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0화 (40/499)

39. 아니이, 저런 게 왜 여기 있어?

“나는 아공간 상황을 언제든 알 수 있는 거라, 네가 오랜만이란 생각이 안 드는데?”

- 하긴 그렇겠네요. 저만 혼자 종종거리며 속을 태우고 있었죠.

“나한테 문제가 생겼으면 아공간에도 영향이 있었을 테고, 그럼 너도 알았겠지.”

- 그래서 건우님이 갑자기 충격을 받았을 때, 제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요? 뭔 일이 생겼다는 건 알겠는데 무슨 일인진 모르고.

루야는 건우가 포공공마의 살의가 담긴 의념에 노출되었을 때를 이야기하며 빛을 흐느적거렸다.

“그래,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구나.”

- 피,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필요 없네요 뭐. 그건 그렇고 이젠 뭘 하실 거예요?

루야는 건우가 망망대해의 작은 섬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를 아직 몰랐기에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건우는 비행법기의 제약과 완합종까지의 거리 등을 이야기하며 축기기가 될 때까지는 꼼짝도 못할 신세임을 털어 놓았다.

- 결국 축기기까지 수련정진을 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긴 한데, 솔직히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아서 걱정이다. 이 작은 섬에 목영근 수련에 도움이 될 수련 자원이 있을 거 같지도 않으니. 정말 공여려가 나보다 먼저 축기기가 될 수도 있겠지. 수련에 도움이 될 영단들이 많이 있다니까.”

- 그럼 차라리 그 영단들을 빼앗는 것이 어떨까요?

“뭐?”

- 제가 오래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 대천세계 수도계를 보아하니 정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공여려를 해치우고 그녀가 가진 수련자원을 취하자고? 아니이 그건 좀, 나까지 너무 막장 아니냐?”

- 솔직히 걔랑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그리 대수예요? 아닌 말로 그렇게 안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제 생각에 걔가 건우님보다 수행 경지가 높았으면 걘, 건우님을 그냥 두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으음. 그래도 내가 아직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지.”

- 일단은 두고 보죠. 어떻게 될지.

“뭘 두고 보겠다는 건지 모르지만 나도 일단은 알았다.”

- 좋아요, 그럼 걔는 일단 그냥 두는 걸로 하고,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제 뭐부터 할 거예요? 섬에서 수련자원을 찾아보는 게 먼전가요?

어쩐지 루야의 말투에서 아쉬움이 묻어나지만 건우는 모른 척 대답했다.

“아니지. 먼저 수미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해 봐야겠다. 어쩐지 가능할 거 같거든.”

- 그래요?

“그래. 아공간에 들어오니까 그게 가능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드네. 어쩌면 일정 시간마다 의식 연결이 가능한 모양이다.”

- 전에 연결했던 때를 생각하면, 그럼 대충 100일 정도 되는 거 같은데요?

“이번에는 완합종 수사들 때문에 제대로 살피질 못해서 정확하진 않지. 몇 번 같은 상황을 지켜봐야 답이 나올 거야.”

- 네, 그건 그러네요.

“자, 그럼 일단 수미겨자씨부터 만나보자.”

건우는 말과 함께 곧바로 의념공간의 중심, 수미산겨자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제 의념 공간 안에서의 이동은 건우가 마음을 먹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건우의 의념 공간 장악이 확실하게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수미겨자씨 밑에 도착한 건우는 여덟 영근 중에서 목영근만 내어 놓은 상태로 가부좌를 하고 수미겨자씨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 순간 건우의 의식은 수미산겨자씨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깜빡 정신을 잃었던 건우는 수미선문의 거대한 비석 아래에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 * *

“으음.”

- 깨어 나셨어요? 다시 꼬박 하룻만이네요.

“그래?”

-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 거 같으네요?

“이번에도 목영근 축기기 수련에 실패했다.”

- 아···!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도 전과 같은 곳에 갔다 오신 건가요?

“아무래도 목영근 축기에 오르지 못하면 계속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거 같아.”

- 그럼 기억이 흐릿한 것도 같겠네요? 처음 수미겨자씨 안에 들어가면 뭔가 엄청난 것을 본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종소리를 두 번 듣는데, 첫 번째 종소리를 듣기 전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지.”

- 첫 종소리를 들으면 목영근을 수련하는 소년 건우가 되는 거고요?

“그 후에 두 번째 종소리에 수미겨자씨에서 쫓겨나지.”

- 그런데 이번엔 뭐 얻어 오시거나 변한 건 없는 건가요? 전과 같은 경험을 했다면서요?

“백 일 동안 목영근 수련을 했을 뿐이다. 공법도 이전에 익힌 것을 그대로 썼지.”

- 그런데 축기가 되는 건 실패하셨구요?

“아무래도 거기선 축기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거 같다.”

루야의 물음에 건우는 뭔가 확신을 얻은 듯이 대답했다.

- 거기서란 말씀은 수미겨자씨 안에서 말이죠?

“그래, 이번에 알게 된 건데, 소년 건우는 당장이라도 축기기가 될 수 있었어. 그런데 실패했지.”

- 왜요?

“나 때문에. 내가 문제야.”

- 그 말씀은 지금 건우님이 목영근 축기기가 되지 못해서, 수미겨자씨의 소년 건우가 축기를 못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런 거야. 수미겨자씨 안쪽의 나는 현실의 나를 뛰어넘지 못하는 거지.”

- 소년 건우가 불쌍하네요. 건우님 때문에 매번 같은 고생만 하는 꼴이니.

“그거 나 먹이려고 하는 말이냐?”

- 설마요.

“됐다. 결론은 내가 이곳에서 축기기가 되어야 한다는 거니까.”

- 그럼 이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섬을 다시 한 번 뒤져 봐야겠다. 수련에 도움이 될 자원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 없으면요?

“그 때는 정말 시간이 답이지.”

- 아니면 공여려라는 그 꼬맹이가 답일 수도 있고요? 고게 제 입으로 괜찮은 영단들이 제법 있다고 했는데요?

“그 소린 그만하자.”

건우는 단호하게 루야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수련 동부 밖으로 몸을 날렸다.

동부 밖으로 나온 건우는 입구를 향해 영기를 쏘아 금제를 강화하고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목속성의 영기를 사용하는 건우는 초록색 둔광을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 * *

동서로 70리, 남북으로 50리의 섬.

건우가 살던 세상으로 치면 절대 작은 섬이라 할 수 없는 곳이지만, 다도해역에선 지도에 표시도 되지 않은 곳이다.

수천만이라고 하는 다도해역의 그 많은 섬들의 숫자에, 건우와 공여려가 있는 섬은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건우는 보름동안 그 이름 없는 섬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연신기 수사의 둔술이 그리 빠르지 않다고 해도, 고작 100리도 안 되는 섬은 하루에도 몇 바퀴는 돌 수 있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우가 보름이나 섬을 뒤지고 다녔지만 처음 예상대로 섬 안에선 얻을 것이 거의 없었다.

“약초는 조금 있지만 영초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네.”

- 주변이 바다라서 그런지 그나마 있는 것들도 수기를 품은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어쨌건 이대로라면 수련에 도움이 될 자원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시간을 투자해서 목영근 수련을 하거나 아니면······.”

- 공여려 고 계집애를 쓱싹 하거나요?

“너, 그 소리는 그만하라고 했지?”

- 왜 나한테 그래요? 방법이 없잖아요.

“없긴 왜 없어? 수기가 넘치는 곳이니까 그냥 목영근 수련을 미루고 수영근 수련을 하면 되는 거지.”

- 아니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요?

“어차피 영근 수련은 골고루 해야 하는 거니까.”

- 하지만 수영근 수련법은요? 그건 없잖아요.

“일단 여기 환경이 수영근 수련을 하라고 하잖아. 그리고 공여려도 어차피 수영근 아니면 빙영근 수련에 도움이 될 영단들만 가지고 있을 게 뻔하고.”

- 아닌 척 하면서 솔직히 고 계집애가 가진 영단들을 탐내고 있는 거죠?

“아니다.”

- 정말요?

“정말, 아니다. 그러니까 너도 아닌 걸로 기억하고 있어라.”

- 네, 아닌 게 아니라, 아닌 걸로.

“······.”

건우는 루야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루야 녀석과 말싸움을 해 봐야 도움이 될 것도 없다.

“으음.”

아공간에서 나온 건우가 나타난 곳은 섬의 동쪽 끝 해안 절벽이었다.

건우의 시선은 절벽 아래의 시커먼 해면을 향해 있었다.

“어차피 수영근을 키우기로 했으면 섬이 아니라 바다에서 수련 자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지.”

건우는 한민 장로가 남긴 녹색 옥간에서 초급연단에서 고급연단까지의 방대한 연단술 내용을 얻었다.

물론 그 중에서 건우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연신기 수사가 쓰기에는 차고 넘칠 내용들이었다.

그 중에는 당연히 수속성 영단을 만들 방법이나 그에 쓰일 재료들에 대한 내용도 쓸 만한 것이 많았다.

건우는 그 내용을 떠올리며 천천히 절벽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기를 이용해서 절벽을 타고 이동하는 건우, 그것은 영기로 절벽과 몸을 연결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빈 허공에 몸을 세워 놓는 것은 연신기 수사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절벽이란 매개가 있으니 거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오호? 이것은 풍해염(風海鹽)이로군. 일단 챙겨 둘까? 당장 생각해 둔 영단에는 쓸모가 없는 재료긴 하지만 나중엔 쓸 곳이 있을지 모르지. 아, 저기 저건 백루석합(白淚石蛤)? 운이 좋군. 어라? 저기 저건? ······.”

절벽을 타고 내리며 건우는 재료들을 채집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리기 시작했다.

재료들을 찾아 하나씩 채집해 아공간으로 던져 넣는 재미가 깨를 볶았다.

의외로 목속성을 포기하고 수속성 재료를 찾다보니 이전과 달리 눈에 띄는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서는 점점 고급 재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는 그런 재료들을 따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더 깊은 바다로 내려가고 있었다.

연신기의 완경에 이른 수사에게 수중 호흡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수사에겐 오로지 영기가 우선이다.

영기만 있다면 산소 부족 따위를 겪을 일은 없다는 소리다.

영기에 몸을 최적화한 상태, 그것이 연신기의 완경이고, 건우는 바로 그 연신기를 완성한 수사였다.

그러니 호흡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깊은 바다 속으로 정신없이 내려갔고, 그 때문에 다가오는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꿈틀!

두꺼운 패갑(貝鉀)으로 몸을 덮고 바닥에 바짝 붙어 있던 삿갓조개가 껍질 안에서 몸을 뒤틀었다.

깊은 바다 속, 절벽에 뚫린 커다란 동굴 안쪽에 몸을 붙이고 있던 삿갓조개는 3천 년을 넘게 같은 자리에 붙어서 살아왔다.

태어나기를 하찮은 삿갓조개로 태어났지만 운이 좋게도 해류에 흘러 다니다가 안착한 곳이 바로 지금 있는 장소였다.

당시에 큰 지진이 일어나 절벽이 갈라지며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물벼록 보다 작은 삿갓조개가 흘러들었다.

그리고 겨우 물살이 안정된 곳에서 자리를 잡고 붙었던 바닥, 거기가 하필이면 영기가 샘솟는 영천의 핵일 줄이야.

지진으로 갈라진 절벽 안쪽에 새로 열린 영기의 맥, 그 자리에 하필 삿갓조개가 자리를 잡았다.

삿갓조개가 없었다면 그 영기가 풀려나와 주변 바다를 풍요롭게 하고, 절벽과 연결된 섬도 영기가 넘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그 영기가 솟아나는 곳에 삿갓을 씌워버린 꼴.

아무리 작더라도 삿갓이란 모양과 그 의미가 지닌 힘은 강력했다.

영기의 구멍엔 뚜껑이 씌워지고, 영기의 흐름은 그 때문에 막혀버렸다.

그저 그 삿갓 안에 있는 부드러운 속살, 삿갓조개만 살판이 났다.

그 때부터 끝없이 영기를 빨아들이며 몸집을 부풀린 삿갓조개.

그렇게 3천 년을 살며 연신기를 넘어 축기기를 이루고, 그 축기의 단계도 극에 이르러 이제는 성단기를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지름만 100미터가 넘는 삿갓조개는 성단의 시기가 되자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감추려 했다.

성단, 영기의 단을 완성하면 영성이 트인다.

그것은 축기기 동식물과 성단기를 굳이 구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성단기에 이르러 영성을 갖게 되면 하찮은 잡초라도 수도계의 수사로 대접을 받게 된다.

영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물론 그렇게 영성이 트이는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영성이 트이지 못하면 강력한 힘을 지닌 미욱한 존재가 될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단기는 성단기.

그 또한 강력한 존재가 되는 것은 분명하니 무시할 바는 아니다.

어쨌건 영기가 솟구치는 핵점을 홀로 차지하고 3천년을 보낸 삿갓조개는 드디어 성단에 오를 징조를 보았다.

그래서 모든 기운을 패갑 안으로 갈무리하고 그 안에서 성단을 이루기 위해 일로정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패갑 쪽으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영기를 품은 존재, 다름 아닌 건우의 등장이었다.

“저건 뭐야? 이상하게 생긴 바위네? 그런데 저 쪽엔 왜 저렇게 영기를 품은 것들이 많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