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막장의 진수는 역시 딸에게 있다
“사형,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에요. 그리고 다행히 포공공마는 오래 우리를 쫓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세요. 영석만 태우면 진법 원반에 무리가 가지만 사형의 영기를 섞어 넣으면 그 저항을 좀 줄일 수 있을 거예요. 더구나 사형의 영기만큼 배의 속도도 빨라질 거구요.”
= 음? 그런 방법이 있었더냐?
“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그럼 분명히 포공공마가 돌아갈 거예요.”
건우는 공여려의 목소리에 확신 같은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 너는 어찌 포공공마가 오래지 않아서 되돌아 갈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냐? 그게 이상하구나.
건우는 의아함을 숨기지 않고 공여려에게 물었다.
“말씀드릴 테니 사형께선 청옥비선의 속도를 높이는데 집중을 해 주세요.”
공여려는 그렇게 건우에게 부탁을 하고는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포공공마는 아주 희귀한 해양 요수예요. 개체수가 아주 적죠.”
건우는 진법 원반에 자신의 영기를 밀어 넣느라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배의 속도는 그만큼 더 빨라졌고, 공여려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포공공마가 왜 귀한 줄 모르죠? 사실 포공공마의 어린 것들은 이런저런 법기를 만드는데 요긴한 재료예요. 물론 경지가 높을수록 좋은 귀한 재료가 되죠.”
공여려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저 멀리 뒤따라오는 포공공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감히 넘볼 수도 없지만 취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 성단기의 포공공마였다.
“포공은 공간을 품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말처럼 포공공마는 배 부분에 기이한 공간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공간을 이용해서 여러 법기나 법보를 만드는데 사용하죠. 대신 포공공마 한 마리로 하나의 법기만 만들 수가 있어요.”
공여려는 쫓기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선지 말을 쉬지 않았다.
“당연히 수련 경지가 높은 포공공마일수록 엄청난 법술이나 공법을 담을 수 있지요. 게다가 포공공마의 수준보다 높은 경지의 공법이나 법술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죠. 그 말은 성단기 포공공마를 법기 재료로 쓰면 영체기 수준의 술법도 담아 낼 수 있다는 소리예요. 굉장하죠?”
건우는 공여려의 말을 들으면서 경진후와 경미후의 눈에 떠올랐던 탐욕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축기기에 불과한 두 수사가 자그마치 영체기의 힘을 담을 수 있는 법기 재료를 봤으니 눈이 돌아갈 법도 했다.
“호호호. 근데 그거 아세요? 제가 저 포공공마는 곧 다시 돌아갈 거라고 했던 이유요.”
공여려는 뭔가 비틀어진 듯이 복잡한 눈빛으로 선미 쪽의 포공공마, 그 뒤를 바라봤다.
이제는 세절도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그저 망망한 대해만 검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내가 몇 년 전에 사부에게 선물을 하나 했어요. 다도해역 수도계의 저계 수사들이 백 년에 한 번씩 모여서 교역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괜찮은 팔찌 하나를 구했거든요.”
공여려는 여전히 포공공마 뒤쪽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쪽에 있을 공미후와 공진후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 팔찌, 파는 수사도 정체를 잘 몰랐어요. 그래서 영석 두 개로 바꿀 수 있었죠. 그 팔찌에서 미묘한 느낌을 받고 손해 본다 생각하고 했던 일인데, 돌아와서 팔찌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그것이 포공공마의 새끼로 만든 거란 사실을 알았죠.”
덜컹!
순간 청옥비선이 충격을 받은 듯이 움찔거렸다.
공여려의 말을 들은 건우가 깜짝 놀라 영기의 흐름을 잠시 놓친 것이다.
= 그 말은 저 포공공마가 결국 네가 사숙에게 선물한 팔찌 때문에 나타났다는 말이구나.
건우가 물었다.
“그 팔찌의 기운을 느끼고 쫓아 온 것일 테지요. 원래 포공공마가 일족을 무척 아낀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포공공마로 법기를 만들 때엔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 그런데 그걸 네 스승에게 그냥 줬다는 말이냐?
“어차피 연신기 수준의 포공공마라 그리 귀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포공공마는 워낙 희귀해서 볼 일이 없는 요수라고요. 그래서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죠. 사실 어머니도 그게 포공공마로 만든 거란 사실은 모르셨잖아요.”
= 그럼 세절도에서 포공공마를 봤을 때,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왜겠어요? 살기 위해서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마당에 저라고 죽을 이유를 만들 필요가 있나요?”
= 허!
건우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이 사단을 일으킨 원흉이 밖에 있는 공여려였다니.
“자, 보세요. 포공공마가 돌아가고 있어요. 이제 우리는 살았어요.”
그 때, 선미에서 죽어라 쫓아오던 포공공마가 우뚝 멈추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공여려는 그 모습을 보고 활짝 웃었다.
= 포공공마가 돌아갔다고?
“당연하죠. 애초에 새끼로 만든 법기 때문에 화가 나서 쫓은 것인데, 그것이 저희에게 없으니 그것을 쫓아 간 거죠.”
= 으음, 그럼 확실히 두 분이 몸을 숨기고 있다가 다시 몸을 드러내신 것이 분명하겠구나. 그 때문에 새끼의 기운을 느낀 것일 테니.
“그게 아니라면 우리에게 그것이 없으니 다른 곳에 있을 거란 것을 알아차린 것일 수도 있어요. 성단기의 포공공마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었겠죠.”
= 어쨌거나 포공공마가 두 분을 쫓아갔으니 우리는 안전하겠구나.
“네.”
= 그런데 만약 두 분이 무사히 돌아오시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번 일이 네가 선물한 팔찌 때문에 벌어진 것임을 안다면 후환이 무궁할 텐데?
“제가 왜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그 팔찌가 포공공마의 새끼로 만든 것을 어찌 알았겠어요? 사부님도 몰랐던 것인데요.”
= 음, 그래도 그리 쉽게 넘어갈 순 없을 거 같다만.
“괜찮아요. 두 분이 무사하시면 저야 두 분의 딸인데 크게 혼이야 내시겠어요? 사형만 입을 다물어 주시면 되는 거죠.”
= 물론 나는 네가 한 이야기를 옮길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요. 사형이 입을 다물어주면 저는 제 비밀을 아는 사형께 고마워 할 거고, 사형도 사부님과 사숙을 속였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으니 제게 잘 해 주시겠죠.”
= 너는 네 약점으로 나까지 한 편으로 만들려 하는구나.
“물론 일이 알려지면 제가 손해니까 제가 훨씬 사형께 잘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분명히 사형께 잘 할 거예요.”
건우는 선실의 진법 원반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서도 공여려의 교태가 눈앞에 어른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전 상체를 뒤틀며 여인의 교태를 보이던 공여려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건우는 차가운 뱀의 피부를 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입바른 소리! 가까이 할수록 해로운 년이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밖에 있는 공여려는 건우가 자신에게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샐쭉하니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이젠 나가도 될까요?”
경미후가 경진후를 보며 물었다.
둘은 땅속 수십 미터 아래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공간은 경진후의 법기인 열여섯 개의 깃발이 여덟 개씩 두 개의 원을 만들며 꽂혀 있었다.
거기에 경미후의 은색 손수건이 넓게 펼쳐져 공간의 벽에 붙어 있었다.
두 가지 법기를 이용해서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계획은 포공공마가 나타나자마자 경진후와 경미후가 의념을 통해 의논한 것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공여려와 건우를 미끼로 쓰자는 이야기를 경미후가 꺼냈고, 경진후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그 뒤는 당연히 경미후의 열연을 거쳐 건우와 공여려를 청옥비선에 태워 보내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청옥비선이 먹빛 해무를 뚫고 떠나자 포공공마가 급하게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경진후와 경미후는 땅 밑으로 파고들어 재차 은신 결계를 만들고 숨었다.
“그 아이들이 적어도 사흘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건우 놈의 공간낭에 들어 있는 영석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버티겠지.”
“하지만 반나절 정도는 오차가 있을 수도 있어요.”
“진법 원반에 수작을 부렸단 이야기구나?”
“네, 그렇게 지속적으로 영석을 태운다면 진법 원반이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어 뒀습니다.”
“그럼 우리는 하루 쯤 더 있다가 나가면 되겠구나. 서둘러 나갈 이유가 없지.”
“그럴까요?”
“법기를 사용하느라 의식의 힘과 영기의 소비가 적지 않았다. 그러니 그것을 회복하고 온전한 상태로 떠나는 것이 좋겠지.”
“네, 그렇겠네요.”
“그래도 마음이 편치는 않구나. 여려를 그리 보내다니.”
“어쩔 수 없지요.”
“여려가 축기에 오르면 그 동안 쌓은 기운을 흡수해서 우리의 경지를 올리는데 쓸 수 있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게요. 여려야 다시 연신기로 경지가 떨어지긴 하겠지만, 운이 좋다면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다시 수련을 쌓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이런 일로 우리와 그 아이 모두 손해를 보게 되었으니 아쉽네요.”
“사매가 이제 축기 중기에 오르기만 하면, 쌍수수련의 비법을 이용해서 극적으로 축기 완경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상태에서 여려가 연신기 완경이 된다면 그 기운으로 우리의 성단을 꿈꿀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구나 아쉬워.”
경진후와 경미후는 미끼로 쓴 공여려를 두고 상상도 못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것이 우선이지요.”
“그렇지. 수도계에 무슨 의리가 있고, 정이 있고, 천륜이 있겠느냐. 어차피 불로불사를 꿈꾸는 역천자가 곧 수사들인 것을!”
“그만 털어 버려요. 오래 집착하면 심마가 되어 수련을 방해하고 이후에 있을 도겁(渡劫)에 지장을 줄······. 아악!”
“크윽!”
경미후가 경진후의 마음을 달래는 중에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진후 역시 신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르르르르릉 우르르르릉!
파지지직! 파직! 파츠츠츠츠!
“사, 사형, 결계가 무너지고 있어요.”
“크으, 노, 놈이 돌아왔다. 포공공마가 왔어!”
경진후는 경미후보다 수련 경지가 높아서 밖에 포공공마가 온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하죠? 아니 왜?”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느냐? 하지만 지금 상황이 다급함은 알겠구나.”
“청옥비선이 없으면 저 해양요수를 따돌릴 수가 없어요. 제가 가진 비행법기는 청옥비선보다 하잘 것 없는 것을 아시잖아요.”
“그래, 그걸론 포공공마를 떨쳐낼 수가 없지. 그러니 우리에겐 다른 방도가 없다.”
경진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리춤의 공간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형!”
그것을 본 경미후가 놀란 표정으로 경진후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냥 죽는 것 보다는 나을 게다. 아니면 이대로 죽을 테냐? 성단기 포공공마에게 몸을 뺄 자신이 있느냐?”
“하,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나 홀로 남아서 시간을 끌어 줄 수는 있다. 그것을 원하느냐?”
“그래봐야 사형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제가 그 사이에 가 봐야 어디까지 가겠어요?”
“그래도 몸을 숨길 시간은 벌 수 있지 않겠느냐?”
“됐어요. 사형과 내가 쌍수수련을 했는데, 사형이 죽으면 저 또한 무사하지 못하겠죠. 그것이 쌍수수련의 약점 아니었던가요?”
“그러니 결국 선택은 이것일 수밖에 없다.”
경진후가 다시 한 번 공간낭에서 꺼낸 것을 경미후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붉은 색의 단환으로 표면에 지렁이가 감긴 듯이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경미후는 결국 결심을 했다는 듯이 경진후의 손에서 단약 하나를 주워 들었다.
경진후의 손에도 같은 단약 하나가 남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붉은색 단약을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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