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7화 (17/499)

16. 그래서 템 감정은요?

- 없어진 선물이 있었요?

“수련에 도움이 되라고 준비해 둔 알약이 있었다는데 그게 대청에 없네? 그럼 누가 먹었겠어?”

- 원숭이가 먹었단 말씀이네요?

“그렇겠지. 그리고 연단에 쓰는 막대기도 들고 나갔던 거고.”

- 막대기? 그게 설마 전에 주워온 저거에요?

루야가 한쪽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봉을 향해 빛을 살짝 뻗으며 물었다.

“그래, 그런 거지.”

- 그런데 그 원숭이, 어떻게 안개지역, 그러니까 구궁연무살진을 통과한 거예요? 그게 막무가내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건데. 건우님도 몇 달이나 고생했잖아요. 저 없었으면 아직 거기 있었을 거고요.

“그건 나도 모르지. 나보다는 수련 경지가 높은 놈이니 무슨 수가 있었겠지.”

- 아무튼 이제 대천세계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거네요?

“세 개의 옥간 중에 처음 본 것은 연단술에 대한 거였고, 두 번째는 이곳 주인이 익히던 수련 공법과 술법, 둔법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었다.”

- 그럼 세 번째는요? 늦게 말하는 거 보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요?

“이곳 주인이 속했던 수도 문파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수도 문파와 이곳 수도계에 얽힌 이야기들. 사실 이 옥간 덕분에 이쪽 세상에 대해서 제법 알게 된 거지.”

선우가 세 개의 옥간 중에 하나를 들어서 손 안에서 요리조리 돌리며 말했다.

- 그건 글씨에요? 아니면 그림이에요?

루야가 옥간 표면에 일렁이는 금빛 무늬가 궁금한지 물었다.

“글씨다. 가르쳐 주랴? 대천세계 까막눈?”

- 시비 거는 거예요? 그건 잠깐의 휴전은 끝났다고 간주해도 되는 거죠? 이제부터 다시 전처럼 해 보자고요?

“까막눈 아니냐? 사실을 말하는 것을 두고 도발로 여기면 안 되는 거지.”

- 그런 식으로 악업을 쌓다가 언젠가는 호되게 당할 거예요.

“시끄럽고, 여기 적힌 이게 완합종(完合宗)이란 글씨다.”

- 무슨 뜻인데요?

“완합이 완전한 합일이란 뜻이다. 그래서 진리를 완벽하게 깨우쳐 세상의 천지영기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지.”

- 그 종(宗)이라고 하는 건 일종의 종파(宗派)를 뜻하는 거고요? 사람들 모여서 단체를 만든 그런 거요?

“머리 좋은데? 수도계의 세력들은 무슨 문(門), 무슨 종(宗), 무슨 파(派) 같은 걸 세력 명에 붙인단다. 내가 보기엔 그다지 그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외에 곡(谷)이니 봉(峰)이니, 도(島), 애(崖) 같이 지형에서 따온 이름들도 있다.”

- 그래서 이곳 주인이 완합종에 속해 있었다는 거군요?

“그렇지. 원래 산수(散修)였다가 완합종에 들어가 장로가 된 수사였다더군.”

- 산수? 그건 또 뭔데요?

“소속된 곳이 없이 홀로 수련을 하는 수도자를 말하는 거다. 소속이 없으니 지원을 받긴 어렵지만 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겠지.”

- 그래도 혼자보단 무리를 짓는 것이 짱입니다. 괜히 혼자 다니면 떼를 지은 놈들이 시비를 걸고 그러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 그럼 건우님도 나중에 완합종에 들어갈 겁니까?

“그게 지금도 있을진 모르지만, 알아는 볼 생각이다. 워낙 오래 전이잖아. 지금 완합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뭘.”

- 아, 그렇긴 하겠네요.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거.”

- 향로요?

“저거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솔직히 좀 위험하다.”

- 위험하면 버려야지, 왜 그냥 두고 보고 있습니까!

루야가 위험하다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천세계의 위험은 루야로서도 추측 불가라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공간 밖에서의 위험이야 상관 없지만 아공간 안쪽이면 루야도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또 저게 보물일 수도 있어.”

- 말 장난 하지 마시고, 설명을 해 보십시오.

“저게 일종의 연단로야.”

- 그 연단이란 것이 약을 만든다고 했던 그겁니까?

“그래. 수도계에선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영기를 머금은 약, 영단이지. 그리고 그 영단을 만드는 것을 연단이라고 하고.”

- 저건 그 약을 만드는 솥단지란 소리고요?

“대충 그런 거지. 그런데 뚜껑 닫혀 있는 거 보이냐?”

- 안에 뭐가 들어 있다는 소리겠죠.

“꼭 그렇게 한 발 앞서면 좋으냐?”

- 뻔 한 소리를 듣고 있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좀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 저 안에 뭔가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어. 그게 문제야.”

- 주인이 뭘 넣었는지 말을 안 한 겁니까? 옥간이라는 거에 안 적혀 있었어요?

“그건 아니다. 저 안에 화정(火睛)이라는 걸 넣었다더라.”

- 화정이 불의 정수, 뭐 그런 겁니까?

“아니, 불의 눈이란 뜻이다.”

- 들어본 적이 없는 거 보면 대천세계에만 있는 거인 모양이네요.

“대단한 건 아니다. 불의 기운을 타고 난 요수 중에서 불새 그러니까 화조(火鳥) 종류가 있단다. 그 화조를 잡다보면 가끔씩 불의 눈이 나온다는 거다.”

- 그게 별 거 아니란 말씀이에요?

“크게 귀하게 취급되는 수련 자원은 아니란 말이다. 흔하진 않아도 그렇게 귀한 것도 아니란 소리지.”

- 그래서 그걸 저 연단로에 넣었다고 치고, 그게 어쨌다는 건데요?

“불의 눈을 연단로에 넣고, 거기에 몇 가지 연단재료를 함께 넣었다. 그게 끝이지.”

- 그런데 뭐가 위험하다는 건데요?

“그 연단법은 이곳 주인이 우연찮게 얻은 것인데 그리 복잡하진 않아서 행하긴 쉬운 연단법이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다.”

- 설마 시간이 오래 되면 뭔가 달라진다는 말입니까?

“숙성될수록 그 효과가 뛰어난데 보통 100년 정도 뒀다가 복용하면 불속성 영근을 키우는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연신기 후기 수준의 영근이라면 축기를 노려볼만 한 기운을 품는다던가?”

- 잠깐만, 100년 아니고 그 열 배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축기기가 먹어도 효과가 좋은 불속성 영약이 되는 거지.”

- 그럼 천 년이 아니고 만 년이면 또 달라질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거기서 부터가 문제다. 여기 주인도 그건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연단을 한 경우를 알지 못한다는 거지. 다만 고대 기록에 만 년 된 화정 영단(靈丹)이 스스로 영성을 깨우쳐 영물이 되었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 그게 끝이에요?

“그렇지.”

- 그럼 저 안에 들어 있는 그 불의 눈이란 것이 결국 영물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이네요?

“그럴 수도 있지. 이곳 유적이 1만 년 이상 방치된 곳이면.”

- 솔직히 대천세계의 신선들 사이에 1만 년이야 그리 긴 시간도 아닐 건데요?

“그거야 영계로 비승하는 신선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연신기 200년, 축기기 500년, 성단기 1천년, 영체기 3천년, 화신기 1만년. 이게 인계의 수도계 수사들 평균 수명이다. 누가 1만년짜리 영단을 만들고 있겠냐?”

- 그건 또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수도계의 여러 세력이 있으니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면 대를 이어서 그런 걸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연단술만 안다면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대신에 연단로가 좋아야지.”

- 아,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하니 그렇기도 하겠네요.

“선배의 말로는 어지간한 연단로로는 1천 년을 버티는 것도 어렵단다. 게다가 오래 둘수록 연단로를 다시 쓸 수 있을 확률이 낮다더군. 개봉하면 연단로의 수명이 다한다고.”

- 재미있는 이야기긴 한데, 그래서 저 거 괜찮은 걸까요? 슬쩍 걱정이 되는데요?

루야가 아공간 안에 존재감을 과시하며 놓여 있는 연단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설마 지금까지 무사히 있던 것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기야 하겠냐?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정말 운이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에 하나지.”

- 나쁜 쪽이면 그 날로 황천 가는 거 아닐까요?

“어쨌건 열쇠까지 있는 마당에 저걸 내다버릴 생각은 없다.”

건우가 아공간 구석에 있는 6미터 길이의 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게 열쇠였어요?

“원래 약을 섞을 때 휘저어 주는 막대기로 쓰던 거지. 동시에 뚜껑의 금제를 풀어주는 열쇠 구실도 하는 거고.”

- 언제 열어볼 건데요?

“아주 아주 나중에. 자신이 생기면.”

- 그나마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루야는 당장 연단로를 열 일이 없다는 것에 안심한 듯이 빛의 밝기가 안정을 찾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수련 공법을 익혀보자!”

그런 루야에게 건우가 다시 혹할 만한 소리를 했다.

루야가 쪼르르 건우 곁으로 달라붙은 것은 거의 순식간의 일이다.

- 저, 저도 수련공법이라는 거 무척 궁금합니다. 혹시 저도 익힐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행여나!”

건우는 그런 루야의 희망을 일축했지만 루야는 건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우끼끼끼

혈모원 우두머리는 조심스럽게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있는 곳은 계곡의 절벽.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안개에 갇혀서 굶어 죽을 뻔 한 기억이 있는 혈모원 우두머리였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계곡의 벽에 손이 닿았고, 그 벽을 타고 올라서 안개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원래는 위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금제가 있어야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그 금제의 축도 무너지고 없었다.

그 덕분에 혈모원 우두머리는 구궁연무살진에서 굶어 죽을 위기를 넘기고 유적의 안쪽, 누각까지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금제가 사라진 계곡의 절벽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혈모원 우두머리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안개가 나오는 곳만 조심하면 계곡을 드나드는 일이야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만 우두머리가 동굴로 생각하는 누각 안, 대청 벽에 있는 그림은 무서웠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2층 누각의 대청에서 난동을 부리면서도 인물화를 그대로 둔 것은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계곡의 초입인 이십사주환상대진에서 엄청난 환상을 봤던 혈모원 우두머리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환상에서 나왔던 신선의 모습이 벽에 그려진 인물화와 비슷했으니 혈모원 우두머리가 인물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처음 그곳에서 향기가 좋은 알약을 주워 먹고, 기운이 뻗쳐서 난동을 피우다가 정신없이 몽둥이 하나를 들고 나올 때에도 벽에 붙은 인물화는 건들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대청을 다녀갔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옥간이나 향로에서 영기를 느끼기는 했지만 먹지도 못하고 따로 쓸 곳도 찾지 못해서 그것들은 그냥 버려뒀던 것이고.

그렇게 헛걸음을 한 후에 벽에 걸린 그림이 무서워서 더는 계곡 안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혈모원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계곡으로 누군가를 들여보내는 일이 있었다.

벽에 그려진 것과 같은 인간임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길안내를 해 줬던 우두머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기심이 커졌다.

설마 자신이 고생했던 안개 속에서 굶어 죽진 않았을까?

아니지, 원할 때마다 어디론가 다녀올 능력이 있으니 안개를 빠져나가지 못하면 먼 곳으로 가 버렸을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면 안개를 빠져 나갈 방법 따위를 알고 있거나,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

혈모원 우두머리는 그런 생각이 든 후로 호기심이 자꾸만 커졌다.

그리고 결국 계곡 안으로 들어와서 절벽에 매달려 누각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우끼끼끼끼

그런데 그 인간은 왜 안 보일까.

벌써 볼 일을 보고 떠났나?

작은 돌조각도 없어지고, 머리통 크기의 쇳덩어리도 없어졌다.

인간도 보이지 않고.

그럼 정말 완전히 가 버렸을까?

아니면 전에 숲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가끔씩 왔다 가고 그러는 걸까?

혈모원 우두머리는 궁금증 때문에 피가 빨리 돌았다.

그래서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전처럼 또다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절벽에 매달린 팔이 조금 뻐근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 견딜 수 있었다.

우끼끼끼

‘그런데 언제쯤 올까?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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