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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부 같은 하나를 줘
건우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 건우 역시 인생 로또인 ‘각성’을 꿈꿨다.
하지만 진짜로 자신이 5천 명에 하나 정도에 불과한 각성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됐으면 좋겠다는, 굳이 사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복권.
그것이 당첨되길 기대하는 정도의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정말 각성을 하게 된 건 리얼?? 팩트?? 정말?!’
커다란 이글루 안처럼 생긴 공간이 자신의 각성 공간인 거야 빈약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치자.
각성 공간이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깜빡이는 설문 조사는 뭐란 말인가.
‘각성자 천 명 중에 한 명 꼴로 받는 기회지.’
각성이라고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각성 공간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끝.
각성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운동을 하거나 혹은 두뇌 활동을 하거나 하면 좀 더 나은 능력치를 가진다는 ‘카더라’ 정보가 있지만 신뢰 수준은 바닥.
사실은 그냥 각성 공간에서 일종의 빛 샤워를 받는 걸로 각성은 끝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그 빛 샤워를 받은 각성자 중에 천에 하나 꼴로 설문 조사를 받는다.
일컬어 ‘절대자의 유희’ 쯤 되겠다.
왜냐하면 설문 조사를 받은 셋 중에도 하나 정도만 기회를 잡아 보상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3분의 1 확률로 고유 능력을 받게 될 거라고?’
건우는 새삼 자신이 대박의 기회를 앞두고 있음을 알았다.
깜빡, 깜빡.
마치 재촉하듯 커서가 반짝거렸다.
= 받고 싶은 것을 하나만 말해보라.
< _
건우가 빛 샤워가 끝난 후에도 각성 공간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커서의 반짝거림이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라 언제까지나 고민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될 확률 3분의 1. 안 될 확률이 더 높은데 그냥 질러 보는 거지. 솔직히 각성만으로도 이미 복권은 당첨이다. 이건 그냥 보너스 같은 거니까 괜찮아.’
어쨌거나 각성은 했다.
그럼 아무리 못해도 가시밭길을 걷진 않을 거다.
앞으로의 인생길은 못해도 비포장도로는 되겠지.
‘못 먹어도 고.’
건우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커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받고 싶은 거 하나?
그럼 최대한 큰 걸로 달라고 해야지.
“전부 같은 하나를 줘.”
‘질러 보는 거지 뭐.’
건우는 그렇게 ‘절대자의 유희’라고 하는 설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엄청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 수미산을 삼킨 겨자씨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 * *
강건우
직업 : 연신기 수도자(잠김)
칭호 : 수미산을 삼킨 겨자씨의 주인
스킬 : 아공간
“이건 뭐냐? 전투 능력은 없는 거네?”
건우는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맥 빠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방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각성 공간에 들어갔던 건우였다.
마지막에 강한 충격으로 기절했지만 깨어나 보니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이 멀쩡했다.
그래서 곧바로 각성 확인을 위해 상태창을 열어 본 것이다.
그런데 나온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다.
“이러면 포터 역할 밖에는 못하는 건데?”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성자는 각성자다.
고수입이 보장된 헌터가 될 수 있는 각성자다.
일단 게이트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만족은 얻을 수 있다.
상태창이 있으니 게이트 출입은 가능할 것이다.
전투 스킬이나 몸을 보호할 스킬이 없으니 전투 요원이 될 수는 없다지만 헌터가 꼭 전투요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공간, 이거 게임으로 치면 인벤토리겠지? 그럼 포터로 딱이지. 그것도 어쩌면 엄청난 포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짐꾼도 짐꾼 나름인 거다.
어느 각성자는 전투 능력은 없어도 힘이 좋아서 콜이 끊이지 않는 포터가 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자신은 그보다 더 엄청난 포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건우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본능처럼 떠오르는 기억을 따라서 아공간 스킬을 사용해 봤다.
순간 눈앞에 일렁거리며 나타나는 은빛의 막.
건우는 그것이 아공간의 입구란 사실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입구는 자신 이외엔 누구도 볼 수 없고 또한 간섭할 수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되나?’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은 스킬 정보에 답답함을 느끼며 일렁거리는 은색의 막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것은 마치 은빛 천으로 만든 커튼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스슥!
건우의 손이 그 막을 통과해 들어갔다.
순간, 건우의 머릿속에 텅 빈 공간이 떠올랐다.
‘이게 아공간?’
건우는 다시 손을 빼고는 책상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하나를 들어 은색 막 너머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책을 놓아 버렸다.
‘아, 이렇게 보이네.’
조금 전까지 텅 비어 있던 공간에 이젠 책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책은 건우가 원하는 순간 다시 손에 잡혔다.
놓았다가 잡고, 또 놓았다고 잡고.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건우는 그 후, 자신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아공간 너머로 던져 넣었다.
책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키 보다 큰 책장까지.
‘넣을 수 있는 물건의 한계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무게 까지? 꺼낼 때에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 넣을 때엔 힘을 써야 해.’
건우는 그렇게 아공간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파악해갔다.
어떻게든 물건을 움직여서 은색 막에 접촉만 시키면 물건을 넣을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도 되는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다만 은색 막을 건우의 의지로 움직여 물건을 넣을 수는 없다.
은색 막을 움직일 수는 있는데 닿는 물건을 그냥 통과한다.
‘밀어 넣어도 되는 거면 무거운 걸 바퀴달린 판에 올리면 되는 거네. 무게는 상관이 없어 보여. 하지만 아공간 안쪽의 부피 한계는 있는 거 같네.’
무게는 부담이 되지 않지만 부피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책장까지 넣고 나니 어느 정도 아공간의 부피가 가늠이 되었다.
‘내 방보다 살짝 좁은 거 같은데? 3세제곱 미터 정도 되나?’
정확하진 않았다.
게다가 공간이 딱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 넓이가 유동적으로 형태 변화가 된다.
공간 낭비 없이 빡빡하게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정말 최고의 포터가 될 수 있겠다.’
건우는 점검이 끝나자 활짝 웃었다.
세상을 살아갈 든든한 동아줄 하나는 확실히 잡은 셈이다.
“그런데 직업이 왜 이렇지? 칭호도 이상하고.”
연신기 수도자?
건우가 지금까지 들어 본 각성자들의 직업 중에서 그런 것은 없었다.
게다가 칭호는 업적을 세웠을 때, 그러니까 절대자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의 일을 했을 때, 주는 것이라 했다.
건우는 그걸 각성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칭호도 처음 듣는 건데, 효과가 뭔지도 모르겠고. 이건 솔직히 어디서 답을 얻을 수도 없겠네.”
깊이 고민해서 답이 나올 일이면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그런 경우엔 깔끔하게 포기하고 신경을 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건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굉장히 유용해 보이는 짐꾼 스킬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하하. 어쨌건 인생 역전! 꽃길만 걷자! 축하한다 강건우!”
건우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축하의 말을 던졌다.
인생 최고의 동아줄을 잡은 날이었다.
* * *
“썅! 동아줄은 개뿔! 허억! 허억!”
건우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정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이젠 끝이었다.
사방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바스러져 소멸하고 있었다.
던전 붕괴 현상이다.
던전은 게이트로 현실과 연결된다.
비틀린 차원에 떠도는 수많은 파편들이 현실과 게이트로 연결된 것이 던전이다.
던전의 입구가 게이트란 이야기다.
“개 썅놈의 새끼들.”
누군지는 모른다.
누군가 던전에 들어와 던전 코어를 파괴했다.
건우가 속한 헌터 팀이 해야 할 일인데, 누군가 선수를 친 것이다.
원래 허락받은 팀은 건우가 소속된 팀이었다.
던전 하나엔 한 팀만 입장하는 것이 정해진 법이다.
던전 관리를 잘못해서 두 팀을 배정한 것이거나 어디 다른 구멍으로 도굴팀이 들어온 것이리라.
뭐가 되었건 중요한 것은 코어를 파괴하면 던전이 붕괴되어 소멸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코어를 파괴하면 그 코어가 있던 위치에 현실로 돌아가는 게이트가 생성되기에 공략 팀이 위험할 일은 거의 없다.
그 탈출 게이트는 30분 정도 유지되니까 시간도 넉넉하다.
공략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던전 붕괴가 시작되고 벌써 한 시간은 지났다.
탈출 게이트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건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함께 들어온 팀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건우도 몰랐다.
평소처럼 포터를 구하는 헌터 팀에 합류해서 던전 게이트를 넘었다.
그리고 순조롭게 헌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던전의 등급은 그리 높지 않았고, 함께 한 헌터들의 능력도 충분했다.
그런데 한 시간 전, 던전 공략 이틀 만에 붕괴가 시작되었다.
그건 누군가 던전 코어를 파괴했다는 이야기다.
그 때부터 각자도생의 길이 열렸다.
코어가 사라진 던전엔 몬스터나 마수, 함정 따위가 없다.
깔끔하게 사라진다.
남은 것은 던전의 구조물 뿐.
그러니 어떻게든 던전 코어가 있던 곳으로 가서 탈출 게이트를 타야 한다.
그러면, 아니 그래야 살 수 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다.
건우 역시 그랬다.
하지만 건우는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육체 능력이 평범했다.
아공간이라는 특별한 스킬 덕분에 누구나 원하는 포터가 되었지만 오늘 같은 비상 상황에선 뾰족한 수가 없는 무능력자나 같았다.
능력 좋은 포터, 건우가 있으니 다른 짐꾼은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러니 건우 이외엔 모두가 전투 헌터들.
그들은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빠르게 달려가 버렸다.
지금 붕괴되는 던전 구석에 건우가 홀로 남은 이유였다.
“그래봐야 코어룸까지 도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
던전 규모로 따져보면 적어도 이틀은 더 공략해야 할 거리가 남았었다.
먼저 달려간 팀원들이 그 거리를 30분 내로 주파해서 탈출 게이트에 올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씨파, 함께 죽자는 말은 아니라고. 날 버리고 지들끼리 간 것도 당연하지.”
건우는 점점 조여 오는 던전 붕괴의 현장에서 그렇게 투덜거렸다.
“썅, 그래. 살 놈은 살아라! 살아! 살 수 있으면!”
건우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이 진심인지 아니면 반어법인지는 건우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이왕이면 그들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의리 없는 것들이니 함께 던전에 남아서 자신과 같은 절망을 느끼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아, 젠장!”
붕괴 때문에 발밑까지 허물어지며 바스러지기 시작하자 건우가 절망스런 탄식을 터트렸다.
정말 죽기는 싫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 건우는 어떻게든 죽음을 피할 방법을 찾았고, 결국 아공간을 열어 은색의 막 안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넣었다.
구구구구구구궁!
그 직후 건우가 있던 공간은 차원의 비틀림에 짓눌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차원의 비틀림에서 영원한 시간 동안 매번 촌각의 순간마다 벌어지는 흔하고 흔한 현상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 결국 치워버렸군. 어디서 그런 것이 흘러들어서 귀찮게······.
하지만 누군가 그 흔한 현상 중에 하나를 꼭 찍어서 끝까지 지켜본 이가 있었다는 건 영원한 비밀.
그 누군가가 후련해 했다는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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