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7화 (27/499)

26. 아공간 분할! 이거슨 혁명이여!

“으음, 정신 차렸다. 난 괜찮아.”

건우가 낮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뜨며 루야를 진정시켰다.

- 아, 놀랐습니다. 갑자기 죽은 듯이 숨도 안 쉬고 그래서······.

“고맙구나. 그렇게 걱정을 해 주다니.”

- 그야 당연하죠. 건우님하고 저는 한 몸이나 다름이 없단 말이에요. 물론 그렇다고 한 몸이란 것에 다른 의미는 두지 마시고요.

“쓸데없는 농담을 할 때가 아니다. 일단 당장 해 봐야 할 것이 있으니 이야긴 조금 이따가 하자.”

- 네? 해 봐야 할 거요?

“새로 얻은 수련 공법이 있다. 그걸 익혀 볼 생각이다.”

- 새로 수련 공법을 얻어요? 어디서요? 설마 수미산겨자씨와 연결되어서 뭔가 얻으신 건가요?

“그래, 그런데,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지?”

건우는 문득 수미산겨자씨와 정신이 연결된 후로, 이곳에서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는 말에 시간의 흐름이 궁금했다.

- 하루요. 제 계산에 의하면 정확하게 하루가 흘렀어요.

“그곳에선 100일 이상을 있었는데, 여기선 하루? 아니지,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급한 일부터 해야겠다.”

혹시라도 목영근 수련에 대한 공법을 잊어먹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수도계 수사들의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아진다고 하지만, 아직은 지구식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건우였다.

잊기 전에 몸에 새겨 넣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했다.

건우는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수미선문의 소년 건우가 익혔던 목영근 수련법을 떠올렸다.

그 순간 수미산겨자씨를 감싸고 있던 여덟 영근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목영근이 휘리릭 자리를 바꿔서 건우의 정면에 위치했다.

- 이게 무슨 일이람? 우와아, 영근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야는 다음순간 목영근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작은 나무 모양을 하고 있던 목영근에서 녹색의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나무에 생기가 넘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형체가 거의 없던 뿌리가 빠르게 자라나 위쪽의 가지만큼 번성하기 시작했다.

- 아,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하는 거죠. 맞습니다. 그래야 하는 거였습니다.

루야는 건우의 목영근이 변화한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건우가 제대로 영근을 성장시키고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웅!

파지지지직, 파지지, 파직!

하지만 기세 좋게 이어가던 수련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파탄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불의 기운을 품은 화영근이었다.

타오르는 불덩이 모양의 화영근이 목영근의 성장에 자극을 받았는지 기운을 뿜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물의 기운을 가진 수영근, 흙의 기운을 가진 토영근이 또 기세를 일으켰다.

그러다보니 목영근을 제외한 일곱 영근 모두가 건우의 뜻과 상관없이 기운을 내뿜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끄으응. 이것들이 또!”

일이 그렇게 되자 건우도 어쩔 수 없이 수련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목영근의 기운이 다른 일곱 영근의 기운에 억눌려 흐름이 원활치 못했던 것이다.

원래는 흙의 기운이나 물의 기운은 나무의 기운을 보(保)하고 돕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화(火), 금(金)의 기운이나 빙(氷), 뇌(雷)의 기운은 나무의 기운을 상하게 한다.

물론 각 기운들의 상생, 상극에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에 물이 깃들어 불을 더욱 성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불의 기운에 빙의 기운이 더해져 빙화(氷火)를 피운다는 이야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수련 경지가 낮은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순리를 이겨낼 힘이 없다.

그러니 지금도 목영근에 대한 강력한 수련 공법을 얻었지만 다른 영근들의 반발에 수련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껏 건우의 영근 수련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어느 하나의 영근을 성장시키려 하면 다른 영근들이 방해를 한다.

그래서 아주 조금씩, 다른 일곱 영근들이 자극을 받지 않을 정도만 성장을 시키고, 또 다른 영근들을 그 정도까지 순서대로 모두 성장시키는 방법을 써야 했다.

그런데 이번 목영근 수련법이 워낙 뛰어나 곧바로 다른 영근들의 저항이 일어난 것이다.

- 깨어나셨어요?

“그래, 다른 영근들이 워낙 거칠게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

루야의 말에 건우가 투덜거리듯이 대답했다.

- 그래도 이번에는 목영근이 많이 성장을 했어요. 보세요. 뿌리도 이렇게 튼실하게 자랐어요.

그런 건우를 위로하려는 듯이 루야가 목영근으로 다가가 그 주변을 빙빙 돌면서 말했다.

건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목영근으로 향했다.

“잘 자랐네.”

하지만 건우의 감상은 그것이 끝이었다.

어차피 수련 중에 목영근의 모습을 심상으로 낱낱이 확인하던 건우였다.

실뿌리 하나까지 확인하며 목영근 수련 공법을 익혔던 건우가 새삼 목영근의 변화를 확인할 의미는 없었다.

- 그래도 목영근이 이 정도로 커졌으니 다른 영근들도 여기에 맞춰서 키울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건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잖아요. 왜 그렇게 불퉁한 얼굴이에요?

루야는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영근 성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에 꽤나 흥분한 모습이었다.

“아니, 이래선 곤란하지. 이번에 얻은 목영근 수련 공법은 축기기는 물론이고 성단기까지도 무리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공법이야. 그런데 다른 영근들 때문에 연신기 완경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잖아.”

- 그거야, 건우님이 저주받은 팔영근을 지녔기 때문이죠. 영근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련이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 네? 그래서요?

“아공간 분할을 시작해야겠다.”

건우는 뭔가 큰 결심을 한 듯이 단호한 어조로 ‘아공간 분할’을 선언했다.

- 될까요? 건우님의 아공간이 좀 특별하긴 하지만요, 그렇다고 아공간을 나눠서 영근들을 따로 격리하는 것이···, 사실 되기만 하면 대박이긴 하겠지만요.

루야가 걱정된다는 듯이 빛의 밝기가 줄어들고 반짝거리는 속도도 느려졌다.

“그렇다고 이대로는 답이 없어. 그 좋은 수련 공법을 얻어왔는데도 이런 꼴이면 정말 답이 없는 거지.”

건우는 화를 억누르는지 목소리 또한 꾹꾹 누르는 느낌이었다.

루야도 그런 건우의 반응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 그래요. 시도는 해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위험해지면 멈춰야 하는 겁니다. 아시죠?

“그야 당연하지. 네 말대로 나는 쫄보 개복치 아니냐. 적당히 알아서 조절을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 솔직히 건우님을 보면 가끔 쫄보 개복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지금만 봐도 그렇잖아요. ‘도전!’ 이러는 거.

“그러니까 ‘도전’ 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금방 그만 둔다니까?”

- 네, 그런 면에선 확실히 개복······.

“샤랍! 나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

- 네네, 알겠습니다 조용!

루야는 마지못해 봐 준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고, 건우는 수미산겨자씨 밑에 다시 자세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헌터시절, 아공간은 단순히 물건들을 보관하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대천세계로 온 후로 아공간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 아공간은 건우의 창고이면서 동시에 의념공간이었다.

의념공간이란 수도계 수사들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그 의념공간엔 영근이 있고, 그 영근의 성장에 따라서 조금씩 공간이 넓어지게 되는데 그 의념 공간이 넓어진 만큼 수사의 의식의 힘도 커지는 것이다.

원래 그 의념 공간에는 영근 이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사가 경지가 올라가면 의념 공간에 보관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생기기도 하는데, 대부분 영혼과 관계된 것들이다.

령(靈) 계열에 속한 것을 종속시키면 그것을 의념 공간에 두는 것도 가능해 진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의념 공간을 건우의 아공간처럼 창고로 쓸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으면 수사들이 공간낭(空間囊) 따위를 만들어 들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격벽을 만든다. 여덟 영근들을 모두 각각의 공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거다.’

건우는 아공간에 의식을 집중해서 여덟 영근들을 독립적인 공간에 두도록 공간을 나누었다.

강해진 의식의 힘 때문인지 공간 분할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문제가 생겼다.

수미산겨자씨.

그것이 문제였다.

어떤 경우에도 수미산겨자씨는 최소 하나의 영근과는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다.

‘이거 재미있네.’

건우는 여덟 개의 영근을 각각의 공간에 격리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 원하는 영근과 수미산겨자씨를 연결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수미산겨자씨가 있는 공간은 다른 공간, 즉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두거나, 연못을 파거나 약초를 심은 곳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결국 영근들만 따로 방을 만들어 밀어 넣은 거네요?

루야가 건우의 말을 듣고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 영근들 중에 하나는 항상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 거지.”

- 그야 당연하지 않을까요?

“당연해?”

- 여기가 건우님의 의념공간이잖아요. 그리고 수도자의 의념 공간은 곧 영근이 있는 공간이고요.

“그러니까 의념 공간에 영근 자체가 없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네?”

- 최소 하나는 있어야 하는 거죠. 아 참, 그런데 여러 개의 영근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는 것도 가능은 한 거죠?

“물론이지. 화영근과 수영근의 공간을 한꺼번에 열 수도 있지.”

-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아니시죠? 정말 그랬다간 두 영근이 충돌을 할 거라고요.

“나도 알아. 그런 식으로 상극의 영근을 품고도 무사한 수사는 거의 없다지? 그래서 목영근과 토영근, 혹은 수영근, 뭐 그런 식으로 함께 수련을 할 생각은 있어도 상극으로 그럴 생각이 없어.”

- 네, 잘 생각하셨어요. 그나저나 이젠 수련이 엄청나게 쉬워지겠네요?

팔영근 재질을 지녔던 건우가 졸지에 일영근 재질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수련 속도든 수련 성취든 비교 불가의 수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아.”

하지만 건우의 표정에는 약간의 어둠이 남아 있었다.

- 왜요? 무슨 문제가 있어요?

루야가 이 좋은 상황에 뭐가 문제냔 듯이 물었다.

“그래도 영근이 여덟 개란 사실은 변하지 않지. 그 여덟 개 중에서 하나면 죽어라 성장시키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지만 언젠가 방치해 뒀던 영근들이 문제가 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거든.”

- 결국 다른 영근들도 공평하게 성장을 시켜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덟 개의 영근을 분리시켜 따로 성장시킬 수 있게 된 건, 엄청난 일이지.”

- 그렇죠. 그런데요, 그거보다 전 수미산겨자씨, 그게 더 궁금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가만히 참으면서 기다렸는데, 이젠 안 되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건우가 수미산겨자씨와의 연계를 마치고 정신을 차린 후, 정말 궁금했던 것.

루야는 결국 참지 못하고 건우에게 묻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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