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집.
연지하가 굽이치고 육반산의 곁에 자리한 평량의 공동산.
얼마 전 제법 시끄러운 일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임에도 공동산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이내 평화를 찾은 분위기다.
멀리서 달려오는 한 도인을 빼고는.
- 철컹!
조천문을 크게 젖히고는 장포를 휘날리는 중년 도인이 공동파 도관 내로 들어선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다급함이. 가득 안겨져 있다.
“자, 자명! 자명!”
서둘러 태청궁의 궁주, 자명을 찾는 도인. 얼마 전 있었던 습격으로 인해 도관은 외인의 출입을 금했기에 현재 태청궁 역시 문을 닫은 상태다.
조천문을 넘기 전까지 그 어떤 문도를 보지 못한 중년 도인, 자정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하다.
“장문인?”
“스승님?”
도관에서 평화롭게 빗질과 보수 공사를 하던 도인들이 일시에 고개를 갸웃한다.
중경에 있을 것이 분명한 장문인이 어찌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 반가운 감정도 있지만, 의문이 가득한 반응이 먼저인 공동파 도인들이다.
“다들···, 다들 몸은 성한 것이냐? 다친 곳은 없고?”
자정은 서둘러 제자들의 몸 상태를 살핀다. 중경으로 전해진 소식에는 문도들의 부상 현황은 적혀 있지 않았기에 더욱 걱정이 컸던 자정이다.
사실 별다른 말이 없다는 거야 크게 다친 이가 없다는 말이지만, 또 집을 비운 가장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나.
자정은 그저.
두고 온 이들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설마 저희를 보러 중경에서 달려오신 겁니까?”
“놈들. 당연한 소리를.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느냐?”
“에이, 저희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놈들은 아니죠. 차라리 과하게 때렸나 걱정을 하시지···”
“헤헤, 맞습니다. 다친 분들이 없지는 않지만 크게 다친 분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자명 사숙께서···”
“자명이 왜?”
자정은 다친 자들이 없다는 말에서는 안심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자명이 조금 다쳤다는 투의 말이 나오자 급격히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왜들 이리 소란이냐?”
한 제자의 입이 마저 열리기 전, 다른 목소리가 이들의 대화를 방해한다.
“자준!”
“사형?”
약왕당의 당주, 자준이 한쪽 어깨에 붕대를 감고는 전각 밖으로 나온 것이다. 큰 부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말과 부상이 한 곳에 겹쳐지니, 우선은 걱정이 앞서는 자정이다.
“이게 뭔가? 자네 괜찮은가? 얼마나? 얼마나 다친 것이야?”
“허허허, 괜찮습니다, 사형. 이건 그냥 긁혀 이런 것이니.”
“정말인가? 크게 다친 것이 아니고?”
“괜찮대두요. 자공 사형이나 자명 사형이 조금 더 다쳤습니다. 청익이두요.”
“그래, 내 방금 그 말을 들었네. 다들 얼마나 다친 건가?”
“자명 사형은 상처가 깊습니다···, 뼈까지 상처를 입어 적어도 두 달은 요양을 해야 할 것이고 자공은 옆구리에 검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모두 내 탓이네···. 내 탓···”
“어찌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 중경에서 전투는 어찌 된 겁니까? 혹여 전서를 받고 회군한 건···?”
“그건 아닙니다. 사숙.”
정문은 조용히 자정의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중요한 부분에서 끼어든다. 고개를 한 번 깊게 숙이는 모습이, 오랜만에 만난 사숙에게 인사를 올리는 모습이다.
“아, 너희들도 왔구나.”
“중경에서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수습하는 중에 사문에 잠시 들린 거구요. 사문의 큰 환란을 잘 이겨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문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녀석. 말하고는. 사형.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들어가서 말씀을 나눕시다. 자명 사형도 자공 사형도 뵙고.”
자산은 오랜만에 사문을 찾은 장문인을 밖에 두기 그런지 얼른 안으로 모신다. 약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들. 약왕당의 병상에는 어깨에 큰 상처를 입은 자명과 옆구리에 붕대를 감은 자공이 누워서 이들을 맞이한다.
“자명···, 자공···, 괜찮은가···?”
“멀쩡합니다. 조금 상처를 입은 건 사실이나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다. 이제는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붕대에 묻어 나온 핏물이 그득한 자명이 웃으며 말했다.
“사숙들께서 일찍 와주신 덕에 살았지요. 하마터면 먼저 조사당에 들뻔했습니다, 그려. 허허허.”
자명은 있었던 일이 별일이 아니라는 듯 웃으며 크게 말한다. 오히려 이런 그의 모습이. 그날 밤 느꼈던 자명의 무게감이 더욱 큰 것처럼 느껴지는 자정이다.
“사숙들께 큰 빚을 졌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효를 저지른 사질들을 이렇게 지켜주시다니요.”
“지금 사숙들께서는···?”
어디 있나. 자정은 그런 의도로 고개를 조금 두리번거리며 자명에게 말을 뱉었다. 하지만.
“이미 폐관동에 다시 드셨습니다. 그날 금의위 위사랑 섞었던 검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바로 폐관동으로 가셨다는 말인가? 어찌 잡지 않고···!”
잡아서 융숭한 대접을 해야 했다. 자정의 그런 말에 자명은 단호하게 고개를 돌렸다.
“사숙들께서 사양하셨습니다. 저는 끝까지 이끌어 주실 걸 바랐지만···”
만해문과 금의위의 습격을 저지한 태상장로들은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조용히 자신들이 있던 폐관동으로 발을 옮겼다.
끝까지 이끌어 주고 또, 함께 승리를 만끽하자는 자명의 말도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나서는 것은 자신들의 역할이나, 나머지 일을 처리하는 것은 지금 공동의 중진들이 할 일이라는 말을 남길 뿐이었다.
이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정녕 사숙들께서···?”
그리 말을 했냐.
자정은 조금 불손하지만, 믿을 수 없는 자명의 말에 그렇게 되물었다.
“예. 그러셨습니다.”
“···어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자정의 표정이 깊어진다. 이를 마냥 좋아하기에는, 사숙들에게 미안한 마음 역시 드는 자정이기 때문이다.
“내 따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구나.”
잠시 머뭇거리던 자정이 밝게 웃는다. 결국에는 좋은 일이 아닌가. 그저 공동의 앞길을 막던 원로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고 꼭 해야 할 일을 해주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공동파가 보이기 시작하는 자정이다.
자명과 자공을 위로한 자정이 발을 옮긴다. 오랜만에 찾은 사문이기에 만나야 할 사람도, 또 처리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다.
정문은 자유 시간을 얻었다. 오래간만에 마주하는 사제들과 회포도 풀고 사숙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무언가 편안함이 감도는 정문의 마음.
집.
집이라는 곳을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런 것일 거라, 정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에 미소를 최대한 지어갔다.
무림맹은 좋은 곳이다. 공동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곳이고.
하지만, 이곳 공동파 도관만큼.
정문에게 이제는 더 편한 곳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 사형. 호연신개는 만나 보셨습니까?”
“응?”
정문과 간만에 회포를 풀던 청익이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갑작스레 말을 한다. 일전에 공동에 습격이 있을 거라는 말을 전해준 것이 호연신개 홍구.
그 역시 제법 큰 상처를 입고 힘겹게 공동산에 올라 말을 전했다고 한다.
습격을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는 큰 법이다. 수훈으로만 따진다면. 그 역시 이번 습격 사건에서 일등공신에 해당할 것이다.
“아···. 걔가 있었네.”
“고마운 분입니다. 상처도 옅지 않으셨는데···”
“크게 다쳤더냐?”
“배에 깊은 관통상을 당하셨습니다. 출혈도 심했구요.”
“살아··· 는 있고···?”
“그럼요! 공동이 어떤 곳입니까?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지요!”
“잘 치료를 해줬나 보구나.”
“예! 사형께서 남기신 영단이 치료에도 아주 효능이 좋더군요! 영단을 복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쌩쌩해지신 모습입니다! 이제는 상처만 아물면 소도 잡겠던데요?”
!!
“뭐, 뭐라고···?”
호연신개 홍구가 몸을 회복하고 있다는 청익의 말에 정문이 깜짝 놀란다. 다친 사람이 낫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청익이 조금 고개를 갸웃할 즈음.
“뭐, 뭘 먹였다고···?”
“사형이 남겨두신 영단 있지 않습니까? 그 당문의 기인에게서 배웠다는···. 당문이 또 의술로는 유명하니까, 혹시나 하고 먹이긴 했는데···”
!!!!!!
- 휘청.
정문의 몸이 살짝 뒤로 기운다. 정순한 도기를 지닌 도사답지 않게, 기혈이 뒤틀리는 기운까지 느껴지는 정문이다.
아니.
요상단도 있고 다른 약도 많은데, 하필 그거라니.
정문은 자신이 남긴 영단을 먹였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 진짜 그걸 먹였느냐?”
“예! 사문 내에 제일 효과 좋은 약이 그게 아닙니까? 또 많으니까···”
다른 곳에서야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그 단약이다. 공동에야 좀 차고 넘치는 약이 그 약일지는 몰라도.
일전에 사문의 문도들에게 천선단을 돌리던 정문은 그 약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강호를 떠돌던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당문의 기인이 알려준 영단이라는 말이 전부.
신의(神醫)의 비전 영약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형, 괜찮으십니까?”
청익이 비틀거리는 정문을 살펴본다. 정문의 안색이 마치 큰돈을 잃은 투전꾼의 안색처럼 보여 걱정이 되는 중이다.
“···느냐?”
“예?”
“그 거지 새끼 어딨냐고!”
정문의 목소리가 크게, 그리고 오래간만에.
공동산에 울렸다.
* * *
- 다다다다다다다!
배에 붕대를 감은, 한 거지가 도관을 질주한다. 거지도, 배에 붕대를 감은 모습도. 하나도 도관과 어울리지 않는 풍경.
더욱 이런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그런 거지를 쫓는 이가 바로 이 도관의 도사라는 점일 것이다.
“서! 서라고! 서, 이 거지 새끼야!”
정문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사숙이 자신을 향해 휘두르던 것과 비슷한 나뭇가지를 연신 휘두른다.
아슬아슬하게 이를 피해내는 거지.
그런 거지를 향해 정문이 손을 멈추지 않는다.
당연히 도망가고 있는 거지는 개방의 차기 방주 후보이자, 자랑스러운 육결개, 호연신개 홍구였다. 쫓는 도인은 무정검이고.
중경으로 전해진 전서에 따르면 호연신개가 미리 정보를 알고 공동에 전한 덕분에 공동이 습격에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을 줘도 모자랄 정도인데, 정문은 어찌 호연신개에게 이리 거칠게 나오는 것일까.
‘상도 정도가 있지!’
답은 간단하다.
상을 이미 주긴 줬는데.
그 상이 너무 과하다는 것.
그게 정문의 얼굴을 이렇게 야차처럼 만들어 버렸다.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은 그 행한 일의 가치에 맞게 줘야 한다. 공동이 미리 알고 이를 이겨낼 수 있게 한 일은 당연히 큰일이다.
하지만, 천선단은.
이미 은둔에 들어버린 신의의 비전 영단은.
정말 기연이 아니고는 다른 이들은 구할 수도 없는 천혜의 보물에 해당할 것이다.
비록, 그게 공동에는 흔한 단약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송(宋)대의 청백리(淸白吏) 포증은 청렴하고 시시비비에 밝은 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작은 일이라도 그에 걸맞은 보상을 늘 건넸고, 또 작은 죄라도 그에 걸맞은 벌을 늘 알맞게 내리는 그런 공명정대한 인물.
하지만, 역사에서 포증이 통탄해하며 한숨을 쉬었다는 고사가 하나 전해지는데, 다름 아닌 한 동료의 모친상에 그 동료와의 관계 이상의 금전을 부의금으로 잘못 제출했을 때였다고 한다.
역사에 남은 청백리 역시 과한 보상을 아쉬워했다는데, 청백리라는 말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정문은 어떻겠나.
그의 속이 타들어 가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 휘이이이익!
정문의 회초리가 거칠게 홍구의 볼을 향한다. 뒤에서 날리는 회초리임에도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뱉어내지 못한다면, 한 대라도.
때려줘야 직성이 풀릴 정문이다.
‘그걸 내다 팔면 돈이 얼마인데!’
당장에 흑시(黑市)에 내기만 해도 천금과 바꿀 수 있을 것이 천선단이다. 그걸 고작 동네 거지 새끼 바람구멍 메우는 데 쓰다니.
정문의 속이 부글거리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려온다.
- 스으으으읏!
- 샤악!
홍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회초리를 보지도 않고 신형을 낮춰 이를 피해냈다. 거칠게 바람을 가른 정문의 회초리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
“······?”
“······?”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는 홍구. 그의 눈이,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고개를 갸웃하는 정문과 마주친다.
둘 모두.
놀란 것이다.
‘피, 피했다···?’
자신이 생전에 저 무정검이라는 무인의 공격을 피한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드는 홍구. 전력을 다해 맞설 때도 한 대도 빠짐없이 야무지게 때렸던 것이 저 무인이다.
아픈 환자라고 봐줬을 리도 없을 터.
그렇다면 이건.
자신이 일취월장하여, 저 무인의 공격을 피한 것이 맞을 것이다.
“형님! 보셨습니까!”
너무도 기뻐서였을까.
홍구는 그만 성취감에 빠져 정문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자신의 성취가 보이냐는 그런 외침이다.
“······.”
“보셨냐니까요! 제가 피했습니다! 예? 형님의 공격을 피했다구요! 그것도 노기가 가득한 공격을!”
사람은 너무 기쁜 일을 마주하면 무언가를 잃기 마련이다. 지금 호연신개 홍구는, 눈치를 잃었다.
“···피해?”
점점 떠오르기 시작하는 정문의 머리와 붉어지기 시작하는 정문의 눈. 이건, 정문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두드릴 때 나오는 그런 모습이다.
“예! 피했다니까요! 얼마 전부터 몸이 가볍더니! 허허허! 칼 맞고 한 며칠 요양하니 경지를 넘은 게 아닐까요? 키히히히!”
피했다는 말부터 몸이 가벼워졌다는 말에 이어 마지막 웃음소리까지. 무엇하나 정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 어디 그럼···”
머리를 잔뜩 허공으로 띄운 정문이 한 발을 딛는다. 묵직한 공기가 자리하는 홍구와 정문의 사이.
“이것도 피해봐···!”
정문의 회초리가 무차별적으로 홍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히이이익!”
우연은 아니었다. 홍구가 정문의 공격을 피한 것도. 이전보다야 기감이 늘어났으니, 뒤에서 전해지는 공격도 쉽게 알아챘고 또, 몸도 가벼워져 이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의 경지는.
진심의 분노를 담은 정문의 공격을 피할 정도는 아니다.
- 착! 착! 착!
바닥에 웅크린 홍구를 때리는 정문의 회초리. 혼절하고도 남을 홍구가 여전히 조금 전 피해낸 그 움직임을 상상하며 웃음을 짓는다.
전보다는 훨씬.
맷집 역시 좋아진 것이다.
정문의 골이 울려온다.
자신의 공격을 피했고, 또 이제는 공격을 맞으면서 웃을 정도의 맷집까지 갖췄다.
이미 영약의 기운은 모두 흡수한 것이 분명할 터.
아무래도,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홍구를 정말, 개방의 방주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