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9화 (9/499)

8. 물난리를 겪고 한 걸음?

-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자기가 한 짓인데도 말문이 막히죠?

“그러네.”

건우는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몸을 좀 쉬려고 아공간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아공간 바닥은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고, 그 물에는 건우가 아공간에 넣었던 갖가지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심지어는 잉어와 메기 같은 물고기들도 배를 보이고 둥둥 떠다니는 중이었다.

“죽은 건가?”

건우가 무릎에 부딪힌 잉어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 안 죽었어요! 함부로 죽이고 그러지 마세요!

루야가 건우의 얼굴 앞까지 날아와 말했다.

“안 죽었어?”

- 워낙 물에 섞인 기운이 생소하고 강렬해서 기절해 있는 겁니다. 솔직히 저도 잘은 모르지만 가장 끔찍한 냄새와 느낌을 받은 생태란 거죠.

“그러니까 그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그럼 지금까지 연못에서 이것들 모습을 못 봤던 이유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서 그런 거였나? 기절해서?”

- 음, 기절보다 좀 더 나가보죠. 아마 반쯤 죽은 상태 아니었을까요?

“가사 상태?”

- 그건 어째 듣기에 좀 좋게 들리는데 다른 표현은 없을까요? 아, 반시체 어떻습니까?

“시끄러. 그럼 이걸 어쩐다? 일단 물을 다시 밖으로 빼야 하나?”

건우가 아공간 내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고민에 빠졌다.

- 생각을 좀 하세요. 머리가 장식입니까?

그런 건우에게 루야가 딴지를 걸었다.

“가이드. 하고 싶은 말을 해라. 그런 태도는 네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거 아니냐?”

- 여긴 아공간이지만 다르게는 건우님의 의념공간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잊으셨습니까?

“쉽게 쉽게 좀 하자. 응?”

건우는 루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그러니까 이곳은 건우님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쪽 한 구석의 바닥을 푹 꺼지게 만들면 그리로 물이 고일 것이고.

루야가 안개의 벽과 가까운 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그게 되나?”

- 하면 됩니다.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진 대천세계 의념공간에 대한 기본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해 보자. 이렇게 물이 차 있으면 앉아서 쉴 곳도 없으니까. 그 다음 이야긴 그 후에 듣자.”

건우는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된다니 해 볼 수밖에.

- 건우님, 제 정신입니까? 어떻게 하는지 방법은 알고 나서는 겁니까? 네? 모르면 좀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거 아닙니까. 네? 네?

“너,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인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조만간 우리의 관계정립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어이, 영혼의 진드기.”

- 뭐, 뭡니까? 왜 그렇게 무게는 잡고 그럽니까?

“여기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 그렇죠. 그러니까 연못물을 가둘 곳을 만드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을 하려는 거 아닙니까.

“그래, 배우긴 해야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건 아주 기초적인 거란 생각이 들어. 이 대천세계가게 어마어마한 곳이라면 의념공간이란 곳이 단순할 수가 없겠지. 수도자의 근원이 있는 곳인데.”

- 오올. 제법 머리가 돌아가셨나 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의념 공간을 마음대로 다루게 되면 말이다.”

- 네에?

“너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제일 끔찍한 시간과 공간의 방을 만들어서 넣어 버릴 거다. 알겠냐? 진드기?!”

- 그,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제가, 이 루야가 건우님의 가이드로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지 모르는데······.

“응, 그래. 하지만 그래도 너처럼 위아래 모르고 까부는 놈을 두고 볼 놈이 아니야. 내가.”

- 저기, 건우님? 우리 새로운 관계정립에 대해서 지금부터 진지하게 이야기를······.

“대써요! 너님 아니어도 내가 아라서 해요. 너님은 내가 언제 너님을 가둘 방을 만들게 될지 그것만 기다리면 되는거죠. 알게써요?”

- 왜 그러세요 건우님. 갑자기 말투까지 이상하게 바꾸시고.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제 주제를 몰랐습니다아.

루야는 뭔가 상황이 자신에게 극히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생겼음을 느끼고 급하게 저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루야의 대세 전환을 쉽게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시꺼, 수련 중이니까 방해 하지 말고 저 구석으로 꺼져!”

- 건우니님.

“샤랍! 닥쳐! 합죽이 합!”

건우는 루야에게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는 어마어마한 협박을 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공간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건우는 몰랐지만 그것은 수도자들이 영기를 품은 대상을 자신의 의념으로 물들이는 연화 과정과 비슷했다.

‘이건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건우는 드디어 자신의 의념공간을 느낄 수 있었다.

선도 수련자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을 이제야 시작한 셈이었다.

건우는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한 의념공간이 아공간과 일치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의념 공간 내의 혼잡스러운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밖에서 아공간 전체를 느낄 때와 비슷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의념 공간은 건우의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전 지구에서 아공간을 파악했던 경험이 있어서 한 번 의념 공간을 확인하자 그것을 다시 놓치는 일은 없었다.

‘일단 물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공간의 모양을 어떻게 바꾸지?’

건우는 루야에게 들은 대로 자신의 의념공간에 직접 간섭해서 형태를 바꾸려 했지만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건우는 몰랐지만 어떤 대상을 연화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원래 의념 공간은 실체가 없는 곳이라 연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건우는 아공간을 의념공간으로 가졌고, 그 아공간은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연화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온전히 자신의 의념으로 물들여 제 맘대로 쓸 수 있게 연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거대한 아공간을 한꺼번에 마음대로 부리려 하는 것은 욕심일 수밖에.

‘아, 과욕이구나.’

건우도 한동안의 시도 끝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공간을 완전히 연화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면 일부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밖에.

건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아공간의 한쪽 구석 바닥을 밑으로 꺼트리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하루, 이틀, 사흘.

건우의 집중은 며칠을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우가 지정한 부분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 된 거 같아요. 이젠 그만 하셔도 되요. 건우님.

몰아의 상태에 빠져 있던 건우는 루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따라서 정신이 의념공간에서 현실로 떠올랐다.

“으음.”

- 정신이 드셨어요? 건우님, 건우님!

루야가 부산스럽게 얼굴 앞에서 날아다니며 건우를 불러댔다.

“뭐야? 왜 귀찮게 구는 거야?!”

건우는 루야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으며 다리가 풀려버렸다.

털썩!

“으윽, 이게 무슨······.”

건우는 저도 모르게 땅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 며칠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서 있었으니 그렇죠. 죽으려고 작정했어요?

루야가 그런 건우를 타박했다.

“뭐?”

- 아니. 사람이 먹고 마시고 해야죠. 연신기 초기란 말은 신체의 극히 일부만 영기에 적응했다는 말이라고요. 그러니까 그 정도로는 영기만 먹고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거죠. 뭐 수련 공법으로 영기를 많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루야가 다다다다 정신없이 건우에게 쏘아 붙였다.

건우는 눈앞에서 반짝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루야를 바라봤다.

어쩐지 무척 걱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 무, 무야요? 왜 그렇게 보고 그럼?

루야가 주르르륵 뒤로 물러나며 말을 더듬었다.

“됐다. 일단은 휴전하는 걸로 하자. 내가 위험한 상태였던 모양인데 깨워줬으니 큰 도움이 된 거네. 그러니까 얼마 전에 있었던 잘못은 없던 걸로 해 주마.”

- 뭐뭐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됐다. 일단 뭐 좀 먹자. 그래, 오래 몸이 축났으니 오늘은 잉어를 한 마리 잡아먹기로 하자.”

건우는 큰 결심을 하고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잠시 후!

“아니 무슨 잉어가 죽지를 않아! 응? 이게 뭐냐고!”

잉어의 꼬리를 잡고 아공간 바닥에 수없이 내리치며 고함을 지르는 건우였다.

- 그, 그냥. 풀뿌리라도 드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기운 빠져서 기절할 것 같은데요?

“젠장!”

루야의 말에 건우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현기증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 * *

녹각독랑은 파헤쳐진 영천 주변을 돌아다니며 범인을 찾았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혈모원 새끼의 발자국 밖에 없다.

작고 연약한 발자국은 아기자기하게 연못을 돌아다닌 흔적이 역력했다.

게다가 파헤쳐진 연못 안에도 그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결국 영천을 사라지게 만든 범인은 그 혈모원 새끼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놈은 어디 먼 곳으로 도망을 간 것도 아니었다.

놈의 발자국은 연못 주변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새끼 혈모원만 사라졌다면 답은 하나다.

녹각독랑의 시선이 동쪽의 울창한 숲으로 향했다.

땅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놈은 그리 흔치 않다.

북쪽의 날짐승이거나 혹은 동쪽에 있는 혈모원뿐이다.

혈모원은 땅이 아니라 나무 위로 더 잘 돌아다닌다.

하지만 북쪽 날짐승들이 들어왔다면 하늘을 나는 그것들을 녹각독랑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결국 몸을 숨기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다니는데 능한 동쪽의 혈모원이 제일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곳에 있던 것이 그 혈모원의 새끼가 아니었나.

생긴 것이 조금 이상하긴 하고, 혈모원이 아닌 다른 것이 떠오를 듯도 하지만.

그래도 녹각독랑에게 그것은 아직 혈모원 새끼였다.

그냥 새끼도 아니고 아주 특별한 새끼.

그것이 여기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혈모원의 우두머리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이곳으로 와서 새끼를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높다.

크르르르릉

‘영천이 사라진 것이야 그 혈모원 새끼의 짓이든, 혈모원 떼가 몰려와서 한 짓이든 양단간에 하나겠지.’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린 녹각독랑은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혈모원 놈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혈모원의 우두머리는 고작해야 연신기 후기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혈모원이 떼를 지어 다니기에 귀찮음이 있어서 그냥 두고 봤을 뿐이다.

아주 가끔 한두 마리를 잡아먹은 것이야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깽판을 쳤으면 그에 대한 응징을 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

녹각독랑은 그렇게 생각하고 곧바로 동쪽 숲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 * *

- 어떠세요? 이제 주변을 살필 수 있겠어요?

루야가 오늘은 특별히 예의바른 태도로 건우에게 묻고 있었다.

건우는 감았던 눈을 뜨고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공했다. 드디어 이 안에서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건우가 대답했다.

- 거 보세요. 의념공간에 대한 장악력이 늘어나니까 이곳에서도 밖의 상황을 살필 수 있게 되었잖아요.

루야가 마치 자신이 그 일을 성공한 것처럼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느껴지니 좋네. 확실히 이곳에서 밖의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해. 이제부턴 밖으로 나갈 때에 겁을 먹을 일은 없겠어. 게다가 입구를 만드는 방향도 원하는 대로 정할 수 있고.”

- 그건 그렇죠. 위치야 건우님이 아공간으로 들어온 바로 그 곳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가는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죠.

루야도 들뜬 모습으로 빛을 깜빡거리며 건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이제 이 밀림을 벗어날 생각을 좀 해 볼까?”

- 전보다는 조건이 확실히 나아지긴 했죠.

“밖으로 나갈 때에 위험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크지.”

- 하지만 막상 밖에서 위험을 만나면 그걸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잖아요.

“정신을 잃거나 혹은 한 방에 죽지만 않으면 괜찮아. 어떻게든 아공간으로 들어올 수만 있으면 되니까.”

- 그건 그렇지만요.

“거기다가 공격 수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 공격 수단이 있다고요?

“저 연못 물. 저걸 쏟아내면 그걸 견딜 놈은 없을 테니까.”

건우는 아공간 한쪽에 자리 잡은 연못을 보며 말했다.

아공간 바닥을 꺼지게 만들어 물을 몰아넣고, 거기에 개흙과 물고기 조개 등의 연못 생물들까지 제 자리로 돌려보냈다.

물론 건우가 보기에도 그것들은 물속에 있기보다 밖에 있고 싶은 모양이지만, 제 멋대로 아공간을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연못물에 담아뒀다.

가만히 보면 죽지는 않았는데 꼼짝도 않고 있다.

루야의 말처럼 반시체 상태다.

그래도 죽지도 않으니 상할 일도 없어서 그냥 그 상태로 보관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연못 근처에는 이런저런 식물들도 한가득 심어져 있다.

어차피 아공간에선 상태가 나빠지지 않으니 그냥 적당히 뻘에 묻어둔 것이다.

- 시험을 해 봐야겠네요?

“그건 그렇지. 내 생각에는 구멍을 좁게 해서 물을 나오게 하면 소방호수처럼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

- 그건 해 봐야 아는 거네요? 그럼 곧바로 해 보죠? 밖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요.

“그래, 그러자. 어차피 할 생각이었다.”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아공간 밖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우의 의념이 아공간 밖으로 빠져나가 주변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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