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9화 (29/499)

28. 늑대와 춤을 추는 그녀?

건우는 모든 것을 잊고 목영근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목표는 축기기에 들어서는 것.

하지만 그 도전은 어린아이가 태산을 짊어지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일이었다.

“후우.”

건우가 깊은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 실패했네요?

루야가 건우의 얼굴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

- 그야 당연하죠. 그 뽕 맞은 표정이 없었잖아요. 그리고 영기가 막 휘몰아치고 그런 것도 없었고요.

“쯥, 그렇게 됐다. 연신기랑 축기기가 고작 경지 하나 차이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네. 그 벽을 넘으려면 엄청난 영기가 필요해.”

- 영기요?

“그래. 의념이야 충분한 거 같은데, 결과적으로 영기 부족이야. 연신으로 몸을 수도자의 것으로 만들고, 축기로 그 몸에 영기를 쌓는 거, 말은 쉽지. 축기를 위해선 엄청난 영기가 필요해.”

- 그런가요?

“어마어마한 영기를 한꺼번에 쏟아 부어야 축기로 들어가는 벽을 허물 수 있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 수미선문의 목영근 수련 공법을 익혔잖아요. 그걸로 안 되는 건가요?

“수미선문의 소년 건우는 신기한 나무 아래에서 축기기 도전을 했어.”

- 그래요?

“지금 돌아보면 그 나무 아래는 목속성의 영기가 짙은 곳이었지. 일종의 수련 성지였던 모양이야. 그런 곳이니 축기기에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거지.”

- 결국 일반적인 곳에서는 축기기에 도전을 할 수 없다는 거네요?

“수미선문의 수련 공법이 뛰어나긴 하지만 없는 영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그러니 결국 문제는 영기다. 다량의 영기. 그것이 없으면 축기는 어려워.”

- 정말이요? 정말 안 되는 거예요?

루야는 안타까운 듯이 느릿느릿 빛을 내며 물었다.

“음, 굳이 방법을 찾으라면 아주 영기를 꾸준히 몸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다. 의념의 힘으로 쉬지 않고 영기를 흡수해서 몸에 영기를 가두기를 거듭하는 거지.”

- 그래서 결국 몸 안의 영기 농도를 높이고, 그것이 축기의 벽을 허물 정도로 쌓는다고요?

“일정 이상의 영기가 몸에 쌓이면 그걸 한 번에 터트려서 축기의 벽을 허무는 거지.”

-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요?

“그래, 꽤나 오래 걸리겠지. 그리고 그렇게 영기를 모으는 상황이라면 평소에 운용할 수 있는 영기의 양도 줄어들 테고.”

- 영기를 과하게 썼다가는 몸 안의 영기가 휩쓸려 나가겠군요?

“그래. 그러니 그런 수련을 하려면 안전한 곳에서 해야겠지.”

- 와, 쉬운 일이 없네요.

“그러게 말이다.”

건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이 고작 한 달 정도 목영근 수련을 했을 뿐이란 사실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면 꽤나 오래 집중해서 수련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대천세계 수도자들이 수련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 때로는 수십 년을 폐관하는 것이 보통이란 사실을 몰라서 하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것도 저계 수사들의 수련 시간이 그렇다.

고계 수사는 한 번에 몇 백, 몇 천 년의 폐관 수련을 하기도 한다.

건우가 아직 수사가 아닌 범인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착각이었다.

- 그럼 어떻게 해요?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야 뭐, 간단하지. 수도계란 곳이 알고 보면 약쟁이들 세상인 거지.”

- 약쟁이요?

“모자란 영기를 확 끌어 올리는데 영단만큼 좋은 것이 없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영약이나, 영물의 영단 같은 것도 있고. 아무튼, 내가 직접 영기를 모으는 것이 힘들면? 영기를 가득 품은 것을 먹거나 흡수해야지.”

- 아, 생각이 나네요. 그래서 수사가 수사를 잡아먹기도 한다고 했죠?

“그런 짓을 하다가 걸리면 공적이 되어 쫓기다 죽는 수가 있지만, 사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는 세상이기도 하니까.”

- 아무튼 당장은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래, 그러니 그 동안 이 원숭이 두목 녀석이 얼마나 일을 했는지나 좀 알아봐야겠다.”

-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성과가 좀 있을지도 모르죠.

“음.”

루야의 말에 건우도 기대를 가지고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을 통해서 밖에 있는 혈모원 우두머리와 의식을 연결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 표정이 왜 그래요?

“끄응, 태풍이란다.”

- 네?

“지금 섬에 며칠 째, 엄청난 태풍이 불고 있단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네?”

- 아니 그 원숭이 그래도 축기기 아니었어요? 축기기의 요수가 태풍이 무슨 문제래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건우에게 물었다.

“그냥 태풍이 아닌 모양이다. 천지영기가 뒤엉킨 엄청난 위력의 태풍이래. 그래서 섬이 온통 뒤집힌 모양이다.”

- 그, 그래요? 아니, 뭐 이쪽 세상은 태풍도 그런 태풍이 있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 그래서 태풍은 언제 끝나는데요?

“그건 모르겠다. 끝나야 끝나는 거지.”

건우는 그렇게 대답을 하며 아공간의 입구를 열었다.

“늑대 놈은 잘 있나?”

아공간 입구는 구궁연무살진의 범위 안쪽에 열렸고, 건우는 진법이 만든 안개의 제약을 뚫고 녹각독랑을 찾았다.

밖에는 태풍이 불고 있었지만 다행히 구궁연무살진 내부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진법의 힘이 태풍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크와왕! 크르르르릉! 크릉!

진 안의 녹각독랑은 아직도 기운이 남아 포효를 터트리고 있었다.

건우는 쓸데없이 기력 낭비를 하는 녹각독랑을 보며 혀를 찼다.

“혼자서 뭐 하는 짓인지. 왜 짖고 지랄이야? 어? 어라? 사람? 사람이 왜 있어?”

- 네? 무슨 소리예요? 사람이라니요?

건우의 말에 깜짝 놀란 루야가 쪼르르 건우의 얼굴 옆으로 붙으며 아공간 밖을 바라봤다.

거기 초췌한 기색의 여자아이 하나가 독각녹랑의 포효에 놀라 몸을 피하고 있었다.

* * *

청옥비선은 태풍에 휘말려 위태롭게 나부꼈다.

보통 태풍이 아니라 천지영기를 품은 태풍이었다.

법기인 청옥비선은 천지영기의 태풍에 보호 금제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깜빡거렸다.

경미후는 급하게 청옥비선 안으로 들어가 보호 금제를 유지하기 위해 영기를 불어 넣었다.

경진후는 청옥비선의 선수에 앉아서 청옥비선을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상황이 다급한데 공여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서서 사숙과 사부가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청난 비바람이 청옥비선을 때렸다.

일반적인 비바람이라면 법기가 영향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불어오는 태풍에는 천지영기가 혼탁하게 뒤엉켜 있었고, 때론 강력한 뇌전까지 공간을 가르고 작렬했다.

그리고 하필, 그 뇌전이 청옥비선의 정 중앙에 내리꽂히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경진후나 경미후도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태풍의 위력이 강력하여 공여려의 버릇고치기 훈계는 다음으로 미루자던 참이었다.

그런데 뇌전이 청옥비선을 때리고, 청옥비선의 탑승자를 보호하던 금제가 터져 나갔다.

“아악! 사숙!”

그 순간 공여려가 청옥비선 밖으로 튕겨져 나간 것은 절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사매! 여려가 떨어졌다.”

경진후가 급히 사매를 불렀지만 뇌전에 한 순간 흩어졌던 보호 금제를 경미후가 다시 복원하고, 그 상태로 청옥비선이 태풍에 휘말려 날아간 것도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그렇게 공여려는 아득한 상공에서 바다로 추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도 공여려는 범인이 아닌 수사였다.

비록 추락하는 상황이었지만 공여려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영기를 끌어올려 둔술을 펼치며 추락 속도를 늦췄다.

그녀의 경지로는 허공을 밟고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둔술을 펼쳐 허공을 밟고 추진력을 얻을 수는 있다.

영기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지만 가만히 떨어져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공여려는 안간힘을 쓰며 둔술을 펼쳤다.

하지만 천지 영기가 뒤엉킨 태풍 속에서 비바람에 이리저리 휘말리며 둔술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워낙 어지럽게 비바람에 날리는 통에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아, 저기!”

그러다가 공여려는 비바람과 구름 사이로 살짝 땅이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공여려는 곧바로 둔술을 펼쳐 그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계곡을 발견하고 그곳에 내려섰다.

아니 정확하게는 태풍 때문에 내동댕이쳐지듯이 계곡에 떨어졌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우당탕탕!

“아아악! 아야야!”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곱게 깔린 포석 위에 나뒹군 공여려.

만약 주위에 누가 있었다면 창피해서 죽어 버리고 싶었을 꼴이 분명했다.

그래서 공여려도 재빨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그 순간 공여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사납기 짝이 없이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사라지고 주변은 온통 하얀 안개만 가득했다.

공여려는 꼼짝도 않고 서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안개 속의 고요.

안력을 아무리 올려도 몇 미터 이상은 볼 수가 없었다.

눈에 영기를 집중해서 안력을 높이는 공법을 써 봐도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이다.

그 말은 안개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란 소리다.

평범한 안개였으면 없는 듯이 깨끗하게 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저, 저기요? 누구 없어요?”

공여려는 떨리는 목소리로 개미 기어가듯 작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 크게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조용히 숨어 있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목소리가 어정쩡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여려는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이 화답의 반응이 곧바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크르르릉! 크와왕!

“아악! 사, 사람 살려!”

안개 속에서 나타난 녹각독랑이 크고 날카로운 이빨로 공여려의 목을 물어뜯었다.

아니, 간발의 차이로 목이 있던 허공을 물어뜯었다.

공여려가 깜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구궁연무살진에서의 움직임은 대부분 극적인 위치 이동을 만들어 낸다.

한 발을 움직였을 뿐인데, 운이 좋게도 녹각독랑과 사뭇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공여려였다.

“느, 늑대? 아니 사슴? 뭐지?”

공여려는 녹각독랑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녹색 사슴뿔을 달고 있는 늑대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정체는 몰라도 그게 위험하다는 사실은 충분이 할 수 있었다.

“쫓아오기 전에 도망을 가야 해.”

공여려는 빠른 결단을 내리고 안개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지금 있는 자리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크아앙!

“꺄악!”

크르르르릉!

“아악, 또!”

크왕! 터덥!

“놔! 내 소매 찢어졌다고!”

크르르르릉!

“움직이지 마. 응? 움직여 봐야 소용없어. 나 뛴다? 뛴다고!”

공여려는 구궁연무살진 안에서 독각녹랑과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공간에 괴상하게 생긴 괴수 한 마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여려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는 공간은 간단한 움직임으로도 늑대를 충분히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굳이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늑대와 마주치면 한 걸음만 움직이면 늑대를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때로는 늑대 바로 곁으로 이동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때도 다시 한 걸음만 움직이면 된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늑대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자 공여려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야, 그만 쫓아와.”

“왜 자꾸 이래? 응? 나 너 싫어.”

“으아아아. 나가고 싶다고오. 뭐야? 여기 어떻게 나가는 거야아!”

공여려는 녹각독랑의 위협은 어느 정도 떨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좁은 곳에 갇혀 있는 상황만은 풀어낼 수가 없었다.

“이게 뭐냐고. 무슨 진법 같은데, 나는 진법 따위는 모른다고오.”

“박살을 내 버릴 거야. 어딘가 이 진법을 만든 축이 있을 거야.”

결국 공여려는 진법을 파괴하기 위해서 힘을 쓰기로 결심했다.

진법에 따라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공여려는 그런 것을 따질 정신이 아니었다.

카강! 캉! 카가가강!

공여려는 허리에서 유연하게 휘어지는 연검을 뽑아들고 사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공격이 구궁연무살진을 구성하는 축을 상하게 하진 못했다.

구궁연무살진 안에서 축을 공격하려면 정확한 방위에서 정확한 지점을 공격해야 한다.

정말 운이 좋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공여려는 공연히 헛힘만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빠르게 진력이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여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구궁연무살진이 조금씩 그녀의 힘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 갇혀 있다가는 언젠가 목내이처럼 말라 죽게 될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 어쩌면 좋아······.”

짙은 안개로 가득한 공간에 위험한 늑대 한 마리와 함께 갇혀 버린 공여려는 어느 순간 몰려드는 공포와 직면했다.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녀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앙! 죽기 싫다고오오!”

크아아앙!

“이익! 넌 저리 가! 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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