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어라라? 일타이피?
끼이이이이 끽끼끼익!
우두머리 혈모원도 해골을 만나려는 충동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축기 초기의 경지라고 해도 종족 특성으로 제법 머리가 트인 우두머리였다.
동굴 속의 해골이 자꾸 떠오르고, 그것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뭔가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끼끼끼끽! 왁왁왁왁!
우끼끼끼, 끼이이익끼!
하지만 견딜 수가 없다.
우두머리는 자신의 거처에서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런 우두머리 옆에서 서열 2위의 암컷이 덩달아 안절부절 못하며 우두머리를 따라서 우왕좌왕했다.
우곽곽곽과곽! 꾸이이이익!
퍼더덕! 퍼벅! 우당탕탕!
이끽끼끼끼이이이!
그러던 어느 순간 우두머리가 암컷에게 팔을 휘둘러 벽으로 밀어 처박아 버리고는 우당탕탕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대한 나무의 안쪽에 만들어진 거처에서 뛰쳐나온 우두머리는 곧바로 북동쪽으로 향해 내달렸다.
우두머리의 머릿속에는 오직 해골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동안 그런 충동을 참아온 것이 더 큰 화가 되어 한순간 폭발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달려가서 해골을 만나봐야 변할 것은 없었다.
초상화와 단약으로 각인된 충동만 남았을 뿐, 그것이 우두머리에게 크게 해가 될 것은 아니었다.
참지 않고 해골에게 다녀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조금 머리가 트였다고 저항하다 부작용이 커진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마침 그 즈음, 건우는 구궁연무살진의 보완을 마치고 마지막 실험만 남겨둔 상태였다.
건우는 자신이 직접 살진 안으로 들어가 진의 위력을 살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궁연무살진을 보완했다곤 하지만 사실 대상을 죽이는 기능은 되살리지 못했다.
진법의 힘으로 안개를 만들고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대상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살진의 효과가 미약하게 생겨나서 진법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하면 이십사주환상대진에 갇힌 것처럼 정혈이 고갈되어 죽을 수는 있었다.
“아자자, 그럼 이제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볼까? 어차피 구궁진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이야 진법을 배우기도 전부터 알아냈던 거니까 위험할 일도 없을 테고.”
건우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밖에서 진의 완성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가 만들고도 미덥지 않아서 살짝 망설이며 진 안으로 발을 들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인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큰마음 먹고 진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건우.
하지만 갑자기 사라진 건우의 모습은 진 안이 아니라 아공간 안에서 나타났다.
- 무슨 일이에요? 진법 확인은 벌써 끝난 겁니까?
아공간으로 들어서자 루야가 건우를 맞이하며 물었다.
생각보다 진법 확인이 빨리 끝났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거 아냐. 이리 와서 이거 봐봐.”
건우는 아공간 입구를 만들어 투명하게 하며 루야를 불렀다.
- 뭔데요? 뭘 보라고요?
루야가 쪼르르 다가와 건우의 얼굴 옆에서 아공간 밖을 내다봤다.
- 어? 저거 원숭이 대장이죠?
루야가 계곡 안으로 달려오는 혈모원 우두머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마침, 내가 진법을 완성하고 들어가서 확인을 하려는데, 느낌이 팍하고 온 거지.”
- 저 원숭이가 오고 있다고요?
“그렇지! 계곡 전체에 펼쳐 놨던 의식에 저게 딱 걸린 거지. 뭔 일인지 기운을 숨기는 게 아니라 팍팍 뿜어 가면서 달려왔다니까.”
- 그래서, 뭔가 온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아공간으로 튄 거네요?
“응!”
- 잘 했습니다. 그런 태도, 좋은 겁니다.
“의외다? 또 쫄보니, 개복치니 하면서 놀릴 줄 알았더니?”
- 무슨! 이 대천세계가 얼마나 험한 곳인지 깨닫지 않았습니까? 깨달은 것이 있으면 행동도 달라져야 하는 거죠. 앞으로도 최대한 사리세요. 두 번 사리세요.
“뭐, 니가 그러니까 이상하긴 하다만. 아무튼 그 말, 기억해 두마. 어라? 저건 또 뭐야? 저게 왜!?”
건우가 루야에게 그렇게 대꾸를 하다가 아공간 밖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왜 갑자기?
루야도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크와와왕! 우끽! 우끽끽!
쿠롸롸뢍! 커거겅! 이끼끽!
우두머리 혈모원은 미친 듯이 달려오다가 구궁연무살진 앞에 와락 멈췄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태에서도 그곳에 있는 안개지역에 대한 두려움을 기억해 낸 것이다.
우두머리 혈모원은 곧바로 안개를 피해서 절벽을 타려 했다.
그래서 긴 팔을 뻗어 절벽의 돌출부에 매달려 몇 걸음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녹각독랑이 나타나 우두머리의 어깨를 물고 구궁연무살진으로 떨어져 버렸다.
건우나 루야도 녹각독랑의 등장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이게 정말 무슨? 늑대 나타난 거 알았습니까?
“알았겠냐?”
- 하긴.
“그래도 이거 일타쌍피 아니냐? 개이득인 거지.”
- 그런 걸까요?
“두 마리가 한꺼번에 진에 빠졌잖아. 그것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놈들이.”
-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죽도록 싸우다보면 힘이 빨리 빠질 거고, 그렇게 되면 적당한 때에 나가서 줍줍하면 되는 거지.”
- 원숭이는 줍줍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치고, 늑대는 어쩔 건데요? 생각도 못했던 건데요?
“으음. 그거야 뭐, 지금부터 고민을 해 보면 되는 거지. 그리고 일단 저것들이 지치면 원숭이라도 먼저 줍고, 그 다음에 늑대 놈을 어째볼 수도 있는 거고.”
- 하긴, 원숭이는 챙기고, 늑대는 그대로 죽을 때까지 둬도 되긴 하겠네요. 확실히 일타쌍피! 축하할 일이네요.
“그렇지? 히야, 일이 또 이렇게 되네? 대천세계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 거 같다. 하하하하.”
* * *
물어뜯긴 어깨가 아프다.
늑대 놈의 기습에 물린 상처는 독이 퍼져서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다.
잠시 쉬면서 영기를 돌리면 나아질 테지만 늑대 놈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그럴 여유가 없다.
짙은 안개 덕분에 늑대를 피할 수는 있지만 수시로 놈과 마주치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언제 늑대 놈의 이빨에 물어 뜯길지 모른다.
그래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이런, 또 다시 안개 속에서 늑대 놈이 나타났다.
크와와왕! 우끽!
* * *
원숭이 놈의 행동이 재빠르기도 하다.
애초에 어깨를 물었을 때,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하필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놈의 어깨를 놓치다니, 그것만 아니었으면 이미 원숭이 놈의 머리뼈를 씹고 있을 텐데.
그나저나 이 안개는 무척 이상하다.
보아하니 일정한 범위에 나와 원숭이 놈을 가둬 놓은 거 같다.
어디로 움직이든 원숭이 놈을 만난다.
게다가 아무리 달려도 안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기이한 능력은 요수들이 가끔 타고 나는 것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근처에 이런 능력을 쓰는 요수는 없는 걸로 아는데,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당장 이 안개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원숭이 놈과 내가 좁은 곳에 갇혀 있다는 것이 도리어 나쁘지 않다.
일단 원숭이 놈부터 잡아 죽이고, 이후에 안개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원숭이 놈이다!
크와와와왕! 우끽! 우끽!
* * *
“킥킥킥!”
- 그 웃음은 뭡니까? 채신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체통을 좀 지키십시오.
“신나지 않냐? 저기 봐라. 조금만 더 있으면 원숭이 새끼 늑대한테 잡아먹히겠다.”
- 벌써 한 달이나 버텼습니다. 저 정도면 엄청 버틴 거 아닙니까?
“솔직히 나는 여기 대천세계에 온 후로는 시간 개념이 좀 이상한 거 같다. 한 달?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죽어라 쫓고 쫓기는 시간이 한 달이야. 그게 말이 되냐?”
- 영기를 품은 괴수들 아닙니까. 일반적인 동물로 보면 안 되는 거죠. 저것들 기본 수명이 500년은 넘는 놈들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 좁은 곳에서 한 달 동안을 쫓고 쫓기는 게 말이 되냐?”
- 진법 안쪽이니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따지십니까? 어서 나가서 저 원숭이나 줍줍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독기가 덜 빠진 거 같은데?”
- 그러다가 늑대 뱃속으로 들어가면 어쩌려고요? 그 때, 후회해도 늦을 거란 생각은 안 드십니까?
“늑대 놈이 이빨을 콱 박아도 어떻게든 빼 올 자신은 있다. 그러니 좀 더 두고 보자.”
건우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루야를 설득했다.
그리고 이런 건우의 결정으로 우두머리 혈모원은 다시 닷새를 더 녹각독랑에게 쫓겨 다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녹각독랑에게 팔을 물려서 도망도 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건우가 움직인 것은 그 때였다.
* * *
크르르르릉! 끼이이 끼익!
녹각독랑에게 오른쪽 팔을 물린 혈모원 우두머리가 죽는 소리를 냈다.
또 그러면서도 왼쪽 주먹으로 녹각독랑의 머리를 후려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퍽! 퍽! 퍽! 퍼억!
하지만 오랜 시간 쫓기며 대부분의 기력이 쇠진한 혈모원 우두머리의 주먹은 녹각독랑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크와와왕 크와왕! 빠드드득!
끼이이이이익!
녹각독랑이 혈모원 우두머리의 팔을 문 상태로 머리를 흔들었다.
혈모원 우두머리의 팔에서 뼈가 씹히는 소리가 나고, 혈모원 우두머리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혈모원 우두머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애처로이 녹각독랑을 쳐다보고 있었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은 괴수들 사이에서 특별한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늑대가 원숭이를 잡아먹는 일은 흔하다.
또 어린 늑대를 원숭이가 나무위로 끌고 가서 잡아먹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것이 혈모원과 녹각독랑 사이에서 오래도록 벌어진 일이다.
오늘 혈모원 우두머리가 녹각독랑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도 형세가 그러하니 피할 길이 없음이다.
우끼끼끼끼. 끼끼끼.
그래도 잘 살았다.
다른 혈모원들에 비해서 영기를 잘 느끼는 체질로 태어나 우두머리로 거칠 것 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혈모원 우두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련을 놓았다.
녹각독랑도 그것을 느꼈는지 집요하게 물고 있던 팔을 놓고 혈모원 우두머리의 목을 노려 아가리를 내밀었다.
“야, 그건 아니지. 그거 내 거거든?”
그런데 그 순간 뜻은 알 수 없지만 익숙한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녹각독랑에게 날아들었다.
콰과광!
케겡 케게게겡!
순간 독각녹랑은 혈모원 우두머리의 목을 물기위해 달려들던 속도보다 빠르게 튕겨나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눈빛으로 뭔가가 날아온 방향으로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
“우와, 이거 화끈하네. 쩝.”
그곳에는 건우가 허공에 날리는 가루를 아까운 듯이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얌마. 지금 내가 쓴 게 뭔지 아냐? 모르지?”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얼굴 앞으로 다가와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하지만 당연히 혈모원 우두머리는 건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영기를 이용해서 의념으로 뜻을 전달한 것도 아니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마, 그게 법부라는 거다. 응? 나같은 저계 수사가 경지보다 높은 술법을 쓸 수 있도록 부적에다가 응, 능력을 부여해 놓은 거. 그게 법부야. 그럼 그 법부가 얼마나 귀한 거겠냐? 응?”
건우가 혈모원 우두머리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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