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보건곤-47화 (48/61)

제 47 장       그   를     데  려  와  라

1

화원의 꽃은 만발해 있었다.

형형색색으로 물들은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화원을 온통

화려한 색깔의 경연장으로 만들었다.

노인은 언제나처럼 화원의 중앙에 우뚝 선 채 짙은

화향(花香)을 음미하고 있었다. 화향이 너무 진해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취하게 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노인은 오랜 시간동안 꽃밭을 서성인 채 떠날 줄을

몰랐다.

노인과 꽃은 너무도 잘 어울려 보였다.

어찌보면 노인은 꽃밭속에 서 있는 한 그루 고목나무 같기도

했다.

그외에 다른 무언가라도 있다면 이 완벽한 조화가 그대로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마침 조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하늘색 장삼을 걸친 청년문사였다.

청년문사의 얼굴은 준수했고, 눈빛은 별빛과도 같았다.

청년문사는 노인의 뒤에 와서 조용히 서 있었다.

노인의 상념(想念)을 깨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문득 노인의 입술이 열리며 나직한 싯구가 흘러 나왔다.

"화영수양한수청(火映垂楊漢水淸),

미풍임리일지경(微風林裏一枝輕).

즉금강북환여차(卽今江北還如此),

수쇄강남이별정(愁殺江南離別情).....

붉은 꽃은 수양버들에 비치고 한수 강물은 매맑으며,

산들 바람이 숲속을 지나가면 여린 가지는 가벼이 흔들린다.

지금 강북  땅도 이런 경치인데,

그대 강남으로 떠나는 이별의 정으로 깊은 슬픔에 잠긴다..."

노인의 음성은 담담했으나 왠지 한 줄기 울적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이 읊은 시는 상건(常建)이 지은

'송우문육(送宇文六)'이었다.

노인은 시를 모두 읊고 나서도 마지막 구절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수쇄강남이별정...수쇄강남이별정...."

청년문사는 말없이 노인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한동안 싯구의 마지막 구절을 몇 번이고 읊조리더니

이내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문노인은 나의 오랜 친우였다. 벌써 삼십 년이 넘었지...."

청년문사는 묵묵히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산장에만 있어서 바람이라도 쏘이게 하려고

내보냈는데 그게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이야....하늘의 장난치고는

너무 짖 다는 생각이 드는군."

노인은 청년문사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래서 인생은 흥미가 있단 말이야. 가끔씩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곤 하니...."

청년문사는 그제서야 침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문노인의 죽음은 뜻밖이었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문사는 다시 말했다.

"우문노인의 시신은 후원의 영제거(靈梯居)에 안치해

놓았습니다."

"잘했군."

"시신은 몹시 참혹했습니다. 특히 상체가 많이 상해 있어서

시신을 안치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들었다."

"상처가 상반신중에서도 아래턱과 앞가슴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상처의 크기로 보아 주먹이나 팔꿈치는 아니고

아마도 무릎공격에 당했던 것 같습니다."

노인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슬격술이라...무서운 수법이지."

청년문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우문노인 정도의

고수가 어째서 상대가 자신의 가슴위에서 무릎차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요?"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방심했겠지."

"우문노인은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인은 빙긋 웃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문노인도 예외일

수 없지."

청년문사는 똑바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겠지요."

"글쎄....노부라고 실수가 없을까? 이번 일도 엄격히 말하면

노부의 실수라고 할 수 있지."

"우문노인의 죽음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저는

우문노인이 그자와 만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어야 했습니다."

노인은 청년문사를 힐끗 돌아보았다.

"노부는 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었다."

그 말에 청년문사는 입을 다물었다.

노인의 얼굴에 한 줄기 고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노부는 우문노인이라면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이번 일이 노부의 실수라고 한 것이다."

청년문사는 잠시 침음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우문노인이 그자를 만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고, 그자의 손에 쓰러진 것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예상했어야 한다. 그래야 강호를 지배할

수 있다."

"........"

"강호는 음험하지만 또한 공정하다. 항상 뿌린 만큼의 소득을

거둘 수가 있지. 그 일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그자에 대해 몰랐다는 말이다. 그자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거지. 그래서 그런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노인의 음성에는 조금도 추궁하거나 꾸짖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청삼문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수그렸다.

"죄송합니다. 그자에 대해 좀 더 철저하게 연구하겠습니다."

노인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일이 잘못된 다음에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욱 좋은 일은 애초에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로 우리는 아까운 사람을 잃었지만 대신에 또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어떠한 상대라도 절대 경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어디 있나?"

노인은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았지만 청년문사는 노인이 말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둔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혼자인가?"

청년문사는 왠지 잠깐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사형과 같이 있습니다."

노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단지 끝없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아주 잠깐 반짝였을 뿐이다.

"그들이 같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청년문사는 노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데려 올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대사형도 함께 데려올까요?"

"음."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습니까?"

노인은 청년문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가장 확실한 사람을 보내야겠다."

"누구를 보낼까요?"

"네가 수고를 해야겠다."

청년문사는 노인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노인은 청년문사라면 일을 잘 처리하리라고 믿었는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표향령의 인물들이 강남으로 넘어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습니다. 사마표향을 비롯한 수뇌급 인물들이 대부분

강남으로 왔습니다."

노인은 잠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너도 그중에 셋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청년문사의 눈에서 번쩍하는 섬광이 번뜩였다.

"알고 있습니다."

"셋째가 보고 싶다. 그를 데려와라."

청년문사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오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노인은 허공을 응시한 채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를 데려와."

청년문사는 고개를 숙였다.

"예."

노인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것은 용건이 끝났으니 그만 가보라는 뜻이었다.

청년문사는 돌아가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었는지 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어떻습니까?"

청년문사는 그가 누구인지 지칭하지 않았다. 하나 노인은

청년문사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하고 있지."

노인은 천천히 청년문사를 돌아보았다.

"그 아이에 대해서 너는 경쟁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

청년문사는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런건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그 아이를 써먹을 때가 있을 거야."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청년문사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몸을 돌려 화원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노인은 다시 허공을 응시한 채 말이 없는 상념에 잠겨 있었다.

휘이잉....

한차례 바람이 불어오자 화원 전체가 흩날리는 꽃잎으로

송두리째 뒤덮혀 버렸다.

바람이 사라지고 허공을 뒤덮은 꽃잎이 잠잠해 졌을 때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

그 중들은 핏빛 가사(袈裟)를 걸치고 있었다.

이마에 찍힌 계인(戒印)도 선명한 핏빛이고, 손에 들고 있는

선장(禪杖)과 계도(戒刀)도 또한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붉은 색 일색인 아홉 명의

혈승(血僧).

그들이 넓은 관도위를 일자(一字)로 가로막고 있는 모습은

왠지 으시시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이었다.

한낮의 태양은 따사로웠고, 하늘은 푸르렀다.

하나 누런 관도위를 가로막고 서 있는 아홉 명의 혈승들

때문에 주위의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칙칙했다.

그 아홉 명의 혈승들은 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때 텅빈 관도의 저편에 한 대의 마차가 나타났다.

다가닥...다가닥...

마차가 굴러오는 소리만이 고적한 주위를 잔잔하게 울려주고

있었다.

마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재질이 고급스럽고 우아한 정취가

있었다. 게다가 마차를 끌고 있는 두 마리의 말 또한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새하얀 백마(白馬)였다.

누가 보기에도 마차 안에 대갓집의 자녀나

왕후장손(王候長孫)이 타고 있으리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인물도 말처럼 눈부신 백의를 입은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의 허리춤에 매어진 고색 창연한 보검이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마부석의 모서리에 부딪쳐 묘한 마찰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의중년인은 관도위를 가로막고 서 있는 아홉 명의 혈승을

보았으면서도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냉정하고 서릿발 같은 기도를 지닌 백의중년인의 모습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어도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마차는 혈승들의 삼 장 앞에 멈춰섰다.

"길을 비켜라."

백의중년인은 표정만큼이나 냉정하고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었는데도 주위의 공기를 싸늘하게

식게할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혈승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중 중앙에 서 있는 유난히 체구가 큰 혈승이 양 손을

합장하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시주는 잠깐 마차를 멈추시오."

그자의 음성은 마치 커다란 종이 울리듯 굉량한 것이었다.

백의중년인의 차가운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중앙의 혈승은 그의 칼날 같은 시선을 받고도 조금도

움츠려드는 모습이 아니었다.

"시주는 혹시 비룡검객 화비룡 대협이 아니오?"

백의중년인은 냉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바로 화비룡이다."

강남의 유수한 검객들중 서열 이위의 절정검객의 이름을

들었으면서도 아홉 명의 혈승들은 전혀 표정의 변함이 없었다.

중앙의 혈승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마차안에 있는 분은 동방소저가 아니시오?"

말이야 묻는 것이었지만 어조는 완전히 단정짓는 듯한 투였다.

백의중년인, 화비룡은 그들 아홉 명을 쓰윽 켰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도 너희들이 누구인지 알겠다."

중앙의 혈승의 눈에서 기광이 번쩍거렸다.

"빈승들을 안단 말이오?"

"너희들은 홍루사(紅淚寺)의 구마미륵(九魔彌勒)이 아니냐?"

화비룡의 말에 중앙의 혈승은 빙그레 웃었다.

"천하에 대명이 자자한 화대협이 한 눈에 우리를 알아보다니

영광이오. 빈승이 그중 수좌(首座)를 맡고 있는 혈미륵(血彌勒)

아륵타(阿勒打)요."

화비룡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나 그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구마미륵은 절대로 만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홍루사는 운남성(雲南省)과 귀주성(貴州省)일대를 주름잡는

최대문파였다. 그들은 서장(西藏)의 최고세력인

천룡사(天龍寺)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랫동안 중원과

서장을 잇는 운남,귀주의 양 성을 장악한 채 무소불위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산장에서는 오래전부터 홍루사를 휘하세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당금의 홍루사 주지(主持)인

마애혈불(磨崖血佛)의 완강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구마미륵은 홍루사의 최고고수들로서 마애혈불이 가장 아끼는

측근중의 측근이었다. 그중에서도 혈미륵 아륵타는 마애혈불에

이어서 홍루사에서 두 번째 가는 최절정의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 구마미륵이 귀주성에서 이 천리나 떨어진 이곳에 나타난

것은 절대로 우연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화비룡과 동방완아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아륵타는 마차를 바라보며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본사의 주지께서는 오래전부터 동방소저의 염명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셨소. 이번에 마침 동방소저께서 이 근처를

유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이라도 뵙고저 소저를 모시고

오라는 지시가 계셨소. 그러니 동방소저께서는 부디 거절하지

마시오."

말이야 마차안에 있는 동방완아에게 한 것이지만 화비룡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나 다름없었다.

화비룡의 짙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동방완아가 산장을 나온 것은 불과 보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동방완아가 산장을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홍루사를 떠났다는 것을 뜻한다.

마애혈불이 무엇 때문에 동방완아를 만나려고 하겠는가?

이유는 너무도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화비룡은 싸늘한 눈으로 아륵타를 쏘아보았다.

"마애혈불이 간덩이가 단단히 부었군. 감히 동방가(東方家)의

사람을 인질로 잡을 생각을 하다니..."

"아미타불. 인질이라니 당치 않소. 본사에서는 동방소저를

최고의 귀빈으로 모실거요."

말이야 귀빈이지 마애혈불은 동방완아를 인질로 잡아 산장의

강압에서 벗어나려는게 분명했다.

화비룡은 차갑게 웃었다.

"그게 뜻대로 될까?"

아륵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화대협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소. 하지만 화대협

혼자로는 우리들을 막을 수 없을 거요."

아륵타는 슬쩍 오른손을 쳐들었다.

스스슥....

그의 양쪽에 서 있던 여덟 명의 미륵들이 재빠르게 움직여

화비룡과 마차를 에워쌌다.

그 동작의 신속함과 그들이 점하고 있는 방위는 화비룡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몇 걸음씩만을 움직였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화비룡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부위가 봉쇄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무서운 수련을 거친 고수들이 아니라면 절대로 짧은 시간에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없다.

화비룡 혼자라면 구마미륵이 제아무리 무서운 고수들이라 해도

결코 두렵지가 않았다.

설사 마애혈불이 나타난다 해도 화비룡은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뒤에는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동방완아가

있지 않는가?

더구나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어서 혼자의 힘으로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신상에 털끝만한 변고(變故)라도 생긴다는 것은

화비룡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구마미륵의 공세를 뚫고 그녀를 조금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데리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화비룡은 섣불리 장담할 수가

없었다.

화비룡은 천천히 마부석에서 내려왔다.

그때 마차안에서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화숙부님."

창문이 열리며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화비룡은 듬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마차안에 있어라."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불안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화비룡은 창문밖으로 반쯤 삐져 나 온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마라. 나는 화비룡이다."

그의 음성속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눈을 들어 화비룡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떠올렸다.

"화숙부님을 믿어요."

그녀는 다시 창문을 닫고 마차안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화비룡은 점차로 굳은 표정이 되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구마미륵은 결코 만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서로

팽팽하게 대치해 있을 때 그들중 한 명이라도 빠져나와 그녀에게

다가간다면 자신은 과연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화비룡은 비장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몸이 두조각이 나는 한이 있어도 누구도 그녀의 몸에

손끝하나 대지 못하게 하겠다.'

그는 천천히 구마미륵을 향해 몸을 돌렸다.

구마미륵은 그를 에워싼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그들의 한 점 흐트러짐없는 모습은 화비룡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아륵타는 화비룡의 얼굴이 냉엄하게 굳어지고 그의 몸에서

추상 같은 기세가 뻗어나오는 것을 보고 안광을 번뜩였다.

"화대협. 우리는 결코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화대협이

스스로 권주(勸酒)를 마다하고 벌주(罰酒)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겠소. 우리를 탓하지 마시오."

이어 그는 왼손에 들고 있던 선장을 오른쪽 손으로 옮겨

잡았다.

그것이 신호인 모양이었다.

스슥!

화비룡을 에워싸고 있던 아홉 명의 구마미륵의 몸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화비룡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뽑아냈다.

차앙!

용이 울부짖는 듯한 검명(劍鳴)과 함께 시퍼런 검기가

무지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2

화비룡의 본명은 화전홍(華展虹)이었다.

그리고 그의 별호도 처음에는 섬전신검객(閃電神劍客)이었다.

그의 이름이 화비룡으로 바뀌고, 별호 또한 비룡검객이 된데는

물론 그의 검이 한 마리 비룡처럼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십여 년 전에 화비룡은 혼자서 당시 무림에 명성이 자자하던

강남칠검(江南七劍)을 모두 격파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강남칠검의 우두머리는 검의 귀재(鬼才)로 알려진

혈전검(血電劍) 막동(莫童)이었는데, 막동은 화비룡의 너무도

빠르고 위력적인 검법을 보고 무거운 탄식을 토해 냈다고 한다.

- 검중비룡(劍中飛龍), 인재비룡(人在飛龍)!

검속에 비룡이 있고, 사람속에도 비룡이 있구나!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의 이름과 별호에 모두 비룡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화비룡은 정말로 한 마리 비룡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한 자루 장검을 들고 아홉 명의 절정고수들의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비룡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차차창!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화비룡의 장검은 단번에 네

개의 선장과 네 개의 계도와 모두 부딪쳤다.

그런데도 어느새 화비룡의 검은 아홉번째 인물에게로 쏘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륵타는 여덟 명의 구마미륵의 공세를 뚫고 자신에게

덮쳐오는 화비룡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짤막한 경호성을

내질렀다.

"과연 명불허전! 비룡이 무색하구나!"

그는 들고 있던 선장을 풍차처럼 마구 회전시켰다.

파파파팍!

무서운 경력이 구름처럼 일어나며 화비룡의 장검에 맞서갔다.

막 선장과 장검이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순간,

스슥!

장검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리며 선장을 타고 아래로 주르르

내려왔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뱀이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그 속도와 변화의 묘미가 어찌나 절묘하던지

아륵타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화비룡의 장검은

그의손목을 거의 파고 들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화비룡이 천하에 자랑하는

용형십삼식(龍形十三式)중의 하나인 묵룡탈주(墨龍奪珠)인

것이다.

막 화비룡의 검이 아륵타의 손목을 댕강 잘라버리려는 찰나,

"이야압!"

아륵타의 입에서 주위를 진동시키는 엄청난 폭갈이 터져 나

왔다.

동시에 아륵타의 몸이 제자리에 선 채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팡!

격렬한 파공음이 터져 나 오며 화비룡의 장검이 튕겨져

나갔다.

놀랍게도 아륵타가 몸을 회전시키면서 일어난 강기가 화비룡의

묵룡탈주 일식을 밀어내 버린 것이다.

"회선강기(廻旋 氣)로군."

화비룡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허공으로 튕겨진 검을 빙글

돌려 아륵타의 목덜미를 찔러왔다.

그 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내지르게 할만큼 매끄럽고

깔끔한 동작이었다.

이번의 일검(一劍)은 내찌르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담겨 있어 아륵타의 회선강기를 실로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그 순간 두 개의 선장이 화비룡의 뒷통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화비룡이 일검을 계속 내찌르면 비록 아륵타의 목덜미를 찌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통 또한 선장에

박살나고 말 것이다.

화비룡은 몸을 뒤로 뉘이며 앞으로 내찌르던 검을 뒤로 돌려

질풍 같은 이검을 발출했다.

쐐쐐액!

불가능한 자세에서 나온 검세였는데도 그 위력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가공스러웠다. 바로 용형십삼식중의 절초인

쌍룡창천(雙龍蒼天)의 수법이었다.

까깡!

불똥이 튕기며 뒤에서 공격해 들어왔던 두 명의 미륵이 각기

팔과 옆구리에 일검씩을 격중당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큭!"

"으윽!"

화비룡은 어느 사이에 뒤로 검을 내뻗은 자세를 반듯하게

돌리며 다시 벼락같은 칠검(七劍)을 내찔렀다.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표홀하면서도

예리한 동작이었다.

화비룡을 향해 다가들던 네 자루의 계도가 그 칠검에 모두

격퇴당했다.

한동안 장내는 요란한 칼바람 소리와 검이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격렬한 마찰음 소리가 진동을 했다.

칼과 검, 선장과 검이 쉴새없이 맞부딪치고 섬뜩한

혈화(血花)가 거푸 피어올랐다.

삼십 여초가 지나자 구마미륵중에 네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게 되었다.

놀랍게도 홍루사의 최고고수들인 구마미륵이 화비룡의 검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화비룡 또한 결정적인 우세를 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구마미륵이 펼치는 것은 특이한 구궁연환진(九宮連環陣)으로서

서로의 퇴로를 보호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아직 아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화비룡이 우려하고 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마미륵중의 두 사람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들이 화비룡이 두려워 꽁무니를 빼려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가끔씩 마차를 향하는 것만 보아도 그들의

의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화비룡의

주의력을 흐트러 뜨리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 화비룡은 알면서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중 누구라도 마차속으로 들어가는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 후의 일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자연히 화비룡의 검이 더욱 빠르고 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그럴수록 구마미륵은 공격보다는 철저한 수비로 서로의

몸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화비룡은 조급해져서는 안된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어깨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구마미륵의 일곱 명이 일제히 화비룡을 향해 전력을

다한 반격을 가해 왔다.

하늘이 온통 그들이 휘두르는 선장과 계도의 그림자에 싸여

푸른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화비룡은 용형십삼식의 삼대절초중 운룡전요(雲龍纏搖)와

천룡귀해(天龍歸海)의 두 초식을 거푸 펼쳐내며 맞서갔다.

막 서로의 공격이 허공에서 격돌하려는 순간,

화비룡은 문득 구마미륵중의 두 사람이 빠른 속도로 마차를

향해 날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

화비룡은 안색이 대변해 버럭 노호성을 내지르며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들을 향해 장검을 내던졌다.

쉬아앙!

그의 장검은 천공(天空)을 가르며 날아가는 한 마리 비룡처럼

십 여장의 허공을 날아가 무서운 속도로 두 명의 구마미륵에게로

쏘아져갔다.

두 명의 미륵은 막 마차에 당도하여 문을 열려는 순간

등뒤에서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얼굴에 암담한 절망감이 떠올랐다.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며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오는 하나의

섬광을 본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크아악!"

합창하는 듯한 비명과 함께 그들의 몸은 산적이 꿰이듯 하나의

검에 궤뚫려 무려 오 장이나 날아갔다.

팍!

그들의 몸은 오장밖에 떨어진 거대한 나무의 등걸에 사정없이

꽂혀졌다.

실로 무시무시한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용형십삼식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천룡진구주(天龍震九州)였던 것이다.

하나 그때 화비룡 또한 결코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일곱 개의 선장과 계도를 무시하고

검을 던져 버렸기 때문에 거의 무방비상태에서 구마미륵의

공세를 받아내야만 했다.

하체를 노리고 날아든 두 개의 계도는 몸을 비틀어 간신히

피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 다섯 개의 선장과 계도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그의 몸에 격중되었다.

그는 맨 손으로 자신의 양쪽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드는 두

개의 선장을 막아냈다.

쾅!

그는 머리통이 박살나는 참상은 막았으나 덕분에 양쪽 손목이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이어 하나의 선장이 그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하여 갈비뼈를

모조리 부수어 놓았고, 하나의 계도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절반이나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계도 하나가 그의 아랫배에 깊숙히 틀어박혔다.

푹!

선혈이 하늘 높이 솟구치며 화비룡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는 전신에 유혈이 낭자한 채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다.

아륵타는 그를 뚫어지게 응시한 채 한자한자 힘주어 말했다.

"당신은 과연 대단했지만 혼자로는 무리였소."

화비룡은 입으로 피를 게워내면서도 자신의 아랫배에 꽂힌

계도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런다음 그것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륵타를 비롯한 일곱 명의 구마미륵은 그를 에워싼 채 묵묵히

그가 계도를 뽑아내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화비룡은 아랫배에 꽂힌 계도를 모두 뽑아냈다.

그의 아랫배는 이미 쩌억 갈라져 푸르스름한 내장이 삐져 나

오고 있었다.

화비룡은 뽑아든 계도를 든 채로 아륵타를 향해 걸어갔다.

스륵...스륵....

한 걸음 한 걸음이 미치도록 답답했으나 화비룡은 몸을

끊임없이 떨면서도 아륵타를 향해 다가갔다.

아륵타는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화비룡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화비룡은 계도를 쳐들었다.

그런다음 아륵타를 향해 계도를 내리쳤다.

아륵타는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계도를 피했다.

그 순간 화비룡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화비룡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륵타는 화비룡의 시신을 내려보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내가 만난 최고의 검객이었소."

이어 두 손을 합장하고 나직하게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그것은 최고의 무인(武人)의 최후에 대한 정중한 예우였다.

그때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동방완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화숙부님...? 화숙부님?"

동방완아는 보이지 않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애타게 화비룡을

찾았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싸움이 끝난 것을 알고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화비룡의 음성이 들리지 않자 그녀의 얼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화숙부님...? 어디 계세요?"

아륵타는 그녀의 미모가 소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대한 소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아륵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화대협은 이곳에 있소, 동방소저."

동방완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기다리던 화비룡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전혀 낮선 사람의

음성이 들리자 불길한 전조를 느낀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아륵타가 소리친 곳으로 걸어왔다.

사륵...사륵...

그녀의 옷자락이 땅위를 스치는 소리만이 주위에 울려퍼져

묘한 적막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조금씩 화비룡이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피냄새가 짙어지자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갔다.

마침내 그녀는 화비룡의 몸 가까이 접근했다.

"바로 거기요. 화대협은 그곳에 있소."

아륵타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동방완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주위의

땅을 손으로 더듬었다.

하나의 옷자락이 손 끝에 닿았다.

그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화비룡의 옷이었다.

그녀가 몇 번이나 만져 보았던 바로 화비룡의 옷이었다.

그 옷은 무언가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동방완아는 그것이 화비룡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라는 것도

알지 못한 듯 화비룡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 당겼다. 옷에 끌려온

화비룡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의 고운 옷자락이 피로 더러워 졌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비룡의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울음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고운 두 뺨이 촉촉한

눈물로 젖어 있을 뿐이었다.

소리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철석간장을 지닌

인간이라해도 가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로운

것이었다.

화비룡은 그녀에게는 제이(第二)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동안 그는 그녀를 지켜 주었고, 그녀의 눈이

되주었다. 그녀가 허전할 때 말벗이 되어 주었고, 아버지에게

느껴보지 못한 정(情)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화비룡이 죽고 만 것이다.

이제는 누가 있어 그녀를 지켜줄 것인가? 이제는 누가 그녀의

눈이 되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소리없는 흐느낌은 다른 어떤 통곡보다도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

아륵타를 비롯한 일곱 명의 구마미륵은 그녀의 주위에 늘어선

채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좀처럼 그녀가 일어설 기색이 없자 아륵타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동방소저. 이제 그만 일어서시오. 본사의 주지께서 소저를

기다리고 계시오."

그의 손이 막 동방완아의 가녀린 어깨를 움켜 잡으려 할

때였다.

"그녀에게서 손을 떼."

어디선가 나직한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그것은 아륵타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냉혹하고 비정한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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