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5화 (35/499)

34. 해양요수가 부른 막장 드라마

“으음 보면 알겠지만 진염결 옥간의 내용을 다른 옥간에 옮겼다. 그리고 원본을 내가 취했는데, 이는 이 원본을 종문에 바치기 위해서다.”

“종문에 옥간을 바친다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경진후를 보았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진염결은 일종의 보조 수련 공법이라 봐야 한다.”

“보조 공법이라니요?”

“물론 주 수련 공법으로도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한민 장로께서 성단기 완경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 좋은 수련 공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영근의 속성에 맞는 주된 공법을 익히고 그것을 보조할 방편으로 진염결을 익히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

“그, 그렇습니까?”

건우는 모르겠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건우도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진염결이 무속성이라 영근을 성장시키는데 제약이 없어서 좋기는 했다.

하지만 수미선문의 목영근 수련 공법을 배운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각각의 영근 속성에 맞는 주 공법을 익히고, 그것을 보조하는 강력한 의념을 키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니 진염결은 의념을 키우는 공법으로 쓰고, 영근 수련은 속성에 맞는 공법을 익히는 것이 옳다.

“음, 아마도 한민 장로께서 산수로 지내시다보니 마땅한 속성 수련 공법을 것을 찾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원래 산수의 신분으로 제대로 된 수련 공법을 얻는 것이 쉽지 않지.”

“그 말은 사형의 말이 옳다. 게다가 한민 장로께선 진염결로 이미 높은 경지를 이루셨다면 굳이 다른 수련 공법이 필요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일정 경지 이후론 따로 속성에 맞는 수련 공법을 찾지 않으셨을 거란 말이다.”

경진후와 경미후가 서로 번갈아 말을 보탰다.

건우는 둘의 말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 너에게 적당한 속성 수련 공법을 종문에 가는대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공짜로 얻을 수는 없지. 네가 종문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민 장로의 옥간을 종문에 바친다면 어떻겠느냐?”

“호호, 게다가 한민 장로의 진염결은 아까 말했던 대로 보조 공법으로 아주 좋다. 누구든 이 공법을 익히는데 제약이 없지. 그러니 종문에서 공법의 가치를 높게 쳐 줄 것이다. 그럼 너에 대한 종문의 대우도 달라지겠지. 안 그러냐?”

“아! 결국 저를 위해 하시는 말씀이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건우는 경진후와 경미후의 말을 듣고 감격한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한민 장로의 옥간을 가져가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해 그러는 것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듯이 몇 번이나.

하지만 바닥을 볼 때, 건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자신의 것인 진염결로 종문에 공을 쌓겠다는 말이 아닌가.

“커엄. 물론 나 또한 너의 스승으로서 종문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니 서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옥간의 내용은 빠짐없이 옮겼으니 진본과 복사본의 차이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원본을 종문에 제출하는 것은 종문에 예를 차리기 위해서다.”

경진후도 스스로 제자를 이용한다는 부끄러움이 아주 없지는 않은지 쓸데없는 헛기침을 더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제자 건우는 스승님의 행사에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건우는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이 숙이며 경진후의 판단에 불만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실 진염결을 완합종에 바치는 것엔 정말 아무 불만도 없었다.

진염결은 어차피 자신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라 그것을 주고 다른 공법을 받을 수 있다면 도리어 이익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진염결의 가치에 어울릴만한 공법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좋다. 그럼 이것으로 네 공간낭에 대한 문제는 깔끔히 정리가 되었구나. 좋구나 좋아.”

경진후는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좋구나 좋아.’를 외쳤다.

그러다가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밖의 태풍이 가라앉았으니 우리도 종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그런데 사형과 이야기를 해 보니 이 세절도에 어쩌면 괜찮은 영초나 영단을 품은 영물이 있을 거 같더구나.”

“그래서 며칠 섬을 돌아보며 수련 자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너희 둘도 그리 알고 따라 나서거라.”

경진후와 경미후가 번갈아가며 상황을 설명하고는 동행할 것을 명했다.

결국 따로 채비를 할 것도 없는 건우와 공여려는 곧바로 경진후와 경미후의 뒤를 따라서 동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부 밖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 * *

쿠르르르릉!

= 나왔구나! 인간들! 죽어라!

일행이 절벽 끝의 동부에서 나와서 과거에 전각이 있던 자리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뇌성벽력이 떨어지며 살의가 가득한 의념이 쏟아졌다.

“아악!”

“크으윽!”

“이게 무슨?”

“그, 그 놈입니다 사형. 그 해양요수가 여기까지 쫓아왔습니다.”

수행이 제일 낮은 공여려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건우도 신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경진후와 경미후는 허공에 떠 있는 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건우는 재빨리 목영근의 영기를 돌려 몸속으로 파고든 이질적인 기운을 몰아냈다.

목속성의 영기는 다른 영기에 비해서 생기가 넘쳐 몸을 회복하는데 가장 적절한 기운이다.

그 덕분에 건우는 빠르게 몸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

‘도대체 저건 뭐지?

건우는 허공에 떠 있는 괴상한 생명체를 보며 당황했다.

지금까지 상상으로도 떠올린 적이 없는 괴상한 생명체가 거기에 있었다.

앞으로 크게 튀어나온 배에 다리는 없이 긴 꼬리가 달렸는데, 상체는 인간을 닮았고,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머리는 바다에 사는 해마를 닮았다.

온 몸에 오돌도돌한 돌기들이 있고, 거친 피부는 악어의 가죽을 떠올리게 했다.

유독 튀어나온 두 개의 눈은 카멜레온의 눈을 닮아 있었다.

“포공(抱空)! 포공공마(抱空恐魔)에요. 저건 해양요수 포공공마라고요!

그 때,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공여려가 정신을 차린 듯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 포공공마라고?”

“그게 정말이냐? 여려야?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경진후가 깜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경미후는 공여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제가 기록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저 모습은 그 포공공마가 분명해요!”

공여려가 자신의 스승에게 확신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이, 이런! 어찌 포공공마가 그것도 성단기의 포공공마가 나타난단 말인가!”

경진후가 놀랍고 안타깝다는 듯이 허공에 떠 있는 해양요수를 보며 말했다.

그 곁에 있는 경미후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포공공마라는 해양요수를 탐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버러지 같은 것을! 그냥 눌러 죽이리라!

그 때, 다시 한 번 살기 가득한 의념이 퍼지며 계곡 위쪽에서 먹빛의 해무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막아야 해요!”

그 순간 경진후와 경미후가 각각 품속에서 법기를 꺼내 영기를 불어 넣었다.

경진후는 한 손에 모두 잡힐 정도로 작은 깃발 열여섯 개를 꺼내 영기를 가득 밀어 넣었다.

그러자 깃발들이 날아가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만들며 땅에 박혔다.

깃발들은 제각각 다른 글자들이 하나씩 적혀 있었는데 건우는 그 글자들을 법기를 만드는 옥간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깃발에 적혀 있는 글자들이 당장 어떤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커져라!”

경진후가 깃발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법결이 담긴 영기를 쏘아내며 구령(口令)을 외웠다.

그러자 열여섯 깃발이 사람의 키만큼 커지더니 은빛의 기운을 일으켜 돔 형태를 만들었다.

“하아앗!”

그 때, 경미후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이 기합소리를 내며 허공에 손수건 하나를 날려 보냈다.

은빛 바탕에 금빛 수가 가득한 손수건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경진후가 만든 보호막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보호막 전체에 금빛의 무늬가 생겨났다.

치지지지지지직! 치지지지지!

그렇게 방어 술법이 완성된 순간 포공공마의 먹빛 해무가 보호막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보호막에서 뭔가 타고 녹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음, 일단 얼마간은 버틸 수 있겠군.”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요. 저 포공공마는 성단기의 괴수라서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예요.”

“물론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지. 곧 빠져 나갈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나저나 성단기 포공공마라니.”

경진후가 탄식을 하며 먹빛 해무로 가려진 계곡 위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 포공공마가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보호막과 먹빛 해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우는 그곳을 노려보는 경진후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빛나는 것을 느끼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한 괴수를 두고 무슨 탐욕을 부린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형, 방법이 없을까요?”

경미후가 경진후를 보며 물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없다. 성단기에 오르면 괴수라 하더라도 지성이 발달해서 그 경지의 수사와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네, 그러니 저 밖에 있는 포공공마는 성단기의 수사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런 즉, 지금 우리는 성단기 수사의 노림을 받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경진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건우와 공여려를 바라봤다.

“너희가 걱정이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우리가 너희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장담을 할 수 없음이다.”

“그러게요. 성단기 수사에게서 몸을 피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모두 함께 도망을 가야 하는데,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성단기 수사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 그렇지. 허어, 그것 참.”

경진후가 곤란하다는 듯이 탄식을 하고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그런 경진후의 모습에 건우와 공여려가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상황이 이러니 너희 둘은 알아서 해라.’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사형! 어쩔 수 없겠어요. 이 아이들을 청옥비선에 태워 보내고, 우리가 뒤에 남아서 포공공마를 막지요. 그리고 그 후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멀어지면 우리도 몸을 빼고 도망을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으음. 그게 쉽겠느냐? 우리 둘이 아무리 힘을 모아도 성단기의 포공공마를 감당할 수는 없다.”

“누가 포공공마와 진심으로 싸우잡니까? 그냥 시간만 끌자는 거지요.”

“허어, 위험할 게다.”

“어쩔 수 있나요, 이게 모두 우리의 업보인 것을요.”

“그 무슨!”

“사형! 진정하세요. 대도의 길이 무정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륜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여려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희생을 해야 합니다.”

“미후야!”

“사형!”

경진후와 경미후는 무슨 일인지 격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공여려와 건우가 안절부절 못하며 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결국 경진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그래 사매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경진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경미후와 공여려, 건우 세 사람을 등지고 서 버렸다.

“상황이 급하니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마.”

경미후가 공여려와 건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공여려의 손을 잡았다.

“아가야, 여려 내 아가야. 너는 사실 진후 사형과 내가 낳은 우리의 딸이란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