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형이 왜 여기서 나와?
- 뭐죠?
“뭐긴, 이동과 동시에 버로우지.”
- 그건 또 뭔 소리에요?
“벽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고. 그래서 곧바로 이곳으로 들어온 거지.”
- ······.
“뭘? 왜? 아, 말을 하라고!”
- 아닙니다. 잘 하셨네요. 항상 그렇게 몸을 사려야 하는 겁니다. 네, 칭찬합니다.
“정말 그렇게 말하려고 한 거지? 응? 그렇지! 라고 물을 줄 알았냐! 내가 모를 줄 알아? 쫄보라고 한심스럽게 쳐다본 거잖아!”
- 아닙니다.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밖에 뭐가 있는지 차근차근 입구를 돌려가며 확인을 해 보죠. 그러려고 한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내가 왜 곧바로 여기로 들어왔겠어?”
- 겁이··· 나서요?
“아, 씨···. 후우, 아니다. 보자. 뭐가 있는지.”
건우는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공간 입구를 열어 은막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제법 넓은 석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모원 우두머리의 체구엔 좁아 보였던 공간이 건우에겐 꽤나 넓은 곳으로 다가왔다.
- 해골이 있는데요?
“저거 입고 있는 옷 보여?”
옥으로 된 방석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해골은 인간의 것이었다.
그런데 건우는 그 해골의 옷을 먼저 지적했다.
- 저거 인물화에 있던 그 옷인데요?
루야도 곧바로 옷을 알아봤다.
대청의 벽에 있던 인물화, 그 사내가 입고 있던 옷을 해골이 걸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그 해골이 바로 이 계곡의 주인이고, 건우에게 기연을 준 선배 수사란 이야기였다.
“왜 여기서 죽어 있는 거지?”
건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해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그러게요. 다른 수련 공법을 익히기 위해서 떠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루야도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저 양반이 여기 이렇게 죽어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옥간에는 분명히 다른 수련 장소를 찾아서 떠난다고 했단 말이지.”
- 혹시 갔다가 다시 돌아온 걸까요?
“돌아왔는데 밖에 있던 것들을 그대로 뒀다고?”
- 죽을 곳을 찾아왔다면 굳이 준비해 뒀던 것들을 없앨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 그래요?
“어쩐지 저 해골하고 대면을 해야 할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 왜요? 이야기라도 해 보게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막 그러고 싶다니까. 가까이 가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고. 게다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 그게 이상할까요? 건우님이 저 해골이 남긴 것을 모두 얻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사실 고맙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대천세계에 그나마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저 선배 수사고 말이죠.
“확실히 그렇긴 하지. 그럼 나가 볼까?”
건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느껴지는 거부감을 툭툭 털어내며 아공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막 나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건우님? 건우님? 아니, 도대체 왜 저렇게 급하게 나가는 거야?
홀로 남은 루야는 갑작스런 건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루야가 아는 건우는 돌다리도 수십 번은 두드려보고 건널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너무 빨랐다.
너무 의외의 상황이라 루야도 건우를 말리지 못한 것이다.
* * *
아공간 밖으로 나온 건우는 해골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석실을 살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해골 옆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고, 거기에 주머니 한 개가 있을 뿐이었다.
천정과 바닥, 벽을 모두 살펴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건우는 천천히 해골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건우가 해골과 서너 걸음 거리로 가까워졌을 때였다.
갑자기 해골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났다.
“아씨, 이건 또 뭐야?”
건우가 깜짝 놀라며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갑작스런 빛에 본능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런데 눈을 가리기도 전에 건우의 머릿속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건우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웅얼거림이었다.
그렇게 잠시 건우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던 소리가 어느 순간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해골의 눈에서 나던 푸른빛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건우는 팔을 내리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혹시 자신에게 무슨 이상이 생겼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기를 돌리고 의념을 풀어서 자신의 몸을 살펴봐도 이상은 없었다.
내친김에 정신을 집중해서 의념 공간을 들여다봤다.
지금껏 수련을 하면서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아공간 안에서 수련을 했으니 밖에서 의념 공간을 살피는 일을 어떻게 해 봤겠는가.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의념공간에 루야가 보이고, 연단로가 보이고, 연못이 보였다.
그리고 수미산겨자씨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영근들도 보였는데 건우가 원하면 얼마든지 그것만 가까이 볼 수도 있었다.
루야는 건우가 밖에서 아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도대체 왜 갑자기 서두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평소 같으면 쫄보도 그런 쫄보가 없을 사람이, 뭔 일로 갑자기 밖으로 뛰어 나가? 아니, 도대체 뭐냐고. 제 정신이야? 아니, 정말 제정신 아닌 거 아냐? 아우, 밖을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겠네.
루야의 빛은 불규칙적으로 다급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루야의 혼잣말을 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평소에 아무리 아웅다웅해도 결국 루야도 건우를 걱정하는 것이다.
쫄보라고 하는 건 살짝 걸리지만 그 정도는 봐 주기로 했다.
어쨌건 의념 공간에도 별 문제는 없는 듯 하니, 굳이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는 듯 했다.
건우는 다시 정면에 있는 해골을 노려봤다.
의식을 풀어 확인하니 해골에서 흐릿한 영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특별히 활동적인 영기는 아니었다.
조금 전에 눈에서 빛이 날 때는 영기가 조금 강렬하게 뿜어졌는데, 지금은 흐린 영기만 남아 있었다.
건우는 해골을 노려보다가 해골 옆에 놓인 탁자에 눈이 갔다.
정확히는 탁자 위에 놓인 주머니였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그것은 손바닥 크기 정도로 납작한 상태였다.
건우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봉을 움직였다.
더는 해골에게 가까이 가기 싫으니 봉의 길이를 늘여서 주머니를 가지고 오기로 한 것이다.
건우의 영기를 받아 길어진 봉은 탁자 위의 주머니 입구를 묶은 수실의 고리 사이로 들어갔다.
봉의 굵기를 가늘게 하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주머니에 봉을 끼운 건우는 슬쩍 봉을 들어서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공간낭(空間囊)을 이렇게 구경하게 되네.”
건우가 봉에 걸린 주머니를 눈앞으로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아직 그것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았다.
봉으로 끌어 올 때에 별 일이 없었으니 괜찮을 거 같기는 하지만 건우가 얻은 옥간에는 수사들이 자신의 공간낭을 무척 아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공간낭을 열지 못하도록 금제를 걸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건우는 주머니가 공간낭임을 알아보고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단 킵을 해 두는 걸로.”
건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공간 입구를 열고는 공간낭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봉에 걸린 상태로 넣고는 봉을 줄여서 주머니를 안쪽에 떨어뜨리는 식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젠 저 양반인데. 아까도 별 문제는 없었으니 괜찮으려나?”
건우는 다시 봉을 길게 늘여서 탁자를 슬쩍 밀어보고, 해골의 옷자락도 톡톡 건드려봤다.
그렇게 몇 번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 그럼 저 양반이냐, 아공간에 넣은 주머니냐. 어떤 걸 먼저 봐야 하나?”
건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공간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뭐예요? 왜 갑자기 제 멋대로 행동을 하고 그러세요?
건우가 들어가자마자 루야가 쪼르르 다가와서 따지기 시작했다.
건우도 밖에서 루야의 혼잣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루야의 말처럼 자신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대천세계에 도착한 후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매사 조심 또 조심하는 편인데, 조금 전의 행동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 건우님도 평소하고 달랐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루야가 확인하듯 물었고,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랬다. 분명 내가 생각하고 결정했다 싶은데, 사실은 평소와 달랐다. 이상한 일이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걸음을 옮겨 수미산겨자씨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진염결을 돌리며 명상에 잠겼다.
자신에게 뭔가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제 연신기의 완경에 오른 건우였다.
그의 몸은 영기로 깨끗하게 씻겨서 범인 세상의 티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건우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씻어 내는 수련을 거쳐서 완전한 수도자의 몸을 만들었다.
당연히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한 올의 털까지도 모두 꿰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이상을 찾지 못했다.
건우는 결국 이상없음이란 결론을 내리고 연공수련에서 깨어났다.
- 괜찮은 거죠?
“그래, 아무 이상 없다.”
루야의 물음에 건우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반지로 만든 봉을 다시 길게 뻗었다.
이번에도 그 봉의 끝에는 공간낭이 걸려서 건우 앞으로 끌려왔다.
- 어쩌려고요? 그거 공간낭 아니에요?
루야가 물었다.
“맞아. 수사들이 여러 물건을 넣어 다니는 주머니. 안에 넓은 공간이 들어 있지. 수준이 낮은 저계 공간낭은 겨우 한 두 평 정도 크기지만 중계, 고계로 갈수록 넓어져서 높은 등급의 공간낭은 어지간한 성도 넣을 수 있다고 하더군.”
- 과장 아님?
“옥간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아는 거지. 나도 직접 본 것은 아니어서 모르지.”
- 하긴, 건우님이나 저나, 대천세계는 낯선 곳이죠. 그래서 그걸 어쩌려고 들고 그러세요?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요?
“역시, 직접 건드리는 것은 좀 위험하겠지?”
- 그래서요?
“여기서 거리를 두고 좀 살펴볼까 하는 거지.”
- 의념으로만 살살 건드려 볼 거라는 말이죠?
“그것도 사실은 좀 망설여지긴 하는데, 밖에 있는 해골을 직접 건드리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아서.”
- 어느 쪽이든 위험은 감수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그걸 건드려 보는 것이 나을 거 같아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 당연하죠? 그래도 여긴 건우님의 의념 공간이니까요. 이제는 거의 연화도 끝난 상태라 여기선 바깥보다 건우님의 의념의 힘이 몇 배는 강하게 작용하죠. 어떻게 따져 봐도 뭔 짓을 해도 여기서 하는 것이 나아요.
“뭐,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긴 하다. 좋아. 그럼 어디 확인을 해 보자. 요 안에 뭐가 들었나.”
건우는 봉 끝에 걸린 공간낭을 가부좌를 튼 자신의 바로 앞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의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공간은 건우의 의념 공간이라 이곳에서 건우가 낼 수 있는 의식의 힘은 밖에서보다 몇 배는 강력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공간낭으로 스미는 건우의 의념은 거침이 없었다.
“어라? 금제 따위는 없는 모양이네?”
잠시 후, 건우는 조금 허탈한 표정으로 공간낭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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