곤 이것 하나가 전부라, 달리 예를 갖춰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음? 옷이 하나? 다른 것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뒤에 있는 공후배가 가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자의 것이라 빌려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으음, 그래. 상황이 그렇다면 이해를 해 줘야겠지. 하지만 네가 입은 그 장삼은 원래 종문의 장로들이 입던 것이다. 지금은 양식이 바뀌어 이런 문양을 취했다만, 그렇더라도 과거 장로의 신분을 나타내던 문양이 있으니 네게 적합지 않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후배는 곧바로 다른 곳을 구해서 입도록 하겠습니다.”
“되었다, 나가는 길에 입문자들에게 주는 하사품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받으면 필요한 것은 거의 들어 있을 것이다.”
“입문자들에게 주는 하사품이라면 이 후배를 완합종의 정식 제자로 받아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건우가 섭주구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섭주구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1초도 되지 않아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윗사람의 얼굴을 오래 쳐다보는 무례를 범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내가 그 동안 너를 살펴보니 딱히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네가 과거 본문의 장로였던 한민 수사의 수련 공법을 내어 놓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네가 본 종문의 제자가 되는 것에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섭장로님.”
“물론 그 공법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이후에 본도의 종주님께서 판단을 해서 내려주실 것이니 그것은 시간을 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건우는 섭주구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이리저리 말을 길게 늘어놓아 구차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좋구나. 그리하면 된다. 자, 그럼 어디 그 한민 수사의 공법이란 것을 확인해 볼까? 꺼내 보거라.”
섭주구는 해야 할 이야기는 다 했다는 듯이 건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건우는 경진후가 복사해 준 옥간을 꺼내 공손하게 두 손으로 들고 섭주구를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옥간이 스스륵 허공을 날아서 섭주구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섭주구는 건우에게서 끌어온 옥간을 손에 쥐고 잠시 시간을 끌었다.
옥간의 내용을 살피는 것이다.
“오호라. 좋구나, 아주 좋아.”
그리고 잠시 후, 섭주구는 전혀 꾸밈이 없는 목소리로 좋다고 감탄을 하며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허벅지나 무릎을 쳐야 할 몸짓이지만 워낙 비대해서 손이 배에 닿는 모습이었다.
“다른 공법들은 그래 대단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진염결은 매우 좋다.”
섭주구가 옥간을 한 손에 든 상태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
건우는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일 뿐이었다.
“이 진염결은 주력 공법으로 쓴다고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공법이다. 하지만 이를 보조 공법으로 쓰면 그 효용이 무궁하다.”
섭주구는 일체의 속임이 없이 진염결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대도에 들어선 수사들에게 의식의 힘은 무척 중요하다. 사실상 의식의 강함이 곧 수사의 강함이라 할 정도지.”
“그렇습니까?”
“그러하다. 아주 간혹 의식의 힘으로 경지의 차이를 극복하는 예도 아주 없지는 않다.”
“네? 그럼 축기기 초기 수사가 중기 수사를 이길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하하하. 축기 초기가 중기를 이길 수 있느냐? 하하하. 물론이다. 의식의 힘이 강하다면 그것이 가능하지. 아무렴.”
섭주구는 건우의 질문에 뭐가 좋은지 크게 웃었다.
사실 섭주구는 축기의 완경이 성단의 초기를 이길 수도 있다는 예를 들려 했다.
물론 그 가능성은 무척 희박하지만 의식이 극도로 강력하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아마도 진염결을 극한까지 익힌 축기기 완경이라면 일반적인 성단기 초기에게 비벼볼 수도 있으리라.
섭주구가 본 진염결은 그만큼 뛰어난 수련 공법이었다.
지금 당장 섭주구도 진염결을 익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였다.
성단기 후기인 그가 진염결을 제대로 익히면 아마도 성단기 완경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진염결을 극한까지 익혀낸다면 의식의 힘을 두어 배는 더 키울 수 있을 테니 그 효과가 얼마나 클까.
“으음. 좋구나, 좋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섭주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심각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진염결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으음. 건우라 하였지?”
“네, 섭장로님.”
“일단 내 권한으로 너를 완합종의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아, 감사합니다 섭 사숙님.”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말에 건우는 곧바로 섭주구를 사숙이라 불렀다.
“하하, 그것 참, 처세가 뛰어난 녀석이구나.”
섭주구가 그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정식 제자가 되는 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신분이야 내가 주면 되는 것이지만 네가 속할 소속을 정하고, 맡길 일을 찾는 등의 일이 남았다. 특히 네게 스승을 정해 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네 사숙님.”
“그러니 너는 한동안 내가 정해주는 객사에 머물며 처분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사숙님.”
“그리고 너, 어린 아이야.”
이번에는 섭주구가 건우 뒤에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공여려를 불렀다.
“네? 네, 장로님.”
공여려가 섭주구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너도 이번 일이 마무리 되면 그 공을 기려서 적절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거처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거라.”
“가, 감사합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그럼 너는 이만 물러가고, 건우 너는 네게 사형이 되는 아이가 올 테니 그 아이를 따라서 객사로 가 있거라.”
“알겠습니다 사숙.”
“네, 섭장로님.”
건우가 공여려가 각각 허리를 숙이며 대답을 하는데 스르륵,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섭주구로부터 흘러나오던 무거운 압박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후우우.”
“아아아아.”
건우는 길게 숨을 내쉬었고, 공여려는 앓는 소리를 내며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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