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는 공동을 무시하지 마라!-41화 (41/153)

〈 41화 〉 041. 전권(全權)이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

- 펄럭!

도복의 앞섬과 도포의 뒷섬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마치 비단을 깐 것과 같이 주름 하나 없는 모양새다.

도복을 넓게 펼친 정문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자신의 하반신을 모두 도포로 가려버렸다.

포권한 양손을 이마까지 올리고 그대로 고개를 숙이는 정문.

“공동의 일대제자 이정문이 통천패(通天牌)의 명을 받습니다.”

통천패(通天牌).

통천패란 공동파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세 가지 신물(神物) 중 하나이다.

흑요석 반지와 통천검(通天劍)에 이어 대대로 전해지는 또 다른 신물이 바로 통천패였다.

반지는 자리의 대물림을 상징하며 검(劍)은 사문을 지키는 무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통천패는.

장문인의 명령을 상징하는 신물이다.

장문인이 없는 자리에서도 전해지는 말이 장문인의 입을 탄 것과 같은 위엄을 가지게 만드는 신물. 그것이 바로 통천패였다.

정문이 도포를 펴고 무릎을 꿇자, 주변에 어색하게 서 있던 다른 사제들 역시 모두 무릎을 꿇는다.

정문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기다랗게 늘어선 모습이 흡사 장벽과 같았다.

제자들이 모두 자세를 낮추자, 노각이 서찰을 펼친다.

지금 노각은 일대제자 노각이 아닌, 그저 장문인의 말을 전달하는 일개 화자일 뿐이다.

“공동의 제자 정문은 들으라. 정문은 공동의 대제자로서 그 직분을 다하기 위해 늘 수일(守一)에 힘쓰며 성취가 남다르게 늘어가는 것이 모두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평량에 숨어든 사파의 악적을 토벌하였으며 속가의 근심을 일시에 해소해 사문의 이름을 강호에 드높였으니, 이는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다.”

다행이다.

정문의 표정이 펴진다.

통천패가 발동되는 경우는 대부분 사문을 떠난 이에게 벌을 주거나, 그를 압송할 때, 또는 파문할 때 등 좋지 않은 일이 대부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도둑이 제 발을 저린다지 않나.

정문은 혹여 통천패가 자신을 구속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주변에 늘어선 제자들이 모두 자신의 파벌이 아님은 분명했고, 말을 전하는 자 역시 중립의 대명사인 노각이 아닌가.

그래도 칭찬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구속이나 벌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그때.

“허나!”

노각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준다.

이제 나오는 말이 본론인 것이다.

“공동은 한 명의 뛰어남으로 완성되는 곳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수많은 동혈(洞穴)이 모여 만들어진 공동의 시작처럼, 정문의 뛰어남을 시작으로 공동의 무인들이 함께 진일보(進一步)하여야 함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아직까지 괜찮다.

자신을 혼내는 것이 아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말이 아닌가.

“해서! ······,”

감은 것만 같던 노각의 눈이 크게 떠진다.

장문인의 서찰은 자신도 지금 처음 읽어보는 것. 그 역시 내용에 조금은 놀란 것이다.

“공동의 제자들이 타문(他門)의 검을 견식 하며 이를 통해 더욱 성장할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에 명하노니······ 대제자 정문은.”

노각의 시선이 정문과 마주친다.

서찰에만 집중하던 그의 시선이 처음으로 정문에게 던져진 것이다.

- 꿀꺽.

침을 크게 한 번 삼키는 노각.

그가 입을 한 번 적시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사제들을 이끌고 화산(華山)으로 향하라.”

!!!!!!!!!!!!!!!!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노각에게 향했다.

자신들이 들은 말을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천패를 정문에게 맡기노니, 장문인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위임하는 바이다. 속가행에 나섰던 제자들은 모두 정문의 말을 나의 말처럼 따르라. 위임의 범위는······, 전권(全權)이다.”

!!!!!!!!!!!!

연이어 충격적인 발언이 터져 나온다.

입이 이미 땅에 닿은 제자부터 눈을 감고 턱을 드는 제자. 이마에 손을 짚은 제자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이 제자들을 가득 채운다.

당장에 따지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직 장문인의 말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참는 중인 것이 분명했다.

“정문은 사제들의 귀감(龜鑑)이 되어 이들을 옳은 길로 잘 이끌고 사문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모쪼록 기회를 살려 일을 잘 마무리하길 바라며 말을 마친다. 제자들은 늘 수일(守一)하며 진일보(進一步)하라······.”

“······.”

“······.”

예상외로, 조용한 반응들이다.

당장에 전령이 끝나면 따져야겠다며 생각했던 제자들도, 말뜻을 풀이하면 검문논검회(劍門論劍會)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니 기뻐해야지 하던 제자들도 모두. 아무런 말이 없다.

“화···화산으로 가란 말씀은···?”

누군가 처음으로 육성이란 걸 자랑해본다.

“음···. 검문첩(劍門牒)이 여기 있다.”

노각이 품에서 다른 서찰을 하나 꺼낸다.

“그, 그걸 왜 사형이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검문첩이 생각보다 빨리 당도했다. 스승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모양이지만.”

노각의 표정이 무겁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중립을 깨는 행동은 아닐지 걱정도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파벌 싸움은 사형제 사이의 문제. 그는 그저 스승의 명을 받아 행했을 뿐이라 이내 자신을 다독였다.

“태, 태상자로님들은 아시는 겁니까?”

사풍의 측근으로 늘 함께하던 청익이 얼른 치고 나왔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실게다.”

노각은 ‘이제’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일이 여기까지 만들어지는 동안은 그들이 몰랐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사풍의 파벌에 속한 제자들이 일제히 사풍을 바라본다.

이들은 모두 속가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노각에게 잡힌 이들로 사문 내의 사정은 그들도 모르는 상태였다.

의외로.

사풍은 별다른 변화나 동요가 없었다.

“스승님의 명이다. 따를 뿐이다.”

덤덤히 말하는 사풍.

그 역시 자신의 조부가 뿜어댈 노성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히려 일이 사문 밖에서 진행된 만큼 공준과 마주하지 않는 지금이 안심도 되는 사풍이다.

사풍의 덤덤한 모습을 보자 점차 진정하기 시작하는 일대제자들.

그들이 일제히 정문의 반응을 살핀다.

멍하다.

넋을 놓고 허공만을 응시한다.

‘정문 사형도 몰랐던 건가···.’

혹여나 스승과 미리 언질을 주고받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던 이들 역시 정문의 그런 반응을 보고 얼른 의심을 거뒀다.

“허허···.”

정문이 그저 헛웃음만 짓는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사문에 제자들이 돌아오기 전에 그들을 낚아채 화산으로 보내는 것도, 검문첩을 예상보다 빠르게 오게 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획기적이긴 하지만, 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또, 대제자에게 전권을 맡길 수도 있다.

사문 내에서 입지가 그렇게 큰 대제자는 아닌 것이 지금 정문의 상황이 아닌가.

큰일을 앞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는 힘을 조금 실어주려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정문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앞선 말들이 아니라 뒤에 붙인 말이었다.

- 모쪼록 기회를 살려 일을 잘 마무리하길 바라며 말을 마친다.

의미심장하다.

‘기회’란 말과 ‘마무리’ 그리고 ‘일’.

다른 이들이 그저 맡겨진 일을 잘하란 말로 이해했을 때, 정문은 그 말에 숨겨진 진의를 알아들었다.

태상장로들과의 정쟁.

사풍과의 대제자 쟁탈전.

그 모든 것들을 이번 일로 마무리 지으란 언질이 스승의 저 말 속에 담겨져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

결국에는 모두 정문의 손으로 해결하라는 일종의 미룸이다. 정문은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받은 것이 너무 달콤했다.

검문논검회라는 자리와 스무 명의 사제들.

그리고 전권과 통천패.

비록 사제들이 자신을 조금 멀리하는 사풍의 아이들이라지만, 뭐.

크게 개의치 않는 정문이었다.

“사형, 통천패를.”

노각이 정문을 일으켜 세우고 통천패를 건넨다.

“응.”

작은 석패를 받아든 정문이 이를 도복에 묶어 메었다.

이제.

정문은 본산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장문인과 같은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축하해요! 일이 이렇게 풀리네요?”

명화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축하를 건넨다.

“노, 논검회라니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묵환은 잔뜩 기대되는지, 가슴에 손까지 올린 자세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사형께서 일을 수행하심에 걸림이 없도록 수일(守一)하겠습니다.”

진명만이 조금은 진중한 자세였다.

“음···, 그래.”

자세를 정리한 정문이 사풍을 돌아본다.

어느새 정문을 둘러쌓던 제자들이 모두 사풍 주변으로 몰려들어 무언가를 속닥거리고 있다.

“저, 정말 괜찮은 겁니까?”

“사형께서도 모르셨던 겁니까?”

“논검회라니요? 대비도 없이···”

저마다 걱정거리를 가슴에 한 아름씩 품고는 사풍이 무언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의도였다.

사풍의 입꼬리가 뒤틀린다.

“말하지 않았느냐. 스승님의 명이니 따른다고.”

“사, 사형! 이번 일을···”

금모라는 일대제자가 서둘러 사풍에게 이번 일을 막자는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막았다.

그를 내려다보는 사풍의 눈빛이 너무도 경멸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 무슨 눈빛이?’

사풍 역시 자신의 그런 표정을 의식했는지 서둘러 얼굴을 갈무리한다.

- 후우우.

“방법이 없다. 여기서 항명하고 산으로 돌아가면 일이 풀릴 것 같으냐? 우선은 명에 따라 수행한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공동의 무인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 그리고, 후에 따질 것이 있다면 그때, 어른들께서 나설 것이다.”

사풍은 그저 스승의 말이니 따르겠노라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뱉은 말처럼, 지금은 외통수에 몰린 상황이다.

사문 안과 밖을 통틀어 결국 장문인의 명이 하달 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결정된 후인 것이다.

명예직인 태상장로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그 결정이 내려지지 않도록 힘을 쓰는 것뿐이었다.

이미 명이 내려졌다면, 그들은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스승이 평소와 달리 너무 전격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 마음에는 조금 걸리는 사풍이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만 넘어가길···.’

다른 사제들의 표정이 어둡다.

사풍 역시 이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조금도 설레지 않는 것인가.’

사풍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사풍의 시선이 정문과 다른 사형제에게 닿는다.

명화는 기뻐한다.

묵환은 설레한다.

진명은 올곧다.

정문은 덤덤하다.

그래. 저런 반응이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라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약하게 사풍의 머리를 스쳤다.

사풍은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노각아. 이거 전권이면 뭐 할 수 있냐?”

이제는 정신줄을 다시 부여잡은 정문이 통천패를 어루만지며 노각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요구한다.

“여기 있는 사형제들은 모두 호령할 수 있습니다. 일정 부분에서는 장문 대리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규율을 담당하는 구천각의 일원답게 노각은 아무런 막힘없이 정문에게 통천패의 사용범위를 일러줬다.

“그니까, 쉽게 말하면. 이제 내가 까라면 쟤들 다 까야 한다는 말이지?”

“검문논검회는···, 본디 다른 문파의 장문과 장로들도 모습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사형께서도 그분들처럼 사문을 대표하신다는···”

“아니, 어렵게 말하지 말고. 까라면 까는 거지?”

맞다.

사실 저 말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말이 너무 가벼워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뿐이었다.

“······, 비슷은 합니다.”

“내가 돌격! 하면 다들 칼 뽑고 뛰어가야 하는 거고?”

“······, 명이라면, 따라야지요.”

노각은 거짓을 말할 줄 모르는 도사였다.

그저 대사형의 질문에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는 모두 대답을 해주려는 그였다.

“그,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 상황과 사태를 보고···”

하지만.

정문의 성정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발한 상식을 잘 아는 명화의 입장에서는 노각의 저 대답이 불안하기만 하다.

“아니. 모든 판단은 통천패를 가진 사형의 판단에 따른다. 그게 공동의 율법이다.”

“아···. 제발.”

명화는 그저 불안하다.

여섯 살 아이 손에 마치 보검을 들린 부모의 마음이 명화와 같을 것이다.

“야, 대박이네. 권력이네. 권력!”

“사형···? 그거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전권이래! 전권! 다 할 수 있는 거라고!”

“자자, 일단 진정하고···”

“야, 이대로 애들 끌고 화산이랑 전쟁이라도···”

- 텁.

차마 더는 듣지 못하겠다는 진명이 정문의 입을 막았다.

“사형께서 아주 옳은 곳에만 자알. 쓰시겠다고 하시는구나.”

“방금 전쟁이라고···?”

똑똑히 자신의 귀로 들어오는 단어를 들은 노각이 의문을 표했다.

“진정으로라도 교류하고 싶다는 말씀을 잘못들은 게지. 하.하.하.”

진명의 해명에도 여전히 찝찝한 기운이 남는 노각이다.

“화산까지 여기서 이레는 가야 합니다. 논검회는 보름이 넘게 남았으니, 여유는 있을 겁니다.”

“다른 문파들이 그때까지 모두 모여지는 건가?”

“거리순으로 검문첩이 발송된다 했으니, 이미 수령한 문파들도 많을 겁니다. 출발한 곳도 있을 것이구요.”

“흠, 그렇군.”

다행히 시간적 여유는 제법 있는 것 같다.

정문이 사풍과 모여있는 사제들에게 다가섰다. 정문에게 일제히 꽂히는 시선.

불안한 눈빛과 불신의 눈빛, 조금은 두려움의 눈빛도 느껴진다.

애써 자신의 눈빛을 피하려는 그들과 시선을 한 번씩 맞춘 후 정문이 입을 열었다.

“가자. 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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