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3화 (33/499)

32. 나는 뻐꾸기 알이 되어 완합종에 든다

“너는 조용히 하고 이리 오너라.”

경미후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공여려에게 손을 내밀어 허공을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공여려가 허공을 날아 경미후의 앞으로 끌려가 버렸다.

건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공여려가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든 듯이 두 손을 모아 쥐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옥간을 통해 배운 수사들의 일반적인 인사법이었다.

건우가 살던 세상에선 중국이란 나라의 포권이라 했던 인사법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후배 건우가 두 분 선배님을 뵙습니다.”

건우가 배우기로 수도계에서 경지의 차이는 곧 계급의 차이와 같다고 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두 수사의 경지가 자신보다 높으니 당연히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다.

게다가 눈치 없이 굴다가는 언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수도계라지 않던가.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건우의 등 뒤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나고 있었다.

여차하면 아공간으로 튈 생각도 하고 있는 건우였다.

“건우라고?”

경진후가 허리를 세우는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네가 입은 옷이 이곳 유적에서 얻은 것이라고?”

“어찌 아셨는지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건우는 경진후의 말에서 그가 얼마간 자신과 공여려의 모습을 살피고 있었음을 짐작했다.

“네가 여려에게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러니 너는 숨김없이 내 물음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건우는 경진후의 말에 겁을 먹은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억울하다 생각할 수도 있으니 일단 내가 너를 추궁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마.”

“네?”

“그냥 듣거라.”

“네.”

“네가 발견했다는 그 해골 수사는 우리 완합종의 객경장로 한민이라는 분이다.”

“네, 여려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조용히 듣기만 해라.”

“네 선배님.”

“네가 취한 것이 우리 완합종 장로의 것이니 나는 네가 그것을 취한 것이 옳은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건우는 경진후의 말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저 입을 다물고 그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듯이 조용히 있었다.

“네가 취한 것이 장로님께서 허락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때로 선배 수사가 후배를 위해서 안배를 남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니 한민 장로님께서도 그리 하셨을 수가 있다.”

“네.”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그저 한민 장로님께서 상황이 다급해서 수습하지 못한 것을 네가 훔친 것이라면 나는 완합종의 제자로서 너를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답하거라. 내 말을 이해하느냐?”

“그, 그렇습니다.”

“내 말에 온당치 못함이 있느냐?”

“어, 없습니다.”

건우는 경진후의 압박에 다급하게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자 경진후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너는 이곳 한민 장로님의 거처에서 얻은 것을 모두 내놔 보거라. 그럼 내가 그것을 확인하고 너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것이다.”

“처, 처벌이라니요?”

“네가 허락 없이 장로님의 것을 취했다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물론 그 경우엔 주인 없이 방치된 것을 얻었다는 것도 감안해서 벌을 정할 것이니, 일단 네가 얻은 모든 것을 내어 놓거라.”

경진후는 몇 마디의 말로 건우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을 명분을 만들어냈다.

경지도 높은 경진후가 그럴듯한 명분으로 건우를 압박하니 건우도 어쩔 수 없이 가진 것을 내 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걸친 옷이 이것뿐이라 옷은 그냥 입고 있으면 안되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건우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경진후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공여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듯 소리를 내었다.

“킥! 오빠, 설마하니 사숙께서 그 옷까지 벗으라 하시겠어요? 호호호호.”

“여려야! 너는 조용히 하거라.”

그런 공여려의 머리에 경미후의 꿀밤이 떨어졌다.

“아악, 스승님!”

“여려의 말대로 네 옷까지 벗길 생각은 없으니 그 장삼은 그대로 입어도 좋다. 그 외에는 모두 꺼내거라.”

건우는 경진후의 말에 주춤주춤 허리에 매달고 있던 공간낭을 풀어 두 손으로 잡고 내밀었다.

“이, 이것이 전부입니다.”

경진후는 건우가 내미는 공간낭은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건우의 말을 모두 믿어줄 수는 없었다.

“혹여 숨긴 것이 있다면 나중에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기억을 잘 떠올려보는 것이 어떠냐? 이 공간낭에 든 것 이외에 정말 더는 얻은 것이 없느냐?”

경진후가 손을 뻗어 허공을 격하고 건우의 손에서 공간낭을 가지고 가며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어, 없습니다. 그나마 그 공간낭이 제가 물건을 보관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인데 다른 곳에 물건을 둘 일이 있겠습니까?”

“음, 그러냐? 어디 한 번 보자꾸나.”

경진후는 거침없이 건우의 공간낭 내부로 의식을 불어 넣었다.

공간낭에는 주인인 건우의 의식이 강하게 심어져 있었지만 축기 중기 경진후의 의식에 속절없이 지워졌다.

“음, 영석과 옥간 둘. 거기에 약초 몇 가지와 하급의 영초가 둘. 이게 전부란 말이더냐?”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약초와 영초는 제가 따로 채집한 것입니다.”

“그렇겠지. 고작 이 정도의 약초와 영초를 한민 장로께서 손대진 않으셨을 테니까.”

“······.”

경진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공간낭에서 꺼낸 옥간 하나를 이마에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것은 우리 완합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구나. 하지만 이 내용은 이미 1만 년 전의 것이라 달라진 것이 많이 있다. 그래도 종파의 기본 공법들이나 규칙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것은 참고할 만하구나.”

경진후가 먼저 살핀 것은 완합종에 대한 정보가 담긴 옥간이었다.

물론 그 옥간에는 완합종이 속한 수도계 전반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야 경진후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옥간의 끄트머리에 혹시라도 그 옥간을 발견한 후배가 있으면 마음껏 취해도 된다는 한민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건우가 취한 것들은 모두 한민이 후배를 위해 안배해 놓은 것이라는 말이었다.

경진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하나 남은 옥간을 이마에 붙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제법 오랫동안 살폈다.

“이것은 한민 장로가 익힌 수련 공법과 둔술 그리고 간단한 공격 술법이 들어 있구나.”

꼼꼼하게 옥간의 내용을 살핀 경진후가 건우를 보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너는 이 옥간의 진염결을 익혔느냐?”

경진후가 건우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진염결로 연신기의 완경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 참. 쯧!”

건우의 대답에 경진후는 짧게 혀를 차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사형?”

경미후가 곤란해 하는 자신의 사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아라. 저 녀석이 진염결을 익혔는데, 그것은 한민 장로의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데 진염결을 익힌 것이 한민 장로의 뜻을 이은 것이니 보기에 따라 저 녀석이 한민 장로의 의발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네?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렇지. 물론 한민 장로께선 자신이 남긴 옥간을 익혔다고 그를 제자로 삼는다는 말씀은 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든 옥간을 발견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뜻만 남겼을 뿐이지.”

“그럼 고민할 이유가 있나요? 저 아이가 한민 장로의 은혜를 입었다면 당연히 완합종의 제자가 되어 그 은혜를 갚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음? 그냥 완합종의 제자로 받아들이자는 말이냐?”

“한민 장로의 제자란 신분을 인정해 주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분의 공법을 이었으니 완합종의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어요? 아예 이참에 저 아이를 사형의 제자로 삼아도 되고요.”

“내 제자라······.”

경진후는 고민하는 척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때, 경진후와 경미후는 의념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어때요? 도움이 좀 되었나요? 이제 이대로 밀어붙여서 저 녀석을 사형의 제자로 삼으세요. 그러면 한민 장로의 공법을 사형이 취해도 문제될 것은 없지 않겠어요?

= 내가 그것을 탐내는 줄은 어찌 알았느냐?

= 호호. 제가 사형과 함께 한 것이 벌써 수백 년이 지났어요.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아요?

= 그냥 저 녀석을 죽여 없애는 것도 방법이지만 보아하니 그렇게 했다가는 여려가 슬퍼하게 생겼구나. 그러니 그냥 내 제자로 삼고, 이 진염결의 내용은 다른 옥간에 베껴서 참고 자료로 써야겠다.

= 저희, 수련에 도움이 될까요?

= 의식을 강화시키는 좋은 공법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래요?

= 다른 공법과 충돌하지도 않으면서 의식을 크게 강화할 수 있으니 굉장히 좋은 공법이지.

= 그런데 옥간에 금제는 걸려 있지 않은 모양이지요?

= 이상하게 그렇게 되어 있구나. 그러니 다른 옥간에 베끼는 것도 가능하지.

= 호호호, 축하해요 사형. 제자가 생기겠군요?

= 이제 저 녀석을 제자로 삼으면 이 진염결의 주인은 저 녀석과 내가 된다. 그러면 종문에서 진염결을 내어 놓으라 하지는 못하겠지.

= 내어 놓아서 나쁠 것도 없지요. 그 대신에 그만한 보상을 받으면 되지 않겠어요?

= 옳다. 다른 이들이 진염결을 익힌다고 너와 내가 크게 손해 볼 것은 없겠지. 도리어 종문의 힘이 커질 것이니 나쁘지 않아.

= 그보다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이 중요하죠. 어쩌면 결단기에 오르는데 도움이 될 영단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 고작 그 정도겠느냐? 진염결은 성단기 완경까지 이를 수 있는 공법이다. 익히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아주 괜찮은 공법이지. 게다가 무속성이라 어떤 영근을 지녔던 익히는데 문제가 없다.

= 좋군요.

= 그렇지. 좋지.

경진후는 거기까지 대화를 나누고는 건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것들을 살펴보니 네 말대로 한민 장로께서 후인을 위해서 안배를 해 두신 것이 분명하구나.”

“그, 그럼 제가 벌을 받을 일은 없겠군요?”

“당연하다. 너는 죄가 없다. 하지만 죄는 없어도 은혜는 있겠지?”

“은혜라구요?”

“그래. 네가 한민 장로님께 대도의 길을 걷는데 큰 도움을 받지 않았느냐. 아니냐?”

“마, 맞습니다. 분명히 해골 선배, 아니 한민 장로님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래 그리 인정하니 내 마음도 편하구나. 나는, 네가 우리 종문의 장로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네가 우리 종문에 들어와 그 은혜를 일부나마 갚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종문에 들어서 은혜를 갚으라고요?”

“그렇다고 너를 노예처럼 부려 먹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문에 속해 있으면서 수련 경지를 크게 높이면 그것만으로도 종문에 큰 기여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 그렇군요.”

“그러니 너는 정식으로 우리 완합종의 제가가 되는 것이 어떠냐? 네가 축기에 오르기 전까지는 내가 너의 스승이 되어 줄 것인즉.”

“선배님게서 제 스승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경진후의 제안에 깜짝 놀란 듯이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상황이 돌아간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느라 애쓰는 중이었다.

“그래, 어떠냐? 완합종의 제자가 되겠느냐?”

경진후가 다시 한 번 강한 어조로 건우에게 물었고, 건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완합종의 제자가 되어 한민 장로님께 받은 은혜를 천분의 일이나마 갚으려 노력하겠습니다.”

“하하하. 좋다. 좋아. 그럼 너는 이제부터 나를 스승이라 부르도록 해라.”

“스, 스승이라 부르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물론 정식으로 스승과 제자가 되기 위해선 종문의 허락이 필요하니 돌아가 허락을 받을 때까지는 임시로 그렇게 부르면 된다. 어차피 스승이 제자를 들이는 것에 대해서 누가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건우는 경진후의 말에 다시 한 번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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