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8화 (18/499)

17. 진염결 수련을 시작하다

“저 쉑! 또 와 있네.”

건우가 아공간 입구를 열어 밖을 내다보며 버럭 화를 냈다.

건우의 시선엔 절벽에 매달린 혈모원 우두머리가 보였다.

지금 건우의 아공간 입구는 누각의 정문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치가 대청 안과 계곡 전체를 살피기에 가장 적당한 자리여서 그곳으로 위치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공간 입구를 옮기기 위해서 대청으로 나가서 누각의 입구까지 갔을 때, 절벽에 붙은 붉은 털 원숭이를 우연하게 발견했다.

그 날이 마침 날씨가 좋아서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든 날이라 붉은 색이 선명하게 보였었다.

건우는 붉은 털 원숭이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아공간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공간 안에서 절벽에 매달린 원숭이를 살폈다.

원숭이도 건우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눈을 번쩍 뜨고는 누각 쪽을 노려봤다.

하지만 건우가 아공간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아무리 노려봐도 원숭이가 얻을 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붉은 털 원숭이가 절벽에 매달려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더니 어느 날 사라졌다가 또 며칠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떠났다가 다시 오고.

“저 쉑 때문에 내가 밖에 나가질 못해. 아주 그냥.”

- 원숭이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이나 하시죠.

“수련이야 하지. 그런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랑, 저 원숭이 새끼 때문에 억지로 갇혀서 하는 건 다르다고.”

- 다른 건 기분 밖에 없습니다. 그냥 셀프 폐관수련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하십시오.

“재밌냐? 그렇게 놀리면?”

- 자그마치 선도수련 공법을 공짜로 얻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잘만 익히면 성단후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공법이라는데, 그런 걸 얻고도 게을러서야 되겠습니까?

“너, 니가 익힐 수 없다고 심통 부리는 거지?”

- 아닙니다. 저야 어차피 건우님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할 신센데···.

“신세? 어째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닌 거 같다?”

- 아닙니다.

“그리고, 너하고 나하고 생사야 함께 한다지만 고락은 아니지 않냐? 내가 괴롭다고 니가 괴로운 거 아니고, 니가 즐겁다고 내가 즐거운 거 아니잖아.”

- 네네, 차라리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쪽에 가깝긴 하죠. 그래도 그게 진심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 그건 솔직히 확신이 없긴 하다. 상황에 따라서 다른 걸로 하자.”

- 휴우, 그냥 아공간 입구를 닫아 놓고 수련이나 하십시오. 저 붉은 털 원숭이, 혈모원인가 뭔지는 이길 수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수도계는 실력이 깡패람서요?

“쯧, 그래 그 말이 맞긴 하지. 믿을 건 실력 밖에 없지. 실력이 모자라면 어디서 비명횡사를 해도 할 말 없는 곳이 이곳 대천세계라더라.”

건우는 한숨을 쉬면서 아공간 입구를 닫았다.

이번에 아공간 입구를 연 것은 사실 폐관수련 전에 마지막으로 밖을 점검한 것이었다.

루야는 대청 내부와 누각 밖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해 뒀다.

나중에 수련을 끝마쳤을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할 자료를 만든 것이다.

- 자, 곧바로 연신기를 넘어 축기기까지 가 보는 겁니다. 아자자자자.

“지랄, 연신기에서 축기기로 올라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줄 아냐?”

- 뭐? 그래서 안 하실 겁니까? 어차피 할 거면서 왜 시빕니까?

“어휴, 어쩌다가 저런 진드기가 붙어서는.”

건우는 고개를 흔들며 여덟 개의 영근과 수미산겨자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덟 영근의 안쪽, 수미산겨자씨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이제부터 조용히 해라. 가까이 오지도 말고.”

- 절대 가까이 갈 생각 없습니다. 홀딱 벗고 있는데 눈이 썩을 일 있습니까?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옥간 하나를 들어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 수련을 했던 선배 수사가 남긴 수련 공법이 들어 있는 옥간이었다.

옥간에는 수련 공법 하나와 둔술 하나, 공격술법 세 가지와 방어 술법 두 가지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술법들은 모두 수련 경지에 따라서 위력이 정해지는 것이라, 일단은 영기를 다루는 공법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진염결(盡念結).’

건우는 수련공법의 이름을 읊조리며 내용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진염결은 이곳에서 수련을 했던 수사가 성단 후기까지 익혔던 수련공법이었다.

이 수련 공법은 특별한 속성이 없는 것이 특징인 수련 공법이었다.

의념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것을 반복하며 의식의 힘을 키우고 영기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인 공법인데 장단점이 명확한 수련법이었다.

장점은 수련을 통해 의식의 힘을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영기 축적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 단점 때문에 선배 수사도 성단 후기에서 새로운 공법을 익혀 영체기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옥간에 적혀 있었다.

하지만 건우 입장에서야 뭘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연신기 수련도 이제 시작인 마당에 축기기를 넘어 성단기는 언감생심이다.

건우는 먼저 의념을 최대한 아공간에 불어넣었다.

아공간이 자신의 의념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공간을 연화하는 것으로 의념을 소진시키고 의념이 바닥난 상태에서 공법에 따라서 영기를 움직였다.

의념이 바닥났으니 영기를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진염결의 효능은 여기서 드러난다.

진염결 공법의 힘이, 바닥난 의념을 끈질기게 자극하며 영기를 움직일 힘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수련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성취가 결정되는 것이 바로 이 진염결 수련이다.

문제는 바닥난 의념을 자극해서 힘을 끌어내는 고통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하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면 결국 의식의 힘이 늘어나고 영기도 조금씩 늘어난다.

진염결의 다른 이름이 고행결(苦行結)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고통을 참고 견뎌야 성과를 얻는 수련 공법인 것이다.

루야가 변태같은 공법이라고 한 이유 중에 하나기도 하다.

루야가 진염결을 비하한 진짜 이유는 그 공법을 루야는 익힐 수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익힐 수만 있었다면 루야도 최대한 장점을 찾아서 칭찬을 했을 거라고 건우는 믿고 싶었다.

‘끄으응, 그래도 이건 너무 아프다고.’

몸이 아닌 정신의 고통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질이 떨어지는 다른 수련 공법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익히지 않았을 것이 진염결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진염결 수련에 내몰린 것일 뿐, 건우가 진정 원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 * *

“수련 진도 진짜 안 나가네.”

수련에 정진하던 건우가 눈을 번쩍 뜨며 투덜거렸다.

고통을 참으면서도 진염결을 쉬지 않고 수련하고 있었다.

덕분에 더디지만 몸이 조금씩 영기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기로 몸을 씻는 세신(洗身) 과정이다.

영기로 몸을 씻어서 범인의 태를 벗겨내고 수도자의 몸을 만드는 것이 수도의 첫 걸음인 연신기 수련이다.

몸에 티끌만큼의 흠결도 남기지 않고 속세의 기운을 모두 영기로 씻어내면 그것이 곧 연신기의 완성이다.

다르게 그 경지를 완성된 경지라 해서 완경(完境)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신기 완경, 축기기 완경 따위는 그 경지의 극에 이른 상태로 언제든 다음 경지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뜻한다.

건우가 목표로 하는 것이 연신기의 완경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선배 수사가 남겨둔 둔술이나 방어술, 공격술 등을 익힐 수 있다.

원래 그것들은 축기기가 되어서나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진염결을 익혀 의식의 힘을 크게 키우면 연신기 후기에도 쓸 수 있다고 했다.

건우는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이 섬에서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차 수련 목표를 연신기 후기로 삼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진염결의 영기 축적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건우에겐 뼈아픈 문제였다.

- 뭘 그렇게 투덜거려요? 그래도 제법 성과가 있어 보이는데.

멀리서 루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루야의 위치는 건우의 등 뒤쪽, 절대 어깨선 앞쪽으로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게다가 아마도 루야는 건우 쪽으론 시선을 두지도 않고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꼴은 절대 안 보겠다며 버티는 것이다.

“성과가 있는지 어떤지 니가 어떻게 알아?”

건우가 불퉁한 음성으로 물었다.

- 거기 영근들 보면 몰라요? 전보다 조금 더 성장했잖아요.

“크기는 같은데?”

- 대신에 품고 있는 기운이 다르죠. 영기의 크기가 다르잖아요. 게다가 잘 보면 조금씩 변화가 있어요.

건우는 슬쩍 눈앞에 있는 영근 하나를 바라봤다.

지금은 목(木)속성의 영근이 건우 앞에 와 있었다.

여덟 영근들은 수미산겨자씨를 중심으로 조금씩 회전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규칙 없이 멋대로 뒤섞이기도 한다.

그래서 수미산겨자씨를 둘러싼 영근의 위치는 수시로 변했다.

건우는 눈앞에 있는 목속성 영근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품고 있는 영기도 많아졌고, 나무 모양의 영근에 가지와 잎도 많이 늘었다.

슬쩍 다른 영근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조금씩 변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어때요? 직접 수련 성과를 확인하니 뿌듯하죠?

루야가 건우의 행동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물었다.

“그러네. 막연한 것 보다는 낫네.”

건우도 영근들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연신기 초기는 거의 넘은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지?”

건우는 잠시 영근들을 살피다가 다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각 수련 경지는 초기, 중기, 후기로 세분된다.

그리고 그것은 괜히 그렇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완경에서 다음 경지로 올라설 때에 그 변화가 천지격변의 수준이라면 초기에서 중기,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갈 때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다.

게다가 그런 변화에는 빠지지 않고 법열(法悅)이 동반된다.

옥간에서 이르기로는 지극한 희열이라 했다.

그 기쁨과 황홀함이 지극해서 한 번이라도 법열을 경험하면 절대로 수도계를 떠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그런데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으니 연신기 중기에 이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 그렇게 뽕맛을 보고 싶습니까?

“야, 뽕이라니? 법열(法悅)! 응 법열이라고!”

- 그게 그렇게 뿅 간담서요? 그래서 그렇게 한 번 맞아보자고 기다리는 거 아닙니까.

“아니,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 그리고 수련을 하다보면 그건 피할 수도 없는 거라고 했단 말이지. 작은 법열 두 번, 그 다음에 어마어마한 법열 한 번. 그게 반복 된다고 한 건 내가 아니라 옥간이었어.”

- 네네, 그리고 그게 경지가 올라갈수록 더 황홀해진다고 했죠. 아주 제대로 몹쓸 약의 중독 증상하고 같은 거 아닙니까. 점점 강한 증상으로 홀리는 거죠.

“네가 수련을 못한다고 그렇게 악담을 할 건 없지 않냐?”

- 네, 그렇죠. 정보집합체에 불과한 저야 뭐, 이대로 영혼의 진드기 역할이나 해야죠.

“쯧, 너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본다니까? 대천세계에 온갖 신비가 가득하다는데, 그런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 그나마 그렇게라도 말을 해 줘서 지금 제가 이렇게 대꾸라도 하는 겁니다. 아니었음 무한 파업에 묵언수행이었을 겁니다.

“하여간 말하는 거 하고는.”

- 그래서 뭡니까?

“뭐가?”

- 잘 하던 수련을 멈추고 이렇게 저하고 말장난 하는 이유 말입니다. 뭔가 있을 거 아닙니까.

“별 거 아니다. 아무래도 연신기 중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대로 공법 수련만 해서는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 그럼 어떻게 하려고 그럼니까?

“아무래도 보약 좀 먹어야겠다.”

- 그런 게 있습니까? 누각 앞의 풀밭에도 쓸 만한 건 없는 거 같았습니다만?

“거기 말고, 저기.”

건우가 손을 들어 올려 한 곳을 가리켰다.

한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연못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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