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050. 익숙해져야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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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검회의 둘째 날은 첫날과 많이 달랐다.
비무대는 두 개로 줄었고, 관객과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다.
본선에 오르지 못한 문파들은 모두 대기석이 아닌 관중석에 따로 마련한 귀빈석으로 물러났으며, 본선에 오른 문파들의 대기석은 조금 넓어졌다.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달라진 것은.
- 공동이다아아아아아!!!!
- 공동이 왔다아아아아!!!!!
- 본선 최다 진출 문파다!!!!!!!
공동에 대한 시선과 평가일 것이다.
“반응이 어제보다 좋군요.”
“응, 결과가 예상외니까.”
진명의 어깨가 조금 무거워진다.
“익숙해져야지.”
“그렇겠죠. 익숙해지겠습니다.”
“흥, 시선 따위에 휘둘리다니, 아직 멀었군.”
말을 툭 던지고 걸어가는 사풍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늘 겉과 속이 조금씩은 다른 사풍이다.
“화산을 찾아주신 강호 동도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화산의 운중입니다.”
논검회를 총괄하던 운중이 다시금 비무대에 올라섰다.
“8강은 두 개의 비무대에서 동시에. 4강부터는 한 비무대에서 번갈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모든 무인을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본선은 사람이 적어진 만큼 그 진행 역시 빨라졌다.
“본선부터는 참가하는 무인들이 직접 패를 뽑아 대진표를 짜도록 하겠습니다. 무인들은 모두 단상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예선은 분명 화산의 관용과 배려가 가득한 대진표였다. 분명 청성, 점창, 해남, 청해, 공동 중 한 문파가 본선에 오르길 바랐던 화산과 무당, 종남이다.
사이 좋게 여러 문파가 올라오라던 그들의 뜻과는 달리 공동이 세 자리나 차지했지만 말이다.
본선은 예선과 다르다.
본선부터는 저들도 관용과 배려를 베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오로지, 실력으로만 증명하는 자리가 이제 시작인 것이다.
무인들이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 패를 뽑는다. 정문은 일(一)이란 숫자가 적힌 패를 뽑았다.
그리고 그와 붙게 될 이(二)번 패는.
무당의 일대제자, 허륜이 뽑아 들었다.
여기까진 좋다.
정문 역시 무당이나 화산과 모두 붙어 그들을 꺾고 싶었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공동은 그저 본선에 셋이나 올라간 것을 기뻐하기만 했다. 그 말 속에 숨은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본선에 셋이나 올랐다는 그 말은, 서로가 한 번쯤은 검을 섞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지금.
문제가 되어 이들을 찾아왔다.
“흥, 많고 많은 번호 중에 하필이면 그걸 뽑다니!”
“뽑긴 네가 먼저 뽑지 않았더냐? 왜? 사형이 무서우냐?”
바로, 진명과 사풍이 나란한 번호인 칠(七) 번과 팔(八) 번을 뽑았다는 것이다.
“아유, 저 바보 같은 놈들···”
정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한숨만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사형, 이건 조···”
다급하게 다가온 명화가 주변 눈치를 한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건 조작이 아니겠죠?”
전날 정문이 말하길, 예선의 대진표는 화산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을 했다. 그렇다면, 본선 역시 그들의 개입을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 나도 잘 살펴봤다만, 그냥 뽑기더라고.”
“그럼······?”
“응. 쟤들이 그냥 병신같이 뽑은 거야.”
정문이 해탈한 자의 웃음을 보여준다.
빙그레 웃는 표정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기껏 본선까지 셋이나 올라와 놓고는 결국 하나는 떨어져야 할 판이니 오죽하겠나.
“기권하거라. 사제를 다치게 하기 싫으니.”
“겁나는 거요?”
“배려하는 거다. 관용이고.”
“겁나는 거요. 도망이고.”
이미 사풍과 진명은 비무를 시작한 것만 같다. 둘의 살벌한 눈싸움이 대기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휴, 저 반편이들···’
“자,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일 번과 이 번! 칠 번과 팔 번은 모두! 비무대로 향하십시오!”
- 쿠우웅! 쿵! 쿵!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논검회 본선의 첫 경기가 시작된다.
공동은.
첫 비무부터 세 사람이 모두 올라서게 되었다.
“적당히들 하거라. 다음 경기도 생각해야 하니.”
“걱정 마십시오. 간단히 상대하고 돌려보내겠습니다.”
“흥. 들것에 실려 갈 사람이 말이 많군.”
비무대로 향하는 순간에도 기싸움이 한창이다.
‘어휴, 제발.’
정문이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털고는 비무대에 올랐다. 맞은편에는 이미 무당의 허륜이 올라와 굳건한 자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어깨만큼 벌린 보폭에 올곧은 허리. 쩍 벌어진 가슴팍과 굵은 턱까지. 누가 보아도 명문 대파의 제자처럼 보이는 허륜이 묵묵히 정문을 기다리고 있다.
‘무당이라···.’
드디어 무당이다.
아니, 이제야 무당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청성도 꺾었고 해남과 청해의 도전도 뿌리쳤다. 이제 공동에게 남은 것은 화산과 무당, 종남의 3대 도문을 꺾는 일. 그뿐일 것이다.
정문이 표정을 갈무리하며 얼굴에 장난기를 지웠다. 이제는 조금, 진지해져야 할 순간이다.
“공동파 일대제자, 이정문입니다.”
“무당의 일대제자, 허륜입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제가 배워야지요. 정문 도장께서는··· 패도적인 강검(强劍)을 쓰시지요?”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언제나 패도적인 강검의 무인을 만나길 기대해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무당 무학의 근간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유함은 강함을 ‘능히’ 이긴다는 그 유능제강. 그렇다면, 상대가 강함을 위주로 공세를 퍼붓는 성향일수록 무당 검법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는 뜻이 된다.
허륜이 검을 돌려 쥐었다.
방어세를 취하는 모습이 정문에게 들어오라는 말이다.
정문의 검이 아래로 향한다.
검 끝에는 일곱 줄기의 기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위이이잉.
크게 우는 정문의 검.
정문이 검루를 당기며 칠살검(七殺劍)의 기수식을 펼쳤다. 강맹한 기운이 일시에 비무대를 가득 채운다.
‘실로 강한 기운이로다.’
- 스슥. 스슥.
발을 털며 보법을 고쳐잡는 허륜.
정문의 공격은 항상 첫수에 상대를 제압했다. 당연히 강한 힘이 나올 것이라 허륜은 예상했다.
‘흘려낸다.’
정문의 발이 땅을 찬다.
- 콰앙!
추진력과 함께 검을 앞으로 쭉 내뻗는 정문.
‘온다!’
허륜이 눈에 불을 켰다.
자신의 몸과 닿기 바로 직전에 검을 쳐내야 유검(流劍)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찰나를 노리는 것이 바로 무당의 검.
허륜이 태극유검(太極流劍)의 방어세를 취하며 정문을 기다린다. 곧 저 검은 패도적인 기세와 함께 자신의 중앙을 찔러 올 것이다.
‘지금이다!’
허륜이 검을 들어 정문의 검을 쳐내려 할 때.
- 휘리리릭!
정문의 검이 갑자기 곡선을 그린다.
천운검(天雲劍).
공동의 여러 검술 중 유일하게 변화를 품고 있는 천운검이 멋들어지게 검로를 뿜어냈다.
‘이건······?’
분명 공동의 검은 패도적인 검이라 들었다.
논검회에 참석한 후 공동파 제자들이 보여준 검들도 모두 그렇지 않았나.
특히나 저 이정문이라는 도사는 상대마다 일수에 날려버리며 승리를 거둔 도사였다.
허륜은 정문이 당연히 자신에게도 강검을 쓰리라 예측했다.
그리고.
허륜의 그런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 서거억!
곡선을 그린 정문의 검이 허륜의 하복부를 그어버린다.
- 슈슈, 슉.
천천히 흘러나오는 붉은 피들.
이는 정문의 배려였다.
검은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베어내면 피가 솟구치는 법이다. 정문은 하복부에 검이 닿는 순간 속도를 줄이며 출혈도 줄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늘 배려와 관용을 베풀던 무당이.
배려와 관용을 받는 순간이었다.
- 툭.
허륜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졌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다.
상대를 단정 지었고, 변화하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알아챘더라도 그 속도였다면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양보해주셔 감사합니다.”
정문의 검이 검갑으로 돌아간다.
허륜과 심판에게 한 번 포권하고 돌아서는 정문.
아직까지.
관중석은 조용하다.
원래 사람은.
너무 놀라면 아무런 소리도 못 내는 법···
“저건 사기지.”
침묵을 뚫고 명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도 조용하기에 오히려 쩌렁쩌렁한 명화의 목소리다.
“응?”
“아니, 강검(强劍) 쓰냐니까 그렇다 해놓고 치사하게······”
- 텁.
묵환이 빠르게 사저의 입을 막는다.
“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허허허.
조금만 더 빨리 막지.
그제야.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 무, 무당을 이겼다!!!!!!
- 공동이 무당을 꺾었다!!!!!
- 무당이 8강 탈락이라고????
- 저건 사기···텁!
마지막에 조금 이상한 말이 들려왔지만, 뭐. 나쁘진 않았다.
정문이 느릿하게 대기석으로 향한다.
조금은 이런 환호를 즐기려는 것이다.
정문이 막 발을 떼려던 순간, 강렬한 검기가 한 줄기, 정문의 코앞을 스치고 갔다.
- 휘익!
‘습격···?’
얼른 고개를 돌리는 정문.
그의 고개가 돌아간 곳에는 피칠갑을 한, 두 무인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두 무인은.
진명과 사풍이었다.
‘미, 미친놈들···.’
정문이 얼른 대기석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된 것이냐?”
정문이 다급하게 사제들에게 물었다.
“저···, 저 사람들 미친 거 같아요!”
명화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패륜적인 말을 뱉는다. 그게 자신의 사형들이 아니라는 듯.
“저, 절초를 막 뿌려댑니다!”
사제들의 말처럼, 진명과 사풍의 경기는 여느 경기보다 치열하게 흐르고 있었다.
“흥! 고작 이런 검술로 뭘 하겠다고!”
“닥치거라! 상대가 약하니 본 실력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본 실력이 있긴 한 거요?”
“문답무용(問答無用)!”
진명이 사풍을 향해 몸을 날린다.
좌에서 우로 거칠게 곡선을 품은 현천검(玄天劍)이 펼쳐진다.
원래 현천검은 오로지 직선만을 그리는 검.
저 검로는 현천검에 천운검을 섞은 복마검결(伏魔劍訣)의 응용이었다.
- 챙! 챙! 챙!
- 쉭! 쉭! 쉭!
서로의 살이 베여감에도 둘은 무심히 공세에만 집중한다.
“죽어!”
“어디서 감히!”
흡사 서로 원수진 문파의 후예들이 논검회에서 만난 것과 같은 대화가 오고간다. 친선과 교류는 잊은 지 오래다.
- 지이잉!
사풍의 검에 일곱 줄기의 기력이 맺힌다. 조금 전 정문이 준비했던 칠살검과 같은 조화였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사풍의 검결지가 정확히 검끝과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칠살검기(七殺劍氣).
칠살검의 초식 중에서도 가장 맹렬한 기세를 자랑하는 칠살검기를 사풍이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사형에게.
‘그, 그만해. 미친놈들아···’
논검회의 본선은.
모두 하루 만에 끝이 난다. 즉, 저기서 이긴 사람은 다음 비무에도 바로 나서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풍의 칠살검과 진명의 현천검이 강하게 부딪혔다.
- 쩌어어어엉!!!
비무대를 넘어, 화산을 흔드는 파공음이 울려 퍼진다.
- 탓!
- 탓!
뒤로 한 발씩 물러나는 둘.
서로 눈빛을 갈무리하는 것을 보니, 이번 합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이 분명했다.
둘이 동시에 검을 나란히 눕힌다.
서로의 검은, 서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나올 초식도, 공격도, 검로도.
- 후우우우.
동시에 호흡을 토하더니, 이내 둘의 신형이 가운데서 교차한다.
- 채앵-!
짧고 날카로운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이내.
- 치치칭!
사풍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
진명의 검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 중이다. 과연 수백 년을 갈 양검(良劍)의 자태였다.
“젠자아아아···앙!”
- 철푸덕!
사풍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검을 잃은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버린 것이다.
“결국 진명 사형이 올라가네요.”
“배, 배분에는 이게 옳습니다!”
오히려 잘된 결과다.
모두가 그렇게 평가했다.
사형이 이기고 사제가 지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나.
“사···사문의 질서를···!”
- 쿠웅-!
멋들어지게 검을 앞으로 뻗고 말을 뱉던 진명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혼절한 것이다.
!!!!
“내 이럴 줄 알았다.”
- 탁!
정문이 이마를 치며 고개를 숙인다.
저 생각 없는 반편이들이 일을 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승자는 진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도, 진명은.
다음 비무에는 나서지 못할 것이다.
정문의 고개가 들린다.
서둘러 청성파 귀빈석을 살피는 정문.
‘아······, 두영해 선생님···, 어디까지 보신 겁니까?’
자신의 사제들을 반편이라 부르던 두영해가 떠오른다. 그를 찾는 정문의 눈에 이채가 서려 있다.
- 와하하하하하!!!
- 저, 저게 뭔가???
- 고, 공동이 양패구상??
- 그래도 화끈했다!!!!!
- 공동다운 시합이었다!!!!!
- 공동은 한 판 더 붙어라!!!!
- 서로 죽여봐라!!!!!!!
관중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들이야 결과가 어찌 되든 눈이 즐거우면 그만이 아닌가. 이번 논검회 중에 공동만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들도 없었을 것이다.
보통 논검회나 다른 비무회에서 같은 사문의 도인이 만나면 항렬이 낮은 이가 기권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였다.
반대로 공동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비유 같은 것이 아닌, 실제 저 도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사실이다.
“저건 그냥 미친놈들이지.”
정문이 연신 볼을 털어 댄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문파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양쪽으로 쓰러진 진명과 사풍을 향해 공동의 도인들이 달려간다. 그들이 걱정되는 것보다는. 얼른 숨기고 싶은 것이다.
“치워라. 눈에 절.대 띄지 않게.”
“옙!”
정문의 명을 받은 사제들이 서둘러 둘을 의약당으로 데려갔다.
“이제 사형만 남았네요.”
“그, 그래. 차라리 이게 편하겠구나.”
“뭐, 결국 저쪽 좋은 일만 시켰네요.”
명화가 턱으로 옆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점창의 주일도가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전히 눈치는 없는 도인이다.
“쟤는 그러면···?”
“결승이죠. 바로. 직행. 우리 덕에.”
“하아.”
아무래도 전에 빚진 것을 조금 크게 갚는 모양이다.
“자, 잠깐만. 그러면 내 다음 상대는?”
“누구긴 누구에요? 화산에 그 사람이지.”
백경.
처음 공동을 맞이하고 공동에 환대를 건넸던 화산의 백경이 정문의 다음 상대였다.
“백경이라···.”
정문의 눈이 화산의 단상에 닿았다.
“재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