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6화 (36/499)

35. 가엾은 막장 드라마의 딸

‘이건 또 무슨? 이런 가족사가 있었어?’

건우는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맞은 표정으로 경미후와 공여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사부님이 제 어머니란 말씀인가요?”

공여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급하니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는 없다. 여기 이것을 받거라.”

경미후가 허리춤에서 공간낭 하나를 풀어 공여려에게 내밀었다.

“별로 들어 있는 것은 없다. 밖에 있는 해양 요수를 막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해도 승산이 없다. 그러니 너에게 따로 줄 것이 없구나.”

경미후는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한 번 공여려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 공간낭에는 너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적힌 옥간이 있다. 당장은 읽을 수 없을 테지만 축기기에 오르면 봉인을 풀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수사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나 읽으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몇 가지 소소한 것들이 들어 있으니 만약의 경우라도 종문으로 돌아가 수련에 보태 쓰거라.”

“흑,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 그냥 혹시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일 뿐이다. 이제 너와 건우는 사형이 내어주는 청옥비선을 타고 이곳을 벗어나면 된다.”

“청옥비선이라고요? 하지만 그걸 저희가 쓰긴 어렵지 않을까요? 청옥비선에 필요한 영기를 감당할 수 없을 텐데요?”

공여려가 청옥비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었는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 축기기 수사는 되어야 비행 법기를 제대로 쓸 수 있지. 하지만 상황이 급한 경우엔 수사의 영기가 아니라 영석의 영기를 대신 쓸 수도 있다. 자, 이걸 받거라.”

경미후가 다시 공간낭에서 둥근 원반을 꺼내 건우에게 내밀었다.

원반의 크기는 지름이 1미터가 될 정도로 컸고, 중심에는 주먹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건우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원반에는 복잡한 선들이 가득하고 그 선들 사이에는 또 여러 문자들이 상감 기법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네가 연신기 완경이니 이걸 쓰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청옥비선의 운용진법에 겹치고 여기 구멍에 영석을 끼워 넣거라.”

“영석을요?”

“그래, 지금 상황이 다급하니 아낄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영석을 넣고 이 진법원반을 조작하면 청옥비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해서 청옥비선에서 사형의 의념을 지워 줄 것이다.”

“스승님의 의념이 있으면 청옥비선을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군요?”

“그렇다.”

“그럼 저와 공사매, 둘이서 청옥비선을 타고 탈출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여려에게 준 공간낭에 이곳 다도해역의 상세한 지도도 넣었으니 그 지도를 따라서 종문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자꾸 그리 말씀하시니 다시 뵙기 어렵다고 하시는 것 같아 겁이 납니다.”

“그래요, 사부, 아니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 그래. 알았다. 너희가 먼저 떠나면 이후 우리가 포공공마를 적당히 막다가 포공공마를 유인해서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놈을 떨쳐내고 종문으로 돌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흐흑. 네 어머니.”

공여려는 경미후의 다독임에 눈물샘이 터진 듯이 후두둑 눈물을 떨궜다.

건우는 그 모습에 공여려의 어깨를 다독여 줄까 살짝 손을 들다가 말았다.

“너는.”

경미후가 건우를 보았다.

“네, 사숙.”

“여려를 많이 도와 주거라.”

“네, 사숙.”

“네가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연신기 완경으로 여려보다 경지가 높으니 여려를 잘 이끌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미후는 잠시 망설이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곧 결심을 했는지 건우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여려에게 쌍수수련에 대한 비법이 있느니라. 이후 종문에 돌아가면 둘이서 함께 그것을 익히거라.”

“네? 쌍수수련이요? 그게······.”

“나중에 여려에게 들으면 될 것이니 지금은 묻지 말거라.”

질문을 하려 하자 경미후는 딱 잘라 건우의 말을 막았다.

건우는 그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매, 이만 마무리를 하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어.”

그 때, 등을 돌리고 있던 경진후가 여전히 그 자세로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경미후를 재촉했다.

경미후는 그런 경진후를 샐쭉하니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청옥비선이나 내어 주세요. 아이들이 타고 떠날 수 있도록.”

“음, 여기 있다.”

경미후의 말에 경진후가 품에서 한 뼘 정도 크기의 푸른색 배를 꺼냈다.

장난감 같은 배의 모습에 건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건우는 아직까지 한 번도 비행 법기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 이것을 받아라.”

경미후가 장난감 배를 받아 건우에게 내밀었다.

건우도 어정쩡한 모습으로 배를 받아들었다.

“자, 그럼 청옥비선에 의념을 불어 넣어 보아라.”

경미후가 건우를 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건우는 청옥비선에 조심스럽게 의념을 집중시켰다.

청옥비선은 건우의 의념을 거부하지 않았다.

도리어 목속성의 영기가 마음에 드는 듯, 건우의 의념과 함께 영기의 일부도 받아들였다.

그 순간 건우는 청옥비선에 대한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어떠냐? 쓸 수 있겠느냐?”

경미후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네, 어렵지는 않습니다.”

건우가 자신 있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아까 줬던 진법 원반과 함께 쓰는 것도 가능하겠느냐?”

“그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건우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좋구나. 네가 의외로 자질이 뛰어난 모양이구나. 게다가 청옥비선이 목속성의 영기를 잘 받아들이는 것도 운이 좋다 하겠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구나.”

“사, 어머니!”

“시끄럽다. 대도는 무정한 길이다. 대도의 길에 들면서 모든 속세의 인연을 끊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나와 사형도 너에게 부모자식의 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경미후가 울먹이는 공여려를 크게 꾸짖었다.

공여려가 어깨를 움츠리고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자, 이제 사형과 내가 만든 보호 진법을 터트릴 것이다. 그 힘이면 포공공마가 만든 검은 해무도 일부는 찢을 수 있을 터. 그 순간 너희는 청옥비선을 타고 떠나거라. 건우 너는 진법 원반에 영석을 넣어 응축된 기운을 한 번에 사용하거라. 그리하면 청옥비선이 최고 속도로 날아갈 것인 즉.”

“네, 알겠습니다. 사숙.”

“그렇게 하면 영석의 소비는 클 것이지만 만약의 경우에도 포공공마가 너희를 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혹시 포공공마가 쫓는다 싶으면 계속 영석을 넣고 진법 원반을 발동하거라.”

“네. 사숙.”

“알았어요 어머니.”

공여려도 정신을 차렸는지 건우의 곁에서 어금니를 깨물며 경미후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준비해라.”

그 때, 가만히 있던 경진후가 그렇게 주의를 주더니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그리고 그 곁으로 경미후가 붙어 서서 같은 모습으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최대한 빠르게 가야 한다. 무탈하거라. 하아앗!”

경진후가 묵직한 음성으로 그렇게 마지막 당부를 하더니 기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은색 표면에 금색 문양이 화려했던 보호막이 강렬한 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포공공마가 있는 방향으로 더욱 강력한 금빛이 응축되더니 일순간 소리도 없이 터져 나갔다.

그렇게 응축되어 터져 나간 빛은 먹빛 해무 밖에 있던 포공공마를 향해 쇄도했다.

포공공마는 해무를 뚫고 날아오는 금빛에 깜짝 놀라 작은 입을 목 뒤까지 찢어지게 벌려 먹물을 쏘아냈다.

먹물과 금빛 선이 허공에서 만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쿠르르르르릉!

“지금!”

경미후가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맞춰 건우가 청옥비선을 허공에 던지고 공여려의 손목을 잡고 그 청옥비선으로 뛰어 올랐다.

허공에 던져진 청옥비선은 제법 큼직한 배로 변했고, 건우는 선수에 오르자마자 청옥비선 안으로 들어가 진법 원반을 깔고 공간낭에서 영석을 꺼내 끼웠다.

후우우우우웅!

피이이이이잉!

선수에 서 있던 공여려는 건우가 선실로 들어간 직후 청옥비선에 푸른색의 보호막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보호막은 갸름한 배틀 모양으로 배를 감쌌고, 그 직후 날카롭게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주변의 경치가 흐릿해졌다.

청옥비선이 워낙 빠르게 날아가는 바람에 주변 경치를 시력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공여려가 조금 먼 곳을 봤을 때에야 겨우 청옥비선이 세절도를 벗어나 바다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먹빛 해무를 뚫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 사매, 설마 그 해양 괴수가 우리를 쫓지는 않지?

그 때, 공여려의 머릿속으로 건우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의념에 뜻을 실어 전한 것이다.

= 아뇨. 포공공마는 보이지 않······.

“아니에요! 지금 포공공마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요!”

공여려는 괴수가 쫓아오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려다가 선미 방향의 저 먼 곳, 세절도 쪽에서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검은 점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육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 뭐? 포공공마가 쫓아온다고? 사부님과 사숙께서 막아 주신다고 하셨는데?

건우가 의외의 상황에 깜짝 놀라며 공여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자 공여려가 세절도 방향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흥! 사형은 설마 그 말들을 모두 믿었단 말인가요?”

그리고 코웃음을 치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선실 쪽을 보며 말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스승님과 사숙의 말을 믿지 못한단 말이냐?

“사형, 조금 전에 들은 제 사부의 말 중에서 그나마 옳은 말은 대도가 무정하는 것뿐이에요. 순리를 어기고 불로불사의 역천을 꿈꾸는 우리 같은 수사에게 부모자식의 천륜 따위가 있을 거 같은가요? 호호호호. 사형은 확실히 아직 제대로 된 수사가 되려면 아직 멀었군요.”

공여려가 짤랑짤랑 경쾌하게 웃으며 건우가 있는 선실 쪽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제는 형체가 분명해질 정도가 가까워진 포공공마를 발견하고 눈빛을 떨었다.

“사형,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이러다간 포공공마에게 잡히겠어요. 어서 속도를 더 내야 해요.”

그리고 다급하게 건우에게 청옥비선의 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했다.

= 알았다. 영석을 조금 더 빨리 연소 시켜야겠구나.

“서둘러요. 포공공마가 가까이 오고 있어요.”

= 포공공마의 속도가 빠른 모양이구나. 지금도 진법이 과열될 정도로 영석을 태우는 중이다. 더 무리하다간 진법 원반이 녹아버릴 수도 있어.

“하아, 정말 곤란하네요. 설마 이렇게 우리를 버릴 줄은 몰랐어요.”

= 우리를 버렸다고? 설마 스승님과 사숙을 말하는 거냐?

“그럼 누구겠어요? 두 사람이 우리를 미끼로 쓴 거죠. 우리가 달아나는 순간 둘이 은신술을 써서 몸을 숨겼을 거예요.”

= 아니, 그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몰라도 너는 그 분들의 딸이라 하지 않았느냐?

건우는 정말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냔 생각으로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딸을 위해서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던 그들이 실제론 딸을 미끼로 쓰기 위해 연기를 한 거라니.

“내가 말하지 않았나요? 대도 무정이라고. 그리고 솔직히 나도 사부와 사숙이 어머니와 아버지란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 뭐라고?

“종문에 사부의 스승뻘인 성단기 수사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오래전에 저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어요.”

= 그런데 지금까지 모른 척 했다는 말이냐?

“어차피 어머니나 아버지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수사들 사이에 부모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선도 수련에 들면서 속세 인연을 버릴 때, 부모형제를 잊는 것은 기본인데요.”

= 으음.

절로 신음소리가 나올 사고방식이다.

건우로선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을 거 같은.

“하지만 그래도 자식이라고 두 분이 많이 너그럽게 저를 대해 주시긴 했죠. 뭐 제 수련 자질이 뛰어나 쓸모가 있을 거라 여긴 면도 없잖아 있겠지만요.”

= 그랬구나.

건우는 어쩐지 공여려의 삶이 가엾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살짝 마음이 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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