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건곤 1부(상) - 용대운 저
작가 소개
「태극문」이란 작품으로 90년대 한국 무협의 중흥을
불러 일으킨 작가, 용대운!
80년대 초 한국 무협시장의 중흥과 80년대 말 퇴조의
중간에 「마검패검」으로 등단해 무협 마니아들 사이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였다.
그러한 그는 특유의 압축되고 절제된 묘사, 탄탄한
구성으로 컴퓨터 통신 무협 동호회 '무림동'에 [태극문」
이란 작품을 근 5-6년 만에 연재하면서 신세대 무협
마니아들 사이에 인정받기 시작했다. 수많은 독자에게
인정받은 이 연재작을 도서출판 뫼에서 출간하면서 다시
한번 작가의 길로 들어선 용대운! 그의 작품 「태극문」은
한국 무협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 하면
서 90년대 다시 한번 무협장르가 출판계에서 살아 쉼쉴 수
있는 터를 마련하게 된다.
신인의 각오로 다시 새출발을 시작한 용대운, 그가
「태극문」이후 1년여 만에 장편 「독보건곤」(1,2부
전6권)을 내놓았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복수'라는
소재로...
「독보건곤」은 「태극문」이후 그의 작품을 기다렸던
많은 팬으로부터 굉장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다 준 「태극문」과는 달리
뼈아픈 비판도 듣게 되었다. '천편일률적이다', '긴 소설이
스토리 전개에 지나지 않았다' 등등... 그러나 그것은
차라리 그에겐 칭찬보다 더 갚진 비판이었다. 제2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80년대와 다른 독자들의 욕구와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였기에... 수많은 찬탄과
비판이 엇갈리는 속에서도 용대운 그의 필력은 다시 한번
무협 독서계에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노독행이라는 잔인하리만치 비정한 웃음을 지닌 주인공이
다시 그에게 값진 성과를 안겨 준 것이다. 비정하면서도
패륜적이지 않고, 엄청난 사건의 전개 속에서도 결코구성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고, 허구가 극대화된 기교, 무협
장르에 실전무협을 자주 등장시켜 주인공의 끈기와
인간미를 강조하는 용대운식 무협이 90년대에 승리한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90년대 신세대 무협 마니아들부터
옛날 중국 번안무협을 만화방에서 빌려 읽던 윗세대
마니아들까지 「독보건곤」은 「태극문」에 이어 국내
창작무협의 중흥을 불러 일으킨 것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사실 용대운에 이어 기라성 같은 신인
무협작가들이 탄생했고, 많은 무협전문 출판사들이 문을
열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작가 용대운이 입맛이 다양해지고,
고급화된 독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읽을 거리를 줄지, 어떤
꿈을 심어줄지 사뭇 기대되는 바이다.
<작가의 말>
이번 작품인 <독보건곤(獨步乾坤)>은 전작인
<강호무뢰한(江湖無賴漢)>과 비슷한 시기에 구상을 시작한
작품이다.
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는 전혀 판이하다.
<강호무뢰한>이 무협의 통쾌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약간의
무리한 상황전개를 감수하면서까지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나타내려고 애를 쓴 반면에, 이 <독보건곤>은 시종일관
어둡고 비장하며 한 줄기 담담한 애수마저 담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본 저자의 초창기 작품들인
<마검패검(魔劍覇劍)>이나 <유성검(流星劍)>,
<탈명검(奪命劍)>등과 비슷한 색조를 띄고 있다고 하겠다.
주인공의 성격 또한 <강호무뢰한>의 엽단풍(葉丹楓)처럼
광오하고 천방지축적인 인간이 아니라 굉장히 고독하면서도
냉혹하고 살기가 짙은 인간형으로 했으며, 무협의 영원한 테마인
'복수(復讐)'를 주제로 했다.
사실 '복수'만큼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도 없지만
또한 이것만큼 쓰기 힘든 것도 없다. 너무나 많은 소설에 너무나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다른 소설의 모방이나
아류(亞流)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주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본 저자는 그런 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실전무예(實戰武藝)'라는 양념을 가미했다.
이름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주인공이나 여타
고수들과의 대결을 좀더 사실적이고 리얼하게 묘사하려고 애를
쓴데 불과하다.
하지만 본 저자가 본격적인 무술(武術)을 익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얼마나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점에 대해서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이해와 아량을
부탁드린다.
독자제현의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
龍大雲 拜上
서 장
독고무정(獨孤無情)이 그를 처음 본 것은 어느 이름모를
산봉우리 아래에서였다.
그때 그는 전신에 피칠을 한 채 찢겨진 걸레조각처럼 바위와
바위틈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인간이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독고무정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의 왼쪽 눈은 어디로 갔는지 시커먼 구멍만 뚫려 있었고,
목에는 날카로운 유엽비수(柳葉匕首)가 박혀 있어 숨을 쉴때마다
크륵크륵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양 팔과 두 다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칼날로 난도질 당한 채 간신히 몸통에 붙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턱밑에서 부터 아랫배에 이르기까지 예리한 도(刀)에
잘려진 상처가 입을 쩍 벌리고 있어서 내장이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런 상태로 그는 살아 있었다.
독고무정이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 보고 있을 때 그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번뜩이며 독고무정을 올려다 보았다. 그
외눈에서 흘러나오는 처절한 눈빛을 독고무정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독고무정이 걸레조각처럼 변한 그의 몸을 안아들은 것은
한참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기다려왔던
무쌍류(無雙流)의 새로운 후계자를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