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법기? 요고 요고 참!
- 뭐 합니까?
“혹시나 해서.”
- 쫄봅니까?
“유비무환. 신중한 거지.”
- 그러다가 그 원숭이가 다시 와서 저 보물을 찾아가면 어쩔 겁니까?
“어? 그것도 그러네?”
-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알겠습니까?
“맞다. 원숭이 놈이 저거 찾으러 올 가능성이 높네.”
건우는 그렇게 인정하며 마음이 급해졌지만 그래도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근처에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후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이번에도 입구가 열린 곳은 파헤쳐진 연못 근처였다.
입구를 열고 들어간 위치에서만 입구를 만들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건우는 입구를 열자마자 뛰어나가 원숭이의 방망이가 떨어져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연못에서 제법 거리가 멀어서 한참을 달려야 했다.
그리고 방망이가 있는 곳에 도착해서 방망이를 손에 잡자마자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이젠 방망이를 아공간에 던져 넣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라라?”
건우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망이가 땅에 들러붙은 듯이 꼼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방망이는 아주 많이 무거웠다.
“이러면 곤란한데?”
건우는 서둘러 방망이에 겹치도록 아공간 입구를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손에 잡은 방망이를 아공간에 넣는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투우웅!
“컥!”
건우가 짧고 굵은 신음을 토했다.
방망이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건우의 의념을 튕겨내며 충격을 준 것이다.
건우는 방망이가 자신이 다루기엔 수준이 높은 물건임을 깨달았다.
품고 있는 기운이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있나.”
물론 포기할 수는 없다.
건우는 다시 한 번 방망이를 잡고 의념을 끌어 올렸다.
방망이를 길들이는 연화를 시작한 것이다.
영기를 품은 것을 의념으로 길들이는 것을 연화라 하고,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영기를 품은 것들은 대부분 사용할 수가 없다.
움찔!
연화를 시작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방망이가 살짝 떨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쨌거나 아공간 입구와 접촉한 상태에서 건우가 그것을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니 아공간 안으로 위치 이동을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돼, 됐다.”
건우는 방망이가 사라지자 이마에 솟아난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아공간 안으로 몸을 감췄다.
- 그래도 들고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네요?
“마, 죽는 줄 알았다. 언제 원숭이 놈이 나타날지, 늑대 놈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신 집중이라니. 내가 죽으려고 환장을 한 거지.”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겠습니까.
“일단 하이 리스크는 했는데, 이게 하이 리턴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건우가 바닥에 놓인 몽둥이를 가리켰다.
- 아, 그건 인정, 맞는 말이네요.
“자, 그러니까 일단, 이걸 좀 살펴보긴 해야겠는데.”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게 놓여 있는 7미터 가량의 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봉이라 하지만 묘하게도 한쪽 끝에만 육각기둥의 금속 머리가 전체 길이의 2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대쪽에는 밋밋한 나무 봉으로 마감이 되어 있으니 딱히 봉이라 부르기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거 이렇게 생긴 걸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지 않았나? 곤은 아니고, 저(杵)? 아니지 그건 절구 공이처럼 양쪽이 두툼하게 생긴 거고. 그럼 뭐랑 닮은 거지?”
- 제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추(錘)라고 하는 거에 가깝네요. 봉 끝에 타격용 덩어리를 달아 놓은 거요.
“뭐, 이게 추든, 봉이든, 곤이든 상관없지. 묶어서 곤봉도 괜찮고.”
- 하긴, 여기는 그 분 세상이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게 영기를 품고 있다는 거지.”
- 그런데 이걸 어떻게 들고 들어오셨어요? 연신기 초기 능력으로 이걸 연화할 수 있었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루야는 아공간에서 밖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건우가 어떻게 봉을 가지고 왔는지 보지 못했다.
“연화는 개뿔. 그냥 살짝 움직일 정도만 무리를 한 거지. 처음에 무심코 건들었다가 아주 골로 갈 뻔 했다.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니까.”
- 음, 하긴, 이걸 연화하는 건 건우님 수준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겠네요.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 무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파악이죠.
“요즘 한동안 내가 널 너무 풀어준 거 같다. 아무래도 그게 맞는 거 같아.”
-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항상 건우님께 도움이 되는 도우미 루야입니다.
“시끄러. 지금은 이쪽이 더 급하니까 넘어가는데, 조만간 두고 보자.”
건우는 일단 루야와의 실랑이를 중간에서 끊었다.
지금은 눈앞에 놓인 봉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건우가 봉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 욕심을 내면 안 되는 겁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무얼 하든 기초는 같은 겁니다.
루야가 그런 건우의 곁에서 조언을 던져 주었다.
순간, 집중이 흔들린 건우의 눈썹이 꿈틀거린 건 절대 루야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 * *
건우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며칠을 봉에 매달렸다.
자신의 몸에 미약하게 흐르는 영기를 봉에 흘려 넣고, 봉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영기와 의념으로 봉을 적셔보려 했다.
본격적으로 연화를 시도한 것이다.
성공만 하면 봉을 제 수족처럼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우의 시도는 확실하게 실패했다.
건우의 몸에 있는 미약한 영기로는 절대로 봉을 제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휴우, 포기다.”
결국 며칠 후, 건우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작업을 해도 건우의 의념은 봉에 손톱만큼의 흔적이나 겨우 남길 뿐이다.
게다가 그 흔적이 손톱 크기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잠시 딴 짓을 하고나면 그나마도 말끔하게 지워진다.
그러니 지금의 능력으로는 봉을 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속이 쓰리고 루야의 놀림이 뼈아프겠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기로 한 건우였다.
- 결국 손을 든 겁니까?
루야가 금속으로 된 봉의 머리 위에서 통통 거리며 물었다.
“안 될 일이란 것을 알았으면 빠른 손절이 답이지.”
건우는 정말로 미련을 버린 듯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래서 이젠 어쩔 겁니까?
“어쩌긴, 이제 움직여야지. 여기서 이대로 평생 살 수는 없다며?”
건우는 루야가 뭘 묻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냈다.
이제부터 뭘 할 거냐는 물음, 구체적으로는 앞으로의 단기 계획을 묻는 것이었다.
-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발 가는 대로 갈 겁니까? 그건 너무 대책이 없는 거 아닙니까?
루야가 건우의 얼굴 앞까지 날아와 빛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건방져 지는 거 같다? 너, 시간과 정신의 방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 그거,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겁니까? 그거 무서워서 지금부터 그 때까지 눌려 살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때가 되어서 죽게 되더라도 지금은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오늘만 살자는 주의구나? 욜로족이냐?”
- 미래엔 또 나름의 방법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 다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기 마련이지. 너처럼 오늘만 사는 놈도 있고.”
-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죠. 그래서 정말 계획이 뭡니까?
“나한테 계획이 있을 거 같냐? 그렇게 나를 무시하면서? 나는 그냥 생각 없는 놈으로 여기는 거 아니었어?”
- 왜 이러실까? 아닌 거 같으면서도 은근 쫄보라서 무작정 움직일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동안 건우님의 행태를 보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 이젠 인물 분석도 하고 그러는구나?”
- 그래서 정말, 어쩔 거냐구요.
루야는 이제 장난은 그만하자는 듯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 원숭이.”
- 원숭이요?
건우도 그에 맞춰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루야는 무슨 말이냔 듯이 되물었다.
원숭이란 말만으로는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숭이 따위가 저런 봉을 만들었을 거 같지는 않거든.”
건우가 아공간 한쪽 구석으로 굴러가는 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마 아공간이 건우의 의념 공간이라 바닥의 기울기를 바꾸는 것으로 무거운 봉을 쉽게 구석진 곳으로 굴려 놓을 수 있었다.
- 우아, 그건 그러네요. 그 원숭이들도 손발이 있으니까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딱 봐도 무식해 보였죠.
“전에 늑대하고 원숭이가 싸우고 난 후에도 무식하다고 했었지? 너.”
- 그랬죠. 기운을 날것 그대로 쓰는 것 같지 않았어요? 뭔가 정교하게 다듬은 느낌은 없었단 거죠.
“짐승인데 당연하지.”
- 그게 또 안 그렇단 말이죠. 제가 가진 기본 정보에 의하면 전에 수도자들이 인간만은 아니라고 했죠?
“그랬지. 인간도 있고,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심지어 사물도 있다고 했지.”
- 그런데 인간이나 이종족 이외에 동물이나 식물이 수도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대화가 통할 정도의 영성은 있어야 한답니다. 그리고 그 정도 되면 인간 못지않게 똑똑해 지는 거죠.
“그 늑대와 원숭이는 그 정도까진 못 된 상태였다는 거네?”
- 그래서 무식하다고 한 겁니다. 가진 기운을 깔끔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걸 직접 봤으니까요.
“아무튼 내가 보기엔 그 붉은 털 원숭이가 저런 물건을 만들 정도로 대단해 보이진 않았단 말이지.”
- 그건 저도 인정이요.
“그럼 저건 어디서 나온 물건일까? 첫째, 누가 줬다.”
- 가능하겠네요.
“둘째, 어디서 주웠다.”
- 네, 그것도 가능하고요.
“셋째, 누군가에게 빼앗았다.”
- 역시 가능성 있구요.
“결국 셋 중에 어느 거라도 상관없이 한 가지는 확실하지.”
- 뭐가요? 뭐가 확실한데요?
“직접 가서 확인해 볼 가치.”
- 뭐라는 거예요? 왜 갑자기 그렇게 이야기가 겅중 뛰어버려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하지만 건우는 루야가 뭐라든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났잖아? 원숭이가 온 방향으로 가 본다. 아마 그 쪽이 원숭이 무리가 살고 있는 곳이겠지만 거기에 저 봉과 관계된 뭔가가 있을 거라고.”
- 그러다가 원숭이들한테 잡혀 죽으려고요?
“조심조심 가는 거지. 이번에도 하이 리스크 먼저, 그럼 하이 리턴도 있겠지.”
- 저 봉은 하이 리스크에 로우 리턴 아니었습니까?
“아니지, 그래도 나한테 미래 행동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줬잖아. 하리 리턴이라고 인정하자.”
- 건우님 마음대로입니까?
“가치야 항상 그것을 쓰는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지.”
- 뭐, 그건 인정하죠. 하리 리턴은 아니어도, 아주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쪽으로 가는 일만 남은 거지.”
- 잠깐, 그 전에 밖에 있는 원숭이 시체나 모아 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이동할 듯하자 루야가 건우가 놓친 것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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