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건곤 2부(중) - 용대운 저
제 41 장 이 제 는 선 택 의 길 이 없 다
1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올 눈물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이 절망(絶望)에 이르면 기쁘고 슬퍼하는 모든 감정들이
사라진다고 한다.
지금의 그녀가 그러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무표정한 얼굴보다도 더욱더 황폐하고 메말라
있었다.
몸은 비록 살아 숨쉬고 있지만 그녀의 머리와 마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차가 흔들리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는 그녀의 동공(瞳孔)은
텅빈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교악은 힐끔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혼백이 어디론가로 빠져나간 인형같았다.
모용세가를 나올 때부터 그랬다. 아니 엄격히 말하자면 그들이
그녀의 거처로 갔을 때 이미 그녀는 넋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교악이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은 이번에 네 번째였다.
하나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보게 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오래전부터 교악은 그녀에 대한 소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개중에는 교악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 교악은 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귓전으로 흘려 보내곤
했었다.
그는 그러한 여자가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호에 몸을 담고 무공에 평생을 바치기로 한 무인(武人)들이
한낮 여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모습도 탐탁치 않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마차안에서....
그리고 그제서야 교악은 남들이 왜 그토록 그녀에 대해서 입에
침이 닳도록 떠들어 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교악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지 모를
아릿한 감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교악이 오래전에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슬픔 비슷한 감정이었다.
다행히 교악은 스스로의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이상 그녀의 옆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교악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었다.
섬서성(陝西省) 보계(寶鷄) 태생이며, 선하령(仙霞嶺)의
천룡거사(天龍居士)에게 사사(師事)했다.
별호는 쌍수마객(雙手魔客).
성명절기는 쌍장(雙掌)으로 휘두르는
추혼십삼장(追魂十三掌)으로, 빠르고 독랄하기가 가히
강호일절(江湖一絶)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산장에 들어온지는 정확하게 구 년이 되었고, 칠대빈객중 여섯
번째의 지위에 있었다.
교악이 처음 노주인에게 지시를 받고 모용세가로 올 때만해도
그는 이번 일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오히려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오는 일에 자신뿐만 아니라
강호의 전설적인 존재인 우문노인마저 기용되었다는 것에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정말로 특별한 여자다!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주인도...?
더 이상의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덜컹!
돌에 걸렸는지 마차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교악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처음의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보자 교악의 마음속에는 다시 야릇한 감정이 솟아
올랐다.
그때 마침 우문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조금만 더가면 삼리점(三里店)이로군."
우문노인의 음성은 언제들어도 냉정했다. 때문에 교악은
찬물로 머리를 씻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악은 우문노인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배로 갈아타기로 했습니다."
우문노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극도의
공경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교악이 제아무리 당금 강호를 울리는 절정고수라고 해도
우문노인에 비하면 애송이 중의 애송이였다.
우문노인은 교악이 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천하를 위진(威震)시켰던 인물이었다.
쟁천봉 우문산!
이이름은 무림역사상 봉술(棒術)의 최고경지에 다다른
이름이었다.
막대 하나로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인물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실로 '공전절후(空前絶後)
전무후무(前無後無)'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그의
찬란했던 행적은 아직도 무림명숙들의 입을 통해서
회자(膾炙)되고 있었다.
우문산의 얼굴은 비쩍 말랐고, 머리는 백발에 검은 터럭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체구도 별로 크지 않았고, 남들처럼
맹렬한 기도를 풍기고 있지도 않았다.
어찌보면 한 명의 평범하고 초라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단지 그의 눈빛만큼은 조금 색달랐다.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깊숙히 파묻혀 있는 두 개의 눈은
얼어붙은 호수(湖水)를 연상케 할 만큼 차갑고 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눈을 한참동안 보고 있으면 심혼이 그대로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우문산은 그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모녀(母女)가 많이 닮았군."
무표정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몸이 거의 느낄 수 없을만큼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막연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우문산에게로 향했다.
"어머니를...아세요?"
그녀는 거의 입술을 달싹거리지도 않고 나직하게 물었다.
우문산은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십여 년 전에 잠깐 본 적이 있지. 네 어머니는
관외옥녀(關外玉女) 상관경(上官卿)이지?"
그녀의 고개가 미약하게 끄덕거렸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어머니의 이름인지라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한 줄기 아련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관외옥녀 상관봉은 한때 천하제일미녀(天下第一美女)로까지
불리웠던 여인이었다.
이십 오년 전만 해도 장성(長城)너머의 청년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는 동경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젊은 날을
방황으로 보낸 인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 그녀는 파랑새가 둥지를 떠나가듯 어느 날 갑자기
강남으로 날아가 그곳의 유력한 고수였던 모용태릉과 혼인을
했고, 그 때문에 상심(傷心)에 찬 사람들의 탄식소리가 한동안
관외를 진동하기도 했었다.
"그때가 아마 네 어머니와 아버지의 혼례날이었을 것이다.
노부는 상관홍의 초청을 받고 참가했고, 두 사람에게
대례(大禮)를 받았지."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기대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저의 외할아버지와 아시는 사이세요?"
"약간의 안면이 있지. 상관홍은 나를 대형(大兄)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도 아세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우문산의 음성이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상관홍은 너무 어리석은 짓을 했다. 자기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그런 꼴을 당해도 싸지."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혹시나 하는 표정은 다시 흐릿한
잿빛으로 변해 버렸다.
우문산은 얼음장 같은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너의 어리석은 짓 하나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래서 결국 노부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얼굴에 떠올라 있던 그나마의 표정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고,
다시 처음의 모습 그대로 허공을 응시했다.
우문산은 그런 그녀를 보고도 조금도 음성이 바뀌지 않았다.
"일이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그러지 않았다면
네 아버지는 아마 지금쯤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결코 협박이나 위협하려는 말은 아니었다.
우문산은 진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우문산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고 있다가
중얼거리듯 마지막 음성을 내뱉었다.
"이제 너에게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앞으로의 네 인생은
노주인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
이제 그녀에게는 더 이상 선택할 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 막혀 버린 지금, 그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의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든 그것은 불행과 고통으로
가득찬 나날들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화려한 꽃으로 치장을 해도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인간이라면 더
이상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
방립동은 아까부터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노독행은 허공을 응시한 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방립동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인가?"
방립동은 다시 머뭇거렸다.
"그녀를 데려간 인물들에 대해서...."
"그들이 누구인가?"
방립동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산장의 고수들일세."
노독행의 몸이 한차례 움찔거렸다.
"산장이라니...어느 산장 말인가?"
방립동의 음성은 얼굴에 떠오른 표정만큼이나 착잡한
것이었다.
"포호산장."
노독행은 입을 다물었다.
포호산장....포호산장이라!
포호산장의 고수들이 왜 방립동의 아내를 끌고간단 말인가?
그의 아내는 포호산장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노독행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 생각은 너무도 놀라워서 노독행의 가슴은 순식간에
차디차게 식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방립동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이름은 방립동이 아닐세. 나는 동방립(東方立)이라고
하네."
노독행은 방립동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동방...립이라고?"
그의 음성은 너무도 나직해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방립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내가 바로 무능하기로 소문난 포호산장의 소가주일세.
그리고 내 아내는 모용추수라고 하지."
모용추수!
그녀의 이름을 듣자 노독행의 머릿속에는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다!
그녀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아니, 그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와 살을 맞대고 사는 바로 그 남자다!
그가....난생 처음으로 우정의 빚을 졌던 바로 그
사내가...그녀를 고통에 신음하게 하고 불행의 눈물을 짓게 만든
바로 그 남자였던 것이다!
그 순간 노독행의 마음속에 떠오른 감정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노독행은 평생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 뜨거운 우정을 느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니...
불행과 고통, 비극(悲劇)으로 점철된 바로 그들이라니...
혹시 악마(惡魔)가 나를 놀리고 있는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세상 일이란 원래가 이렇게 뒤틀리고 비비 꼬이는 야비한
속성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방립동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노독행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방립동은 침침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자네를 속일 생각은 없었네. 단지 나는 동방(東方)이란
성(姓)이 싫었을 뿐이야. 내 이름을 알게 되면 자네가 나와
사귀지 않을게 두려웠던 거지."
노독행을 바라보는 방립동의 시선은 복잡한 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속에 회오리치는 수많은 감정의 빛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두렵다네...."
방립동은 목이 쉬어 버린 사람같았다. 음성이 입밖으로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네가 화를 낼까봐 두려워....나를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고 할까봐 정말 두렵다네."
방립동은 고개를 떨구었다.
한동안 노독행은 멍하니 방립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떨군 방립동의 힘없는 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이름 같은 건 상관없어. 단지 나에겐 친구가 한 명 있고 그게
바로 자네라는 거지."
방립동은 번쩍 고개를 쳐들고 노독행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빛은 열망에 가득찬 어린 소년의 눈빛같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아직도 나를 친구로 생각하나?"
노독행은 차갑게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면 정말 화를 낼지도
몰라."
방립동은 금시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하나 그는 울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손을 부서져라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고맙네...."
노독행은 방립동의 눈에 희미한 물기가 반짝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진짜 친구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거야."
방립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아...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은 모욕이나
다름없지."
그 말을 할 때 방립동은 몇 번이고 눈을 깜박거렸다.
노독행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의 아내는 내가 꼭 구해 오겠네."
방립동의 얼굴에 다시 어두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자네 몸이 아직..."
노독행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지. 이제는 제법 움직일 수 있네. 몇 놈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아."
방립동의 얼굴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그 자들은 보통 인물들이 아닐세. 특히 그중에 한
사람은..."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
방립동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닐세. 그들중에 한 사람은 우문산일세."
우문산이란 말에 노독행은 입을 다물었다.
방립동은 침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도 그의 이름은 들어 보았겠지? 자네의 몸이 정상이라면
나도 말리지는 않았을 거야. 오히려 자네에게 먼저 부탁을
했을지도 모르네. 자네라면 충분히 그자와 자웅(雌雄)을 겨룰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무리일세. 불가능한 일이라구."
노독행은 다시 웃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웃음이었지만 그래도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우문산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무쌍류에게 불가능이란 없단
말이야."
"그렇지만 여보게...."
방립동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노독행은 품속에서 하나의
약병을 꺼내 들었다.
약병 속에는 금빛이 아롱거리는 환약이 십 여알쯤 들어
있었다.
노독행은 방립동이 말릴 사이도 없이 그 십 여개의 금환을
입속에 모두 털어 넣었다.
"자네...!"
방립동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여질 때 노독행은 어느새 약을
모두 삼키고 그를 보며 웃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적어도 한 시진간은 약효가 지속될거야.
그 동안에 일을 마무리짓고 오겠네."
"하...하지만...약효가 떨어지면..."
"우문산을 상대하는데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날 믿어."
노독행은 번뜩이는 외눈으로 방립동을 빤히 응시하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녀를 반드시 구해 오겠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자네에게 데리고 오겠어."
방립동은 참으려고 했지만 한 줄기 눈물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방립동은 노독행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독행의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노독행은 단시간내에 자신의 몸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아 있는 대라금환을 모두 복용해 버렸다.
짧은 순간에 그의 몸은 대라금환의 약효로 인해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시간이 경과하여 대라금환의 약효가 모두 사라진다면...
그때는 설사 두 명의 조상심이 온다고 해도 노독행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무섭게 격발된 체내의 잠력(潛力)이 모두 사라져 그의 몸은
폭발하고 남은 빈 껍데기와 같을 테니까...
노독행은 방립동을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아. 누구도 무쌍류를 죽일 수는 없어."
방립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누구도 무쌍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자신은?
자기자신이 스스로 죽으려고 한다면 제아무리 무쌍류라고 해도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는가?
탁!
방문이 닫혔다.
노독행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방립동은 노독행이 사라진 것도 모른 듯 아직까지도 그가 서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감돌고 있는 그의 체취를 음미하려는 것인가?
노독행이 떠나간지 한참이 흐를 때까지도 방립동은 텅빈 방의
한 가운데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자신이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방립동은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다.
노독행이 냉혈무정임을 안 그 순간부터 그는 너무도 간절하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물어 보지 못했다.
지금 방립동은 노독행이 서 있었던 텅빈 공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 자네는 내 아내와 어떤 관계인가?
자네가 사랑하는 그 여자는 혹시 내 아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