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화 (4/499)

4. 대천세계 도착?

“그런데 내 아공간이 조금 넓어진 거 같은데?”

건우는 앞서 날아가는 루야를 따라가며 이상함을 느꼈다.

이전 건우의 아공간은 고작해야 가로세로높이 3미터 정도의 공간이었을 뿐이다.

조금 전까지는 안개가 없는 부분만 자신의 아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개 속을 헤치고 걸어가고 있었다.

- 그 분의 서비스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막 넓고 그런 건 아니에요. 벌써 중심에 도착했으니까요.

루야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앞쪽에 안개가 없는 공간이 드러났다.

공간의 넓이는 그곳을 둘러싼 안개 때문에 명확하진 않았다.

조금 넓은 방,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수미산겨자씨는?”

건우가 루야에게 물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 건우님이 보시기엔 어느 게 수미산겨자씨 같으세요?

건우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아홉 개의 이질 적인 뭔가를 바라봤다.

중앙에 산 모양의 돌덩어리 하나가 있고, 그 산을 둘러싸고 여덟 개의 뭔가가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홉은 바닥에서 1미터가 조금 넘는 높이에 떠 있었다.

“저 산이 수미산겨자씨야? 겨자씨가 저렇게 생기진 않았을 텐데?”

건우가 중앙에 떠 있는 산 모양의 물체를 가리키며 루야에게 보며 물었다.

- 수미산, 산이잖아요. 원래는 손톱보다 작은 겨자씨 모양이었는데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수미산이 되는 거라고?”

- 그런 거죠. 건우님의 최종 목표가 바로 저 수미산을 완벽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내 메인 퀘스트가 그거였어? 그런 소리는 들은 적이 없는데?”

- 딱히 퀘스트 따위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건우님의 수련 경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니까요.

“좋아. 그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그래서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저것들은 그럼 무슨 봉인 같은 거야?”

건우의 시선이 수미산겨자씨를 팔방으로 포위하고 있는 것들로 옮겨갔다.

보는 것만으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풍(風), 빙(氷), 뇌(雷). 대천세계의 자연 속성 여덟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건 봉인이 아닙니다.

“딱 봐도, 느낌이 오네. 이미지를 형상화 해 놓은 거 같아서 이해는 쉬워. 그런데 봉인이 아닌데 왜 수미산겨자씨를 감싸고 있는 거야? 설마 봉인이 아니라 보호야?”

- 그거랑도 좀 달라요. 그 여덟 속성은 건우님의 영근입니다.

“영근? 못 알아들을 말인 거 알지? 설명.”

- 네네. 영근(靈根)은 수도자가 영기를 수련하는 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없으면 애초에 영기 수련 자체가 불가능하죠.

“이게 있어야 영기를 수련할 수있다고?”

건우가 시선을 여덟 개의 영근들 중에 나무를 닮은 것에 두며 물었다.

- 맞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내 영근이란 말이지?”

- 네.

“그럼 어떻게 수련을 하는데?”

- 원래 대천세계의 수도자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영기를 받아들여 영근을 성장시킵니다. 영근의 성장 정도에 따라서 수련 경지가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연신기 단계가 영기를 받아들여서 신체를 적응시키는 거라며?”

- 정확하게는 영기를 이용해서 영근을 말끔하게 씻어 내는 것입니다. 그게 겉으로는 수도자의 몸으로 드러나는 거죠.

“영근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 영근은 수도자의 몸 안에 있는 거니까요. 실체이기도 하고 관념이기도 하죠.

“어렵네. 아무튼 이것들이 내 영근이고 이걸 성장시키면 내 수련 경지도 올라간다는 말이지?”

- 그렇습니다.

“그럼 저 수미산겨자씨는?”

- 네?

“저게 왜 저기 있냐고 묻는 거잖아.”

- 건우님의 영근이 성장할수록 수미산도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겁니다.

“와! 내가 겁나 수련해서 성장하면 수미산겨자씨께서는 그걸 날로 드시고 깨어나시는 거네? 설마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건데요?

“기브 앤 테이크. 수미산겨자씨는 나한테 뭐 주는 거 없어?”

- 건우님은 그 분 세상에서 이미 죽을 목숨이었다는 소리 벌써 잊으셨어요?

“살려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

건우의 목소리가 표정을 반영하며 삐딱하게 흘러 나왔다.

상황이 무척 마음에 안 든다고 느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 아니, 그건 아니고요. 이 아공간과 수미산겨자씨, 그리고 저 여덟 영근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시게 되면 놀라실 거예요.

“그러니까 설명을 하라고 했잖아.”

- 기지도 못하는 애한테 미적분을 어떻게 가르쳐요? 일단 기초가 되어야죠.

“그래, 그러니까 기초적으로 설명을 해 봐. 저기 여덟 개의 영근이 있고, 그걸 내가 성장시키면 수련 경지가 오른다. 그리고 덤으로 수미산겨자씨도 성장하고. 맞아?”

- 네, 맞아요. 그리고 한 가지 더하자면 이곳 아공간이 곧 건우님의 의념(義念)공간이에요.

“의념?”

- 정신력이나 의지의 힘 같은 거죠. 이거 무지 중요하거든요. 영기를 느끼고 움직이는 힘이 바로 의념이니까요.

“보통 수도자가 자기 의념 공간에 막 들어가고 나오고 할 수 있나?”

- 못하죠. 그래서 건우님이 수도계의 돌연변이가 되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설명.”

- 여기 이 아공간, 그러니까 건우님의 의념 공간은 수련 정도에 따라서 점차 넓어질 것입니다.

“그건 좋네.”

- 그리고 이곳을 건우님께서 가꾸실 수도 있겠죠.

“여길 가꿔?”

- 약초, 영초를 키우거나 영기를 뿜는 기물을 들여 놓거나, 영물, 영수를 키울 수도 있죠. 그게 아니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물이나 거름으로 쓸 수도 있고요. 영근을 성장시키는 용도로요.

“으음? 보통 수도자들은 그런 짓을 못하는 거지?”

- 그래서 돌연변이가 되실 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마 수련 진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질 겁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 소리네.”

- 그리고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수미산겨자씨가 성장하면 건우님께도 도움이 될 겁니다. 건우님이 바로 저 수미산겨자씨의 주인이시니까요.

“좋아, 여기까지. 더 떠들어봐야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겠다.”

- 원래 수도자가 되면 기억력도 좋아지고 그러는 건데, 아직 적응이 덜 된 모양이네요. 원래 영기를 몸에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했는데 말이죠. 아, 건우님껜 절대적인 기억력 따위는 굳이 필요가 없겠군요? 제가 있으니까요.

“뭐래? 내 기억력하고 너하고 무슨 상관?”

- 제가 건우님의 기억력을 보조해 드릴 테니까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정보집합체랍니다.

“하긴, 머리도 하나 보다는 둘이 낫겠지. 어? 루야, 너도 느꼈냐?”

루야에게 뭐라고 하려던 건우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이질감에 깜짝 놀라며 루야에게 물었다.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음, 조금 전에 아공간 스킬이 돌아온 느낌을 받았거든.”

- 스킬이 돌아왔다는 말씀은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 그럼 드디어 도착을 한 모양이네요.

“우리가 대천세계 어딘가에 도착했다고?”

- 네, 어딘지는 모르지만 입구를 열 수 있다는 것은 이동이 멈췄다는 소리니까요.

“음, 알까기 끝났다는 거네? 그럼 입구를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거겠네?”

- 설마 아무 생각도 없이 밖으로 나갈 건 아니죠? 밖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요?

“대천세계가 그렇게 위험부터 챙겨야 하는 곳이냐?”

- 제가 가진 정보에 의하면 수도계란 곳이 아주 그냥 야생인데요?

“야생?”

- 그 안의 법칙이요.

“그럼, 약육강식, 적자생존 뭐 그런 거?”

- 넵, 수련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 또 그것을 탓하지 않는 세상이랍니다. 당하는 놈만 병신인 거죠. 수련 공법 중에 수도자의 영혼을 잡아먹는 방법도 있는데, 그걸 두고 크게 탓하지 않는다죠.

“성과주의란 말이네?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거?”

- 뒤통수 엄청 때리는 곳이고 또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동료가 귀하고 중요한 곳이기도 하죠.

“그보다는 깔끔한 협력,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대가 더 좋지 않나?”

- 대천세계에선 그 정도만 되어도 믿을만한 동료라고 합니다.

“우와, 살벌한 세상이네.”

건우는 과하게 몸을 떨며 소름이라도 돋았다는 듯이 팔을 쓸어 내렸다.

- 그러니까 항상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뭐, 위험하면 아공간으로 몸을 숨기면 되니까 최후의 한 수는 있는 셈이네요.

“야, 찌질하게 숨어 다닐 생각부터 하냐?”

- 네네. 그럼 어디 용감하게 밖으로 나가 보실까요? 우리 개복치님?

“야, 상호 존중? 응? 우리 그거 하기로 하지 않았냐?”

- 주는 대로 받는 거죠. 그래도 건우님 의견에 일부 동의는 합니다. 이대로 영원히 이곳에 머물 수는 없으니 외부에 대한 정보를 좀 얻기는 해야겠죠.

“당연하지.”

- 그래서 어쩌실 건데요?

“예전에 내가 영환지 드라만지에서 본 게 있어. 결혼 첫 날 밤이라고 말이지.”

- 이 상황에서 섹드립입니까?

“너도 참, 별종이다. 니 말대로 이런 상황에서 그러고 싶냐?”

- 아니면 아니지 뭘 그렇게 노려보고 그럽니까?

“아무튼 거기 보면 신랑이 신부 족두리를 벗기고 어쩌고 하는 게 나오는데.”

- 스톱, 그 다음은 역시 그거 아닙니까!

“야이! 씨, 아니라고! 그냥 들어!”

- 네, 넵.

“아무튼! 신랑신부가 그러고 있으면 한쪽 창호지문에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문풍지에 구멍을 뚫어.”

- 그래서요? 사람들이 보고 있으면 그걸, 그러니까 진도를 빼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하아, 이건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이···. 너 원래 본성이 그런 거냐? 왜 그런 쪽에 그렇게 관심을 보여?”

- 그냥 호기심입니다. 없는 자의 서러움 같은 걸까요?

“없다니? 너, 여성체 아니었어? 느낌이 그랬는데? 이름도 그렇고.”

- 없다는 게 꼭 그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짝, 짝이 없다는 겁니다아!

“아, 그래? 그건 나하고 같네. 격하게 동지 의식이 치솟는다.”

- 그러지 마십시오. 소름 돋습니다.

“쯧, 하던 말이나 마저 하자. 이거 보이냐?”

- 어라? 그건 또 언제?

“이렇게 구멍을 작게 뚫고.”

- 그런데 거기로 머리를 내밀 수 있겠습니까? 은빛 막 때문에 밖이 보이지도 않고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구멍이 좀 작지? 내 머리는 절대 통과 할 수 없을 정도로.”

- 그렇군요.

“그런 의미에서 네가 나가보는 게 어떨까? 넌 정보집합체라며? 그럼 죽거나 다치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냐?”

- 결국 그런 꼼수를 생각하신 겁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 루야는 이곳 아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만?

“그러냐?”

- 별로 실망하지 않으시는 거 같습니다?

“세상은 날로 먹기 어렵다는 걸 오래 전에 깨우쳤지. 그냥 혹시 했을 뿐이다.”

-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구멍을 넓혀서 머리를 디밀어 보실겁니까?

“그건 너무 극단적이지. 일단 해 볼 수 있는 건 모두 해 본 다음에 마지막이 내 몸이지. 당연한 거 아냐?”

- 그러면서 저는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잘도 하셨군요?

“그야 니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거지.”

- 정말요?

“당연하지. 그래도 내 하나뿐인 영혼의 진드기 아니냐.”

- 그건 상호 존중을 약속하면서 폐기된 거 아니었습니까?

“알았다, 영혼의 동반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이리저리 아공간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뭐 하십니까?

“전에 넣어 뒀던 것들이 어디에 있나 하고.”

- 없습니다. 그 분 세상의 것은 깔끔하게 털렸습니다. 세상이 달라서 그 분 세상의 것은 넘어오지 못했습니다.

“뭐?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그리고 그럼 지금 내가 걸치고 있는 것들은 뭔데?”

건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 제 안구 보호를 위해서 이곳에서만 구현되는 겁니다. 건우님께 익숙한 모습으로 구현되었지만 실제론···.

“악! 말하지 마라. 그러니까 내가···.”

- 입 다무십시오. 상상의 빌미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제, 젠장! 그럼 내가 저 밖으로 나가면?”

- 으아앗. 떠올라버렸습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아공간에서 기절해 있을 때는? 그 분께서 알까기 하신 순간부터 저 쪽 세상의 물건들이 모두 사라진 거면?”

- 괜찮습니다. 고백하건데 건우님께서는 엎어져서 기절해 있었습니다.

“그래도오! 니가 그걸 봤다는 거잖아!”

멘탈이 나간 건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꽤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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