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2화 (22/499)

21. 아낌없이 주는 선배님, 고맙기가 고맙기가!

“자자, 이걸 봐라. 공간낭에서 얻은 공법이며 술법, 연단법, 제련술이 얼마나 많아. 이걸 좀 더 익혀서 만반의 대비를 하고 해골 형님을 만나 봐야지.”

- 그럼 그렇지. 건우님이 속 시원하게 들이받을 리가 없지.

“뭐? 그래서 뭐?”

- 아뇨. 정말 대단하다고요.

“시끄럽고, 자 봐봐. 이거 녹색 옥간엔 연단술이 초급부터 고급까지 쫘악 정리가 되어 있다.”

- 연단술은 노가다라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재료도 엄청 필요하고?

“그렇지. 그래서 당장 수련은 어려우니 미뤄두고. 청색 이건 제련법. 법부, 법기, 괴뢰 같은 걸 만드는 건데 수준이 높진 않아. 해골 선배는 이쪽으론 별로 재주가 없었나봐. 일단 기초는 되니까 나중에 보기로 하고. 다음은 백색, 이건 완합종의 수련 공법과 그에 맞춘 술법들이 들었지.”

- 그걸 익히면 되겠네요.

“그렇지. 지금 당장은 이게 제일 도움이 될 거야.”

- 마지막으로 붉은색 옥간은요?

“음. 이게 문제야. 아무래도 해골 선배가 이거 때문에 골로 간 거 같단 말이지.”

- 해, 골로 갔다고요?

“······. 우린 코드가 비슷한 거 같다. 아재코드.”

- 서로 아픈 덴 찌르지 말자는 거죠? 저도 자괴감 느껴요.

“음, 없던 일로 하고. 붉은 옥간에 대해서 알아보자.”

- 네, 그러죠.

“여기 들어 있는 내용은 혈기를 이용한 수련 공법이다. 이걸 익히면 피를 이용해서 영체를 응결할 수 있지.”

- 피로 영체을 만든다고요?

“원래 영체란 것이 영근을 바탕으로 그 속성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거다. 그냥 영기만 뭉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따지고 보면 영근이 영체로 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 그럼 수사들마다 영체들이 제각각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요?

“영체가 곧 그 수사라고 보면, 그 수사의 대표적인 수련 공법으로 영체가 만들어진다고 보면 되는 거지.”

- 그럼 건우님이 그 수련 공법을 익히면 진염결보다 더 높은 경지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해골 수사가 성단기에서 포기하고 그 혈기 어쩌고 하는 수련 공법을 택할 걸 보면 말이죠.

“그건 잘 모르겠다. 진염결로 영체기에 오르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 옥간의 새로운 공법을 익힌 것은 분명한데, 결과는 너도 알다시피 좋지 않았잖아.”

- 그건 그러네요. 그렇게 또 해골 수사께서 건우님께 교훈을 주시네요.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된다?”

- 그런 거죠. 그런데, 아까 해, 골로 갔다는 드립에 빵 터질 뻔 했죠? 분명 그랬던 거 같은데.

“하아, 너는 그걸 묻고 싶냐?”

- 아니, 그래도오!

“시끄러! 자괴감들어!”

- 아씨, 그건 내가 한 말이었고요!

* * *

툭, 통톡토구르르르.

“아, 미안합니다. 이게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건우는 해골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으로 나뒹구는 것을 보며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해를 좀 해 주십시오. 그럴 수 있죠? 보세요. 제가 이렇게 벌거숭이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배께선 이미 승천을 하신 마당에 그런 옷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건우는 혼잣말을 하면서 길게 늘인 봉으로 해골이 입고 있는 옷의 목을 걸어 올렸다.

와르르르르르.

옷 안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해골이 우수수 무너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건우는 슬쩍 과장되게 어깨를 움츠렸다.

“웁스. 이거 참, 자꾸 미안하게 만드시네. 그래도 제가 나가는 길에 유골은 잘 수습해서 묻어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다. 생각해보니까 솔직히 그것도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건우는 또 다시 주절주절 혼잣말을 하면서 봉에 걸린 옷을 끌어 당겨 의념으로 훑어보고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게 참, 굉장합니다. 선배님. 어떻게 다른 것들은 세월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이 옷은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는지. 확실히 수만 년을 산다는 설상잠(雪桑蠶)의 실로 짠 것이 대단하긴 한 모양입니다.”

건우가 해골 수사의 장삼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에 대한 기록이 옥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해골 수사의 장삼은 완합종에서 기르는 특별한 누에에서 얻은 것인데, 그 누에의 이름이 설상잠이었다.

설상잠은 설상, 즉 눈처럼 흰 뽕나무 잎을 먹고 사는 누에였다.

설상잠은 설상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완합종에서 설상, 즉 눈뽕나무의 숲을 찾아서 설상잠을 길렀다고 했다.

그 설상잠의 실로 천을 짜면 무척 질길 뿐만이 아니라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는데, 무척 귀해서 수십 년에 한 벌의 옷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골 수사는 완합종에 적을 올리면서 그 선물로 설상잠의 실로 짠 장삼 한 벌을 받았다.

그것이 지금 건우가 해골에서 벗겨낸 그 옷이었다.

풀럭! 풀럭! 탈탈탈!

건우는 애써 장삼의 먼지를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원래 설상잠의 실로 만든 옷에는 때가 타지 않고, 먼지도 잘 앉지 않는다.

하지만 해골이 걸치고 있던 것이라 털어내는 흉내라도 내야 할 듯 했던 것이다.

기분 문제 아닌가.

“음, 좋은데?”

푸른색 바탕에 흐린 은색과 금색의 무늬가 아지랑이처럼 천 위를 감돌았다.

게다가 어깨며 소매 끝에는 같은 재질의 천으로 이리저리 수를 놓거나 모양을 내었다.

넓게 펼쳐 등을 보니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커다란 학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 학이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때로는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서 건우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건 착시 현상 같은 건가?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새와 구름의 모양이 바뀌는? 거참 신기하네.”

건우는 한동안 장삼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뭔가 현묘한 변화가 그 속에 담겨 있는 듯 했다.

“이것도 좀 연구를 해 봐야겠네.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벌거숭이부터 면해 보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푸른 장삼을 휘리릭 돌리며 몸에 걸쳤다.

“캬아. 옷이다. 옷이야. 아주 그냥 옷이 날개네 날개야. 하하하하.”

정말 오랜만에 걸친 제대로 된 옷이었다.

건우는 절로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건우는 곧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시시때때로 일희일비 하는 것은 이곳 대천세계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얼마 되지 않은 경험으로도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지금도 감정을 최대한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이젠 저 탁자하고 방석만 남았네?”

건우는 뼈무더기 아래의 방석과 그 옆에 있는 나무 탁자를 보았다.

탁자는 서랍도 없이 간단하게 생긴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세월의 흐름에도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다만 옥간에서도 그 탁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세월을 이긴 것이니 평범한 나무는 아닐 것이다.

약간의 영기를 품고 있으니 아공간에 넣을 가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옥으로 만든 방석도 마찬가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영기를 품었으니 일단 챙기기로 했다.

“그럼 선배의 유골은 어쩌나?”

아까는 될 수 있으면 묻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한 문제겠는가.

“솔직히 이건 선배 잘못입니다. 그러기에 왜 그런 걸 남기고 그랬습니까?”

건우는 책임을 해골 수사에게 떠넘겼다.

즉, 해골 수사의 유골을 순순히 묻어주지 않겠단 말이기도 했다.

성단기 완경에서 영체기를 노리던 수사의 유골이 평범할 수는 없다.

건우가 얻은 검은색 옥간에는 고계 수사의 뼈를 활용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었다.

뼈로 법기를 만들어도 되고, 괴뢰를 만들어도 된다.

그게 아니면 뼛가루를 만들어 여러 용도로 쓸 수도 있다.

그러니 건우가 해골 수사의 유골을 묻어주는 대범함을 보이긴 힘든 상황인 것이다.

“선배 수사께선 모르시겠지만 제가 무척 가난합니다. 그래서 선배의 뼛가루도 귀하게 여겨야 할 상황이지요. 솔직히 제가 아직 연신기 완경에 불과합니다.”

건우가 슬금슬금 해골 수사의 뼈를 한 곳으로 밀어내고 옥방석과 나무 탁자를 챙겨 아공간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축기기에 쉽게 오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정말 어렵더군요. 더구나 제가 영근이 여덟이나 됩니다. 이 팔영근이란 게 참 그렇더군요. 그 영근들을 모두 연신기 완경의 수준까지 만들어야 축기기에 도전을 할 수 있다지 뭡니까.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었지요.”

건우는 방석과 탁자를 아공간에 밀어 넣고, 마지막으로 남은 해골 수사의 뼈를 쳐다봤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연단술을 좀 해 볼까 합니다. 아, 제련을 통해서 법부나 법기도 좀 만들고 말입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선배의 뼈 하나까지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해를 해 주십시오.”

건우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아공간 입구를 열어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붉은 털이 달려 있는 가죽이었다.

예전 죽은 혈모원의 사체를 모아 놨던 것에서 가죽을 벗겨서 자루를 만든 것이었다.

그래도 영기를 품은 혈모원 가죽을 가공한 것이라 제법 질긴 자루였다.

건우는 그 자루에 해골 수사의 뼈를 하나도 빠짐없이 밀어 넣었다.

손을 대지 않고 의념으로 뼈들을 들어 올려 자루에 넣었다.

아직은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휴우, 이젠 볼 일은 끝난 거 같네. 남은 것은 대청에 붙어 있는 초상화인가? 그것만 처리하면 되겠군.”

그 초상화는 따로 쓸모가 없었다.

무슨 재료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화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었다.

그러니 흉한 것은 처리를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여기 들어온 것도 벌써 3년 정도 지난 건가? 참, 오래도 있었는데 경지는 전혀 오르지 못했네. 그것 참.”

건우는 혀를 차며 밀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니. 왜 또 금방 들어와요?

그리고 그 걸음은 밀실의 벽을 통과하는 순간 곧바로 아공간 안으로 이어졌다.

“왜긴? 몰라서 물어? 그 사이에 대청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가나? 여기서 확인을 하고 움직여야지.”

건우는 루야의 타박에도 당당하게 대꾸를 하고는 대청을 볼 수 있게 아공간 입구를 열고 은막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봐봐. 그 사이에 일이 있었잖아.”

그리고 건우는 의기양양하게 루야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청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망가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건우가 처리하려 했던 해골 수사의 초상화도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었다.

- 원숭이가 아주 난동을 부린 모양이네요. 그러면서 밀실엔 한 번도 안 들어왔다는 게 이상하네요.

“새끼, 겁 먹은 거지. 그래서 이쪽에서만 분풀이를 하고 밀실 안으론 얼씬도 안 한 거고.”

건우가 뻔히 짐작이 된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 그런 거 같네요. 그럼 이제는 뭐 하실거예요? 계획대로 점령전으로 가실 건가요?

점령전은 건우가 이곳 섬을 야금야금 차지하겠다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었다.

건우는 루야와 함께 이곳 섬을 차지해서 수련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되면 좋고, 아니면 숨고 하는 식의 계획이었지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