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8화 (38/499)

37. 서로 다른 결말, 나만 좋으면 된다

“으윽!”

“아아악!”

순간 붉은색 단약이 입에서 터지며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풀어졌다.

그리고 그 실은 곧바로 두 사람의 혈관으로 파고들어 몸속의 모든 혈관에 골고루 퍼져 나갔다.

심지어는 제일 가느다란 미세혈관까지 파고 들어가는 붉은 실.

그 고통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경진후가 경미후에게 뭔가를 재촉했다.

“크으으, 어서!”

빠르게 혈관을 잠식하는 붉은 실.

하지만 실제로 그 실은 실이 아니라 영기를 먹는 뱀이었다.

영기를 먹고 금강보다 강해지는 기생형 생명체 적무사사(赤霧絲蛇).

붉은색의 실안개 같은 뱀이라 해서 적무사사라 부르는 그것은 아주 특이한 기생체였다.

적무사사를 몸에 지니면 일순간 수련 경지를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다.

적무사사 덕분에 혈관이 금강처럼 강해지는데 뱀이란 생명체의 유연성도 지닌다.

미세 혈관까지 그리 변하니 몸 전체가 그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안니어서 적무사사의 사용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일정시간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하면 영기를 잔뜩 먹은 적무사사가 새끼를 치게 된다는 것이다.

적무사사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다른 숙주를 찾아서 모체가 있는 숙주의 몸을 뚫고 떠난다.

그런데 수십만 마리의 새끼 적무사사가 숙주의 몸을 뚫고 나가면?

당연히 그 숙주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수사의 몸이 범인과 달라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절반은 되지만 수련 경지가 뚝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물론 절반의 경우는 죽게 될 수도 있고.

경진후가 경미후를 재촉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최대한 빠르게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서너 시간 안에 결착을 보고 적무사사를 녹여 버려야 한다.”

위험한 적무사사를 이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끼를 치기 전까지 사용하고 몸 안에서 녹여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도리어 몸 안에서 녹은 적무사사가 질 좋은 영단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적무사사가 흡수한 영기를 몇 배로 되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깝네요. 성단에 도전할 때에 쓰려고 구해 둔 것이었는데요.”

경미후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적무사사는 그들이 성단기에 도전할 때에 복용하려고 준비했던 것이었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자 시작하자꾸나. 지금 우리가 적무사사로 수련 경지를 끌어 올렸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이젠 쌍수의 비법으로 다시 경지를 끌어 올려야 한다.”

“하아, 네. 이왕 내친걸음이니 무엇을 망설이겠어요.”

적무사사 덕분에 둘 모두 축기기 완경과 중기로 한 단계씩 경지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 수준으로 성단기 포공공마를 상대하긴 어렵다.

경미후는 깊은 한숨을 쉬며 경진후의 품에 몸을 맡겼다.

경진후는 경미후를 뒤에서 안은 모습으로 쌍수수련의 공법을 운용했고, 경미후는 그에 맞춰 함께 영기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이 익힌 쌍수수련의 비법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 수련 경지를 끌어 올렸다.

“아아아아, 이것이 성단! 비록 위성단(僞成團)이긴 하지만 엄청나구나.”

“그래요 사형, 성단이 이런 경지일 줄은 몰랐어요.”

두 가지 편법을 이용해서 일순간 성단기의 경지에 오른 두 수사는 잠시간 황홀경에 몸을 떨었다.

경미후도 지금은 경진후와 하나로 쌍수수련 공법을 행하는 중이라 위성단의 경지를 함께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위성단, 가짜로 단을 만든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쌍수수련의 비법으로 이룬 것이라 겨우 몇 시간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전에 포공공마를 처리해야 한다.

“되었다. 이 정도면 포공공마와도 맞설만 하다. 어차피 몸을 피해봐야 미래가 없으니 포공공마를 잡아 이번 손해를 만회하도록 하자.”

“사형 뜻대로 하세요. 저야 지금 뭘 할 수 있겠어요.”

쌍수수련 비기로 위성단의 경지에 올랐지만 둘의 수련을 하나로 묶어 만든 편법.

지금 그 편법의 주인은 원래부터 경지가 높았던 경진후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경진후가 주도하는 상황이었고, 경진후는 포공공마를 사냥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성공만 한다면 그 사체를 재료로 영체기 수준의 법보를 만들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그들 두 사람이 영체기에 이르는 것도 꿈만은 아닐 터.

“노옴, 우리를 쫓아 온 것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

쿠과과과과광!

경미후를 품에 안은 경진후가 땅거죽을 터트리며 계곡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포공공마와 대치했다.

포공공마의 흉흉한 눈빛이 경미후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노려봤다.

그리고 곧바로 경진후와 경미후를 향해 포효를 터르리며 검은 먹물을 쏘아냈다.

그렇게 포공공마와 이인 일체의 두 수사가 싸움을 시작했다.

이후 포공공마와 경진후가 벌이는 싸움이 세절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한민 수사의 수련 거처였던 계곡은 그 끄트머리만 흔적으로 남고 뒤편 한 쌍의 봉우리까지 무너져 옛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 * *

“이제는 아무리 성단기의 포공공마라도 우리를 찾지는 못할 거예요.”

공여려가 선실 밖으로 나오는 건우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벌써 이틀을 쉬지 않고 날았으니 그 해양 요수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정말 악운이 겹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섬뜩한 말씀은 하지 마세요. 입이 화를 부른다 했어요.”

“그렇기도 하구나. 확실히 입은 항상 무거운 것이 좋겠지. 그런데 너는 이곳에 어딘지 아느냐?”

건우의 시선이 공여려의 허리에 매달린 공간낭으로 향했다.

세절도를 탈출하기 직전에 경미후가 공여려에게 줬던 바로 그 공간낭이었다.

건우의 시선을 받은 공여려가 곧바로 공간낭에 손을 올렸다가 뭔가를 꺼내 들었다.

빈 허공에서 나타난 것은 작은 옥간 두 개였다.

“음, 이건 봉인이 되어 있어서 내용을 알 수 없는 거네요. 아마도 출생의 비밀이 들어 있다는 그 옥간인 모양이에요.”

공여려는 두 개의 옥간 중에 하나를 다시 공간낭에 넣었다.

그리고 남은 하나에 의식을 불어넣어 보더니 그것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여기에 다도해역의 상세한 지도가 나와 있네요. 하지만 이렇게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한 대해에선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겠어요.”

공여려는 지도가 들어 있는 옥간을 건우에게 내밀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지도가 있지만 당장 쓸모가 없는 상황이 되자 불만스런 마음이 드러난 표정이었다.

건우는 말없이 옥간을 받아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옥간 안에 다도해에 대한 여러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도해의 수천만 섬들과 그 섬들을 지배하는 수련 문파와 세력 혹은 홀로 영역을 차지한 고계 수사들에 대한 것까지.

옥간에는 지금까지 건우가 알지 못했던 다도해역에 대한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자세한 기록이 있는 것은 역시 완합종이 지배하는 구역이었다.

완합종은 거대한 섬 다섯 개와 그에 딸린 작은 섬들 수천 개로 이루어진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거대한 섬 다섯 개라고 하지만 범인들의 기준으로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 할 수 있는 땅들이었다.

그런 섬 다섯 개를 완합종의 종주(宗主)와 도주(島主)가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다.

종문의 본산이 있는 중앙 섬을 종주가 다스리고 그 섬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네 섬을 도주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종주님의 경지가 영체기라고? 게다가 도주들도 영체기라니 굉장한데?”

건우가 옥간에 기록된 완합종의 현재 전력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종주께선 영체기의 후기 경지에 이르셨고, 도주들께선 영체기의 초기에서 중기의 경지에 계시죠. 그래서 우리 완합종은 다도해역에서 꽤나 세가 큰 종파로 이름이 높아요.”

공여려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으스대며 말했다.

완합종의 힘이 곧 자신의 것인 양 기고만장한 모습이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경진후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이제 사부님을 잃었으니 완합종에 어찌 들어갈까 걱정이구나. 진염결의 원본도 사부께서 가지고 가셔서 지금은 없는데.”

“그래도 복사한 부본(副本)이 있잖아요.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니까 그걸로 충분히 공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증언을 하면 사형이 완합종의 정식 제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사실 오래 전이지만 장로의 신분을 지녔던 이의 공법을 이은 건우라면 완합종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공여려도 그 정도는 짐작하면서도 마치 자신의 힘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공여려의 얕은 수작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당장 경진후와 경미후가 없으니 완합종의 제자가 되는 것도 고민을 해 보고 결정을 해도 될 거 같았다.

다만 완합종의 세력이 생각보다 큰 것을 보면 제자가 되는 것이 수련에 유리할 것도 같아서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힘을 써 준다니 고마운 일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종문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먼저겠지. 음, 일단 밤이 되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가 있겠구나.”

“네? 밤이 되면 알 수 있다고요?”

건우의 말에 공여려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래, 별자리를 보고 그 방향과 높이를 따져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구나. 옥간의 지도에 변하지 않는 별자리에 대한 것도 함께 기록이 되어 있으니.”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사형은 대단히 머리가 좋은 거 같네요. 어찌 그 짧은 시간에 옥간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와 같은 방법을 찾아내셨어요?”

건우의 말에 공여려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저 조금만 노력하면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자, 옥간을 줄 테니, 너도 한 번 배워 보거라.”

건우가 다도해역의 지도가 들어 있는 옥간을 공여려에게 내밀었다.

“아뇨. 저야 나중에 배워도 될 일이죠. 지금은 사형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 좋겠어요. 아, 저는 잠시 선실에 들어가서 영기 운용을 좀 해야겠어요. 내상이 있는데 오래 두면 탈이 날 거 같아서요.”

공여려는 건우가 내미는 옥간을 외면하고 내상 치료를 핑계로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건우는 공여려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수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의념 공간을 들여다봤다.

아공간에선 루야가 안절부절 못하며 맴을 돌고 있었다.

밖의 사정을 알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루야의 마음이 의념공간에서 고스란히 건우에게 전해졌다.

건우가 슬며시 아공간입구를 투명하게 열었다.

그러자 루야가 입구에 바짝 붙어서 밖을 내다봤다.

그렇다고 건우가 아공간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인기척이 사라지면 아무리 수련 경지가 건우보다 낮은 공여려라도 그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아공간 입구를 열어 밖을 보여주는 상태에서 루야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의식 연결만한 것이 없었는데, 의념공간인 아공간에 있는 루야에게도 그 방법을 썼다.

사실 그건 어쩌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건우가 조심스럽게 시도해서 성공하게 된 방법이었다.

다만 안타깝게 루야와 직접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건우의 생각이나 뜻을 루야에게 전할 수 있을 뿐, 거꾸로 전해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루야가 몸짓이나 특정한 형태 변화로 뜻을 전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대화를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루야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건우였다.

‘아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라도 할 수 있으면 된 거지 뭐.’

건우는 그렇게 루야에게 상황을 알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영기 운용을 시작했다.

살의가 깃든 포공공마의 의념에 상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청옥비선은 조용히 바람을 타고 흐르는 중이었다.

당장 영기를 넣어주지 않으니 기본적인 부유 능력만으로 바람을 타는 중인 것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 때까지는 굳이 어딘가로 날아갈 이유가 없었다.

위치가 파악되면 완합종이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건우는 선수에 앉아 영기 수련을 하며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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