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지켜야 한다.
전쟁이 끝났다.
아니, 전쟁이 부르기에는 너무도 일방적인 토벌이 끝이 났다. 절대 진격할 일이 없을 거란 사파의 장담에도 중경을 쓸어버린 무림맹의 무사들이 이제는 살기를 풀고 저마다 웃는 얼굴로 뒷수습에 나선다.
“금의파, 악영방, 초산주가, 수화도의 수장들은 모두 추포했습니다.”
“흠. 잘되었군. 반항이 심하진 않던가?”
“다들 겁을 잔뜩 먹어 손쉽게 항복했습니다.”
“다행이군. 피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일선에서 무사들을 지휘했던 오봉학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를 받는다. 무정검이 말한 것처럼, 저들은 별다른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무림맹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온전한 병력을 유지한 채.
무림맹의 뒤를 노리는 사파의 수장들을 처리한 것이다.
‘일이 생각보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군···. 공동만 무사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떻게 상황이 좀 좋습니까?”
눈을 굳히는 오봉학의 옆으로 정문이 다가선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던 그가, 이제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무정검. 어디 다녀오나? 한참을 찾았네.”
“주변을 조금 둘러보았습니다. 혹여나 도망가는 이는 없나 해서요.”
“상황은 매우 좋네. 자네의 말처럼, 별다른 저항 없이 강남 사파의 수장들을 잡아들였네. 만해문의 문주 장필이 보이지 않지만···, 그 역시 곧 잡힐 걸세.”
“다행이군요. 그 역시 곧 잡힐 겁니다.”
정문은 이미 장필을 만나고 왔다. 만나고 온 것뿐만이 아니라 아주 깊은 대화 역시 나누고 왔고. 그럼에도 정문은. 그를 모른 척해본다.
“노개! 평량에서 전서가 왔습니다!”
정문이 슬쩍 등을 돌리고 다른 일을 하는 척을 하며 오봉학과 대화를 피하려 할 때. 멀리서 한 거지가 달려오며 이들이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온다.
공동파가 있는 평량에서 보낸 전서였다.
“뭐라더냐! 얼른! 얼른 읽어 보아라!”
“호연신개의 이름으로 날아온 전서가 두 개입니다. 하나는 평량 시내에 금의위로 보이는 무인을 발견했다는 소식입니다.”
!!
“그, 금의위!?”
금의위란 말에 오봉학의 발이 살짝 뒤로 물러서며 당황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정문의 어깨 역시 움찔하긴 마찬가지. 애써 북경의 누군가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숨겼는데, 이제는 소용이 없어 보인다.
“···설마···, 북경에서 이번 일에 개입한 것인가? 해서! 해서 어찌 되었다 드냐?”
“호연신개는 그대로 공동산에 올라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검상을 입었으나, 공동산에서 치료를 받아 위중하진 않다고 합니다.”
“아니, 그놈의 용태가 아니라! 공동파는!?”
공동보다는 개방의 방도이자, 후개인 호연신개의 안위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말을 전하는 거지의 머리에 아렸으나, 일단은 보고를 마저 하는 거지다.
“···만해문의 무사들과 금의위 무사 다섯이 공동파를 습격. 밤중에 이를 무사히 격퇴하였답니다!”
“오오오!”
오봉학은 숨을 죽이며 말을 듣다, 격퇴하였다는 소식에 크게 안심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서둘러 정문을 바라보는 오봉학.
등을 돌렸지만, 어깨가 위로 떴다 아래로 푹! 하고 내려가는 걸 직접 목격한 오봉학이다.
‘걱정했구먼. 걱정했어.’
무심한 척.
또 걱정하지 않는 척.
이 모든 걸 해놓고도 정문은 마음이 그저 놓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금의위라···, 조장급이 왔다면 힘들었을 텐데···, 다행인 모양이구나.”
“호연신개의 보고에 따르면 조장급 무사가 하나 포함되었었다고 합니다.”
!!
“뭐라?”
개방을 통솔하며 직접 금의위와 부딪힌 적도 있는 오봉학은 금의위 위사들 중 조장급 무인의 강함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그들의 강함이야 무림인 중에서도 최상의 무사들에 버금가는 이들이 아닌가.
“고, 공동이 그런 무인이 포함된 습격을 격퇴했다는 말이더냐···?”
“예, 노개!”
“거, 말씀이 조금 이상하신데···?”
정문은 입을 쫙 벌리고 말을 묻는 오봉학에게 슬쩍 뒤를 돌아 눈치를 준다. 그가 뱉은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문이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금의위 위사 중 조장급 무사들은 강함이 상상을 초월하네.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이지···, 걱정.”
말년에 젊은 무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오봉학이다.
“누, 누구 더냐? 누가 금의위 조장을···? 역시 자명 도장인가? 아니면 자공 도장···?”
오봉학은 서둘러 자신이 아는 공동의 고수를 뱉어본다. 그들이라면 그래, 믿을 수 있다. 그런 표현을 얼른 정문의 귀에 때려 박아 보려는 오봉학이다.
“그게···, 공준 도장이라는 분이라고 합니다.”
!!
“누, 누구?”
“공동의 태상장로시라고···”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한 번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은 이름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있지 않나. 그런 것 때문에 말이 저렇게 나온 오봉학이다.
공동의 태상장로라.
그래, 한때는 공동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그들이었다. 공동오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감숙 내의 알력을 정리한 공동의 노도사들.
하지만, 그들은 최근 다른 이유로 더 유명해졌었는데.
바로 사문의 사손뻘 되는 도인에 의해.
용퇴를 당한 것 때문이었다.
무정검의 이름이 높아질수록. 그와 얽혔던 태상장로의 이야기까지 강호에 퍼졌던 건 당연한 수순.
평량에서 동냥 밥을 먹은 오봉학 역시 이 일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 그렇지. 사문 내에서 알력을 다퉈도 외부의 적을 맞으면 하나로 뭉쳐야지! 암!”
그들이라면 충분히 금의위 조장도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파의 무공과 달리 정파의 무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순해지는 법이다. 칠순이 넘은 노인이라도 정파의, 그것도 정순한 도가의 무인이라면.
오히려 더욱 고강한 무공을 가지는 법이란 말이다.
오봉학이 정문을 바라본다. 여전히 등을 돌린 모습. 하지만 붉어진 그의 귀가. 무정검 역시 지금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자네, 이걸 예상했던 거로군?”
“뭐···. 사문만큼은 끔찍이 생각하시는 분들이니.”
“그래도 조금 놀라진 않았나? 금의위라니. 이건 북경에서 무림맹을 견제하려는 음모가 분명하네.”
“사파 놈들입니다. 누구와 붙어먹어도 이상할 건 없죠.”
무덤덤하게 말한다. 하지만, 금의위라는 말이 나왔을 때 화들짝 올라가는 정문의 어깨를 똑똑히 본 오봉학이다. 이를 태상장로가 물리쳤다는 말이 나오자 안심하듯 내려갔던 어깨고.
속과는 다른 말을 뱉는 무정검이.
조금은 귀엽게 보이는 오봉학이다.
“흠···. 바로 맹주께 보고를 드리러 가야겠네. 맹주님 역시 이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리실 터이니. 그리고 또···, 대비를 해야겠지. 북경이 무림맹을 견제하려는 것이 분명하니. 맹의 이름으로 항의 서한을 전달하겠네.”
“소용없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저들은 이미 전역한 금의위 위사가 낭인 된 거라 말하겠지. 허나, 항의는 해야 하지 않겠나?”
“우선은 두시지요. 지금 항의를 한들 얻는 건 없습니다. 무림맹 소속 문파에는 이를 널리 알리고 조용히 저들을 압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겁니다.”
“흠···. 확실히 얻는 건 없겠지만···, 정말 괜찮겠나?”
“습격이 실패한 것부터 저들에게는 큰 굴욕이고 타격입니다. 괜스레 긁어 부스럼이지요. 그저 공동이 금의위 무사가 포함된 타격대를 격파하고 ‘대승’했다.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내가 더 할 말은 없네만···, 알겠네.”
어디까지나 이번 일에 가장 분개해야 할 이들은 무정검과 맹주 자정을 포함한 공동의 인물들이다. 오봉학은 당사자가 두라니, 뭐라 보탤 말이 없어 우선은 물러서고 본다.
“그것보다···, 여기를 수습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수습 말인가? 흠, 보름 정도는 걸릴 걸세. 수장을 잡았다곤 하나, 완전히 정리한 건 아니니. 저들의 사문을 추궁해 항복할 이들을 알아보고 중경 역시 안정에 들게 만들어야 할 터이니.”
“그럼···, 잠시 제가 자리를 비우는 건 괜찮겠습니까?”
정문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오봉학에게 말을 묻는다. 멋쩍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보아, 어디를 가려는 건지. 오봉학은 알 것도 같았다.
“여긴 내게 맡기게. 맹주께서는 가만히 계시려 하시겠나? 함께 다녀오는 게 어떤가?”
“그렇게 배려해주시면 감사하지요.”
“허면···, 일전에 말했던 차후 계획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흠···, 뒤에 적이 없으니, 이제는 일사천리라는 말인가.”
“서장과 전쟁 역시 이제 끝 무렵에 닿았을 겁니다. 시기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니, 서둘러야지요.”
“격문을 띄우겠네. 그리고 보름 안에 이곳을 정리하고 바로 약속한 장소로 향하겠네.”
“다음에는 또 다른 전장에서 뵙겠군요.”
“가는 길에 만날 수도 있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노개.”
오봉학은 정문과 대화를 마치고 그대로 자정에게 향해 이곳의 동향과 공동산에서 전해진 소식을 전했다.
자정 역시 안심하는 척을 했지만, 걱정이 많았는지, 격한 반응을 보이며 기뻐했다.
그리고 자정 역시.
정문과 비슷한 부탁을 오봉학에게 넌지시 건넸다.
“다녀오시지요. 무정검 역시 같은 말을 하더군요.”
“오 장로. 정말 감사합니다.”
“대신. 호위대는 함께 해야 합니다. 이제는 홀 몸이 아니시니.”
“물론입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오봉학에게 사무를 떠넘긴 자정과 정문이 채비를 서두른다. 사제들까지 대동한 정문과 자정, 그리고 맹주 직속의 호위대가 서둘러 말을 몰아, 공동산이 있는 평량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문이 떠나고 얼마 뒤.
중경의 한 절벽 아래에서 만해문의 문주, 장필로 보이는 시신이 머리가 박살 난 채 발견되었다.
* * *
“말들이 버거워합니다. 쉬어야 합니다.”
맹주의 호위대, 대주를 맡은 필성이 진중한 얼굴로 자정을 만류한다. 마음만 같아서는 쉬지 않고 평량까지 말을 몰고 싶은 자정이, 겨우 말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미안하네···, 마음이 급해서.”
“스승님. 사문이 잘 이겨냈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디 마음을 편히 가지시지요.”
“맞아요! 다들 잘 이겨냈을 거예요! 대승(大勝)이라잖아요! 너무 걱정마셔요.”
“그래···, 너희가 훨씬 어른스럽구나.”
맹주라는 직위를 맡으며 사문을 비웠다. 정도 무림을 품으며 제품에 있던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자정.
그런 자정이 사문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정문의 말을 듣고 사문으로 회군하지 않은 것도 큰 결단이 필요했다. 본산의 문도들을 믿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때로는 믿음이라는 이름에 불안을 숨기고, 그런 결단을 내려야 함을 알고 있었기에 큰 결심을 했던 것이었고.
“반 시진 후에 출발하시죠. 어떻습니까, 대주?”
“말을 몰아 물을 먹이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시지요.”
“그리하세.”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자정은 너무 마음이 앞서 일을 그르치기보다는, 그저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혹여 늦으면 먼저 출발하시지요.”
정문 역시 그런 자정과 사제들을 두고 산보에 나선다. 중경을 떠나면서부터 무언가 무거웠던 그의 표정이. 지금은 절정에 닿는 중이다.
이번 일에 대한 불안감이나 걱정 때문은 아니다.
그저 정문이 지금 신경 쓰이는 것은.
- 하늘(天)! 북경의 하늘(北天)!
이라 울리던, 장필이라는 사파인의 목소리.
정문은 저 말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조숭···.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또···’
이번 생에서는 절대 엮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이름이다. 이전 생에 잃었던 모든 것이 그의 탓이었지만, 받았던 것 역시 그의 덕이란 걸 정문도 조금은 느꼈었기에.
하지만, 그 조숭이라는 숭악한 이름은.
이제야 안정 궤도에 오른 정문의 앞길을 또다시 막아서고 만다.
정문이 차분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조금은 떨리는 손. 자신의 목숨을 한 번 거둬간 이름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정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쩌면 조숭과 어울리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조숭을 두려워한다···?’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천자까지 가지고 노는 그 숭악한 영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한때는 그의 턱밑까지 쫓았노라 여겼던 정문 역시 한순간에 그에게 당했다. 지금보다 더 정보와 다루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금의위라···’
공동산을 습격한 이들 중에는 금의위가 포함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깜짝 놀라 정문 역시 어깨를 들어 올렸던 그 이름.
금의위 위사를 전역한 것으로 꾸미고 강호에 푸는 작전은 자신이 주로 쓰던 방식이 아닌가. 그런 방식에 사문이 당할 뻔했다는 생각에 정문은 정신이 아찔해질 뻔했다.
“또···, 또 뺏겨야만 하는가···. 조숭.”
장찬, 주보, 부통, 태영.
가족이 없던 정문에게 처음으로 정(情)이란 걸 느끼게 해줬던 이름이다.
아니, 그 밑에 소속되어 정문과 합을 맞췄던 인원들까지 합치면 더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조숭이 앗아 갔다.
심지어 이전 생의 목숨까지.
헌데, 그런 조숭이.
다시금 정문이 가진 것을 뺏으려 한다.
지금 생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어느새 정문에게 너무나도 큰 의미가 된.
공동파라는 사문을.
싸우기 싫다.
맞서기 싫고.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두렵다.
한 번 자신을 죽인 사람이 어찌 두렵지 않겠나.
허세를 빼고 말한다면, 조숭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저 두려움 때문이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뺏기기 싫다.
가진 것을 놓기가 싫다.
아니, 놓을 수가 없다.
지금 자신에게 살아갈 의미가 되어주고 또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이들이 수십에서 수백에 이른다.
그런 이들을.
또 잃는 그런 참사를.
정문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 꾸우욱.
정문은 떨리는 자신의 손에 힘을 주어 겨우 주먹을 쥐어 본다.
‘지켜야 한다···!’
지켜야 한다. 그저 떠올릴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다.
두 번 다시.
같은 이의 손에 같은 착취를 당하지 않으리라.
정문은 그렇게 결심을 굳히며 떨리는 자신의 손을 겨우 부여잡는다.
이건 복수가 아니다. 그저 지키기 위한 싸움.
만약 조숭이. 황궁이.
다시금 정문이 가진 걸 노리려 한다면.
정문은 모든 걸 걸고 그들을 지울 것이다.
두려운 건 여전하다.
결과를 장담하지 못할 것 같은 경우도 이번이 처음이고.
하지만, 때로는 그를 알면서도 나서야 하는 싸움이 있는 법이다.
아마, 지금 자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매번, 모든 싸움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왜 자신을 믿고 따랐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니, 모르는 거로 해두고 싶다. 이를 안다고 말하면. 너무도 필사적이고 너무도 간절한 마음으로 싸움에 임하게 될 테니까.
그저 정문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무인은 두려워도 싸우는 자···. 그래, 수일하여 두려움마저 떨쳐낸다. 그리고··· 진일보한다. 그게 바로···’
공동의 무인.
한 번도 속한 적이 없던, 공동, 그리고 무인.
두 단어에 모두 속해진 정문이 눈을 굳게 뜨며 결심을 다진다.
“후우.”
조금은 안정이 찾아오는 그의 호흡.
겨우 마음을 다독인 정문이 등을 돌려 말을 둔 곳으로 향한다.
“사형!”
“어디 다녀오십니까?”
“칫. 팔자도 좋군요. 반 시진은 아까 넘었거늘.”
“느, 늦으셨습니다!”
반갑게 정문을 맞아주는 사제들.
그리고 지난 밤을 걱정에 잠 못 이뤘는지 말 위에서 꾸벅이는 스승 자정까지.
같은 옷, 그리고 같은 문양을 새긴 이들이 정문을 웃으며 반겨준다.
“늦으면 먼저 가래도.”
“그런 게 어딨어요!? 같이 가야지! 얼른 말에 올라타요.”
씁쓸하게 말하는 정문에게 명화는 웃으며 말 고삐를 건넨다.
같이 간다.
그저 하는 말이겠지만, 유독 가슴에 울리는 한마디.
그래, 같이.
그저 오늘 하루 조금 감상적이어서 그럴지는 몰라도.
정문은 왜인지 저 말이 싫지가 않다.
- 휘익.
정문이 도포를 휘날리며 말에 올라탄다.
말머리를 옆으로 대며 함께 나아가는 사제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꾸벅이던 머리를 부여잡은 자정이 잠에서 깨 먼저 말을 몰아간다.
좋은 대열이다. 편안하고.
아무래도 이걸.
꼭 지켜야만 할 거 같다.
말 고삐를 잡은 정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