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장 자 부 심 을 느 껴 도 돼
1
그 사나이는 언제부터인가 관도(官道)의 한 복판에 그렇게 서
있었다.
양 손을 늘어뜨리고 두 팔을 약간 벌린 채로....
마차가 코앞으로 다가오는데도 그는 그자세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마부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마차를 멈춰세웠다.
"무슨 일이냐?"
마차의 안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마부는 조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누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마차의 휘장이 열리며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교악은 마차밖으로 나오자 곧 눈을 빛내며 마차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그 사나이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낡고 허름한 흑의를 걸치고
있었다.
까치집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안대가 반쯤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번뜩이는 외눈 하나!
그 눈을 보는 순간 교악의 몸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미하게 떨렸다.
그는 수십 년을 도산검림(刀山劍林)속에 살면서 수많은
절정고수들을 보아왔지만 이토록 무서운 눈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너는 누구냐?"
교악은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흔들림을 멈추기 위해서
냉랭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사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늑대의 미소처럼 사나운 웃음이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낸 늑대...
그 미소를 보자 교악은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왔다.
그러다 문득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안색이 홱 변했다.
검은 안대....검은 옷....그리고 번뜩이는 외눈!
그것은 당금 무림에서 피와 죽음의 대명사(代名詞)로 통하는
한 인물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 아닌가?
교악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너는 혹시 냉혈무정...?"
노독행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나야."
교악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맹세코 말하건데, 교악은 사십 평생동안 아직 싸우기도 전에
누구를 두려워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은 자신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냉혈무정!
이이름은 신화(神話)를 이룬 이름이었다.
출도한 지 단 석 달만에 이룩한 공포(恐怖)의 신화!
수 백년동안 강북을 제패했던 천상회를 단신으로 뛰어들어
무너뜨리고, 스물 여덟 명의 절정고수들의 합공을 혼자서 격파한
사나이!
그 동안 그의 손에 쓰러진 고수의 이름을 보면 누구라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희대의 살성이니 냉혹한 살인마니 하는 말들은 무색한
것이었다.
그는 무림역사상 가장 무서운 인물로 공인된지 오래였다.
천년의 무림사(武林史)에 그보다 강한 고수를 찾으라면 어쩌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 그보다 더 무림인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찾을 수가 없다.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
아직까지 그의 손 아래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 공포스런 존재가 지금 교악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교악이 당혹과 두려움으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마차의 휘장이
다시 들렸다.
그리고 천천히 우문산이 걸어나왔다.
* * *
그녀는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가 왔다.
그가 와 주었다.
그가 자신을 구하러 수 천리 먼길을 달려와 준 것이다.
절망으로 메말랐던 그녀의 가슴에는 어느새 촉촉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다시 자유로울 수 있다.
아무리 무서운 인물이 나를 막으려 해도 그는 나를 구해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양 손을 꼬옥 쥐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영영
날아가 버리기라도 할 듯이...
그때였다.
꽝!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강력했던지 마차가 금시라도 뒤집힐 듯
세차게 뒤흔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급히 휘장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 * *
우문산의 공력(功力)은 노독행으로서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가벼운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우문산은 단지 장난처럼 왼손을 앞으로 쭈욱 내 뻗었을
뿐인데도 노독행은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오른손을
날려 정면으로 맞서야만 했다.
쾅!
격돌하는 순간 노독행은 정신이 아찔했다.
충격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몸이 삼 장이나 격퇴당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핏덩이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나 그가 채 치밀어 오는 피를 토해 내기도 전에 다시
우문산의 주름진 손바닥이 다가왔다.
노독행은 방금 전의 격돌로 두 번 다시 우문산의 가공무비할
공력에 정면으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한 번만이라도 더 맞부딪친다면 그나마 약기운을 빌어
지탱하고 있는 노독행의 몸은 결코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노독행은 일단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곳외에는 마땅히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우문산의 장세(掌勢)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노독행의 신형이 우문산의 머리위로 솟구쳐 올라갈 때
우문산의 무표정한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만큼이나 싸늘한 미소였다.
동시에 우문산의 오른손이 번개보다도 빨리 허공을 향해 뻗어
올라갔다.
콰아아아....
무언지 모를 거대한 기운이 노독행의 신형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무지개가 천공(天空)을 가르고 반대편
하늘로 사라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노독행의 몸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노독행의 왼쪽 어깨부근 옷자락은 이미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훤히 드러난 왼쪽 어깨는 피부가 온통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우문산이 방금 사용한 기운은 염왕추(閻王鎚)라는 초상승의
내가기공(內家氣功)이었다. 염왕추는 이미 강호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백 년이 넘는 무공으로, 이름 그대로 전신의
공력을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추(鎚)처럼 펼쳐내는
수법이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막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 위력은 능히
강철판도 뚫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노독행이 최후의 순간에 어깨를 비틀어 피하지 않았다면 그의
어깨는 산산히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단순히
스치기만 했는데도 노독행은 왼쪽 팔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우문산은 어느새 허공을 가로질러 노독행의 코앞으로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양쪽 소매가 부채질을 하듯 세차게 펄럭거리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파파파....
소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주위를 질식시킬 듯한 맹렬한
기운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노독행을 핍박해 들어왔다.
우문산은 노독행이 강호에 출도한 이후 만난 어떤 고수보다도
강한 인물이었다. 더구나 내공력(內功力)에 있어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노독행은 아직까지 남과 싸우면서 공력의 부족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나 지금은 자신이 확실히 그보다 공력면에서 많은 손색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피하기만 하다가는 상대의 공력에 압도당해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순간 노독행은 주저없이 가공할 소용돌이를 이루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우문산의 공세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아아....
양쪽 소매가 갈라터지며 팔뚝까지 훤하게 드러났으나 노독행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곧장 오른손을 앞으로 내찔렀다.
쾌쾌구!
그의 주먹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는 우문산의 경기속을
뚫고 맹렬한 속도로 앞으로 전진했다. 바로 무쌍류의
붕추권이었다.
우문산은 노독행의 일권(一拳)이 자신의 번천수(飜天袖)를
뚫고 들어오자 두 손을 가슴앞으로 끌어당겨 십자(十字)로
교차시켰다가 세차게 떨쳐냈다.
두 개의 쇠기둥을 연상케 하는 시퍼런 경기가 무서운 속도로
노독행의 주먹을 향해 쏘아져왔다.
막 주먹과 경기가 부딪히려는 찰나,
빙글!
노독행의 몸이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빠르게 회전하며 십
여번의 발길질을 해댔다.
이번의 공세는 확실히 빠르고 날카로웠다.
우문산을 두 걸음이나 물러서게 했으니 말이다.
우문산이 남과의 싸움에서 뒤로 물러나 보기는 삼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에 그를 물러나게 했던 사람이 동방유아였다.
그리고 그와의 싸움이후 우문산은 산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삼십 년만에 당한 일이었으나 우문산은 별로 뜻밖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무쌍류의 후예를 쉽사리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패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우문산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났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다가서며 오른손을 세 번 거푸 흔들었다.
세 겹의 장영(掌影)이 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삼첩수(三疊手)라는 상승(上乘)의 수법이었다.
우문산의 공격방식은 노독행으로 하여금 자신의 공세를 피하지
않고 맞받아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노독행으로서는 도저히 우문산의 바다와
같은 공력을 당해 내지 못할게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지금도 노독행의 전면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세 겹의 장영은
노독행으로 하여금 일시지간에 피할 곳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노독행에게는 두 가지중의 한 가지 길만이 있을 뿐이었다.
삼첩수의 장세를 맞받아치던지, 아니면 삼첩수가 날아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둘중 어느 것도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나 그때 노독행은 제삼(第三)의 길을 찾아냈다.
그의 몸이 갑자기 아래로 푹 꺼져 버렸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고 갑작스러웠던지 우문산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노독행의 몸을 놓치고 말았다.
꽈르릉!
삼첩수의 막강한 장세가 방금전까지 노독행이 서 있던 위치를
무서운 기세로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밑으로 꺼졌던 노독행의 몸이 그의 코앞으로
불쑥 튀어올랐다. 의당 머리가 먼저 올라올 줄 알았는데
우문산의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노독행의 두 다리였다.
노독행은 몸을 최대한 아래로 낮추었다가 물구나무의 자세로
일어섰던 것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몸을 거꾸로 돌릴 수
있었는지는 수 백번의 싸움을 경험한 우문산으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파파파팍!
노독행의 두 다리는 맹렬한 기세로 우문산의 머리통을 향해
수십 개의 환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동시에 노독행의 두 손은
우문산의 무릎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 상하(上下)가 뒤바뀐 연환공격은 무쌍류의 무예에도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노독행 식(式)의 즉흥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기기묘묘해서 우문산을 곤궁에 처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머리를 발로 공격당해본 사람은 머리라는 부위가 생각만큼
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머리는 공격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만큼 피하기도 수월치 않다. 더구나 수십 개의
발그림자가 우박치듯 퍼붓고 있을 때는 제아무리 대단한
고수라해도 어떻게 막을지 난감해지는 것이다.
우문산은 양 손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동시에 두 발을 교차로 움직여 자신의 무릎을 향해 날아오는
노독행의 손목을 빠르게 걷어찼다.
타탁!
노독행의 발은 우문산의 팔을 십 여번이나 강타했다. 그와함께
노독행의 손도 우문산의 발과 네 차례 부딪쳤다.
두 사람은 빠르게 떨어졌다.
노독행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똑바로 섰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손목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던 것이다.
반면에 우문산은 묶었던 머리의 끈이 풀어져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이 허리아래까지 풀어져 내려 약간 낭패스런
모습이었다. 비록 정면으로 얼굴을 강타당하지는 않았으나 얼굴
전체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더구나 양 쪽 팔은 퉁퉁 부어 제대로 들어올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공력면에서는 우문산이 훨씬 앞섰지만 빠른 초식의 전환에
있어서는 확실히 노독행이 뛰어난 면이 있었다.
우문산도 그것을 느꼈는지 냉정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노독행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빠르군. 그리고 날카로워. 소문을 들었을 때는 별로
믿지 않았는데...소문대로 맨손으로는 너를 당할 자가 없겠다."
노독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의 수정처럼
차가운 시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문산은 풀어헤쳐진 머리를 묶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천천히
허리띠를 풀었다.
"노부가 이것을 다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점에서
너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허리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여타의 허리띠와 전혀 다른 점이 없어 보였다.
우문산은 허리띠를 풀어서 몇 차례 흔들었다.
그러자 부드럽던 허리띠가 딱딱해지며 네 자 정도되는
막대기로 변해 버렸다.
우문산은 막대기로 변한 허리띠를 들고 허리를 쭉 폈다.
"너는 삼십 년만에 처음으로 노부의 쟁천봉을 본 사람이다."
쟁천봉!
이 허리띠도 아니고 막대기도 아닌 기이한 물건이 바로
우문산으로 하여금 무림역사상 봉술의 최고고수라는 명성을 얻게
만든 그 전설의 신병(神兵)이란 말인가?
2
쟁천봉을 들고 우뚝 서자 우문산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단순히 막대기 하나를 들고 있을 뿐인데 그의 전신은 단 한
군데의 빈틈도 없는 완벽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어디를 보아도
공격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노독행은 한동안 번뜩이는 외눈으로 우문산의 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몇 번인가 그는 몸을 앞으로 움직이려다 멈춰서곤
했다.
상대의 자세가 너무 완벽해서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우문산은 얼음장 같은 눈으로 노독행을 보고 있다가 천천히
쟁천봉을 쳐들었다.
"노부의 쟁천봉에는 마흔 여덟 가지의 수법이 숨어 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노부는 그것을 계속 줄여나가 마침내는 단 여섯
개의 변화만을 남겨 놓았다. 노부 스스로는 그것을
조화육법(造化六法)이라고 이름 붙였지."
마흔 여덟 개의 변화를 오히려 여섯 개로 줄여 버렸다!
남들이라면 변화를 더 늘리려고 기를 쓸텐데 오히려 변화를
줄여 버렸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하나 그 말을 듣는 노독행의 표정은 한층 더 진지해졌다.
변화의 숫자는 비록 줄어 들었지만 그 반면에 변화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이나 오묘한 수법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사십팔변(四十八變)이 단 육변(六變)으로 줄어 들었다면
이치상으로도 먼저번에 비해 최소한 여덟 배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우문산의 손에 들린 쟁천봉이 서서히 들리면서 한 가닥 주위를
질식시킬 듯한 가공할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덤으로 들어가기 전에 언제고 한 번 마땅한 상대를 만나 이
조화육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 상대가 무쌍류라니 노부가 운이
좋은 건가?"
우문산은 쟁천봉을 허공으로 번쩍 쳐들었다가 노독행의
머리통을 향해 세차게 내리 찍었다.
"이게 조화육법중의 제 일법(第一法)인
교탈조화(巧奪造化)다."
우문산의 동작은 몹시 어설퍼 보였다. 마치 나뭇꾼이 장작을
패기 위해서 도끼를 머리위로 쳐들었다가 내려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 그 위력은 결코 어설프지가 않았다.
쿠아아악!
마치 천지가 온통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단순히 넉 자 크기의 막대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릴
뿐인데도 주위의 공기가 무섭게 요동치며 가공할 경기가 사방을
온통 짓이길 듯이 마구 휘몰아쳤다.
노독행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쟁천봉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쟁천봉은 언뜻 보기에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지만 그
끝은 끝없이 미약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도데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노독행은 월영도를 뽑아들었다.
파앗!
한 줄기 시퍼런 도광(刀光)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쟁천봉을
향해 뻗어갔다. 막 도광이 쟁천봉에 격중되려는 순간, 쟁천봉의
끝이 드디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떨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고 그 범위가
약간 커지는 정도에 불과했으나 순식간에 쟁천봉은 무서운
속도로 흔들리며 노독행의 전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그물로 상대를 머리부터
뒤덮어 버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까깡!
월영도가 수 백개로 불어난 쟁천봉의 환영(幻影)중 하나와
부딪치며 요란한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노독행은 월영도를 쥔
손목에 강력한 충격을 느끼고 하마터면 칼을 떨어뜨릴 뻔했다.
놀랍게도 그 많은 환영들이 모두 실체와 다름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월영도를 튕겨낸 쟁천봉의 그림자는 노독행의 전신을 송두리째
휩쓸어 버렸다.
그 순간 노독행은 월영도로 커다랗게 반원을 그렸다.
쭈아악....
도광이 하늘높이 솟구치며 하나의 거대한 벽(壁)을 형성했다.
바로 천하최강의 수비초식이라는 요란도중의 성막밀밀이 펼쳐진
것이다.
한쪽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봉의 그물(棒網),
다른 한 쪽은 수 백개의 도광으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칼의
벽(刀壁)!
두 절세무공은 허공에서 정면으로 격돌을 했다.
콰콰콰콰....
가공할 여파가 반경 십 장이내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교악은 마차를 끌고 십여장밖에 물러나 있었으나 그래도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일 장뒤로 급히 후퇴했다.
노독행의 성막밀밀은 우문산의 교탈조화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런데도 노독행은 코로 검붉은 선혈을 흘리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야만 했다. 단 한 군데도 정면으로 쟁천봉에
가격당한 곳은 없었지만, 쟁천봉에 담겨 있는 대해(大海)와 같은
경력에 내장이 크게 뒤흔들렸던 것이다.
우문산도 어느 정도의 충격은 받았을 것이다. 하나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노독행의 앞으로 바짝 다가들며
쟁천봉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파라라락!
마치 쇠로 만든 거대한 철기둥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쇠기둥에 일단 휩쓸리기만 하면 설사
대라동인(大羅銅人)이라해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이것이야말로 조화육법중의 두 번째 초식인
겁륜조화(劫輪造化)인 것이다.
경기가 채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노독행의 옷자락은 여기저기가
뜯겨나가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곤두서 흉칙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노독행은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자신을 향해 풍차처럼
다가오는 쟁천봉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서운건 쟁천봉이 아니었다.
쟁천봉의 뒤에 숨어 있는 우문산의 막강한 내공력이었다.
그 내공력에 정면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피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노독행은 절정고수들간의 결전일수록 일단 약세를 보이게 되면
영원히 만회할 길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맞받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과연 무슨 수로 우문산을 꺾는단 말인가?
노독행은 뜻밖에도 월영도를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는 맨손으로 그대로 쟁천봉의 공세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화약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짓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파아아...
노독행의 오른쪽 소매가 어깨부근까지 누더기처럼 찢겨져
나가며 맨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쟁천봉이 막 노독행의 오른쪽
어깨를 박살내려는 순간, 노독행의 몸은 우문산의 왼쪽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쉬아앙!
쟁천봉이 무서운 파공음을 내면서 노독행의 관자놀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노독행의 손은 거의 우문산의 왼쪽 갈비뼈 부근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 희끗한 그림자와 함께 쟁천봉이 가공스런
속도로 노독행의 미간을 노리고 다가들었다.
쟁천봉의 한쪽 끝을 피했다고 느낀 순간 반대쪽 봉의 끝이
날아든 것이다.
노독행은 몸을 최대한 뒤로 제켰다. 쟁천봉이 다시 섬뜩한
음향과 함께 그의 머리위를 지나갔다.
노독행은 뒤로 제킨 몸을 일으킬 사이도 없이 몸을 옆으로
뒤짚었다.
쉬익!
그와 거의 동시에 쟁천봉이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가 있던
위치를 훑고 지나갔다.
가공할 위세로 회전하는 쟁천봉은 노독행으로 하여금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죽음의 수레바퀴마냥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숨 한 번 내쉴 짧은 순간에 노독행은 무려 열 다섯 번이나
몸의 자세를 바꾸어야만 했다. 무쌍류의 실전무예로 단련된 몸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동작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쟁천봉의 공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도데체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우문산의 몸 전체가 풍차처럼 회전하는 쟁천봉에 둘러 싸여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나 스물 두 번째로 몸을 뒤집었을 때 노독행의 몸은
우문산에게서 반장도 안되는 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피하는
것조차도 기적처럼 생각되는 긴박한 와중에 노독행은 조금씩
조금씩 우문산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문산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의 손놀림은 조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변해 있었다.
우문산 또한 노독행이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단지 감지했을 뿐 아니라 그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노독행에게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 무쌍류 특유의
빠르고 저돌적인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우문산이라해도 도저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노독행이 월영도를 회수했던 것도 접근전으로 승부를 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문산의 공세는 노골적으로 노독행의 접근을 막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노독행 또한 필사적으로
쟁천봉의 공세를 뚫고 우문산에게로 접근하려 하고 있었다.
접근하려는 자와 접근을 막으려는 자!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격렬한
무언가가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 어떠한 격돌도 없었지만 이와 같은 승부는 그
어떤 싸움보다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단 한 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그야말로 강인한 체력과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집요한 끈기와 맹렬한 승부욕의 겨룸인 것이다.
그중 어느 한 가지라도 상대에게 뒤지게 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한동안 죽음 같은 적막이 흘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오직 쟁천봉이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과
노독행의 옷자락이 펄럭이는 음향 뿐이었다.
일각이 흘렀다.
노독행의 전신은 이미 땀으로 목욕을 한 지 오래였다.
누더기처럼 변한 흑의가 전신에 차악 달라붙어 강인한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울퉁불퉁한 근육은 벌건 핏줄이 툭툭
불거져 있어 그가 지금 얼마나 심한 체력을 소모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문산 또한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머리와 옷도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나 쟁천봉을 휘두르는 그의 손길은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았다.
노독행보다 네 배나 나이가 많은 그가 훨씬 더 팔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문산의 체력이 노독행보다 월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문산은 단지 팔을 휘두르고 있는데 비해 노독행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체력의 소모가 훨씬 더 컸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체력을 소모하다가는 제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배겨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노독행은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니어서 약효로 지탱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 결과가 점점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쉴사이 없이 몸을 이동시키며 우문산에게로 접근하고 있던
노독행의 움직임이 조금씩 완만해지기 시작했다.
우문산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손길이 더욱 빨라지며 쟁천봉의
위력이 배가되었다.
팟!
쟁천봉이 노독행의 오른쪽 옆구리를 거의 닿을 듯이 스치고
지나갔다. 쟁천봉이 스치고 지나간 노독행의 옆구리는 피부가
거무튀튀하게 죽어 있었다.
노독행의 눈쌀이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살짝 찌푸려지며
신형이 약간 흔들렸다. 옆구리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에 쟁천봉이 무려 서른 여섯 개의 그림자를 뿌리며
날아들었다. 그 서른여섯 개의 그림자는 하나하나가 모두
빙글빙글 돌아들어오고 있었다.
우문산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조화육변중의 절초인
선전조화(旋轉造化)와 철련조화(鐵連造化)를 연거푸 펼쳐냈던
것이다.
눈부시게 선회하며 들어오는 서른여섯 개의 쟁천봉!
그것을 본 노독행의 외눈에 암담한 빛이 어른거렸다.
주위가 온통 쟁천봉의 환영에 가려 어디로도 피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노독행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양 팔을 들어 휘둘렀다.
그것은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수레바퀴에 두 팔을 들어
대항하는 사마귀의 허망한 마지막 몸부림과도 같았다.
최소한 우문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쟁천봉을 맨손으로 막으려 하다니...
따따딱!
마치 대나무로 마른 장작을 후려치는 듯한 음향이 연거푸 터져
나 왔다.
우문산의 쟁천봉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노독행의 양쪽 팔을
사정없이 강타해 버렸다.
서른여섯 개의 그림자.
서른여섯 번의 격타음.
쟁천봉은 정확하게 서른여섯 번이나 노독행의 두 팔에
격중되었다.
단지 스치기만 해도 살이 갈라지고 뼈가 부러지는 무서운
위력을 지닌 쟁천봉에 무려 서른여섯 번이나 격중당했으니 어찌
그러고도 무사하길 바라겠는가?
과연 노독행은 양 팔을 허리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우문산은 쟁천봉을 거두어 들이며 천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신화의 주인공이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르르...
고목이 쓰러지듯 허물어지던 노독행의 신형이 바닥에 닿기
직전에 한 마리 뱀처럼 미끄러지듯 바닥을 타고 다가왔다.
그 속도는 한 마리 비사(飛蛇)와 다를 바가 없었다.
우문산이 그것을 알았을 때는 노독행의 몸은 이미 이 장
거리를 압축해서 그의 코앞으로 육박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평정을 잃지 않았던 우문산의 안색이 홱
변했다.
마침내....우문산은 노독행에게 손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접근을 허용한 것이다.
노독행은 나무위를 기어오르는 독사처럼 우문산의 발밑에서
솟구쳐 오르며 오른쪽 무릎으로 우문산의 옆구리를 찍어왔다.
그제서야 우문산은 자신이 한 가지 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독행의 양 팔은 쟁천봉에 의해서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의
두 다리는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치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착오였으나 그것이 초래한 결과는 가히
치명적인 것이었다.
우문산은 전력으로 몸을 회전시켜 간신히 노독행의 첫 번째
무릎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다시 노독행의 왼쪽 무릎이
다가왔다.
그때 우문산은 노독행의 무릎이 다가오는 쪽으로 몸을
회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콰직!
노독행의 무릎이 우문산의 오른쪽 옆구리에 깊숙히 쳐박히며
갈비뼈가 모두 부서져 나갔다.
우문산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나 이를 악물고
자신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노독행의 왼쪽 무릎을 오른팔로 낀
다음 쟁천봉으로 노독행의 머리를 후려쳐갔다.
그때 그는 두번째 착오를 일으켰다.
우문산은 노독행의 반격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이미 양쪽 팔을 사용할 수 없는데다 왼쪽 무릎마저 잡힌
상태에서 다른 공격수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노독행의 허리가 뒤로 제켜졌다가 맹렬하게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의 이마는 우문산의 머리를 정통으로
강타하고 있었다.
빡!
우문산이 쟁천봉을 채 반도 휘두르기도 전에 노독행의 이마는
우문산의 머리를 그대로 받아 버렸다.
그것은 너무도 돌발적이고 예상치 못했던 공격인지라 우문산은
머리가 깨어져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오고 있는데도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문산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노독행은 그의 가슴위로 뛰어오르며 오른쪽 무릎으로
그의 턱을 강타했다.
그리고 무쌍류의 독보적인 '십팔연환슬격(十八連環膝擊)'이
시작되었다.
* * *
상체로 하는 공격중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은 주( )와
고( )다.
그렇다면 하체의 공격중 가장 강한 공격은 과연 무엇일까?
무쌍류에서는 그것을 슬격(膝擊)이라고 정의한다.
슬격이란 바로 무릎을 이용한 공격을 말한다.
적당한 거리에서의 격투라면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근접한 거리에서는 공격하기 어렵다. 그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슬격이다.
하나 무쌍류의 슬격은 여타 문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먼 거리이건 가까운 거리이건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먼
거리에서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공격을 할 수 있고, 가까운
거리라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위치의 공격이 가능하다.
다른 문파는 어느 부위를 공격할 것인가에 관심을 쏟지만
무쌍류는 어느 위치에서 공격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완벽한 위치하에서만이 비로소 슬격 본연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격의 위력은 주먹이나 팔꿈치, 기타 어느 것으로도 비교되지
않으며 정확한 공격을 당한다면 누구도 견딜 수 없다.
반면에 단점도 있어서 아무래도 다른 공격에 비해 속도가
느리게 된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상체를 완전히 제압하거나
봉쇄한 후에 공격해야 한다.
무쌍류에서는 일찍부터 이 슬격술(膝擊術)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거니와 오랜동안의 각고 끝에 마침내는 하나의
완전무결한 습격술을 만들어 냈다.
일단 걸려들기만 하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무적의
슬격술!
단 한 순간에 열 여덜 번의 폭포수 같은 공격을 퍼부어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無力化)시키는 최고의 수법!
그것이 바로 무쌍류의 십팔연환슬격이다.
- '무쌍류비전총요'중에서
* * *
콰콰쾅!
노독행은 우문산의 가슴위에 반쯤 걸터앉은 자세로 양 무릎을
번갈아 가며 질풍노도와 같이 가격했다.
열여덟 번의 굉음이 터져 나 오며 우문산의 가슴뼈와 얼굴은
처참한 모습으로 짓이겨져 버렸다.
"끄으으...."
우문산은 입으로 괴이한 신음을 토하며 몸을 휘청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쿵!
노독행의 신형도 그와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십팔연환슬격을 사용하고 난 지금 노독행은 제대로 서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양 팔은 뼈가 모두 부러지고 혈맥(血脈)이 터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고, 전신의 체력은 바닥이 난지 오래였다.
그리고....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금환의 약효가 모두 떨어져 체내의 기운이 마구 뒤엉키고
내상이 치유하기 힘든 상태로 재발해 버렸던 것이다.
"우웩...."
노독행은 한바탕 시커먼 피를 토해 냈다.
그런다음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었으나 그는 몸을 일으킨 채로 느릿느릿 우문산에게
다가갔다.
우문산은 이미 상체의 뼈가 산산이 으스러지고 얼굴의 반이
달아나서 인간의 몰골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토록 냉정하고 흔들릴 줄 몰랐던 그의 눈빛 또한 흐릿하게
꺼져가고 있었다.
노독행은 피바다속에 누워 있는 우문산의 얼굴을 우두커니
내려다 보았다.
우문산은 꺼져가는 눈으로 그를 올려 보다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너...조...조금 전에 일부러 빈틈을 보인건가?"
노독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산의 입꼬리가 이상하게 뒤틀렸다.
아래턱뼈가 모두 부러져 괴이하게 보였으나 그것은 분명
웃음이었다.
우문산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이 나이를 먹어도 그런 술수에 넘어가다니...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노...노부는 결코 속지 않았을...것이다."
노독행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조금전의 격투는 끔찍한 것이었다.
노독행뿐만 아니라 우문산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로
탈진상태에 있었다.
노독행은 금환의 약효가 떨어지며 자신의 체력이 급격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상태로는 도저히 몇
초를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다.
그는 우문산도 자기처럼 힘들고 지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노독행이 헛점을 보이자 우문산은 냉정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들었다.
만약 우문산이 그토록 절박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노독행의 노림에 빠져 들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노독행이고,
우문산도 참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싸움이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문산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네...무쌍류는...확실히 연구해볼....가치가 있어..."
이것이 고금제일의 봉술의 대가(大家)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