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5화 (25/499)

24. 원숭이를 줍줍

머리를 두드리는 인간의 손바닥.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혈모원 우두머리지만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자 분노가 치솟았다.

힘도 약하고 수련 경지도 낮은 놈이 감히!

수도계의 질서를 위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우끽!

혈모원 우두머리는 사력을 다해서 왼팔을 휘둘러 인간을 공격했다.

“어쭈?”

하지만 그 공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건우가 슬쩍 몸을 날려 혈모원 우두머리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이게 죽을라고!”

물론 공격을 피했다고 허허 웃으며 이해하고 넘어갈 건우는 절대 아니었다.

“어디 오늘 한 번 죽어보자. 원숭이 새끼!”

건우는 곧바로 영기를 끌어 올린 상태로 혈모원 우두머리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겨 혈모원 우두머리를 질질 끌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려면 구궁연무살진 안에서는 조금 곤란했다.

늑대 새끼가 남아 있으니까.

우끼?

여기는 어딘가?

구궁연무살진 밖으로 끌려 나온 혈모원 우두머리는 순식간에 바뀐 주변 환경에 깜짝 놀랐다.

- 우와, 직접 보니까 생각보다 크네요.

루야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공간 입구를 혈모원 우두머리에게 가깝게 붙여서 만들었더니 루야가 바로 눈앞에서 혈모원 우두머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혈모원 우두머리의 눈동자 앞에 서 작은 빛 덩어리 모습의 루야가 반짝거렸다.

당연히 아공간 밖에 있는 혈모원 우두머리는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서둘러야 해. 이놈이 힘을 회복하면 곤란하니까.”

아공간에 잠시 들어왔던 건우가 입구에 있는 루야를 슬쩍 밀어내며 밖으로 나가 우두머리의 얼굴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공간에서 뭔가를 불러내어 손에 들었다.

영기가 가득 담긴 검은색의 가죽 조각이었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그것이 동족의 가죽으로 만든 것임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그것이 이마로 다가오자 무척 불길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우끼끼끼끽!

혈모원 우두머리는 다가오는 부적을 보고 급하게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건우가 검은 가죽으로 만든 부적을 혈모원 우두머리의 이마에 붙였다.

“자자, 조용히 하자. 응? 새끼가 성격이 더러워요. 이건 나중에 꼭 고쳐야겠다. 성질이 급하면 뭔 일을 시켜도 안심이 안 되니까.”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이마에 붙인 검은 부적의 변화를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요 새끼, 넌 이미 끝났어 임마. 너한테 해골 선배의 초상화하고 단약의 최면 효과가 아직 남아 있거든? 거기에 요 부적을 더하면 지금처럼 기력을 잃은 상태에서는 저항을 못하지. 자, 지금부터 나하고 본격적인 협상을 해 볼까? 뭐 너에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겠지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감고 검은색 옥간에서 배운 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대의 정신에 파고들어 의사소통을 하는 술법이었다.

지금 혈모원 우두머리의 이마에 붙은 검은색 가죽 부적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움직임을 제약하는 효과를 가졌다.

하지만 그 이외에 지금 건우가 펼친 술법을 돕는 효과도 함께 들어 있었다.

= 죽을 테냐? 살 테냐?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정신에 파고들어 그 영혼에 대고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건우의 머릿속에 혈모원 우두머리가 살고 싶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영혼의 외침이라 혈모원 우두머리는 거짓을 말하지 못했다.

= 살고 싶다면 네 영혼의 반을 내 놓거라.

건우는 그런 혈모원 우두머리에게 분혼(分魂)을 요구했다.

분혼은 혼을 나누는 것을 말하지만 그렇게 나누어진 영혼의 조각을 말하기도 한다.

영혼은 곧 수도자의 몸이나 다름이 없다.

그 일부를 맡긴다는 것은 상대에게 목숨 줄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물론 수련 경지가 높아지면 작은 분혼 따위야 잃어도 별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까마득한 수련을 쌓은 고계 수사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런 고계 수사라 하더라도 분혼을 내어주고 일정한 금제를 받으면 분혼을 가진 이가 그 수사의 영혼 전체를 소멸시키는 금제를 걸 수도 있다.

그래서 영혼을 다루는 것은 모든 수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지만 또 경계해야 할 수법이기도 했다.

끼이이기기 끼이이이!

분혼을 요구하는 건우의 조건에 혈모원 우두머리는 곧바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분혼을 준다는 것은 곧 상대의 노예가 된다는 의미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영혼을 놓고 하는 거래는 천지 법칙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드러난다.

천지 법칙을 속이고 일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천지 법칙이 혈모원 우두머리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건우의 조건을 들어줄 경우 어떤 상태가 될 지를 알려주는 것 뿐.

= 싫다면 오래 끌 것 없이 죽여주마.

건우는 혈모원 우두머리에게 시간을 오래 주지 않았다.

이마에 붙인 부적은 오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료가 부족해서 어설프게 만든 것이라 언제 술법이 깨어질지 몰랐다.

대답을 듣지 못하고 정신 연결이 끊어지면 다시 부적을 써야 한다.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는 부적의 여유도 고작 세 장이 남았을 뿐이다.

이후에 늑대까지 어찌해 보려면 부적을 아껴야 한다.

= 결정해라!

건우의 재촉이 다시 한 번 혈모원 우두머리의 영혼을 흔들었다.

축기기 초기의 혈모원 우두머리가 평소라면 이런 수작에 당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 해골 수사의 최면대법의 영향까지 겹쳐서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였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일반적인 수사라면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기야 하겠지만 영혼은 윤회를 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혈모원 우두머리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죽음보다는 삶.

그것은 모든 짐승들의 본능이었다.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정신 연결에서 빠져 나왔을 때, 건우의 눈앞에는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이 두둥실 떠 있었다.

붉은색의 핏물로 이루어진 듯 한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은 크기가 건우의 손가락 정도였다.

건우는 그것을 곧바로 아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원래는 봉인함에 넣어야 하지만, 건우에게 마땅한 자원이 없어서 봉인함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당분간 원숭이의 분혼을 의념 공간에 보관하기로 한 것이다.

분혼 상태를 그냥 밖에 내돌릴 수는 없으니 건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었다.

“얌마, 일어나 봐라.”

분혼을 아공간에 넣은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이마에 붙은 부적이 가루가 되는 것을 보고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그 이마를 손바닥을 두드렸다.

끼이이이 끼이이!

혈모원 우두머리가 그 충격에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이 들었다.

건우는 혈모원 우두머리가 깨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활짝 웃었다.

일이 잘못되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는데 그 위험은 피한 것 같으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반갑다 새꺄!”

우끼끼끼끼 왁왁왁왁!

‘주인님을 뵙습니다.’

건우의 인사에 혈모원 우두머리가 활짝 웃는 얼굴로 뭐라고 떠들었다.

혈모원의 말이지만 건우는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알아들었다.

분혼을 가지고 있으니 혈모원 우두머리의 뜻이 자연스럽게 건우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건우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분혼을 빼앗기고 노예가 된 존재의 그런 변화는 당연했다.

건우는 그것까지 확인하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이로서 섬에 있는 혈모원 무리가 모두 건우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좋아. 일단은 돌아가서 몸조리부터 하고, 몸이 나으면 다시 나를 찾아 와. 보름 정도 시간을 주면 되겠지?”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를 보며 물었다.

건우의 말도 지구에서 쓰던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번엔 혈모원 우두머리가 그 말의 뜻을 고스란히 알아들었다.

그 역시 분혼의 힘이었다.

분혼을 의념 공간에 가지고 있다는 것은 혼의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거리가 멀어지면 소통이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가까이 있을 때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이 분혼으로 이루어진 주종 관계다.

끽끼기기끽! 끼이익!

‘알겠습니다. 주인님.’

혈모원 우두머리는 건우의 명령을 받아들여 곧바로 혈모원 무리의 둥지로 돌아가려 했다.

“아, 가기 전에 너. 이름부터 하나 정하자. 뭐가 좋으려나?”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중얼거렸다.

6미터 크기의 붉은 털 원숭이.

고릴라 보다는 침팬지에 가까운 체형을 지닌 원숭이였고, 침팬지 보다는 인간에 조금 더 가까운 체형으로 봐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음, 아니다. 다음에 오면 이름을 정해주마. 나 혼자 정했다가는 또 삐질 녀석이 하나 있으니까. 오늘은 그만 가 봐라.”

건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루야를 떠올리고는 혈모원 우두머리의 작명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래도 영혼의 동반자라고 하나 있는데,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무시하면 안 될 거 같았다.

* * *

“자, 그럼 이제 늑대 놈이 문젠데.”

건우는 혈모원 우두머리가 몸조리를 위해 떠나자 곧바로 구궁연무살진 안으로 의념을 펼쳐 상황을 살폈다.

진을 만든 사람이 그였으니 그 진의 기운에 자신의 의념을 섞어 넣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걸 못했으면 진 안에서 녹각독랑과 혈모원 우두머리가 쫓고 쫓기는 과정을 지켜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힘이 넘치네.”

건우는 구궁연무살진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녹각독랑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기습으로 부상을 입었던 혈모원 우두머리와 달리 건강한 녹각독랑은 진 안에서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원기 왕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래선 당분간은 잡으러 들어가기 어렵겠다. 괜히 법부 따위를 써서 저 놈을 잡을 이유는 없지. 그냥 둬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지쳐 쓰러질 놈인데.”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건우가 예상하는 시간은 짧아도 몇 달, 길면 년 단위였다.

하지만 대천세계에 온 후로 건우는 그 정도의 시간은 그리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그마치 겁이란 시간 단위가 실제로 의미를 지니는 세상이라지 않는가.

“음, 그럼 저 놈은 시간이 해결하도록 두고, 그 사이에 나는 다시 수련이나 해 볼까? 이거 연신기 완경이라지만 영근들은 아직도 중기 수준도 안 되니 원.”

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아공간 입구를 열고 들어갔다.

건우가 사라진 계곡에는 자욱한 안개만 가득했다.

* * *

- 어서 오세요. 계획 성공을 축하드려요.

건우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루야가 밝은 빛으로 반짝 거리며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

“어떻게 알았···. 아니구나 저 분혼을 봤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겠네.”

건우는 루야가 바깥 상황을 어떻게 짐작했나 물어보려다가 루야 곁에 있는 붉은 원숭이를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루야의 곁에 붙어 있는 것은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이었다.

피로 만든 원숭이 인형처럼 생긴 분혼은 두 눈을 감고 허공에 뜬 상태로 루야를 따르고 있었다.

건우는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을 만들 때, 의식을 잠재운 상태로 만들었다.

따로 분혼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분혼을 깨워서 수련을 시킨다거나 하는 배려는 아직 고려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분혼을 가지고 혈모원 우두머리를 종으로 부리려는 것 뿐.

물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분혼을 깨워서 수련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나중에나 생각해 볼 문제였다.

“그거 어디 잘 보관해 둬라. 그렇게 끌고 다니지 말고. 인형 아니다.”

건우는 그렇게 루야에게 분혼의 관리를 맡겼다.

어차피 아공간 내에 있을 테지만 쓸 곳이 없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곳에 두자는 생각이었다.

- 네, 저도 인형 놀이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냥 처음 보는 분혼이라 조금 살펴볼까 하는 거죠. 볼 거 보고 나면 잘 간수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럼 나는 또 당분간 수련을 좀 해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의 수련 장소인 수미산겨자씨 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해골 수사가 깔고 앉아 있던 옥방석이 놓여 있었다.

그 방석은 수련자의 정신을 맑게 해 주고, 집중력도 놓여주는 효과가 있어서 수련에 도움을 주는 법기였다.

그런 효과가 있으니 안 쓸 이유가 없었다.

건우는 그 방석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어? 이건 또 뭐야?

그런데 건우는 눈을 감고 의념을 불러일으키자마자 깜짝 놀라며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수미산겨자씨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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