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9화 (19/499)

18. 잉어를 먹고 뿜뿜

- 저기에 뭐요?

루야는 연못을 가리키는 건우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봉탕을 먹고 싶은데, 불행하게도 봉은 없으니까 용이라도 잡아먹을까 하고.”

- 뭔 헛소리세요? 용이 여기 어딧다고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용봉탕이 원래 그거야. 잉어하고 닭하고 삶은 거. 저기 연못 안에 진짜 영물 잉어가 있잖아. 그거 잡아먹자고. 거기 잉어 여섯 마리가 모두 연신기 영물이라며?”

- 그렇긴 한데, 괜찮을까요? 엄청나게 오염된 상태일 텐데?

건우의 말에 루야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루야도 설마하니 그것들을 먹을 생각은 까맣게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천세계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이 가득한 연못이었다.

그 안에서 오래도록 절어 있었을 잉어를 먹겠다니, 결과가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몰라, 일단 꺼내서 확인부터 해 보고. 괜찮을 거 같으면 먹어보는 거지 뭐.”

- 그러다가 기껏 쌓은 수련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데요?

“그래서 말 했잖아. 아님 말고라고.”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연못을 향해 걸었다.

- 우아악! 움직일 때에는 미리 이야길 하란 말이지. 이 변태 노출증 #%&$%^야!!!

* * *

-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보면 모르냐? 잉어 먹잖냐.”

- 잉어를 어떻게 그렇게 먹습니까?

“그럼 내가 범인들처럼 이걸 비늘 벗기고 배 가르고, 내장 따고 뭐, 그렇게 먹어야겠냐?”

- 영물은 그런 식으로도 먹어지는 거였습니까?

결국 루야는 탁 터놓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건우가 연못에서 잉어 한 마리를 건져내서 수미산겨자씨 밑으로 돌아와 연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기를 품은 대상을 자신의 영기로 길들이는 것을 연화라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잉어를 대상으로 연화라니.

루야로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이게 따지고 보면 수도계의 피비린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긴 하지.”

건우가 무릎 위에 올리고 영기를 주입하던 잉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시 쉬면서 루야와 대화를 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루야는 조금 더 가까이 건우를 향해 다가갔다.

건우가 그나마 풀잎 치마라도 걸치고 있으니 가능한 행동이었다.

“우리 수도자들은 딱히 뭔가를 먹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숨을 쉬지 않아도 상관없지. 모든 것은 영기로 해결을 할 수 있으니까.”

- 그걸 누가 몰라요? 그래서 잉어를 먹는 것이 왜 심각한 문제인데요?

루야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가 잉어를 연화하는 것은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 이미 그렇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범인들이 잡아먹는 것보다는 깔끔해 보이는데 뭐가 문제죠?

“봐서 알겠지만 잉어는 생명첸데 그것을 연화해서 흡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그게 핵심이지. 그러면 다른 생명체라고 그게 안 될 이유가 있나?”

- 그, 그 말은 수도자를 그런 식으로 흡수할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안 될 이유가 있나? 인간 수사가 요족 수사나, 마족 수사는 물론이고 영물이나 기물이 영성을 얻은 수사들까지 잡아서 흡수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같은 종족의 수사라도 필요하면 잡아다 수련 자원으로 삼는다. 그게 수도계의 현실이지.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끔찍함을 이야기라고 하는 거다.”

- 그럼 그렇게 서로 잡아먹어서 남는 것이 없지 않을까요? 그런 식이면 수도자란 족속이 멸종을 해도 오래 전에 했어야 하는 거 같은데요?

“물론 그런 식으로 문제를 크게 일으키면 또 누군가 나서서 그런 자를 응징하지. 수사를 잡아먹는 식의 수련 공법은 많은 수사들이 경계하는 것이라 발견되면 공적이 되어 쫓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쫓기면서도 또 수련 경지가 올라가면 도리어 복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 그럼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 이곳에 있었다는 수사는 무슨 이유로 후배를 위한 안배를 한 거예요? 수도자들이 모두 서로 경쟁자라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게 또 간단하지 않지. 수도계도 항상 새로 들어오는 이들이 필요하지. 바닥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그걸 수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거지.”

- 뭔 소리예요?

“간단히 예를 들면, 경지가 높아지면 그만큼 수련에 필요한 자원들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걸 혼자서 구할 수가 있나? 가능해도 시간과 노력의 손해가 큰 경우가 더 많겠지. 그럴 때, 시장이라도 있으면 서로 교환을 하거나 거래를 할 수 있지.”

- 알았어요. 그러니까 수사들이 몽땅 씨가 마르면 도리어 수련이 힘들어진다는 말 아니에요?

“그래, 간단히 말하면 그런 거다. 그래서 수도계에선 오래전부터, 수도계 전체의 원기를 크게 상할 정도의 싸움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더군.”

- 그 말은 수사들이 씨가 마를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있다는 소리 같은데요? 그런 거 맞죠?

“이곳 세상의 수도계 역사에서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걸 경계하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는 이야기가 옥간에 있었다.”

- 알았어요. 그래서 결국 생명체도 연화를 해서 흡수할 수 있다는 거 아녜요?.

이야기는 다시 잉어를 주제로 돌아왔다.

“그래,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도 좋지. 또.”

- 또, 뭐가 더 있어요?

“비늘이 뜯기고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긁히는 것보다는 이쪽이 잉어에게도 덜 고통스럽겠지.”

- 확실한 거예요?

“음, 솔직히 연화를 안 당해봐서 잘 모르겠다.”

- 그럼, 아는 척 하지 마시고! 그런데 잉어를 잡아먹을 수 있기는 한 거예요? 둘이 비슷한 경지 아니에요? 그 잉어도 영기 수준으로 보면 연신기 초기 수준은 되는데요?

“대신에 정신을 잃었잖아. 그래서 의식적인 반항을 하지 못하지. 그저 몸에 쌓인 영기가 저항을 할 뿐이라서 오래지 않아서 연화에 성공할 수 있을 거다.”

- 그럼 다행이고요.

“나 잘 되는 꼴은 보기 싫은 거 아니었냐?”

- 누가 그래요? 건우님과 제가 한 몸인데 제가 왜 건우님이 잘못되길 바라겠어요?

“평소 하는 꼴을 보면 아니라고 못할 거 같은데? 음. 또 생각해보면 딱히 내 일을 방해한 적은 없는 건가? 도움이 되면 됐지.”

- 그걸 이제 알았어요?

“결국 문제는 고 주둥이구나? 공을 세워도 고 주둥이로 몽땅 까먹고 있었던 거였어.”

- 냅두세요. 어차피 건우님이 저한테 뭘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언제 날 잡아서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봐야겠다. 그 분이 어떤 의미로 너를 나한테 붙였는지 말이지.”

- 저도 모르는 걸 건우님이 어떻게 알아낼지 기대가 되네요. 알아서 해 보시죠.

“확실히 그 입이 문제야, 입이.”

건우는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잉어를 들어 무릎에 올렸다.

그리고 영기를 집중해서 잉어를 연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잉어의 내부에는 연못에 녹여 놓은 저 쪽 세상의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도리어 영기가 더욱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였다.

건우는 그 이유를 잉어의 영기가 연못의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서 변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고작 연신기의 잉어가 품고 있다고 보기에는 영기의 정순함이 무척 뛰어났다.

‘이유야 뭐든, 나한텐 좋은 거니까.’

건우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잉어의 연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잉어의 영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길들이는데 성공하고, 그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루야는 수미산겨자씨와 영근들의 변화를 살피며 그런 건우의 곁을 지켰다.

* * *

혈모원 우두머리는 몇 번이나 숲과 계곡을 오갔다.

자신이 계곡으로 들여보낸 그 인간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인간은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건우가 대청 입구에서 아공간으로 들어가 수련을 시작한 때의 일이다.

그래서 우두머리 혈모원은 드디어 인간이 이곳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슬그머니 누각 안까지 다시 들어갈 용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머리만 들이밀어 누각 안을 살폈다.

혈모원 우두머리에게 누각의 대청은 괴상하게 생긴 동굴일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혈모원 우두머리는 대청을 동굴로 생각하고, 저 멀리 동굴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다가 혈모원 우두머리는 슬금슬금 움직여서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혈모원 우두머리의 모습이 대청에서 사라졌다.

우끼끼끼.

우두머리 혈모원은 동굴의 숨겨진 공간에 들어와 불편하게 고개를 숙였다.

공간이 낮고 좁은 탓이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퍼질러 앉으면 거의 모든 공간이 가득 찰 정도로 좁은 방.

그곳에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은 새하얀 해골이 하나 있었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이곳 동굴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기억나는 해골이었다.

혈모원 우두머리는 대청에 들어오면 저도 모르게 이곳을 찾아 들어오곤 했다.

우두머리가 해골을 바라보자 해골의 두 눈에서 푸른 광체가 흐릿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혈모원 우두머리의 눈빛도 흐리멍텅하게 변했다.

우끼끼끼끼끼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혈모원 우두머리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흔들던 혈모원 우두머리는 해골을 보자마자 뭔가에 화들짝 놀라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직후 혈모원 우두머리는 누각의 대청 벽에서 튀어나와 요란하게 계곡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아공간에서 수련중인 건우는 그런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 뒤로 혈모원 우두머리의 모습은 오래도록 계곡에 나타나지 않았다.

* * *

스스슥!

오래도록 인적이 끊겼던 누각의 대청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인물화가 있는 제단 앞에 벌거벗은 건우의 모습이 타났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모습을 드러낸 건우였다.

누각의 입구에서 제단 앞까지 수십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제압하는 술법.

둔술(遁術)의 발현이었다.

건우는 한참 벽에 걸린 인물화를 바라봤다.

아직도 인물화에는 영기가 짙게 담겨 있었다.

건우는 잠시 후 인물화에서 눈을 떼고 대청 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곧바로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오래 전에 혈모원 우두머리가 들어갔다 나온 비밀 공간이 있는 벽이었다.

원래 건우와 루야는 그곳에 뭔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대청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대청에서 요란하게 난동을 피운 혈모원 우두머리의 움직임을 읽어내던 루야가 벽 앞쪽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유독 거기에만 혈모원 우두머리의 발자국이 복잡하게 겹쳐 있었다.

몇 번이나 같은 곳을 밟았는데 어떤 것은 벽을 보고 있는 발자국이고 어떤 것은 벽을 등진 발자국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몸을 돌리려면 자연스럽게 생겨야 할 중간 과정의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래서 건우와 루야는 그곳을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쫄보 건우와 안 그런 척 하면서도 걱정이 많은 루야는 그 벽에 대한 의심은 잠시 묻어 두기로 했었다.

물론 건우가 옥간을 얻지 못했다면 또 모를 일이었지만 건우는 옥간을 얻어서 실력을 키울 길을 얻었다.

그러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벽을 파헤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연신기 후기까지 수련 경지를 끌어 올리고, 옥간에 기록된 둔술과 방어술, 공격술을 익힌 건우였다.

그저 본능이 앞설 뿐인 원숭이나 늑대 따위는 이제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건우와 루야는 의견의 일치를 봤다.

그래서 오랜 폐관 수련을 마치고 아공간 밖으로 나온 지금.

이제는 벽에 얽힌 비밀에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 전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선배 수사에게 고마움을 담아서 인물화를 바라보는 예의 정도는 차려 주었다.

츠즈즈즈증!

건우는 반지처럼 손가락에 둘러 뒀던 봉을 단봉 크기로 늘였다.

그래도 빈 몸으로 들어갈 수야 있나 싶었던 것이다.

스슥!

단봉을 든 건우의 몸이 벽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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