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공여려? 난 건우다
“늑대야! 늑대야! 어딨냐?!”
“너, 빨리 안 나와? 지금 안 나오면 우리 사부랑 사숙님 오시면 넌 끝장이야.”
“어서 나와. 지금 나오면 이야기 잘 해 줄게.”
“늑대야, 어딨니! 어서 나와라. 지금 안 나오면 가죽을 벗겨 버린다!”
“흐흐흑. 사부님! 사숙! 저 여기 있어요오!”
“사부우우우우! 여려 좀 구해 주세요오!”
공여려는 얼마 전부터 늑대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늑대에게 쫓겨 다닐 때에는 힘들고 무서웠는데, 늑대가 보이지 않으니 적막한 안개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하얀색 안개와 고요.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진력이 빨리는 상황이다.
그것 때문에 공여려는 점점 두려움에 정신을 갉아 먹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횡설수설하며 반쯤 넋이 나간 듯이 구궁연무살진 안을 떠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고함을 지르기까지.
겉으로 보면 완전히 머리에 꽃 꽂은 동네 처자 같은 꼴이다.
- 쟤는 왜 저러는 걸까요?
루야가 늑대를 부르며 돌아다니다가 사부와 사숙을 부르며 울부짖는 공여려의 모습에 건우에게 물었다.
“그런 거 알아? 예전에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살려서 오려면 그 물고기의 천적을 몇 마리 함께 넣어 줬다는 거?”
- 그거야 저도 알죠. 천적이 있으니까 물고기들이 바짝 긴장해서 피해 다니느라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거였죠.
“맞아. 그런 거. 지금 보니까 저 꼬맹이도 그런 상태인 거 같지 않냐?”
- 늑대가 있을 때에는 쫓겨 다니느라 딴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그리고 그 때는 긴장 때문에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고요.
“그런 거지. 그러다가 늑대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점점 생각이 많아지고, 스스로 만든 망상에 잡아먹히는 상태가 되는 거지. 그래도 지금처럼 저렇게 늑대를 찾아다니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저러다가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정말 끝장이 날 수도 있어.”
- 그래서 어쩌실 건데요?
“음, 보아하니 그렇게 위험한 녀석은 아닌 거 같지? 네 생각은 어때?”
- 그야, 겨우 연신기 중기 수준이라면서요? 그 정도면 건우 님이 깔끔하게 제압할 수 있으니 위험하진 않겠죠.
“아니, 애초에 그렇게 싸울 일이 없어야지. 루야 네가 보기엔 어때? 쟤가 음흉한 녀석은 아닐 거 같지?”
-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있어요.
“응? 걸려? 뭐가?”
건우가 색다른 루야의 말에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 저 계집애가 입고 있는 옷이요. 뭐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루야가 빛덩어리 몸에서 손가락을 만들어 밖에 있는 공여려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입은 해골 수사의 장삼이랑 비슷하다는 거?”
건우도 루야가 발견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꾸했다.
- 네, 그거요.
“음, 완합종이랑 연관이 있을 거란 말이지?”
- 건우 님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죠?
“뭐, 딱 봤을 때부터 옷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
- 자, 그럼 이제부터 완합종의 동문 수사 행세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응?”
- 그냥 해골 수사의 후예, 뭐 그런 걸로 밀고 나가도 될 거 같은데요? 그게 완전히 거짓말도 아니고 말이죠.
“그렇기는 하다만, 저 꼬마가 가끔씩 사부와 사숙을 찾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들과 함께 있다가 일을 당한 거 같단 말이지.”
건우가 망설이는 이유는 바로 꼬맹이가 부르는 사숙과 사부 때문이었다.
꼬맹이의 사부 항렬이면 축기 이상의 수사일 텐데, 그들이 나타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꼬마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망설이는 중이었다.
금방이라도 꼬마의 사부와 사숙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 쉽게 나서기가 무서웠다.
- 그냥 만나세요. 만일의 사태가 생기면 아공간으로 오시면 되죠. 건우 님에겐 아공간이 있어요.
“그, 그렇지?”
그래도 팔랑귀 건우는 결국 루야의 설득에 혹하고 말았다.
* * *
“엉엉! 사부우!”
여려는 결국 안개 속에서 절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새하얀 안개뿐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늑대는 어디로 갔을까? 설마 여길 빠져나간 걸까? 그럼 나도 나갈 수 있는 건가?”
공여려는 늑대의 실종에서 잠시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껏 안개 속을 헤매고 다녔던 것을 떠올리면 우연이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았다.
“진법 공부를 좀 해 둘 걸 그랬어. 흐흑.”
사부의 가르침에 좀 더 성실하게 임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솟아올랐다.
“이번에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수련을 할 거야. 응, 정말 그렇게 할 거라고. 아, 맞다!”
공여려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허리춤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풀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금박을 씌운 단약 하나를 꺼내 입 안에 넣고 삼켰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청량한 액체로 변해 목을 타 넘는 단약.
스승인 경미후가 공여려에게 선물로 준 정심환(淨心丸)이었다.
정심환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큰 약이었다.
게다가 그 외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공여려가 정심환을 떠올려 복용한 것은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고 떨어지던 기력도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었다.
“후아, 좋았어. 다시 힘을 내 보자. 안개가 자욱하긴 하지만 딱히 위험한 일은 없어. 그래, 그러니까 괜찮아.”
정심환을 먹고 그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 영기 수련 공법을 한동안 운용한 공여려가 긴 날숨과 함께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공여려는 공법 운용을 하는 동안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차분하게 다시 한 번 객관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지금은 당장 문제가 될 것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서 영기가 빠져 나가고 있지만 그녀의 공간낭 안에는 그것을 보충할 단약들이 적지 않게 들어 있었다.
그걸 떠올리면 스승의 사랑이 다시 한 번 크게 느껴져 가슴이 뭉클한 공여려였다.
공여려는 영기 운행을 하던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시 한 번 가 보자. 가다보면 길이 있겠지.”
물론 이런 막무가내로 진법을 벗어나긴 어렵다는 것을 공여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렵게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한 상태, 꺾이던 마음도 추슬러 세운 때였다.
일부러라도 사기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공여려는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다시 안개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개 속에서 낯선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누, 누구세요?”
공여려는 백색 장삼을 걸친 사내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면서도 공여려는 묘하게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그리 크게 일어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상대가 입고 있는 장삼이 완합종의 제자들이 입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봤던 종문 제자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니 동질감을 느껴 경계심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음, 나는 건우라고 한다. 너는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그런 공여려에게 건우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되물었다.
“아, 저는 스승님과 사숙을 모시고 세절도에 왔다가 태풍 때문에 홀로 떨어져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완합종의 공여려라 합니다.”
“역시 완합종의 제자냐?”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배께서도 완합종의 제자이십니까?”
“선배? 하하, 그렇게 높여 부를 것은 없다. 나 역시 연신기의 수사일 뿐인데, 같은 연신기 수사에게 선배랄 거야 없지.”
“그, 그래도 저보다는 수련이 높으신 거 같은데요. 그런데 정말 완합종 제자 맞으세요?”
공여려는 슬쩍 눈치를 살피면서도 건우가 완합종의 제자인지 꼭 알고 싶다는 듯이 거푸 질문을 던졌다.
“그것 참, 곤란한 질문을 하는구나. 나도 내가 완합종의 제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이라 대답을 하기 어렵거든.”
“네? 그게 무슨?”
공여려가 건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나는 우연히 이 섬에 오게 되었다. 그 때는 그저 영기를 조금 느낄 정도라서 수사라 할 수도 없는 범인에 가까웠지.”
“······.”
건우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공여려는 눈빛을 반짝이며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이 계곡에서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완합종 선배님의 유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아 겨우 수사의 길에 발을 디뎠지.”
“아, 그러셨군요.”
“그러니 내가 완합종의 공법을 조금 익힌 것도 사실이고, 완합종 선배의 유진을 일부 전해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종문의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라 종문의 제자라 하기도 어렵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그럼 여기 이 괴상한 안개를 벗어날 방법은 알고 계신가요?”
공여려는 무엇보다 지금 갇혀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일단 그것부터 해결을 하자는 생각으로 건우라는 수사에게 확인을 하듯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여기 설치한 구궁연무살진은 원래 돌아가신 완합종의 선배 수사가 설치한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많이 약해진 것을 내가 조금 보완을 했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는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 그렇군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말꼬리를 흐리는 건우의 모습에 공여려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그 큰 눈 속에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음,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밖엔 비바람이 너무 거센 상황이라 차라리 이 안쪽이 편하지 않을까 싶구나.”
“네? 비바람이요?”
“그래, 벌써 보름이 훨씬 넘도록 태풍이 부는 중이다.”
“그, 그럼 선배께선 어디서 생활을 하셨는데요? 제가 선배의 수련 거처에 잠시 머물 수는 없나요?”
“하하. 그렇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머물던 전각이 하필 태풍에 허물어져 버린 상황이란다. 그래서 나도 이곳으로 몸을 피했지.”
건우는 멋쩍은 듯이 공여려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이번 태풍에 계곡 끝에 있던 2층 전각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전각의 축이라 할 수 있는 해골 수사의 유골도 사라지고, 인물화도 갈가리 찢긴 후라, 전각이 세월과 태풍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건우는 공여려를 만나기 전에 전각이 무너진 것을 확인했기에 이런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전각이 무너졌다고요?”
“그게 그렇게 되었다. 원래 아주 오래 전에 완합종의 선배 수사가 세운 건물인데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지. 그래서 나도 비바람을 피할 겸 진법을 찾아 온 것이다.”
“그 덕분에 제가 선배를 만나게 된 거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러니 적어도 태풍이 그칠 때까지는 이곳에서 머무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진법 끝으로 가서 안개를 쫓아 줄 테니, 갇혀 있는 답답함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여길 떠나도 갈 곳이 없으니 선배의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그래준다니 고맙구나. 자, 이리로 오너라.”
건우는 구궁연무살진 안으로 영기를 쏘아 진법의 운용을 잠시 멈추고 공여려를 한쪽 방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진법의 제일 끝, 계곡의 벽으로 가서 토속성의 영기를 사용해서 절벽에 구멍을 뚫어 두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란히 들어가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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