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수련은 성공적? 늑대는 방플중?
삿갓 조개껍데기로 씌워진 거대한 공간.
건우는 영기가 솟아나는 구멍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수련 삼매에 빠졌다.
다만 땅속에서 솟아나는 영기는 속성을 지니지 않은 무속성 영기.
그래서 수영근을 수련하는데 특별한 이득은 없었다.
그래서 건우는 아공간 밖에서는 수영근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지막지한 영기를 몸으로 받으며 진염결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보조 공법이라고 하지만 진염결은 무속성이라 어떤 속성이든 영근을 키울 수 있다. 게다가 의념을 가혹하게 소진시키고 또 끌어내어 단련시켜 의념의 크기 뿐만이 아니라 그 질까지 바꾸는 효용이 있다.’
원래라면 삿갓조개의 은빛 수정 진주를 사용해서 수영근을 축기기로 끌어올리는 수련을 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왕 넘쳐나는 영기를 확보한 상황이니 다른 영근들도 최대한 성장을 시켜보자는 것이 건우의 생각이었다.
적어도 연신기 완경까지는 영근을 쉽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공간 분할의 능력을 이용해서 한 속성의 영근만 꺼낸 상태로 의념결과 함께 수련을 쌓았다.
‘드디어!’
그리고 결국 건우는 자신이 가진 여덟 속성의 영근을 모두 연신기 완경의 경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특히 수속성의 경우엔 삿갓조개의 진주 덕분에 순식간에 연신기 완경에 이르렀다.
‘역시 이 수도계 놈들은 약쟁이가 될 수밖에 없어. 이런 걸 들고 수련을 하면 그건 반칙이지, 반칙.’
건우가 삿갓조개의 진주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남이 쓰면 반칙이지만 내가 쓰면 요령이 되는 거다.
‘내로남불이 따로 있나. 크크크.’
- 뭘 그렇게 이상하게 웃어요?
건우가 수속성 영근 수련을 마치고 진주를 쓰다듬으며 키득거리고 있는데 루야가 다가왔다.
다른 속성은 밖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지만 수속성은 삿갓조개의 진주 덕분에 아공간 안에서 수련하는 것이 편했다.
그래서 마지막 수속성 수련은 아공간 안에서 했던 것이다.
“이제 수속성도 연신기 완경이다.”
건우가 진주를 수영근의 영역으로 던져 넣으며 말했다.
던진 진주는 건우의 의념에 따라서 부드럽게 날아가 수영근의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연신기 완경에 이른 수영근은 맑은 푸른색의 물방울이 되어 있었다.
주먹 두어 개를 뭉쳐 놓은 크기의 수영근은 자세히 보면 쉬지 않고 흐르는 움직임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 빠르네요.
“그렇지. 확실히 수사들이 좋은 수련 자원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거 같다.”
- 그 진주가 없었으면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을 텐데요. 정말 건우님 말처럼 이 세상 수도자들은 약쟁이가 분명해요. 약을 먹으면서 수련하고, 수련 경지가 오르면 뽕 맞은 것처럼 맛이 가고.
“깨달음의 희열인 법열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 건우님이 먼저 시작한 거 아니었어요?
“설마 내가 그랬을라고.”
- 역시, 자기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몹쓸 기억력 같으니라고.
“됐고, 일단 미뤄뒀던 일이나 하자.”
약쟁이니 뽕맛이니, 사실 건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계속 싸워봐야 제 얼굴이 침 뱉는 격이다.
건우는 곧바로 화제를 바꿨다.
- 아,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하시게요?
“그래, 그 동안 영근 수련하느라 좀 미뤄뒀는데 이젠 전부 연신기 완경까지 끌어 올렸으니까 수미세계에도 좀 다녀와야지.”
- 가 봐야 어차피 소년 건우가 목영근 수련 하는 거 밖에 없지 않을까요?
루야는 어차피 축기기에 오를 때까지는 가 봐야 의미가 없는 거 아니냔 뜻으로 물었다.
그동안 건우가 영근 수련을 하던 중에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이 가능해진 후에도 그 일을 미뤘던 이유가 그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영근이 아닌 수영근을 꺼내놓고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해 보려고.”
하지만 건우는 의식연결에 변화를 줘 볼 생각이었다.
- 아, 그럼 혹시 수영근 수련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전엔 목영근이 가장 경지가 높아서 수미세계에서도 그걸 익히는 소년 건우만 나왔을 수도 있잖아. 아직 수미세계에 대해선 모르는 게 많지.”
추측이지만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라고 건우는 생각했다.
- 알았어요. 그럼 다녀오세요. 조심하시고요.
“조심은 무슨, 거기선 꼭두각시처럼 정해진 행동만 해야 하는데. 아무튼 다녀오마.”
건우는 행동의 제약이 불만인 듯이 투덜거리며 눈을 감고 머리위에 있는 수미산겨자씨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수미산겨자씨는 곧바로 건우의 의식을 빨아들였다.
* * *
“으으음.”
-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건우님.
건우가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 루야가 건우의 얼굴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래, 이번에도 하루?”
- 네, 건우님.
“그렇군,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하면 하루가 지나서 돌아온다는 건, 이제 믿어도 될 거 같네.”
- 그렇겠죠. 그런데, 그래서 어떠셨어요?
“음?”
건우는 루야가 뭘 묻는지 짐작하면서도 뚱한 표정을 지었다.
- 전과 같은 곳에 가셨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셨는지 묻는 거잖아요. 그 동안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요?
“아! 그래. 확실히 영근에 따라서 수미세계에서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걸 알았다.”
- 달라져요?
루야가 흥분한 듯 몸에서 나는 빛이 밝아지더니 더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이번에는 수속성 수련법을 배웠지.”
- 우와, 그래요?
“다른 것은 모두 같았다. 소년 건우가 나오는 것도 같고, 산적 같은 스승이 나오는 것도 같았지.”
- 그런데 수련 내용만 달라졌어요?
“그래, 수속성 수련을 통해서 축기에 도전하는 것으로 바뀌었지. 그리고 수련 장소도 망망대해의 작은 바위섬으로 변했고.”
-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요?
“세 사람 정도 겨우 앉을 정도의 공간이 있는 바위섬, 아니 바위기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곳에 앉아서 수련을 하는 거지.”
- 그럼 다음에 다른 영근을 꺼내고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하면 그 영근에 대한 수련을 하겠네요? 그리고 그 수련법도 배우게 될 거고요?
루야는 건우가 새로운 수련을 했다는 데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곧바로 찾아냈다.
“그렇겠지.”
- 그런 걸 두고 개이득이라고 하지 않아요? 여덟 속성의 영근 수련법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긴 하지. 저게 보기보단 보물인 셈이야.”
건우가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떠 있는 수미산겨자씨를 올려봤다.
밑에서 보면 그저 수석의 평평한 돌바닥처럼 보일 뿐이다.
- 제가 말했잖아요. 저 수미산겨자씨가 원래는 엄청나게 큰 세상을 겨자씨 안에 넣었던 거라고요. 지금 보이는 저 모습도 사실은 본모습이 아니죠.
“본모습이 아니면?”
- 원래 모습은 모래알처럼 작은 노란색 겨자씨라고요. 하지만 건우님 아공간에 들어오면서 그나마 저렇게 산을 닮은 수석 모양이 된 거죠.
“외형이야 뭐 그리 상관은 없지. 지금 중요한 것은 드디어 내가 축기에 도전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는 거 아니겠냐?”
건우는 다시 화제를 영근 수련으로 돌렸다.
- 수속성 기운이 가득한 진주에, 그것을 흡수할 공법까지 있는 거네요.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수련공간도 있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손을 뻗어 수영근 영역에 놓아뒀던 삿갓조개의 진주를 불러왔다.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하느라 잠시 던져 뒀던 진주였다.
- 곧바로 수련을 하시게요?
“굳이 늦출 이유가 없으니까.”
- 그런데요 건우님.
“왜?”
- 저도 그 동안 잊고 있었는데요.
“뭐?”
- 연못에 넣어 놓은 늑대는 어쩌죠?
“아아, 그······.”
- 건우님도 잊고 계셨죠?
“야, 내 의념공간에 들어 있는 것을 어떻게 잊어? 그냥 무의식 저 밑에 넣어뒀다고 해야지.”
- 그게 잊어버렸다는 말이잖아요.
“뭐, 아직은 살아 있는 거 같으니까 그냥 두자.”
- 그냥 둬요?
“정신을 잃은 상태잖아. 깨어날 때까지는 그냥 둬도 되겠지. 그리고 축기 중기에 가까운 놈이라 지금은 나도 상대하기 버겁거든.”
- 그래서 건우님이 축기기에 오를 때까지는 그냥 두시게요?
“그래, 그렇게 뒀다가 나중에 제압을 하면 되겠지. 일단 지금까지는 반시체 상태라서 위험하지도 않고.”
- 그건 그렇죠. 뭐 아공간에 있는 거라곤 저하고 늑대하고 원숭이 분혼 뿐인데, 저 말곤 모두 정신을 잃고 있어서 건우님이 완전히 잊으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가끔은 떠올려 주시라고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래, 알았다. 자, 그럼 이제 수련을 시작해 볼까?”
- 곧바로 축기기로 가시는 거죠? 아자자! 가즈아아아아아아!
“풋, 그래. 가 보자.”
건우는 호들갑을 떠는 루야를 보며 짧게 웃고는 곧바로 눈을 반쯤 감으며 수속성 수련 공법을 떠올렸다.
* * *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딘가.
[크르릉]
이것은 영혼이 내는 울림.
내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있구나.
그런데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딘가.
나는···, 위대한 청랑(靑狼)의 자손.
나는···, 고고한 독룡(毒龍)의 피를 이은······.
나는··· 모르겠다.
[크르릉]
아, 나는 늑대다.
내 울음소리가 내가 늑대임을 알려준다.
당연하겠지, 청랑의 후손인데.
그럼 여기는 어디?
[크롸롸롸롸뢍 크와앙!]
떠올리기 싫다.
본능이 거부하고 있다.
내 몸은 떠올리면 안 될 어딘가에, 떠올리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차가운 물,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영혼까지 녹아버릴 것 같은······.
[크르릉]
아니다, 떠올리지 말자.
그것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 코는 괜찮은 걸까?
코?
[크롹!]
아니다 떠올리지 말자.
깨어나지도 말자.
내 정신을 더욱더 깊이 봉인하자, 그렇지 않으면 내 스스로 겉과 속을 뒤집어 내장을 가죽으로 삼고 싶은 괴로움이 다가온다.
[크르릉]
끔찍한, 표현할 수 없는, 도대체 뭘까?
녹각독랑은 가끔씩 정신이 들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심지어 육체와의 연결이 가능할 것 같아도 절대 거부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크르릉]
왠지 많이 서글픈 늑대, 녹각독랑은 영혼으로 울고 있었다.
하지만 녹각독랑을 끔찍한 연못에 던져놓은 건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녹각독랑의 고통은 이후로도 제법 길게 이어질 것 같았다.
* * *
법열(法悅).
깨달음의 지극한 희열.
대천세계에선 수도자들이 경지를 높일 때마다 한 번씩 경험하는 축복.
사실상 그 지극한 희열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수사들에겐 극복해야 할 시험이나 같은 것이었다.
건우는 축기기의 벽을 허물고 드디어 한 걸음 나아갔다.
그 순간 세상의 법칙은 이 작고 미약한 역천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강력한 제약을 발동시켰다.
수도자가 경지를 올리는 순간에는 세상의 법칙과 미약하게라도 연결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 무엇을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서 같은 경지라 하더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건우는 수영근을 통해서 축기에 오르는 순간, 그 법칙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찾아드는 희열.
‘이건 아니다.’
희미하게 연결된 법칙의 오묘함, 그 흐린 가닥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희열이 찾아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건우는 곧바로 희열이 곧 지독한 방해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법칙의 흐름에 자신의 의식을 싣고자 노력했다.
데에에에에에에에엥!
멀리서 희미한 종소리가 들렸다.
“아, 안돼!”
건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 왜 그러세요? 건우님 괜찮으세요?
루야가 다급하게 건우를 불렀다.
“아,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야.”
건우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건우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큰 아쉬움이 흉터처럼 영혼에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 건우는 자신이 일반적인 축기기 수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를 얻었음을 몰랐다.
법열을 거부하고 법칙의 한 가닥을 잡는 일은 축기기 수사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건우는 그것을 해 냈고,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혼에 법칙의 조각을 새겨 넣었다.
건우는 그것이 수미선문의 거대 비석을 마주했던 무의식의 경험이 도움이 된 것이란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영역은 축기기에 불과한 건우에겐 아직까지는 닿을 수 없는 꿈과 같은 곳의 이야기기도 했다.
“허어, 이건 엄청나네.”
그리고 지금 건우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문제를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축기에 오르면서 확장된 의식의 힘과 질, 그것이 곧 아공간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의 아공간은 순식간에 확장되어 작은 산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넓어졌다.
- 어, 엄청 넓어졌네요? 이젠 팔 영근의 영역도 조금 넉넉하게 줄 수 있겠네요?
“작은 방 하나 크기는 솔직히 많이 좁기는 했지. 이젠 넉넉하게 공간을 줘도 되겠다.”
- 잘 됐네요. 이제 전에 그 삿갓조개 껍데기를 갑자기 던져 넣어도 괜찮을 거 같네요. 말은 안 했지만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백 미터가 넘는 지름의 삿갓조개 껍데기가 갑자기 아공간으로 들어왔으니 루야가 놀라긴 했을 거다.
“뭘 지난 일을 다시 꺼내고 그래? 자, 이제 내친김에 그 동안 미뤘던 연단도 좀 해 보고, 법기나 법부 제작도 해 놓자.”
- 공여려 걔한테 안 가고요?
“벌써 축기가 되었다면 곤란하지. 대충 10년 정도는 있다가 가련다.”
- 네네. 10년 그거 금방이죠. 네. 건우님도 이제 대천세계 수사들의 시간관념을 조금씩 받아들이시는 모양이네요.
“하하, 축기가 되면서 내 수명이 500년 이상으로 늘었다. 그 정도면 10년 정도야 뭐 긴 시간도 아니지. 게다가 그냥 노는 것도 아니고 수련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거니까.”
- 네네,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정보수집을 좀 할 수 있겠네요.
“음, 그렇겠지. 그나저나 삿갓조개의 껍데기로 법기를 만들면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까?”
- 그 전에 축기에 오르셨지만 아직 수습을 제대로 못 하신 거 아니에요? 원래 경지가 오르고 그러면 그거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잖아요.
“당연하지, 나도 며칠 정도는 정양을 하고 적응도 해야지.”
- 그러니까요. 괜히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그거부터 하시라고요.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건우는 크게 웃으며 다시 조용히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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