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3화 (43/499)

42. 소년 건우가 축기기가 되면?

데에에에에에엥!

이번에도 건우는 세상천지를 울리는 엄청난 종소리와 함께 수미선문의 비석에서 멀어졌다.

이번에도 비석을 휘감고 있는 온갖 법칙들에 대한 기억은 비석에서 멀어지면서 휘발되어 사라졌다.

건우는 비석을 보았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뭔가 있었다’는 기억에 안타까움만 안고 소년 건우의 몸으로 들어왔다.

“가자꾸나.”

산적처럼 생긴 스승이 건우를 재촉했다.

이번에도 역시 저번처럼 얼마 가지 않아서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전송진에 도착했다.

이전 목영근 수련장은 그리 멀지 않아서 둔술을 이용해 달려가면 되지만 수영근 수련 장소는 어딘지도 모를 바다 한 가운데라 그럴 수가 없었다.

거길 가기 위해서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서 전송진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전송진은 먼 거리를 한 번에 이동시켜주는 술법이 담겨 있는 진법이다.

이 진법은 스승이 직접 가동을 시켜야 했다.

건우가 보기에 스승의 도움이 없다면 중급 이상 혹은 상급의 영석을 넣어야 작동이 될 것 같았다.

“서두르거라.”

소년 건우의 몸에 들어가 있는 건우는 전송진을 자세히 살피고 싶었지만 산적 스승은 길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소년 건우는 스승의 재촉에 서둘러 전송진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스승은 아무 말도 없이 전송진에 영기를 쏘아내어 진을 발동시켰다.

스화화화화홧!

처얼썩! 처얼썩! 쓰화아아아!

진법이 발동된 순간 소년 건우와 스승은 망망대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바위섬 위에 도착해 있었다.

“그럼 100일 후에 보자꾸나.”

스승은 건우의 수련을 지켜보지 않고 떠났다.

목영근 수련을 할 때에는 그래도 가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수영근 수련 장소엔 스승이 기다릴 공간이 전혀 없었다.

바위섬 위의 공간은 세 사람이 품(品)자 형태로 앉으면 남는 자리가 없을 정도.

그러니 스승도 가까이에서 제자를 지켜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근처 허공에 머물고 있는데 소년 건우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년 건우는 그런 것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이 조용히 가부좌를 하고 수속성 수련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소년 건우는 이전처럼 수속성 단일 영근을 지니고 있었는데, 딱 맞는 수련 공법 덕분에 빠르게 수속성 영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소년 건우가 있는 곳은 오로지 수속성 영기만 가득한 곳.

수속성 영근 수련에는 최고의 수련 복지(福地)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소년 건우가 수속성 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바위섬을 중심으로 주변의 바다가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바닷물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소용돌이는 점차 속도를 높이더니 결국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갔다.

그 중앙에 있는 바위섬은 어느 순간 바위기둥이 되어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꼴이 되었다.

스화화화화화화!

얼마 후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에서 물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 나와 깔때기 모양의 빈 공간을 채워갔다.

아래쪽에서부터 채우며 올라온 물의 기운은 어느 덧 소년 건우의 머리를 넘어 섰다.

소용돌이의 높이가 이미 소년 건우가 앉아 있는 바위기둥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웅! 스화화화화!

소년 건우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수속성 수련 공법의 연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년 건우의 머리 위까지 쌓였던 물의 기운이 빠르게 소년 건우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연신기의 몸에 물의 기운, 수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 바, 축기의 시작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소년 건우는 한층 마음을 가다듬으며 정신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솨솨솨솨솨솨솨!

얼마 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소년 건우의 몸에 흡수되던 물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을 따라 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회전하는 수기는 바닷물을 따라서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년 건우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구(球)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구는 점점 많은 수기를 끌어 모으며 밀도를 높였고, 밀도가 높아진 수기, 물의 기운은 조금씩 소년 건우의 몸 앞으로 사라졌다.

그 때, 소년 건우의 의념 공간에 있던 영근이 짙푸른 색으로 물들며 밖에서 들어온 물의 기운, 그 큰 구체를 모두 받아들였다.

쿠르르르르르릉!

소년 건우의 의념공간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과 동시에 소년 건우의 몸에는 영기가 밀도를 가지고 쌓이기 시작했다.

연신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영기의 축적.

소년 건우의 몸에 영기가 응축되어 쌓였다.

소년 건우는 그 순간 축기기에 발을 디디며 엄청난 법열에 몸을 떨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려!’

하지만 소년 건우의 몸에 들어와 있던 본신의 건우는 달랐다.

이미 한 번 축기에 오른 경험이 있는 건우는 소년 건우가 법열의 쾌락에 몸을 떨 때, 최대한 그것에 저항하며 희미하게 연결된 법칙의 흐름을 느끼고자 애썼다.

물론 그 과정에서 건우가 실제로 얻은 것은 없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축기기 수사의 이해 수준을 아득하게 초월한 것이었다.

건우는 그것을 알았지만 지극한 희열을 느꼈다.

그 희열은 법열과는 다른 것이었다.

뭔가 수도자가 궁극에 닿아야 할 목표를 본 것 같은 느낌.

수사로서 수련의 지향점을 찾았다는 기쁨이라 할까.

‘좋다! 인식의 한계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도 의미는 있을 터!’

건우가 그렇게 기뻐할 때, 소년 건우의 연공은 드디어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완전히 축기기에 올라서서 그 경지를 갈무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성공했구나. 장하다.”

언제 왔는지 산적 스승이 따뜻한 눈빛으로 소년 건우를 보며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천지를 울리는 종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데에에에에에에엥!

“허어억!”

당연하다는 듯이 건우의 정신은 수미세계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이전에는 소년 건우의 몸에서 정신만 쫓겨나는 형태였는데, 이번에는 소년 건우는 물론이고 바다 위의 바위섬을 포함한 수련 공간까지 수미세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그것은 건우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건우는 아공간의 수미산겨자씨 밑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수미산겨자씨의 반영세계에서 함께 밀려온 수속성 수련장이 아공간에 덧붙여졌다.

- 건우님, 괜찮아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루야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건우는 머리를 흔들며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아!”

그리고 자신의 몸이 소년 건우의 것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몸이란 사실에 짧은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끝이 아니었다.

건우의 아공간은 곧 건우의 의념 공간이다.

그런데 지금 그 의념 공간이 두 배로 커졌다.

수영근의 영역에 소년 건우의 수련장이 덧붙여지지 않았던가.

건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갑작스럽게 의념 공간이 확장되면서 의식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금 쉬어야겠다. 넓어진 공간을 수습해야겠어.”

건우는 루야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진염결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처럼 의념을 바닥까지 소진시키고 다시 의념을 끌어내는 학대의 수련은 아니었다.

그저 진염결로 의식을 다독이고 치료하는 수련이었다.

의외로 진염결에는 연공을 통해서 의식을 치료하는 효용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의식을 학대하고 쥐어짜는 것이 진염결 수련이니, 그로 인한 의식의 상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러니 그것을 치료하는 효용을 공법에 함께 넣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진염결을 이용해서 갑작스런 의념 공간의 팽창으로 인한 충격을 가라앉히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하지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무슨 상관일까.

아공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면 그 정도의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그러니까 그 수미산겨자씨의 세상, 건우님이 반영세계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소년 건우가 축기기에 올라서니까 이렇게 된 거라고요? 수련 장소가 건우님과 함께 이곳으로 밀려났다고요?

“몇 번을 말해?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취미라도 있냐?”

-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냐는 거죠. 겨자씨 안에 수미세계라는 거대 세계가 들어 있는 것이야 그 분께서 그렇다고 하셨으니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거기서 저런 공간이 떨어져 나와서 아공간에 붙을 수도 있어요?

루야가 수영근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시퍼런 바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바다의 넓이는 원래 건우가 가지고 있는 기본 아공간의 넓이와 거의 같았다.

지름이 3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공간이 새로 생겨서 그만큼 의념 공간이 늘었다는 소리다.

“왜,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젠데?”

- 그렇잖아요. 저 바다가 현실에 떡하니 나온 거라면 또 몰라요. 여긴 건우님 아공간이라고요. 아공간에 저런 게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바다라니요.

“뭐, 솔직히 좀 이상하긴 하지. 저건 아공간 밖으로 꺼내서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 수영근하고 연결된 상태기도 하고.”

- 그러니까요, 저 바다는 실재하는 거라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의념 공간에 있는 허상이라고 봐야 하는지 헷갈린다고요.

“수속성이 대부분인 허상 공간이라고 봐도 되겠지. 아공간 밖으론 내 놓지 못할 거니까. 하지만 뭐 그렇게 생각하기엔 또 밖에서 가져다 놓았던 연단 재료들이 저 안에서 잘 사는 걸 보면 실상 같기도 하고.”

삿갓조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주워 모았던 재료들은 아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가 이번에 바다가 생기고 거기에 몰아넣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것들은 새로 생긴 그 바다에 잘 적응하고 풍부한 수속성을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었다.

- 결국 건우님도 모른다는 소리네요?

“그냥 쉽게 생각해라. 아공간에선 실상이잖아. 그러니 너에게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너는 어차피 아공간 밖으론 못 나가니까.”

- 아, 그건 그러네요.

결국 루야는 반영세계에서 뚝 떨어진 바다를 진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입장 정리를 했다.

그리고 건우는 수영근이 아닌 다른 영근들도 축기기에 오르면 같은 현상이 일어날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영근을 축기기로 올리고 반영세계의 소년 건우도 그 영근을 축기기로 올리도록 해야 한다.

답은 새로운 영근 수련이란 소리였다.

* * *

건우는 수련 장소를 아공간에서 삿갓조개의 패갑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넘쳐나는 영기를 이용해서 수련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수련을 시작한 것은 당연히 목영근이었다.

모든 영근을 연신기 완경까지 끌어 올린 상태라 어떤 영근을 수련해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목영근이 가장 애착이 갔다.

아무래도 생명의 기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친근감이 드는 때문일 것이다.

‘목속성 영기를 따로 모을 수는 없지만 이곳은 무속성 영기가 매우 짙은 곳이다. 엉덩이에서 영맥이 곧바로 올라오니 영기가 부족할 일은 없다. 그러니 이 영기를 이용해서 목영근을 축기까지 끌어 올린다.’

무속성 영기로 속성을 지닌 영근을 성장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속성 영기에 비해서 효율이 좋지 않은 탓이다.

무속성 영기가 범용성은 있지만 영근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그저 그런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무속성 영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성 영기를 줄 수 있는 영단이나 보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영근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건우는 아공간 격리로 영근을 하나만 꺼내 놓을 수 있으니 어떤 간섭도 없이 하나의 영근만 성장시키면 된다.

건우가 수속성 영근 이외의 다른 영근들을 축기기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생각한 배경에는 그런 이유들이 있었다.

건우는 삿갓조개의 패갑 안쪽 공간에서 바닷물을 모두 밀어내고 수련 환경을 개선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먼저 목영근을 축기기로 끌어올리는 수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깊은 심해에서의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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