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줍줍, 삿갓조개는 보물인 거시여
건우는 수중 채집을 하던 중에 수심 깊은 곳에서 동굴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좋은 재료들이 많이 있어 건우를 즐겁게 했다.
동굴은 입구가 작았지만 들어갈수록 넓어져 결국 거대한 돔형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낮은 삼각뿔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라 잠시 관심을 두었던 건우는 그 바위의 한쪽 편에 영기를 품은 것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 한 곳에 영기를 품은 해초, 산호초, 새우, 물고기 등이 몰려 있었다.
건우는 조용히 그 곳으로 다가가 이유를 살폈다.
‘뭐지? 여기만 영기의 농도가 높네? 어디서 영기가?’
건우는 그 지점에 특별히 영기가 많이 모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곳보다 영기가 짙은 곳, 그래서 영기에 적응한 생명체들이 많은 것이었다.
‘어라? 바닥도 특이하네?’
그러던 중, 건우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삼각뿔 모양의 거대한 바위 아래, 바닥이 특이했던 것이다.
윤기가 흐르는 반투명한 재질의 바위가 넓게 깔려 있었다.
‘이게 뭐였더라? 이런 바위에 대한 설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건우는 대천세계에 도착해서 읽었던 옥간들의 내용을 빠르게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자신이 보고 있는 바닥 돌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맞다. 그거다 영찬석(靈璨石)!’
건우는 바닥에 깔린 돌의 정체를 알아내곤 깜짝 놀라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영찬석은 영찬이 되기 직전의 돌이다.
영찬은 다르게 영석의 다른 이름이다.
수도계의 화폐 역할을 하는 영석이 만들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연적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 한 가지 방법이 광물질이 오랜 세월 영기에 노출되어서 생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영석이 만들어지기 전의 상태가 바로 영찬석이다.
이 영찬석이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영석으로 결정이 되어 뭉치는 것이다.
그 말은 지금 눈에 보이는 영찬석은 그만큼 오래 영기에 노출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영찬석은 영기의 공급이 끊기면 오래지 않아서 평범한 광물질로 바뀌고 만다.
일단 영석이 되면 그렇게 환원되는 일이 없지만 영찬석은 아직 영기가 안정된 것이 아니어서 그런 환원 현상이 벌어진다.
그 말은.
‘영찬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걸 만들 영기가 삼각뿔 바위 안쪽에 가득하다는 말이겠지?’
결국 그런 결론이 나왔다.
건우는 훌쩍 뒤로 물러나 삼각뿔 모양의 바위를 한 눈에 담았다.
지름이 100미터가 넘는 삼각뿔 바위에 표면에 갖가지 해초류와 산호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크고 작은 해양 생명체들이 나름의 질서를 이루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건우는 그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그런데 그 순간 삼각뿔 바위의 한쪽에서 짙은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에 유독 영기를 많이 품은 생명체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던 바로 그 위치였다.
‘음? 영기를 뿜어?’
건우는 삼각뿔 바위와 바닥이 붙은 틈이 조금 벌어지며 그곳에서 짙은 영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속성의 짙은 영기는 한동안 뿜어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건우는 그 과정에서 삼각뿔이 단순한 바위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렇게 큰 삿갓조개라고?’
건우는 자신의 기억에서 가장 비슷한 생명체를 끌어냈다.
하지만 겨우 지름 몇 센티에 불과한 기억 속 삿갓조개와 눈앞에 있는 지름 100미터가 넘는 삿갓조개는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럼에도 건우가 비슷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삿갓조개였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렁뚱땅 정체를 맞추긴 했다.
‘이거 정말 뭐지?’
건우는 다시 삼각뿔 바위로 다가가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의념을 이용해서 삼각뿔 바위의 내부를 살피고자 했다.
지이이이잉!
“크윽!”
하지만 건우의 의식이 삼각뿔 바위를 뚫고 들어가는 순간, 건우가 신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건우의 의식이 강한 반발에 부딪혀 되돌아 온 것이다.
“역시 생명체야. 생긴 걸로는 삿갓조개 종류겠지.”
건우는 그 반응으로 삼각뿔 바위가 생명체란 사실을 확인했다.
미약하지만 의념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저 기운만 품은 무생물이었으면 의념 따위가 반발력에 담기진 않았을 것이다.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 거 같은데?’
그런데 의외로 반발력과 함께 되돌아온 의념에 담긴 뜻은 간단명료했고, 또 수동적이었다.
그저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
‘역시 이놈은 그저 덩치만 클 뿐, 제대로 된 수행을 하지 못한 놈이야.’
건우는 충(蟲), 금(禽), 수(獸), 목(木), 초(草) 등등이 영성을 얻지 못하고 영기만 품은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연단술을 기록한 초록색 옥간에는 그와 같이 영기만 품은 것들은 그야말로 먹기 좋은 떡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공격 능력이 없는 것들은 줍는 것이 임자라는 말도 했을 정도다.
천 년을 묵은 산삼이라도 영성이 트이지 않으면 그저 좋은 연단 재료일 뿐이다.
건우는 삿갓조개를 떠올렸다.
그저 바닥에 딱 붙어서 껍질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전부인 녀석이었다.
‘흐흐. 그럼 이 놈도 다를 게 없겠지.’
건우는 슬쩍 발을 굴러 삿갓조개의 껍질을 두드렸다.
쿠구궁! 쿠궁!
연신기 완경의 수사가 작정하고 발을 굴렀다.
그 발길질에는 오랜만에 토속성의 기운도 함께 실었다.
그럼에도 발밑의 삿갓조개는 꿈쩍도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껍질 하나는 정말 엄청나게 강한 녀석인 셈이다.
‘이걸 깨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지?’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속에 있는 몇 센티 지름의 삿갓조개도 바위에 딱 달라붙으면 떼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그리고 삿갓조개를 껍질을 깨고 잡는 법은 없다.
‘이걸 잡으려면 밑을 공략해야지.’
건우는 몸을 날려 조금 전에 영기가 뿜어져 나왔던 곳으로 갔다.
수속성 영기를 두른 건우는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는데도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
‘여기가 약점이지.’
목표 지점에 도착한 건우는 일단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들을 모두 아공간으로 던져 넣기 시작한 것이다.
산호, 말미잘, 새우, 조개, 해초, 자갈 등등.
잡히는 것들은 모두 아공간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주변이 깨끗하게 변했을 때, 건우는 평평한 영찬석 바닥과 딱 붙어 있는 삿갓조개의 껍질 사이에 머리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거지. 숨구멍!’
건우는 그 구멍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 * *
성단의 시기를 맞이하여 영기를 응축하던 삿갓조개는 횡액을 맞았다.
미천한 기운을 지닌 존재가 나타나더니 조금씩 몸으로 파고 들어와 결국은 속살까지 닿았다.
삿갓조개도 그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숨구멍을 통해서 강하게 해수를 뿜어 보기도 하고, 영기를 쏘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그 공격들을 버티면서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삿갓조개의 껍질을 깰 수는 없으니 바닥의 영찬석을 긁어 구멍을 넓히는 방법을 썼다.
삿갓조개는 어떻게든 놈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몸을 이동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삿갓조개가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몸을 피할 곳도 별로 없었다.
결국 삿갓조개는 자신의 몸 안에 기생충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성단을 바라볼 정도로 오랜 세월을 버텼던 삿갓조개지만 결국 몸 안에 들어온 기생충 하나를 이길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약한 기운을 가졌지만 자신을 죽이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닌 상대였다.
삿갓조개는 결국 운명을 직감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어? 뭐야?’
한참 삿갓조개의 탄탄한 살집을 공격하던 건우는 갑자기 일어난 거대한 영기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했다.
여차하면 몸을 숨기기 위해서 아공간의 입구도 열었다.
콰과과과과과과!
“으으윽! 이거 정말 뭐지?”
그런데 그렇게 준비를 마치자마자 엄청난 영기 폭풍이 삿갓조개의 껍질 내부에 휘몰아쳤다.
건우는 그 거센 영기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급하게 아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 무슨 일이에요?
루야가 쪼르르 건우 곁으로 다가왔다.
건우는 말없이 투명한 아공간 입구를 열어보였다.
이제는 예전의 은색 아공간 입구는 거의 쓰는 일이 없었다.
투명하게 만드느라 쓰이는 영기를 아쉬워할 정도는 아니어서 투명한 입구를 만드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은색 입구를 열게 된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아공간의 입구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겠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 뭔가 혼란스럽네요. 저게 전부 영기인가요?
루야가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아공간 입구 밖은 그야말로 혼돈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삿갓조개는 스스로 엄청난 영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 뭘 하는 걸까요? 폭주를 한 걸까요?
루야가 걱정스런 듯이 흐리게 빛을 뿌리며 건우에게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아, 저걸 봐라.”
건우도 상황을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반투명한 은빛의 구슬이 있었다.
거대한 영기의 흐름은 그 구슬로 모여드는 중이었다.
- 뭘까요?
“진주 같은데?”
건우가 루야의 물음에 답했다.
- 그러게요. 진주를 닮기는 했네요. 그런데 진주를 저런 식으로 만드나요?
“설마 그렇겠냐? 대천세계니까 가능한 거겠지.”
건우와 루야가 그렇게 아공간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에 삿갓조개는 운명을 직감하고 마지막 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지금껏 모았던 모든 영기를 성단을 위해 준비하던 핵에 꾹꾹 눌러 담았다.
원래라면 성단을 이루고 영성이 트였을지도 모를 삿갓조개는 그렇게 자신의 힘을 모두 성단을 위한 핵에 모으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기생충에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성단을 꿈꾼 것이다.
생각이 없고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삿갓조개로선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야, 이건 엄청난 영기를 품고 있는데? 그것도 수속성 영기가 굉장해. 이걸 연화해서 흡수하면 축기가 문제가 아니라 성단에도 도전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우가 주먹 크기의 반투명한 은색 진주를 주워들고 크게 기뻐했다.
건우의 경지에선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수속성 영기를 품은 보물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건우의 손바닥이 삿갓조개의 패갑에 닿았다.
그리고 패갑에 최대한 의념을 불어넣은 후 힘주어 그것을 밀었다.
그극!
바닷물이 가지는 부력의 도움까지 얻어서 미세하게 움직인 삿갓조개의 패갑.
그 순간 지름 100미터의 삿갓조개 껍질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사라진 껍질은 아공간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삿갓조개의 껍질은 여간해선 깨지지 않지. 그럼 그 어마어마한 껍질로 방패를 만들면 도대체 어떤 물건이 나올지 상상도 안 되네. 크흐흐흐.’
건우는 삿갓조개의 껍질로 만들 법기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여기서 좀 써야겠네. 이건 이대로 두면 곤란하겠어.’
건우는 삿갓조개의 껍질이 사라진 동굴 내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삿갓조개의 껍질을 아공간에서 꺼내서 원래 있던 곳에 내려 놓았다.
“후우, 여기서 영기가 갑자기 쏟아져 나가면 공여려 고것이 이상하게 여기고 찾아올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괜히 영기를 흩어 놓을 이유도 없고.”
건우는 삿갓조개의 패갑 안에 짙게 차오르는 영기를 느끼며 활짝 웃었다.
삿갓조개의 껍질로 영기가 나오는 구멍을 덮었으니 당분간은 예전처럼 영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영기는 건우의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아. 아예 여기를 수련 거처로 삼으면 되겠다. 당연히 목영근이 아니라 수영근 수련부터 해야겠지?’
건우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영기가 솟아나는 구멍을 깔고 앉았다.
‘아이고, 좋으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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