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0화 (30/499)

29. 늑대 줍줍은 일단 성공적

- 어쩌시게요?

아공간 밖으로 나가려는 건우에게 루야가 물었다.

“저 꼬마, 그냥 둘 수는 없잖아.”

- 그래서 구해주시게요?

“응? 아니지. 누군지도 모르는데 대뜸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곤란하지.”

- 그런데 왜 나가시려구요?

“저 늑대라도 좀 치워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 네? 늑대요? 위험하지 않아요?

“괜찮아. 보아하니 저 늑대 놈도 쓰러질 때가 된 거 같다.”

- 에? 정말요? 제가 보기엔 생생한 거 같은데요?

“내가 그래도 목영근이 연신기 완경에 올랐잖아. 그 덕분인지 대상의 생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저 늑대, 겉으론 멀쩡해도 속은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야.”

- 아, 목속성이 생기와 관계가 깊은 속성이라고 했죠?

“그렇지. 저 늑대가 꼬맹이 수사와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에 급격히 생기를 빼앗긴 거지.”

- 네에, 그렇군요.

“이쯤이면 잡을 수 있을 거야. 나는 나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네, 조심하세요.

“옹야.”

건우는 루야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고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위치는 구궁연무살진 내부, 그것도 늑대머리의 바로 위.

마침 늑대가 아공간 입구를 열 수 있는 위치에 와 있었던 것이다.

건우에겐 행운, 녹각독랑에선 지독한 불운이었다.

“읏차!”

크르르릉! 크릉!

건우는 아공간 밖으로 나서는 것과 동시에 검은색의 가죽 법부 한 장을 늑대의 이마에 철썩 붙여 버렸다.

녹각독랑으로선 완벽한 기습을 당한 셈이다.

녹각독랑은 갑작스런 공격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이상한 여자 인간을 잡기 위해 날뛰고 있던 중이었다.

사실 녹각독랑은 그 여자 인간 수사가 자신을 이 괴상한 공간에 잡아 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전에 원숭이 놈을 잡아먹으려 할 때, 방해를 했던 그 인간 수사와 한 패가 분명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 했는데 결과가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기습을 당해 강력한 정신 금제가 머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크와와왕! 크르르릉!

‘이게 뭐냐? 당장 풀지 못할까!’

녹각독랑은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어둡고 꺼림칙한 영기에 저항하기 위해 포효를 터트렸다.

전에는 혈모원 우두머리를 가볍게 제압했던 법부였지만 녹각독랑은 거칠게 저항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원숭이야 해골 선배의 세뇌 기운이 남았던 덕분에 쉽게 제압이 되었지만 너는 아니란 거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장의 검은색 가죽 법부를 꺼냈다.

법부를 중첩으로 써서 정신 제압 효과를 높이려는 것이다.

검은색 가죽 법부는 그것을 붙인 대상의 정신을 육체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신은 멀쩡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처적!

크르르르릉! 크릉!

건우가 다시 한 장의 법부를 이마에 붙이자 녹각독랑의 울음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정신과 육체의 연결이 약해진 증거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녹각독랑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우는 다시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냈다.

한 뼘 길이의 검은 색 침(針) 여섯 개가 건우의 손에 들렸다.

건우는 그 침을 늑대의 머리에 푹푹 꽂아 넣었다.

움찔, 움찔, 움찔!

녹각독랑은 침이 꽂힐 때마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떨림도 점점 작아지더니 여섯 번째 침을 꽂을 때에는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휴우, 힘드네.”

건우가 한숨과 함께 장삼의 긴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녹각독랑의 머리에 검은 침을 박기 위해서는 침에 영기를 가득 담아야 했다.

작은 침이지만 한 번 찌를 때마다 엄청난 영기가 필요했다.

겨우 여섯 개의 침을 박는데 건우는 진땀을 흘릴 정도로 힘을 써야 했다.

그래도 원하던 결과가 나왔으니 다행이다.

이제 늑대의 정신과 육체는 완벽하게 연결이 끊어졌다.

건우는 녹각독랑의 뿔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궁연무살진에 계속 있다가 그 여자 수사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 * *

“어라? 이건 곤란한데?”

건우는 구궁연무살진 밖으로 녹각독랑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녹각독랑과 의식 연결을 시도했다.

대화를 통해서 분혼을 얻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녹각독랑이 건우의 의식 연결을 완강하게 거부한 것이다.

대화 따위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결의가 대단했다.

건우는 축기 중기에 발을 걸친 녹각독랑의 의지를 뚫어내기 어려웠다.

짧은 시간이라면 의념을 집중해서 억지로 의식을 연결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식을 연결하고 말을 걸어도 녹각독랑은 전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건우의 의식을 밖으로 밀어냈다.

죽인다는 협박도 필요가 없었다.

녹각독랑은 자신의 의식을 굳건한 벽으로 감싸고 웅크려 버렸다.

그런 의식 봉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냥 죽이란 거네?”

건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협상도 거부하겠다는 녹각독랑을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지금은 상황이 좀 그런데?”

평소라면 시간을 두고 일을 진행시켜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난데없이 꼬마 수사가 구궁연무살진에 나타난 상황이다.

어쩌면 혼자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태풍도 만만치 않았다.

계곡 안쪽이라 조금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바람이 거칠다.

그 비바람 속에 깃든 혼탁한 영기가 건우의 몸을 괴롭게 만드는 중이다.

이런 때에는 그저 아공간에서 조용히 수련이나 하는 것이 최고다.

“이걸 가지고 들어갈까?”

건우가 늑대를 보며 고민 했다.

원래 아공간에는 생명체가 들어가지 못하지만 대천세계에 온 후로는 아공간에 생명체를 넣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전 연못에 살던 잉어며 메기 같은 것을 던져 넣고도 시간이 얼마쯤 지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다.

영기를 품고 있으면 생명체라도 아공간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늑대도 아공간으로 끌고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에서 깨어나 난동을 부리면 곤란한데.”

그것이 걱정이었다.

검은색 가죽 법부의 효과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검은 침의 효과도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었다.

검은 침은 검은색 옥간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변형 법부였다.

수련 경지가 높은 늑대를 제압하기 위해 자그마치 해골 수사의 뼈를 갈아서 만든 금제 법부.

하지만 그조차도 지속 시간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에라, 그냥 멱을 따 버릴까?”

건우가 자꾸만 바람에 펄럭거리는 설상잠 장삼의 소매를 붙잡으며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아공간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어? 성공하셨어요?

건우가 들어오며 아공간 입구를 투명하게 열어 놓자 루야가 밖에 엎어져 있는 늑대를 보고 물었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데는 성공을 했는데, 그 이상은 안 되네. 저 놈 대화가 안 돼.”

- 그래요?

“그런데 지금 밖에 상황이 좀 그렇잖아. 낯선 꼬맹이도 나타났고, 태풍도 불고.”

- 그렇죠.

“그래서 저 늑대를 여기로 끌고 들어오면 어떨까 싶은데? 너는 어때?”

- 네? 늑대를요? 그러다가 깨어나면요?

늑대를 들인다는 건우의 말에 루야의 빛이 크게 번쩍였다.

깜짝 놀란 것이다.

“밖으로 내보내는 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생각만으로도 가능하잖아. 어차피 여긴 내 의념공간이기도 하고.”

건우는 그런 루야에게 조곤조곤 위험할 것은 없다고 설명을 했다.

- 그렇긴 하지만 어쩐지 내키진 않아요.

그래도 루야는 거대한 늑대를 아공간에 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건우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 루야를 계속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나도 그렇긴 한데, 상황이 좀 그렇잖아. 그렇다고 저걸 저기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고, 저 밖에서 내가 뭔가 하는 것도 문제지. 태풍도 태풍이지만 사람이······.”

- 그건 그러네요. 사람이 나타났으니······. 뭐, 건우 님이 그렇게 하시고 싶으시면 하세요. 어차피 여긴 건우 님의 아공간이잖아요.

결국 루야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락을 해 주었다.

“야야, 뭔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냐? 너도 여기 같이 살고 있는 동거인이잖아. 네 의견도 물어봐야지.”

- 으음. 그렇게까지 말씀을 해 주신다면야. 호호. 네, 전 괜찮습니다.

동거인이란 말이 좋았던지, 아니면 그래도 존중을 해 준다고 느꼈는지 루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이번엔 전보다 훨씬 흔쾌하게 느껴지는 허락이었다.

“그래?”

- 물론이죠. 그리고 이곳이라면 건우 님의 의념이 몇 배는 강해지니까 저 늑대를 제압할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나도 그런 기대가 없는 건 아닌데, 워낙 강하게 의식을 봉쇄해 버려서 어떨지 모르겠다.”

- 그럼 하는 수 없이 그냥 냠냠하세요.

“응?”

건우는 뜬금 ‘냠냠’ 드립에 깜짝 놀라며 루야를 바라봤다.

- 연화시켜서 흡수를 하시면 되잖아요. 전에 잉어들도 그렇게 드시지 않으셨어요?

“그렇긴 하다만, 저건 축기기 괴순데?”

- 그래도 살살 녹여 먹으면 못 먹을 건 또 아니죠.

“뭐, 일단은 끌고 들어와서 안전장치를 해서 묻어 둬 보자. 지금은 저 늑대보다 꼬맹이 여자가 더 중요한 거 같으니까.”

건우는 연화를 하든, 복종을 시키든 일단 늑대를 들여오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문득 떠오른 안전장치도 있었다.

- 안전장치는 또 뭔데요?

당연히 루야는 건우가 말하는 안전장치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건우는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음, 연못물.”

- 아! 거기 담그시게요?

루야도 건우의 짧은 대답을 쉽게 이해했다.

“거기 두면, 정신을 잃고 있을 때에는 모르겠지만 깨어나면 곧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겠냐?”

- 하긴 워낙 독하고 거시기 한 뭔가에 빠져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미쳐 날뛰겠죠. 호호, 괜찮은 안전장치네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자.”

건우는 루야의 허락을 받자 곧바로 밖으로 손을 내밀어 녹각독랑의 뿔을 잡고 아공간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곧바로 연못 안에 밀어 넣었다.

“자, 이제 그 여자 아이는 어쩌고 있나 한 번 볼까?”

* * *

“여려가 걱정입니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하필 거기서 성단기의 해양 요수를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아니 우리가 어쨌다고 그렇게 죽자고 쫓아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인간 수사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지. 그런 경우야 흔하니까.”

“사실 동물들이 연신기나 축기기에 이리저리 사냥을 당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아니면 수련 자원을 얻기 어렵기도 하고요.”

“그거야 사매 말이 맞지.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성단을 이루면 그런 수사들이 복수를 하려 드는 것이 문제지.”

“하여간 어떻게든 피하긴 한 거 같으니 다행이지요. 다만 여려가 걱정입니다.”

“보름이 넘도록 그 요수에게 쫓겼으니 여려가 세절도에서 홀로 어찌 지내고 있을지.”

“그러게요.”

“그래도 똑똑한 아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게다. 이제 곧 도착할 테니 염려하지 말거라.”

“네, 조금 더 서둘러 주세요 사형.”

“그래, 그렇게 하마.”

경진후와 경미후.

두 수사는 세절도에서 공여려를 놓치고 태풍에 휘말려 날아가다 성단기의 해양 요수를 만났다.

그런데 하필 그 해양 요수가 두 수사를 죽이겠다고 덤벼든 것이 문제였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수련 경지가 낮을 때, 인간 수사에게 곤욕을 당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경진후와 경미후 두 수사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서 해양 요수로부터 도망을 쳤다.

축기기 수준의 두 수사가 성단기 해양 요수를 피해 도망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이 비행법기를 가지고 있었고, 태풍이 심하게 불었다는 것이 그나마 호재로 작용했다.

중간에 아주 강력한 태풍이 청옥비선을 순식간에 먼 곳으로 날려주지 않았다면 해양 요수로부터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쫓고 쫓기느라 두 수사는 세절도로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벌써 공여려와 헤어진 것이 보름이 지났고, 앞으로도 사나흘은 가야 세절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공여려에 대한 근심이 깊어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때, 공여려는 구궁연무살진 안에서 극도의 혼란을 겪는 중이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